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면 가끔은
뛸 때도 있는 법.
동기들이 술을 마시자고 잡는 걸 물리치고 온 남준이가 집에 가벼운 걸음걸이로 가면서 입맛을 다셨으면 좋겠다.
아, 근데 오늘따라 술이 고프긴하네.
윤기와 저녁을 먹을 생각에 혼자 집으로 향하고 있기는 한데, 유독 술이 마시고 싶었으면 좋겠다.
마침 내일은 오후 강의 하나만 있고,
지금 시간도 술집에 사람들이 들어차기 직전이고,
딱, 술 마시기 좋은 날인데.
남준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어락을 풀고 들어가려다 멈칫.
손을 올려 문을 쿵쿵 두드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발자국 소리가 이내 짧게 울렸으면.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으면.
... 아. 맞다. 누구세요?
참 빨리도 생각해낸다.
결국 김남준 너 맞잖아.
투덜거린 윤기가 문을 열어주면 그제야 남준이가 안으로 들어왔으면.
나 왔어요.
그리고 손을 뻗어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윤기는 가만히 그 손길을 받으면서 배고프다며 얼른 밥을 먹자고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잠시 생각하던 남준이가 혹시나 싶어서 윤기에게 말을 걸었으면.
토끼야.
...?
술 마셔도 돼요?
윤기가 후드를 한층 더 꾹 눌러쓴 채로 생각보다 더 우왁스러운 소리가 울리는 술집 안으로 남준이를 따라 들어갔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고개를 돌려 칸막이가 교묘히 가리고 있는, 두 명이 앉기 딱 좋은 테이블을 찾아 윤기와 마주보고 앉았으면.
어딘가 멍한 상태로 주위를 둘러봤으면 좋겠다.
어두운 실내 안, 화려하다기보다는 각 테이블만 비출 정도의 조잡하지만 밝은 주황빛 조명,
투박한 분위기, 여러 사람들의 말소리가 뭉쳐 웅웅거리는 분위기,
가운데 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함성마저 자연스러운 곳을 천천히 둘러보는 윤기를 남준이는 가만히 기다려줬으면.
메뉴판을 펼치고 윤기의 쪽으로 돌려 건네줬으면.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응?
우리 저녁 안 먹고 나왔으니까 좀 든든한 걸 시킬까요?
아... 응.
정신없는 분위기에 휩쓸려 멍해보이는 윤기를 보고 남준이는 작게 웃었으면 좋겠다.
윤기는 그제야 제 정신을 차리고 메뉴판을 바라봤다가 힐끔 자신에게 계속 이런저런 말을 거는 남준이 입술을 바라봤다가
다시 시선을 애써 내렸으면 좋겠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에 가격에 비해 적어보이지만 그래도 마냥 적어보이지만은 않은 그런 정도의 안주가 두 개정도 나오고,
더불어 남준이가 시킨 술이 테이블에 올려졌으면.
술은 마셔본 적이 있지만 술집에 와서 마시는 건 처음이라는 윤기를 위해서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뒤집어 윤기의 잔을 채워준 뒤에
자신의 잔을 내밀었으면 좋겠다.
윤기 너는 잠시 허둥거리다가 남준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잔 안으로 적당하게 술을 채웠으면 좋겠다.
두 소주잔이 짧게 부딪쳤으면 좋겠다.
동시에 소주잔 안의 찰랑이던 물은 둘의 입 안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야, 이건 진짜 몇 번을 마셔도 세제 넣은 맛 같아.
막걸리나 맥주를 시킬 걸 그랬나?
맥주 하나만...
소주를 영 잘 넘기지 못하는 윤기를 위해서 금방 맥주가 또 추가되었으면.
남준이가 따주려고 하기도 전에 윤기가 맥주가 담긴 통을 들었으면.
그리고 남준이가 본 것은
능숙하게 유리잔에 소주와 맥주를 부은 후 젓가락으로 쿡 찔러 능숙하게 소맥을 제조하는 한 마리의 토끼였으면.
... 토끼야?
왜. 어, 오늘 잘 말렸다.
... 그런 건 어디서 배운거예요?
나 예전에 살았던 집의 주인한테. 그 인간이 다른 건 다 뭣같아도 술은 잘 사줬거든. 대부분 옥상에서 먹었지만.
아...
역시 술은 소맥이지. 소주만 마시면 맛 이상해서 못 넘기겠어.
남준이는 아까의 순진한 토끼의 얼굴 위로 한 명의 술꾼의 얼굴을 보았으면 좋겠다.
안주가 계속 비워지고, 편한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술자리가 계속 이어져갔으면 좋겠다.
뜻하지 않게 예전 윤기의 알바 일화를 듣기도 하고,
그 위로 남준이가 자신의 일을 얹어 들려주고, 공감하고, 웃고.
별 대화 없어도 요즘 자신은 학교에서 어떤지,
요즘 자신은 집에서 뭘 하며 널 기다리는지 등등의 이야기가 또 시작이 되고,
끝이 맺어지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면.
가끔은 가운데 테이블에서 크게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면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동조해 노래를 부르고,
윤기는 그 색다른 광경에 살짝 놀랐다가 남준이가 이 노래 지난번에 같이 듣지 않았냐고 하면서 알려주면,
그제야 뒤늦게 어설프게 노래를 따라하다가 씩 웃어버렸으면 좋겠다.
여기 재밌다.
남준이도 마주보고 웃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둘의 술잔도 더 기울어지고,
술을 즐길 뿐, 취하기 싫었던 남준이가 적당히 시간을 확인하고 턱을 괴고 윤기를 빤히 바라보다 작게 웃었으면 좋겠다.
길게 내쉬는 숨에도,
느릿하게 감겼다가 떠지는 눈에도,
발갛게 물든 볼도,
윗입술이 벌려져 살짝 드러낸 두 앞니가 꼬옥 깨무는 아랫입술도
모두 술기운에 적셔진 윤기를 보면서 남준이가 손을 뻗어 볼을 감싸 문질러줬으면 좋겠다.
이만 집에 갈까요?
윤기가 가만히 남준이를 올려보다가 남준이가 계산을 끝내고 부축을 해줄 것마냥 다가오자 이리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으면 좋겠다.
어깨를 감싸 일으켜세우려던 남준이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면,
윤기가 남준이의 목과 어깨에 두 팔을 걸쳐 감싸안으면서 중얼거렸으면 좋겠다.
야.
나
너랑
입맞추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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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암호닉] 확인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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