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쉬는 날엔 집에 있고싶지 않아? 또 밖에 나오면 좀 그럴 것 같은데.
민현) 출근이랑은 다르잖아. 놀러나온건데.
파스타 집에 마주앉아있는 둘에 여주는 물을 따르며 말했고, 그 물컵을 받아든 민현이 웃으며 답했다.
여주) 와 이제 반팔 입은 사람들도 보이네.
민현) 이제 곧 사월이니까.
여주) …벌써.
민현) 시간 빠르지?
여주) 응.
민현) 이거 먹고 뭐할까?
여주) 오빠가 골라야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쓰나.
민현) 네가 가고싶은 곳이면 난 다 좋지- 어디 가고싶어?
여주) 서점도 좋아?
민현) 서점?
여주) 응. 정말 서점도 좋으십니까?
민현) ..물론!
여주) 느려느려.
느리다며 고개를 젓는 동시에 음식이 나오고, 둘은 푸스스하게 웃으며 포크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가볍게 인사한 둘이 면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여주) 로제 파스타는 처음이야.
민현) 그래?
여주) 응. 원래 오일파스타만 먹었었거든.
민현) 오일파스타를 제일 좋아해?
여주) 응. 오빠는?
민현) 난 다 좋아해. 종류 안가리고.
여주) 그래서 먹고나서 뭐하고 싶은데?
민현) 음..
공방갈래?
민규) ….진심 열받는데?
창균) 그러게.
지훈) ………….
방에 콕 박혀 게임을 하던 민규와 창균, 그리고 일하고 있던 지훈은 계단 옆에 붙어있는 게시판을 한 껏 째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정갈한 민현의 글씨를.
‘여주랑 놀다올게.
늦어. -민현’
민규) 아니 게임한 사이에 사라지기 있어?
지훈) 오늘 월차 썼다더니. 이지랄을 할 줄은 몰랐네.
창균) …밥이나 먹자. 뭐 시켜먹을까?
지훈) 낙곱새 먹을래? 그거 먹을만 하던데.
민규) 좋다.
창균) 난 후식으로 먹을 츄러스 좀 시킬게. 츄러스 땡기네.
지훈) 내 건 안시켜도 돼.
민규) 난 먹을거야.
지훈) 홍지수랑 전원우는?
민규) 아마 먹을 걸.
지훈) 그럼 대짜 세개 시킬게.
게시판에서 서서히 멀어지던 셋은 거실 소파에 앉고, 주문을 끝내며 휴대폰을 가볍게 제 옆에 휙 던졌다.
정한) 내가 얌생이를 키웠다니까.
민현) 뭘 키워. 내가 자랐는데.
지수) 쟤 원래부터 얌생이었어. 고딩 때도 저랬잖아.
원우) 그건 뭐야?
여주) 아 이거. 우리 공방 가서 컵 만들었어. 우리 개인 컵.
승관) 미친 그럼 둘이서 이, 이 많은 인원 거를 만든거야?!
지훈) 욕한 게 좀 미안해 지기도 하네.
민규) …그러게
여주) 아니야- 어차피 그냥 컵에 그림 그려넣는게 다라서, 별로 안힘들었어.
여주와 민현이 아홉시가 되어서 돌아오자 이미 퇴근한 아이들이 둘을 반겼다. 그 때 원우가 여주와 민현이 나눠 든 쇼핑백을 가리키며 묻자 여주는 자연스레 부엌에 가 식탁에서 하나 둘 상자를 꺼내들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은 상자에 여주와 민현의 글씨체로 적힌 제 이름을 찾아 상자를 열었다.
한솔) 와. 뭐야? 귀엽다.
찬) 내 건 별로 안귀여운데?
민현) 내가 그린 건 안귀엽고, 여주가 그린 것만 귀여워.
여주) 아냨ㅋㅋㅋ 오빠가 그린 게 매력있다니까?
민규) 아싸! 나 김여주 그림!
석민) 아 나는 아니잖아!
민현) 석민아 그렇게 대놓고 싫어하면….
지훈) 아싸 나도 여주 거
정한) 아이씨 나 황민현이야!
민현) …아니 야,
지수) 아…나도 황민현이네.
승철) 아싸 나는 여주 거!
창균) ..나도 여주 그림이네.
원우) 어, 난 민현이 건데 좀 잘그린 것 같네.
민현) 아 맞아. 니 거 좀 잘그렸어 내가. 아니 근데 너희-
지훈) ..여기 여주 있어?
지수) 응. 저기. 왜?
지훈) …아니 그냥 뭐하나 해서.
지수) 날씨 좋다고 그냥 앉아있고 싶대.
민현마저 출근한 수요일. 지훈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듯 제 방에서 나와 여주를 찾았다. 지수의 말에 지훈은 천천히 테라스 문을 열며 뒤돌아 자신을 쳐다보는 여주의 시선을 맞췄다. 왜?
지훈) ..아니 그냥. 너 뭐하나 해서.
여주) 나야 뭐.. 그냥 쉬지. 오빤 왜? 밥먹게?
지훈) 아니.
여주) …날씨 좋지?
지훈) …그러네.
여주) 봄을 느낄대로 느껴야돼.
이 느낌을 기억도 못하게 금새 여름이 오잖아.
여주의 말에 지훈이 살짝 웃더니 손을 꼼지락 거리고, 여주는 멍하니 주택 단지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 어색하지 않은 편안한 정적이 자리하고, 적잖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지훈) …여주야.
여주) 응?
지훈) 다음엔 나랑도 놀러가자.
여주) 그래 좋아.
지훈) 산책도 하자, 고등학교 때 처럼.
지훈의 나긋나긋한 음성에 허공을 바라보던 여주가 고개를 돌려 지훈의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그래.
여주) 더운 건 딱 질색이니까. 더워지기 전에.
지훈) …………
여주) …근데 오빠,
지훈) ..응?
드르륵-,
창균) 슬슬 점심 먹자는데 민규가?
여주) ..아직 열두신데?
여주가 무언가 말을 하려다 열린 문 틈으로 들어오는 창균의 말로 멈췄고, 여주는 제 손목시계를 바라보더니 의아한 듯 다시금 창균에게 되물었다.
창균) 민규가 배고프대. 조금만 일찍 먹고싶대.
여주) 난 상관없어.
지훈) ..나도 딱히 상관 없어.
창균) 그럼 내려와. 메뉴 정하자.
창균이 먼저 테라스를 나가고, 여주는 지훈에게 가자. 하며 흔들 그네에서 먼저 일어서고, 지훈은 그런 여주의 팔목을 살며시 잡으며 물었다.
지훈) 여주야.
여주) 응?
지훈) 뭐 말하려그랬어?
여주) 응?
지훈) ..방금 나한테 뭐 말하려그랬잖아.
여주) …아,
여주가 엉거주춤 서있던 몸을 다시 앉히며 지훈을 향해 말했다. 다음에,
여주) 산책 말고,
지훈) ………..
여주) 천문대 어때?
별 보러.
우리 다음엔 별 보러 가자.
승관) 나뢍 별보뤄 가쥐 하안을뤠~
석민) 느히ㅣ쥡 아프뤄 잠꽌 나올뤠~
여주) …왜그래.
석민) 요즘 승관이랑 꽂힌 노래야. 좋지?
민규) 니가 그렇게 부르는데 어떻게 좋게 들리냐.
여주) 그니까.
저녁을 먹은 뒤 오랜만에 보드게임이나 하자며 모인 넷이었고, 뉴욕 땅을 먹더니 신난 승관과 석민이 한껏 소울을 담아 노래를 불러댔다. 그러자 민규와 여주는 고개를 저어대고, 한솔은 승관에게 뉴욕 카드를 쥐어주며 말했다. 조용히 좀 해.
승관) 너허무 서두르진 아늘게~
석민) 그치만 니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한솔) …여주야 네 턴이야.
여주) 오키. 근데 그 노래는 어디서 들었길래 꽂혔어?
여주가 주사위를 던지면서 묻자 승관은 돈을 정리하며 말했다.
승관) 아까 지훈이 형 방에서 계에속 이 노래 흘러나오던데?
석민) 맞아. 그래서 삼층 거실에 있다가 중독됐어.
여주) 그래? 근데 가사가 예쁘다.
석민) 어느 부분?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거기.
여주) 아씨. 뉴욕 바로 걸렸네.
민규) 미친 통행료 봐. 겁나 사악하네.
승관) 자자 어서 돈 주십쇼!
여주가 말을 천천히 옮기더니 뉴욕에서 멈췄고, 통행료를 챙기는 민규와 여주에 석민과 승관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원우) …누구야? 여주?
여주) …아 나. 불빛 때문에 그래?
원우) 아냐. 나 안잤어.
애들이 잠든 시각, 여주는 거실에 티비를 틀어놓고 있었고, 원우는 방에서 나오더니 여주냐고 물었다.
원우) 새벽 한시야. 안자고 뭐해?
여주) …그냥. 잠이 안오네.
원우) …지워.
여주) 응?
원우) …싹 다 지워졌음 좋겠어.
천천히 걸어오던 원우가 소파에 앉은 여주를 내려다보며 물었고, 잠이 안온다는 여주의 말에 원우는 지우라며 여주의 머리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원우) 생각.
여주) ㅋㅋㅋㅋㅋㅋ그런다고 지워지면 참 좋으련만.
원우) 그럼 내가 좀 가져갈까?
여주) 큰 일 날 소리를.
원우) 왜 남의 걱정도 다 네가 가지려 하고,
네 걱정도 네가 가지려 그래.
원우의 말에 여주는 눈을 느리게 꿈벅거릴 뿐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원우) 욕심쟁이.
여주) 그러게. 나 욕심쟁이네.
원우) …여주야.
여주) 응?
원우의 낮은 음색이 거실에 울리고, 여주는 고개를 들어 원우의 시선을 맞췄다.
원우) …두 번 다시 떠나지 말라고 안할게. 그건 어차피 나 말고도 많은 애들이 말할 테니까.
여주) …………
원우) 근데, 내가 제일 바라는 건,
떠나더라도 난 네가,
다 덜어냈음 좋겠어.
Epilogue
3월 31일 20:49
“누나. 벌써 봄도 끝나 간다.”
민현에게 납골공원을 들리고 가겠다는 문자를 보낸 정한이 정현의 납골함 앞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그러다가 사진 속 자신과 누나를 보던 정한이 고개를 떨구고, 제 신발을 바라보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냥, 생각나서 왔어. 난 이상하게 4월 되기 전에 이러더라. 뭔가 이맘때가 좀 공허한가봐.
“…잘 지내지?”
정한이 고개를 들어 유골함을 바라보고, 그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 유리에 붙은 꽃 하나로 시선을 옮겼다.
“…여주 왔다 갔구나.”
메리골드. 고등학교 때 정현의 사진을 본 여주가 자신이 아는 꽃이 생각난다며 정한에게 보여줬던 꽃이었다. 여주가 저번에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붙여져있던 꽃은 사라지고, 방금 사온 듯한 싱싱한 꽃이 붙여져 있었다.
..누나. 사실 나 아직도 안믿겨. 우리집에 여주가 있는게 아직도 안믿기고, 또 사라질까봐 겁도 나. 근데 이건 어쩔 수 없는거잖아. 그치. 이건 그냥 내가 감수해야하는 거잖아.
“누나. 누나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누나는 분명 여주 엄청 예뻐했을거야.”
“….누나. 여주가 말해줬는데, 메리골드 꽃말이 뭔 줄 알아?”
**
여주 안떠나여..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흐흐 오해의 소지가 좀 있어보여서 ㅎㅎ
넉점반의 봄 눈 같은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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