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철벽을 쳐요 /채셔
16. 연애를 하면 다들 바보가 된대요
이제 딱 3일이 됐다. 놓칠 줄로만 알았던 1일, 그리고 밀린 일을 하느라 카톡으로만 연애했던 2일. 그리고 오늘, 3일. 아무렇지 않게 작업을 하는 와중에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괜히 손을 잡고 찍었던 사진이 갑작스레 떠올라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바보같이 헤헤거리는 나를 보며 지민은 결국 뒷걸음질쳤다. 형 미쳤죠. 아니, 진짜 미친 거 같아. 눈이 딱 얼굴의 반만큼 커진 지민은 고개를 저었다. 금방 민망해져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흠흠하고 헛기침을 뱉었다.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웃어버렸지만.
[꼬맹이♡]
떡하니 켜져 있는 핸드폰 연락처에 꼬맹이와 사랑스러운 하트가 붙여져 있는 걸 보는데, 감히 어떻게 웃지 않을 수가 있어. 겨우 마음을 잡고 마침표를 찍어 가사 파일을 지민에게 건넸다. 전에 작업을 미리 해놓지 않았으면 큰일이라도 날 뻔 했다. 아직 박지민은 곡 완성도 못했으니까 내가 한, 두 발은 빠른 거다. 그러니까 유유롭게 일어서 작업실을 나선다. 혀엉! 하고 크게 지민의 목소리가 작업실을 울렸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아유, 예뻐라. 얼른 집에 가고 싶다. 원래 연애란 게 이런 거였나? 헐레벌떡 뛰듯 회사를 빠져나와서, 얼른 차에 올라타 시동을 켰다. ……진짜 보고 싶네. 서둘러 엑셀을 밟아 주차장을 나섰다. 오늘은 꼬맹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사갈까, 아니면 뭐 고기라도.
'지각했어.'
'……….'
'그러니까 그만큼 벌 받아야 돼, 아저씨.'
눈물이 마른 내 볼을 거듭 쓸던 꼬맹이의 손길이 제법 어른 같아졌었다. 내 앞에 선 사람은 단순히 내가 키웠던 꼬맹이 정도가 아니었다. 다 큰 아가씨. 성숙한 아가씨가 내 앞에 있었다. 벌이라며 내 입술을 물어 뜯는 건 전혀 어른 같지 않았지만. 뭐 어때, 꼬맹이도 내가 키웠는데. 그런 스킨십 같은 것들 쯤은 내가 길러주면 되는 거다. 아직 다 낫지 않아 안색이 파란 꼬맹이를 다시 병원에 데려가 약까지 잔뜩 타온 뒤에서야 집에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유난히 피곤해 하는 꼬맹이를 곧바로 재웠다. 아프면 자야 하는 법이다. 애기들은 잠이 해결책이라던 할머니의 말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꼬맹이를 침대에 고이 눕혔다. 팔을 쭉 펴 예전에 몇 번 해주었던 팔베개도 해줬고. 또 며칠 자지 못했던지 곤히 자는 꼬맹이의 등을 토닥여주기도 했고. …다 내가 돌아, 돌아 와서 그런 거니까.
"아저씨이!"
집에 오자마자 격하게 안겨오는 꼬맹이를 힘겹게 안았다. 이렇게 빨리 나을 걸, 내가 없다고 병원도 안 가고 버틴 걸 보면…… 그 성격은 참 변함이 없다 느꼈다. 민윤기 고생 좀 하겠네, 진짜. 나는 내 품에 꼭 안긴 꼬맹이의 볼에 짧게 뽀뽀를 두어 번 해주고는 꼬맹이에 이끌려 대뜸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미간을 찌푸렸고. ……그러니까 불청객. 불청객이 있었다.
"안녕하세여!"
"………아, 그 고딩……."
"아, 고딩이 뭐예요."
아니, 고딩은 맞긴 맞지만. 괜히 억울해하는 토끼를 지켜보다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애였다. 병원에 꼬맹이를 데려다놓고, 간호해줬던 애. 게다가 꼬맹이 짐까지 챙겼던 애. 그리고 술도 같이 먹던. 첫째 날에는 꼬맹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니 오늘이 공식적인 첫 홈 데이트 같은 날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날에 불청객이 낄 수 있냐는 말이다. 작업 때문에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빨리 오기 위해 손에 잡히지도 않는 펜을 억지로 움직였는데 말이지. 괜히 화가 나 던지듯 가방을 침대에 놓았다.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건. 나를 달래기 위해 진작 들어왔어야 할 꼬맹이가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꾹 참다가 침대에 누웠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머리 끝까지 화가 풀풀 나지만, 어떻게든 참아야 하니까. 왠지 그 날이 생각났다. 석진이 형이 꼬맹이 받아쓰기를 도와주고 있던 날.
"………아씨."
그리고 그 날처럼, 이불을 박차고 문을 거세게 열었다. 웃음꽃이 피어나는 분위기의 토깽이를 보다가 열불이 터져서, 토깽이의 팔을 거칠게 잡아 올렸다. 어어…! 하고 들어 올려진 토깽이를 그대로 현관 앞으로 끌어 당겼다. 고딩이 힘은 세서 끌고 오는데도 여간 힘들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아저씨이…! 하고 나를 졸졸 따라 와 발을 동동 굴리는 꼬맹이에게 괜히 화를 냈다.
"여기, 내 집이야."
"………아저씨이."
"누구 마음대로 남자 들이래."
토깽이가 뒷목을 긁적인다. 옆을 보니 꼬맹이의 짐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제야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꼬맹이 짐을 가져다주러 온 거였다, 저 토깽이가. 저 무거운 짐을 꼬맹이가 들러 갈 수도 없을 거고. 손님이 왔으면 오렌지주스라도 꺼내주고 대접해주어야 한다는 건 내가 꼬맹이에게 가르쳐준 거고. 그러니까….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 한숨을 푹 내쉬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 진짜 존나 쪽팔려. 이불을 다시 뻥 찼다. 연애를 하면 다들 바보 같아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든 합리적이려고 노력했던 내가, 바보가 됐다. 명치 쯤인가, 아니면 그 위인가 모르겠지만 그 쯤에서부터 웃음이 올라와 터졌다. 진짜 바보 같네, 민윤기.
덧붙임
윤기 글을 끝내면 무슨 글을 쓸까요?
반존대 시즌2? 아니면 2등이었던 정국이 글?
나중에 메일링 신청 글에 투표 올려야겠다.
그나저나 넘나 오랜만에 뵈는 것 같아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이삐들 뵐 생각 하니 막 힘이 나는 기분!
오늘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초록글도 감사해요, 다들 오랜만에 제 뽀뽀 받으세오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