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양은 왜인지 상처 치료에 능숙했다. 까이고 패인 살 위에 정성스럽게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도 감아주었다. 왼쪽 이마는 찢어져 아직도 피를 찔금 짜내고 있어 화장솜에 약을 바르고 테이프로 붙여주었다.
" 저 이마에 난 상처는 병원가서 꼬매야돼요. "
" 귀찮아. "
" 흉터 생겨요. "
" 생기라고 그래. "
하며 볼 품없는 셔츠를 다시 입으려 하는 태환을 보고는 쑨양이 옷장에서 하얀 티셔츠 한장과 회색 트레이닝 바지를 건넨다.
" 걸레조각을 입겠다고요? "
" ..... "
빨리 입죠? 하며 재촉하는 쑨양에게서 옷을 받아두고 잠시 의문을 가지는 태환이다.
" 너 말이야. "
" 네? "
" 왜 날 도와준거지? "
하니 쑨양은 고개를 갸웃 하더니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더니 ' 아! ' 하며 대답을 한다.
" 마침 학교 가기 싫었는데 변명거리가 생기니까? "
하는데 그게 가당찮게 들려서 헛웃음치는 태환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쑨양의 옷을 옆으로 제쳐두고 물었다.
" 담임이 너희 엄마한테 전화 안하냐? 너 부모님은 어디있어? "
하니 쑨양은 입을 다문다. 그러더니 화제를 돌리려는듯 딴소리를 한다.
" 아, 아저씨 밥 안드셨죠? "
하고는 거실로 도망치듯 나간다. 태환은 모든 것이 의아했다. 다른 파벌 잔챙이들에게 쫓기고 쳐맞고. 갑자기 나타난 저 남자애. 무슨 의도인지도 모르겠으나 자신을 도와준 저 녀석이 뭔가 수상하다 생각했다.
" 아저씨! 먹을게 라면밖에 없는데 괜찮죠? "
모든 게 의문투성이이다.
" 맘대로 해. "
쑨양이 뭔가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고,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젓가락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도 연이어 들렸다.
곧
" 아저씨, 라면 먹어요. "
하는 소리도 들렸다. 잠시 침대에 누워 졸던 태환은 배가 고팠는지 일단 순순히 나갔다.
" 아저씨 김치 안 먹죠? "
하더니 ' 사실 김치가 없거든요! 하하! ' 하며 혼자 웃는다. 뒤이어 쑨영은 태환이 옷을 갈아입지 않고 맨 몸에 양복 하의 그대로 입고 나온 것을 발견했다. ' 아, 진짜! 옷 갈아입으라니까! ' 라고 핀잔을 줘도 별로 쑨양 말대로 행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태환이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그릇에 퍼 담는데, 젓가락질이 힘들다. 젓가락을 보니 짝이 틀리다.
" 아 젓가락 짝이 안맞아요! "
" ...... "
" 설거지를 모르고 안해놨거든요, 항상 네 개씩은 짝이 없이 남더라구요. "
" ...... "
" 중딩 때 컴퓨터 하면서 책상에서 자주 밥을 먹었는데 그 때 사라진걸까요? "
" 시끄러워. "
" 칫, 닦아주고 치료해주고 밥 먹여주는데. 너무 당당하신거 아니예요? "
" 묻는 말에만 대답해, 너. "
하더니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쑨양은 라면을 담은 그릇 채 들고 먹다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태환을 바라보았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다른 파벌 잔챙이일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 태환이었다.
" 너, 왜 나 도와준거냐. "
" 말했잖아요. 학교 가기 싫었다고. "
" 그런 거짓말 치지 말고. "
" 거짓말 아닌데? "
" 엄마 어딨는데? "
" 없는데요. "
" 아빠는. "
" 아빠도 없어요. "
태환은 서서히 화가났다. 아까전까지 혼혈이라며 아버지 어머니 얘기 할땐 언제고 저런 거짓말을 치는게 어이 없었다.
" 아, 여기 없을 뿐이지. 있긴 있죠. "
" 어디 계시는데? "
하고 언성을 높인 태환이다. 그러자 쑨양이 그릇을 살포시 내려놓고 태환과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 그게 그렇게도 궁금해요? "
" .... "
" 알았어요, 말해줄게요. 우리 엄마는 창녀고, 아빠는 미쳐서 집을 나갔어요. "
태환은 순간 뒷통수를 각목으로 맞은 듯 멍했다. 순간 저것도 거짓말 일거라 생각을 했지만 얼굴 표정을 보니 그렇지 않은 듯 했다.
" 그래서 내가 모른다고 했잖아. "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어버버 거리며 할 말을 궁리하는데 오히려 쑨양이 웃으며 말했다.
" 됐어요, 아저씨가 몰라서 그런거 잖아요. 괜히 당황해 하시지 마세요. "
하면서 의연하게 말하는데, 그 말이 태환을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쑨양이 라면 불겠다며 다시 그릇을 집어들고 먹기 시작한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고팠던 배가 괜히 더부룩해짐을 느낀 태환이었다.
" 내가 왜 학교 가기 싫어하는지 이제 알겠죠? "
" .. "
" 선생님들은 다 저를 색안경 끼고 보고요, 애들은 중국인이라고 놀리니까. 이제 다 이해 가세요? "
" 알겠어. 그만해. "
쑨양이 씩 웃으며 말한다.
" 나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러는거죠? "
다 아니까 걱정마세요. 하면서 라면을 먹는 쑨양이다. 태환도 따라 젓가락을 들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자신을 구해 준 사람도, 또 그와 나누는 이상한 얘기들, 같이 먹는 라면. 모두 다 처음이었다.
" 좀 먹어요. "
" 넌 애가 낯도 안가리냐? "
" 낯 가릴게 있나요, 뭐. "
하면서 또 후루룩 하고 면을 빨아들인다. 그러다 쑨양이 갑자기 궁금한게 생긴듯 ' 아! ' 하며 눈을 반짝인다.
" 저 궁금한게 생겼는데, 아저씨 직업이 뭐예요? "
그 말을 듣자마자 라면을 퍼먹으며 입을 봉쇄하는 태환이었다. 쫌 알려달라며 찡찡대는 쑨양의 아우성도 같이 씹어 목으로 넘긴다.
" 알아서 뭐하게. "
하면서 냄비 안에 서로 엉켜있는 라면들을 또 한웅큼 덜어 내 입으로 넣는다. ' 궁금하니까 그러죠- ' 하면서 굴하지 않고 계속 끈질기게 물어오는 쑨양이다. 태환은 묵묵히 라면만 먹으며 뭐라고 말할 지 궁리했다. 남한테 자신의 직업을 말하는건 싫어하는 태환이었다. 물론 그가 번듯하고 바람직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기때문이다.
" 회사원. "
그가 짤막하게 대답하자 쑨양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 저랑 장난해요? ' 하면서 물어오지만 역시 대답없는 태환이다. 냄비에 다시 젓가락질을 하며 면을 건지려는데 쑨양이 냄비를 두 손으로 확 빼간다. 뭐하는 짓이냐며 꾸짖었지만 ' 흥. ' 하면서 주지 않을 요량으로 껴안듯 들어올린다.
" 나 배고파. "
" 제대로 말하세요, 그럼. 회사원이 길바닥에 피를 질질 흘리면서 쓰러져 있을리가 없잖아요. "
한다. 태환은 그냥 묵묵히 쑨양을 바라보다가 ' 밥 맛 다 떨어지네 - '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쑨양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자기는 물어볼거 다 물어봐놓고, 나는 왜 안돼? 하며 울먹였다.
" 라면 내가 다 먹어버릴거야. "
하며 라면을 푹푹 입에 넣는데 씹어도 씹어도 목 뒤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