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2부
21.
“…왜?”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김종인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 어제 그 미술실 이후로 어색함은 다 풀렸다. 아니, 따지고 보면 김종인만 풀린 것 같지만…. 집에 갈 때도 손을 잡고 같이 갔고, 쉬는 시간에도 우리 반으로 꼬박꼬박 출근 도장을 찍는다. 비어있는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종인이의 손을 잡고 조물 거렸다. 그랬더니, 내게 잡힌 손과 얼굴을 번갈아보던 그 애가 작게 묻는다. 할 말 있어? 이런 눈빛을 하고서. 근데, 사실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왜 이러는 거냐고 물으면, 그냥 잡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아, 모르겠다. 뭔가 자꾸만 아쉬워. 어색함이 풀린 건 좋은데, 네가 내게 했던 그 말은 나를 그만큼이나 생각해주었다는 거니까 정말 좋은데,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그것 참 이상한 일이지.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대답은 않고, 잡고 있는 손만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그랬더니,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던 종인이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잡은 손을 꽉 쥐며 물었다. 이거 봐, 내 예상이 맞았다. 눈빛만 읽었는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정확하게 짚었잖아. 그 애의 까만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조금 빨리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 눈동자 속에 들어 있다. 와, 신기해. 저 안에 내가 들어있는 것 같다.
“경수야.”
아참, 대답해야지.
“아니. 그런 거 없어….”
정신을 차리고서 다시 종인이와 눈을 맞춰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그 애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 장난을 치고 있는 채로. 뭐랄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들어서 그 말만 하고서 시선을 잡고 있는 손으로 내렸다. 손 되게 크다. 내 손이 작은 건가. 그 애의 한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있으니까 뭔가, 되게 기분이 이상하다. 엄지를 쓸어도 봤다가, 마구 잡아당기기도 하고, 억지로 주먹을 쥐게 했다가 또 풀고. 말 한마디 없이 찰흙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마구 조물 거렸다.
손이 되게 따뜻하다.
“뭐해.”
따뜻해서 그런가, 잡은 손을 놓기가 싫다. 평소였다면 교실에서 손을 잡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을 일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좀, 그래. 조금 있으면 끝날 쉬는 시간도 아깝고, 그냥 이대로 김종인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으면 싶고, 그게 안 되면 박찬열이랑 반을 잠시 바꾸는 건 어떻게 안 되려나. 아니면, 내가 오세훈이랑 바꾸는 걸로. 아, 짜증나. 반 편성은 누가 하는 거야? 왜, 나랑 종인이를 떨어트려놨냐 구요. 누군지는 몰라도, 되게 원망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줘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은 아, 성적순인가? 뭐 이런 생각.
“오늘도 학원 가?”
“아니, 안 가.”
“어? 어제도 안가지 않았어?”
“어제는 그냥 빼먹은 거….”
“…왜?”
“그냥, 너랑 얘기 하고 싶어서.”
“막 결석하고, 그래도 돼?”
“아니, 안 돼.”
“이 양아치야.”
“나 양아치 아닌데….”
종인이가 나 때문에 학원을 빼먹었다니까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부추긴 것도 아닌데, 나랑 얘기하고 싶어서 일부러 안 갔대. 결석은 나쁜 거지만, 괜히 뿌듯하고 그렇다. 아, 나쁜 일은 장려하고 그러면 안 되는데.
양아치라고 놀리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푸스스 웃었다. 내가 웃으니, 그 애도 나를 따라 같이 웃는다. 안 웃을 것처럼 생겨가지고 되게 잘 웃어. 얼굴만 보면 완전 차도남인데. 차가운도시남자. 근데, 알고 보면 또 아니야. 반전매력이다. 김종인. 뭐, 그래도 매력덩어리인 나만 하겠냐만은…. 흐흐, 나 왜 이러지? 좀 바보같다.
“그럼 마치고 집에 같이 가면 돼?”
“응.”
“…….”
“……”
“…좋다.”
마주보고 웃었다. 근처에 나머지 세 명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종인이가 등장하자마자 박찬열이 ‘야, 보니까 얘네 화해 한 것 같은데 우리 못 볼꼴 보지 말고 매점이나 가자.’ 하며 오세훈, 변백현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피해주니 난 감사할 따름. 고맙고맙. 감사감사. 괜히, 혼자 만족스러워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다가 다시 종인이를 쳐다봤다. 그 애가 나른하게 풀어진 눈동자를 하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 눈을 휘면서 웃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제처럼 그 동영상이 갑자기 내 머릿속을 장악하는 거다. 웃고 있는 종인이의 어깨가 드러난다. 그리고 앵글이 점점 아래로…. 헐. 미쳤어, 미친 도경수.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잡고 있던 손에 땀이 막 차오르는 것 같아서 살짝 놓았다. 덥다. 어제가 끝일 줄 알았는데. 그, 묘한 분위기는 어제로 해결이 다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더 좋은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김종인의 말이 못 견디게 좋아서가 아니다. 물론, 좋지. 이런 간지러운 말. 되게 좋아해.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런 말 하는 것도 좋고, 듣는 것도 좋다. 게다가 좋아죽는 종인이가 하니까 더 좋은 거지. 그런데, 지금 나를 설레게 하는 그 무언가는 이게 아니야.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게 되고, 애가 타서 다리를 달달 떨게 되는 그 무언가는 이게 아니라고.
이렇게 집중해서 그 애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사실은, 얼굴이 아니라 이…입술.
“하….”
미안해, 이런 나라서. 이렇게 썩은 나라서 미안. 네가 거부감을 느낄까봐 걱정했던 순수한 도경수는 여기에 없어. 나, 원래 이런 애 아닌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은근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종인이에게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까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아.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찬다. 두둥실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마성의 김종인.
一
좋아하니까 닿고 싶고 더 가까이, 더 깊숙이 안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런 내 마음도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근데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거다.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어제였다. 종인이가 나한테 기다려준다고 말 한 것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바로 말했어야 했어. 그런 거 아니라고, 난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한 영혼이 아니야! 이렇게 말 했어야 했는데! 아니, 이틀 지난 것도 아니고, 삼일이 지난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지난 오늘 감춰뒀던 욕망이 마구마구 끓어오를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괴로운 마음에 한숨만 푹 내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종인이가 이런 나를 알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이제 와서 갑자기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도 쑥스럽고, 그렇다고 얌전히 있자니 그것도 안 내켜. 고비를 하나 넘기니까 다른 하나가 자꾸 찾아오는 것 같다. 이건 내 착각일까. 아닌 것 같은데.
“왜. 또, 뭐가 문제야.”
답답해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또 머리만 두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더니 귀신같은 박찬열이 뭘 또 알아챈 모양인지 나를 부른다. 고개만 슬쩍 돌려 옆을 보았다. 찬열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눈을 깜빡인다. 이런, 내 깊은 감정을 네가 알기나 하니. 아가야. 넌 뭘 알긴 알아? 연애도 안하는 네가 뭘! 대체 뭘!
“아무것도 아니야….”
“어제, 김종인이랑 화해한 거 아니었어?”
“맞아.”
“근데 왜 또 한숨인데.”
“아, 몰라몰라. 나 지금 복잡하거든?”
“그러니까 뭐가 복잡하냐고.”
왜 이렇게 다들 끈질기지? 끈질김 하면 변백이었는데 요즘은 박찬열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상한 걸 닮아가고 있어. 게다가, 말 안하려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단다. 궁금해 죽겠다는 눈빛으로 펜을 들어 내 옆구리를 찌르는 박찬열을 아래위로 훑었다. 이래서 또 말하면, 나 놀리려고? 이건 진짜 평생의 놀림감인데! 내가 이걸 미쳤다고 너한테 말 하겠냐. 난 바보가 아니야. 그러니까, 고만 궁금해 해라.
“넌 모르는 뭔가 있어.”
“내가 뭘 몰라.”
“왜. 넌 뭐, 다 알고 있어야 돼?”
“난 모르는 게 없으니까.”
“아…, 이것들이 단체로 나한테 왜이래?”
약을 쳐 먹었나. 왜, 다들 나를 가만두지 않는 거냐고. 어제는 변백현, 오늘은 너냐? 너야?
인상을 쓰고 박찬열을 노려보았다. 적당히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변백현은 눈치 없어서 모른다고 쳐도, 알거 다 아는 귀신같은 놈이 아마추어같이 또 들들 볶고 그런 건 안하겠지?
“아, 됐어. 내, 더러워서 안 물어본다. 고민이나 덜어주려고 했더니만 뭘 그렇게 고깝게 쳐다보고 난리야. 더러운 도경수. 엿이나 쳐드셈.”
역시, 말이 통하는 놈이었어. 인상을 풀고서 박찬열을 향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엿은 안 먹을래.
“너나 엿 먹어.”
난, 진도에 관한 고찰이나 하겠어.
一
“…….”
아, 진짜 답답하다. 오늘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한 것 같다.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심지어 밥 먹으면서 까지도 그 생각만 했는데. 결론은 하나였다. 뭐, 어차피 답은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종인이한테 확실하게 내 의사를 알리는 거야! 어떻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대충 눈치 채겠지? 하는 마음에 오늘 내내 일부러 더 치근거렸다. 손을 잡는 건 당연한 거고, 쉬는 시간에 몰래 옥상 근처 계단으로 데려가서 뽀뽀도 하고, 또 무언가 반응이 올까 싶어서 등 뒤에서 안아보기도 하고. 내가 진짜 별걸 다 했는데…!
딱 하나 간과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김종인이 더럽게 눈치가 없다는 것.
“…….”
집에 가는 길, 저번처럼 인적이 드문 깊숙하고 어두운 골목에 마주보고 서있었다. 여기 왜 서 있냐고 물어보면 답은 하나잖아. 당연히,
“…뽀뽀.”
뽀뽀 하려고.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할지도 모르지. 아무튼, 말랑말랑한 그 느낌이 너무 그리워서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내 손가락 말고, 김종인 손가락으로.
“…….”
“빨리.”
“…….”
“야.”
“…….”
“종인아.”
“…….”
“김종인.”
“…어어?”
아무렇지 않게 반응할 줄 알았는데, 살짝 당황한 모양이다. 멍한 표정으로 벽면 어딘가를 주시하던 종인이가 계속되는 내 부름에 느리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뭔가 난감한 표정으로 내 눈을 피해서 자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 이런 표정은. 이것은. 내 방법이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는 거다! 흡족한 마음에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아랫입술을 깨물며 꾹 참았다. 지금 웃으면 이 묘한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서.
“…뽀뽀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야?”
그 물음에도, 여전히 대답이 없다. 까만 머리통만 보이는데도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 것 같았다. 아, 난감하다. 이걸 어쩌지. 뭐, 이런 생각이 아닐까.
“…….”
“…….”
조금 더 기다리려고 계속 우물 쭈물거리며 시선만 피하는 그 애의 머리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수리에서 땀이 흘러내릴 것 같다. 귀여워. 몰래 웃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여전히 내 입술 위에 있는 그 아이의 손가락을 끌어당겨 그 위에다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했다. 그 애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번쩍 치켜든다.
“왜, 나 안 봐.”
“…응?”
“뽀뽀.”
지금은 당황당황열매를 먹었나보다. 놀란 표정으로 내 손에 잡혀있던 손가락을 급하게 거두어갔다. 손끝에 열이 오른 것 같기도 하고, 그 얼굴이 전 보다 좀 더 빨개진 것 같기도 하다. 마주한 그 얼굴이 빨개진 걸 느끼자마자 내 얼굴이 더 달아오른 것 같았다. 그 무덤덤한 김종인을 이렇게 당황하게 만들다니. 그것도, 무려 내가! 손가락에 뽀뽀한 게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아, 부끄러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종인아.”
빨간 얼굴을 한 내가, 뻘겋게 익은 종인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올렸다. 내 손위에 잡혀서 그 애의 볼이 밀려 올라갔다. 어쩜, 그래도 귀엽다. 갑작스럽게 자꾸만 접촉해오는 내가 당황스러운 건지, 피하고 싶은 건지 자꾸만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한다. 왜 나를 안 봐. 날 보라고, 날 보란 말이야!
정신없이 움직이는 그 눈동자를 쫓아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런데, 김종인은 다가가면 갈수록 피할 곳도 없으면서 자꾸만 움찔거리며 뒤로 몸을 뺀다. 어허, 어딜!
“뽀뽀하자니까 왜 자꾸 빼!”
“…어?”
“나 지금 영어 하는 거 아니거든? 한국말 하고 있는데 왜 못 알아 들어.”
“…응.”
“응은 또 뭐야, 바보 같잖아….”
“…….”
“아무튼.”
“응?”
“나랑 뽀뽀 할 거야, 말거야.”
얼굴을 더 가까이 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두 눈에 얼굴이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
종인이가 눈을 깜빡인다. 당황한 모습은 처음인 것 같은데, 너무…
“할 거야….”
귀여워서 그만 얼굴을 끌어당겨 입술에 쪽 소리 나게 뽀뽀 하고 말았다. 뽀뽀는 하면 할수록 좋은 것 같다. 보들보들한 느낌이 입술에 닿았다가 멀어졌다. 저질러놓고 부끄러워서 금방 떨어지고 말았지만. 여하튼, 내가 먼저 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경수야….”
“응.”
“아….”
여전히 내게 얼굴을 붙잡힌 채 종인이가 내 손바닥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면서 내 이름을 애달프게 불러. 게다가, 한숨까지 쉬었다. 따뜻한 숨이 손바닥을 채웠다.
“…왜?”
내가 이렇게 용기내서 온몸으로 말하고 있잖아. 나는, 순수하지 않다고.
“왜 불렀는데….”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잖아. 거부감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고.
“…….”
“…….”
종인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조금, 깊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눈동자가 너무나도 까맣다. 빨려들어갈 것 같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렇게 예쁘게 반짝반짝. 가만 보면, 김종인은 안 예쁜 구석이 없는 것 같단 말이지…. 아, 이건 내 사심인가. 사심이면 뭐 어때. 내 껀데.
눈을 맞춘 채 씨익 웃어버렸다. 네가 너무 예뻐서.
“…키스, 해도 돼?”
어제 한 말 때문인지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그 말에 잠시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너는, 생각이 참 많은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온 몸으로 다가가고 있는데, 날 배려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지. 새삼스럽게 물어보는 거라고, 조금은 어이가 없거나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를 배려하는 네 목소리가 좋을 뿐이라서. 무언가 망설이고 있는 네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네 얼굴을 붙잡고 있는 내 손위로 네가 손을 포개어왔다. 눈을 감은 채 살짝 비틀린 고개가 점점 더 가까이 온다. 네가 뱉은 숨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가고, 내 숨도 네 얼굴을 스쳐지나 갈까봐 나도 모르게 조심하게 된다. 코가 맞닿으면,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감고 만다. 입술 위로 그 아이의 입술이 느껴졌다. 조금 전처럼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지 않고 진득하게 내 입술을 누른다. 뽀뽀일 뿐인데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팔딱거린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네가, 내 박동 소리를 들을까봐 부끄러워졌다.
내 손을 덮고 있는 네 손에 힘이 들어감과 동시에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혀가 느껴졌다. 한두 번도 아닌데, 매번 느낌이 이상하다. 물컹한 것이 내 입안을 마구 휘젓고 돌아다닌다. 이상하게 발끝이 오므라드는 그 느낌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종인이가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는다. 아무것도 아닌데, 가슴이 찡하고 울렸다. 그 아이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차렷 자세로 있을까 하다가,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어디를 잡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 그 애가 다른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이 내 혀를 휘감아왔다. 아, 순간 아찔해져서 잡을 곳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떠있던 손으로 그 아이의 허리를 잡아 쥐었다.
“하아….”
허리를 부여잡자마자, 그 애가 몸을 움찔거리며 입술을 뗐다. 내 손을 얼른 떼어내면서, 당황한 듯 눈이 또 커졌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떠서 내 앞에 있는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빨개…. 내 입술도 저렇게 빨간색이려나.
“…….”
“…….”
침으로 번들거리는 내 입술을 멍한 눈으로 보던 그 애가 손을 들어 내 입가를 닦아 주었다. 그리고선, 자기 입도 막 닦는다. 살짝 벌린 입으론 여전히 거친 숨을 내뱉고 있으면서도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마구 흔든다. 그걸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사실은, 나도 숨이 차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였지만.
가슴 위로 한 손을 올린 종인이가,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숨을 고르게 뱉으려고 노력을 한다. 내 눈을 한번 보고, 얼른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다.
“왜에….”
왠지, 더 깊어지기 전에 멈춘 것 같아서 살짝 불만 섞인 목소리로 그 애의 팔목을 잡아 쥐었다.
왜 멈춰, 왜. 내가 지금 이렇게 용기를 냈는데.
내 말엔 대꾸도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네가 보고 느끼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데. 아, 행동으론 보여줄 수 있겠는데 차마 말로는 못 꺼내겠는 거다. 나를 외면한 채 숨을 고르는 그 애를 보면서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였는지 모른다. 이거, 진짜 어려운 거구나. 와, 어렵다.
눈치가 없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뭔가 꾹 참아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종인이는 내게서 조금 떨어진 채, 이제 좀 가라앉은 듯 좀 전보단 한결 차분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걸 또 보고만 있자니 괜히 심술이 나는 거다. 그래, 좋지. 배려, 좋다고. 근데 왜 하다가 멈추냐 이 말이야. 이대로 쭉쭉! 자연스럽게 갔으면 좀 좋아?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일석이조 아닌가? 응? 내가 어제 제대로 답을 못한 건 생각도 않고, 눈앞의 김종인만 원망을 했다. 나쁜 놈. 말로는 못하겠으니 이렇게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 아니겠냐며. 하…. 답답한 김종인.
“…아,”
그래서 일부러 그랬다. 그 애의 손가락을 잡아 아무렇지 않은 척, 만지작거리다가 앙 하고 아프지 않게 물었다. 종인이가 또 몸을 움찔해. 아니, 뭐. 누가 보면 내가 대단한 거라도 한 줄 알겠네. 핥은 것도 아니고, 그냥 물었다고요. 소시지 물듯이 앙. 이렇게. 내 맘 몰라주는 게 미워서 세게 물어버릴까 하다가, 내가 더 아플 것 같아서 그건 차마 못하겠더라. 그래서 다시 놓아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움찔거리던 종인이가 내게 물린 제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은근슬쩍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여전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그런, 꿈을 꾸는 것 같은 몽롱한 표정이다.
“…….”
내 눈과, 제 손가락을 번갈아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그 애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난 다 참을 거야. 다 참을 수 있어. 뭐, 그런 비장한 각오를 담은 눈빛이랄까? 시발…. 답답해 죽겠네. 말을 할 수도 없고 미칠 것 같았다. 한 번 더 시도해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버린다. 분명, 이 거리라면 입술이 닿아야하는데 김종인이 얼른 몸을 빼버리는 바람에, 난 지금 허공과 마주하고 있어. 내 앞엔 아무도 없고, 있어야할 종인이는 좀 더 뒤에 있어….
에라이, 너 잘났다. 시발. 대쪽 같은 자식.
“…경수야.”
“왜.”
“…….”
“왜!”
“…….”
눈빛은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지만,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종인이가 말했다.
“집에 가자….”
시이발.
一
난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정도 했음 됐지, 뭘 더 해야 해?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잔뜩 심통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그 좁은 골목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진짜, 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 심지어 옆에 있는 김종인 마저도. 사실은, 얘가 지금 제일 큰 이유지만 여하튼, 어쨌든 마음에 안 든다고! 다 필요 없어! 엄마아빠도 늦게 오는데, 아빠 양주 한 병이나 까야겠다. 아, 속상해 진짜. 술 마시면 좀 용기가 나려나? 술 취한채로 비틀거리면서 말할까? 내 꿈에 나온 김종인처럼. 김종인 집에 찾아가든지, 아니면 전화를 걸어서 말해야 되냐고. 야! 나 너랑 자고 싶어! 이렇게?
방금, 술에 취한 상태로 난동피우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가 얼른 머리를 흔들었다. 아, 이건 아닌 것 같아. 이건, 아니에요! 이건.
나는 답답해서 말이 없다고 쳐, 김종인도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집에 오는 길은 침묵에 쌓인 길이었다고. 얜 대체 무엇을 하기에 말이 없나 궁금해서 슬쩍, 표정을 살피면 굉장히 복잡한 얼굴을 한 채 아래를 보는 건지, 아님 앞을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곳에 시선을 두고 걷는 김종인이 있었다. 에잇, 열 받아. 그렇게 조용히 걸어오는 동안 백현이 말도 생각나고, 진짜 쓸데없는 말이었는데 괜히 신경 쓰인다. 플라토닉 러브가 어쩌고저쩌고. 나, 그런 사랑 지향하지 않거든? 물론, 그 동영상의 여파로 무서운 마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아주 극소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었다. 호기심도 생겼고, 또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졌으니까. 아픈 거, 다 감당해 낼 자신이 생겼단 말이야! 생각하면 할수록 이거, 화만 나는 것 같다. 아스팔트 바닥을 쿵쿵거리며 걸었다. 내 발만 아프다. 에잇, 짜증나. 그러는 사이 벌써 집 앞이다. 우리 집과, 김종인 집 대문을 앞에 두고 멈췄다. 대화 한마디 없이 걸어온 김에 그냥 나 기분 안 좋은 거 알아채라고 말없이 뒤돌아섰다. 왜? 먼저 집에 가버리려고. 그런데, 이상하게 앞으로 가지질 않는 거다. 뭔가 날 붙잡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휙 고개를 돌렸다.
“저기…,”
아니나 다를까, 김종인이 수줍은 얼굴을 하고서 손으로 내 교복 소매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
아무 말 없이 노려보았다. 빨리 이거 안 놔? 이런 무서운 표정을 지은 것 같은데 먹히지는 않을 것 같다. 어색한 침묵이 또 흐른다. 그놈의 침묵! 침묵 좀! 묵념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야. 말이 없으니까 괜히 경건해지려고 하잖아. 불순한 생각을 가져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사과해야 될 것 같고.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면 사실, 따지고 보면 종인이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모두 다 내 잘못이었다. 그 애가 혹여나 놓칠세라 꼭 붙잡고 있는 소매 자락을 쳐다보다가 표정이 조금 느슨하게 풀리고 말았다. 미안해, 미안. 종인아. 넌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안하다.
“…….”
근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생각인 걸까. 너무너무 답답해서 그냥 툭 말을 내뱉었다.
“뭐, 나한테 할 말 있어?”
근데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나오고 말았다. 괜히, 민망하고 또 미안해서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오늘은 일이 안 풀리려나보다. 하루 종일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고. 좀, 그래….
진득하니 기다려줄 생각으로 눈앞의 종인이를 바라보았다. 그 애는 여전히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소매를 붙잡고 있는 손은 그대로였다.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 시선을 땅으로 내렸다가, 또 다시 나를 보았다가.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아예 나를 보기에 이제야 좀 괜찮아졌나 싶어서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으면, 이번에는 또 입을 달싹이며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날 밤 새겠어요, 아저씨.
“…나.”
하마터면 하품을 할 뻔 했다. 다행인 건 할 뻔 했다는 거지, 하지 않았다는 사실. 드디어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에 또릿또릿 눈을 빛내며 그 아이의 말에 집중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인 건지 듣고 싶어서.
“…나.”
“…….”
“너….”
“…….”
수줍었던 얼굴을 또 어디론가 버리고, 잔뜩 진지해진 얼굴의 김종인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확실하게 말했다.
“…집에 보내기 싫어.”
***
헐 너무 급전개인가요@@
쓸땐언제고 이제와보니 멘붕..TT
헝 똥글.. 똥손... TT
드디어 과제를 끝냈어요!!!
오늘 다 했어요^8^
매주 목요일마다 과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 여유도 조만간 사라질테지만 그래도 즐기렵니다ㅠㅠ
헝
화이팅!
오늘도 너무너무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하트!
몽글몽글 쏘쏘 낑깡 백토끼 라면 파리채 민트색 순백흑백현 찌롱 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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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쨩 얼음이님 사랑해요!!! 하트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