「경수야.」
「응.」
「내가 너한테 말 안한 게 있는데….」
「…뭔데?」
「사실은,」
「……?」
「사실은, 나….」
사실은, 뭐?
모든 걸 털어놓지 않고 입술만 깨물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는 김종인이 내 앞에 서있다. 이건, 꿈이다. 그래, 꿈. 바로 며칠 전에 똑같이 꾸었던 그 꿈. 그 애의 입에서 뒤따라 나올 말을 기다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중요한 순간에 엄마가 깨우는 바람에 못 들었는데 똑같은 꿈을 다시 꾸게 되다니….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그래, 이건 기회라고. 종인이가 내 꿈에 두 번이나 나와서 이렇게까지 같은 얘기를 반복하려는 건 무언가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입술이 다물어졌다가 열렸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내게 전할 말이 꽤 어려운 것인지 끊임없이 망설이는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사실은, 내가 더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는데도.
「사실은….」
그래, 사실은? 뭔데, 사실은 뭔데 종인아?
「…….」
「경수야….」
그 애의 입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시간이 꽤 힘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내가 독촉하면 그 애가 더 입을 못 열 것 같아서 호기심을 꾹 눌러 참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봤다가, 또 아래로 숙이던 녀석이 심호흡을 하듯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그러고서 내 이름을 부르는 데 그 목소리가 조금의 떨림을 동반한 목소리라, 그걸 듣고 있는 나마저 조금 떨렸다.
「응.」
그래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부름에 대답하면,
「사실은 나….」
「…….」
종인이가 나와 한번 눈을 맞추었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조심스레 한마디 던진다. 도대체 무슨 말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싶은 마음도, 이제야 드디어 말을 하는 구나…하는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너랑 자고 싶어….」
그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그 목소리에 그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헐….
너와 나만의 시간
2부
19.
헐. 대박. 완전, 대박.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부끄러웠다. 아니, 어제 저녁엔 마음을 먹고 이상한 그런 게…이 동영상까지 봐놓고선 아침에 일어나니 모든 게 다 부끄러운 거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종인이네 방에서 팬…티를 발견한 그 순간이 머릿속을 번쩍하고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내가 컴퓨터로 그 문제의 동영상을 찾아 본 것 까지 다 모조리 기억이 나면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데도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울 뻔했다. 이불을 입 안에 쑤셔넣고서 죄 없는 이불만 마구 씹어댔으니까. 진짜, 학교가기가 싫었다. 종인이는 무슨 낯으로 볼 거지? 그 아이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아주 그냥 아찔해졌다. 그런데, 하필 꿈까지 그런 걸 꿔선…. 사실은 뭐? 사실은 뭐라고? 나랑 자고 싶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건 분명 김종인의 얼굴을 한 음란 마귀임에 틀림이 없어. 종인이가 그 부끄러운 얼굴로 나한테 그런 음란한 말을 했을 리 없잖아. 엉엉. 근데, 또 그렇게 단정 지을 수도 없는 게 내가 그 애의 방에서 발견했던 그 팬…티 때문에.
아 나 미치겠네, 진짜.
지금이야 말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진짜, 이건 진심이다.
一
“아, 안녕….”
그런데 그 부끄러움이 내 몫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교는 몰라도 등교는 무조건 같이 했었는데 오늘은 정말로 얼굴보기가 민망해서 모든 준비를 마쳐놓고 종인이한테 문자를 보냈었다. 내가 늦잠을 자서 지금 일어났으니 너 먼저 학교에 가라고. 평소였다면 괜찮다고 나를 기다렸을 그 아이가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서, 같이 학교 오는 것도 피했는데 이렇게 딱 복도에서 마주칠 줄이야…. 그래도 얼굴은 봤는데 그냥 지나치는 건 도저히 못 하겠는 거다.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먼저 인사를 했다. 그에, 종인이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찔한다.
“아, 어….”
그러면서 그 아이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고 괜히 땅만 보며 인사를 해온다. 어디다가 인사를 하는 거야, 대체. 왠지 모르게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한 종인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혹시나 눈이 마주칠까봐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이렇게 어색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쉬는 시간의 복도는 꽤나 시끌벅적한데 유독 내가 서있는 이 자리만 고요한 것 같고.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그 아이도, 나도 가던 길도 못 가고 어색하게 멈춰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는데 또 어색하게 서있기만 한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말도 안 되는 잡생각이 마구 떠다니는데 그게 다 무슨 생각인지 정리도 못하겠고, 굳어서 발을 움직이지도 못하겠고. 아, 진짜 딱 죽을 맛이다.
“…….”
“…….”
근데, 진짜 너무 어색한 거다. 이게 지금 뭐하는 건가 싶어서 그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굴이라도 보일까봐 되게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는데 보이는 건 그 아이의 정수리뿐이다. 나만 죽을 맛이 아니었어. 종인이도 지금 아마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을 걸? 그래, 내가 이렇게 민망한데 넌 오죽하겠냐. 치부를 들킨 그런 기분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미안해지는 거다. 우리가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도 사생활은 지켜줬어야 하는 건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방을 청소해서는…. 이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아, 이렇게 어색한 건 정말 싫은데. 난감하고 또 미안하고 어색하고 그래서 말은 못하고 괜히 뒷머리만 긁적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숙인 고개를 들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보는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난 아마 물어보지 못할 거야.
“아, 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난을 칠 수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얘기를 꺼내면 어제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질 것 같았다. 그럼 왠지 더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고. 종인이는 부끄러워서 미치려고 하겠지, 아마. 어우, 안 돼. 상상도 하기 싫다.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근데, 그렇다고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 할 수도 없다. 타이밍….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벌써 부끄러움에 몸서리 치고 있는데 이제 와서 괜히 툭툭 장난을 치면, 그게 더 민망할 것 같으니까 좀…. 아, 모르겠고.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누군가 날 좀 구해줬으면 좋겠다. 여전히 뒷머리를 긁적인 채 고개를 돌리며 복도를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저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날 누가 좀 구원해주기를….
“…….”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살펴보았으나, 누군가 날 구해줄 것 같지는 않다. 그래. 그렇담 내가 헤쳐 나가는 수밖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종인이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만. 그러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종인이를 바라보면, 어느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그 아이와 눈을 마주하게 됐다. 깜빡깜빡. 한 일초 쯤 그러고 있었을까.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급하게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말았다. 어, 어떡하지?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겠어….
“…아, 음… 나 이제 교실 들어 가봐야겠다.”
“아…그, 그래? 나, 나도 가봐야겠다.”
“…….”
“…….”
“나, 나중에 보자….”
로봇처럼 어색하게 손을 들어 허공에 몇 번 흔들고서 뒤도 안돌아보고 교실로 쏜살같이 뛰어가 버렸다. 아,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근데, 그 아이를 뒤로 하고 뛰어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얼굴이 화끈거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一
“…난 그렇게 생각해.”
아니, 그러니까 대체 뭘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맞은편에 앉은 변백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얜 좀 이상해. 이상한 거야 예전부터 늘 느끼고 있었지만 아무튼, 진짜 이상하단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복잡해서 죽겠는데 뜬금없이 찾아와선 비어있는 내 앞자리에 턱 자리를 잡고 앉더니 던지는 말이 저거야. 이게 무슨 어이가 없는 상황이지?
“뭐가.”
턱을 괴고 살짝 입을 벌린 채 녀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난 진짜,”
“넌 진짜 뭐.”
“나는 진짜 사려 깊은 아이인 것 같아.”
아,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 데?”
“내가.”
“네가 뭐.”
“내가, 너희를 위해서.”
“너희가 누군데.”
“누구긴. 너랑 깜종이지.”
수업시간 내내 김종인 생각만 해놓구선 갑자기 백현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또 움찔했다. 안 그런 척, 태연한 척하려 애썼다. 그렇지만 이미 머릿속엔 그 아이의 얼굴과 어제 보았던 동영상이 이미 재생되고 있어…. 진짜, 난 미친 것 같아. 왜 이렇게 정신머리가 썩었지? 생각을 지우려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랬더니, 변백현이 몸을 뒤로 멀리하며 아, 시발 비듬! 하고 성질을 낸다. 개새끼야, 나 비듬 없다고.
“암튼, 내말 좀 들어봐.”
“아, 뭔데. 뭔데, 뭐냐고.”
“그러니까 진짜, 대박이라니까.”
“…….”
“…아오.”
“…….”
“내가.”
말 하라고 계속 쳐다봤다.
“그러니까 내가….”
“…….”
“내가, 있잖아….”
“…….”
“…….”
“아, 시발 너 말 안 할 거면 꺼져.”
사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데 계속 질질 끄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결국 못 참고 욕을 내뱉고 말았다. 아, 종인이가 욕하지 말라고 했는데. 없으니까, 뭐. 어떻게 알 거야. 게다가 지금은 내가 욕 했다고 해도 혼내지도 못 할걸? 아…. 씁쓸하다. 어서 이런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서 예전처럼 그렇게 잘 지내고 싶은데. 이건, 뭐. 싸운 것도 아니고, 서로 잘못한 것도 아니라서 풀기가 더 애매한 것 같다. 그래. 나야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 부분에 있어선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고. 네가 앞서나간 게 아니라 내가 느렸던 거라고. 그러니까 그 애는 안 부끄러워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또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내가 종인이었어도 무지하게 부끄러웠을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 팬…티를 들켰으니. 그래, 부끄러운 건 인정! 아,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다 어지럽다. 멘붕? 멘탈 붕괴. 이런 게 바로 멘탈 붕괴지. 에라이, 망할 손!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말 할 거거든?”
“근데 왜 자꾸 질질 끌어.”
“이렇게 질질 끌수록 감동이 배가 되는 법이니까.”
“하, 너는 진짜….”
“아무튼.”
“…….”
“내가, 너희를 이해하기 위해서.”
“아, 뭐. 뭔데, 뭐!! 뭐냐고!!!”
박찬열 어디 갔지? 쓸데없는 소리나 해대는 변백현을 상대하고 있자니, 찬열이가 그리워졌다. 야, 박찬열. 빨리 와서 이 귀찮은 놈이나 치워줘. 얘는 니 상대잖아. 응?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다. 박찬열을 찾아 녀석의 자리로 시선을 돌렸더니 아무도 없는 거다. 빈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리를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놈이 그렇지 뭐. 있었어도 날 도와주지는 않았을 거야.
“어제 내가, 그…그걸 봤어.”
이젠 대답하기도 귀찮아.
“게…게, 게….”
너는 떠들어라, 나는 무시 할 테니.
“게…게이, 동…동영상.”
누군가 들을까봐 내 귀를 끌어당겨서 귓속말로 속삭이는 녀석의 말에 기운이 쭉 빠졌다. 아, 이런 걸 내가 친구라고…. 가뜩이나 속 시끄러워 죽겠는데 뭐라고? 뭘 봤다고? 그게 왜 우리를 위해서냐. 응?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백현아.
괜히 그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내 안에 숨어있던 음란마귀가 또 나타나서 나를 괴롭힌다. 그에, 짜증이 나서 앞에 있는 의자를 발로 차버렸다.
“꺼져, 개새끼야!”
***
오랜만이에요~ 이번주 내내 과제때문에 바빠서@@ 죄송해요TT
헿....
몽글몽글 쏘쏘 낑깡 백토끼 라면 파리채 민트색 순백흑백현 찌롱 까꿍
링세 아이엠벱 블슈 다이트 아가 마가렛됴 긍긍 춥파춥스 일초 딘듀
엨솜 준퍽 바니바니 됴짜 얌냠냠 나룻배 코코눈 말레이시아준수 스팸
뽀뽀뽀 도로시 찬백맛나 힛 됴르르 올리브 치비 트위터 띠드케잌 훈외생
도블리 호박잎 꿈이뤄21 핑계 감동그자체,도경수 끼용 공작새 오디오
까칠 슈엔 대훈이여친 쏘니 나그랑 도됴 아리 다크다크해 소금 소나무님
사랑해요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