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29
샤프를 잡은 지는 오래지만 페이지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공부 따위가 지금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복잡해 죽겠는데 문제가 눈에 보이겠냔 말이다. 아…. 괜히 화가 나 문제집에 낙서를 하듯이 보기 싫게 줄들을 그어버렸다. 엉망진창으로 그어진 줄들이 마치 내 머릿속을 대변하는 거 같아 한숨만 파악 내쉬었다.
[야. 너 화 풀린 거 맞지?]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문자를 보내지만 김여주는 묵묵부답이었다. 화가 풀리지 않아도 좋으니, 'ㅇ' 이라는 답장 하나라도 좋으니까 제발 뭐라도 오면 좋으련만 이런 애타는 내 속도 모르는지 김여주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잠깐 나와 봐. 할 말 있어.]
…대충이라도 전원우와 있었던 일에 대해 언질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겠지. 확실한 건 아니니 내가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 문자를 보내놓곤 샤프와 문제집을 들고선 휴게실로 향했다. 애써 공부를 해야지 싶어 문제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번쩍 들고,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인 걸 확인할 때면 나는 다시 책에 눈을 돌리고.
[뭐야. 왜 연락이 안 돼. 아직도 화났어?]
[김여주. 나 안 볼 거야?]
[화 많이 났나 보네.]
[화 풀리면 나와. 휴게실에 있을 테니까.]
[기다릴게.]
아까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너를 기다린 지 벌써 세 시간째. 중간중간에 문자를 보내봐도 여전히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 지쳐갈 때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키패드에 손을 올려놓고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글을 적기 시작했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김여주.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전송 버튼 앞에서 머뭇거리던 나는 이내 그 버튼을 꾸욱 눌러버렸다. 이렇게 말해도 너는 내가 어떤 의미로 보냈는지 모를 테니까. 너는 눈치가 없으니까 말이야.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불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그때였다.
"…김민규."
문이 열리며 내가 기다려온 네가, 드디어 이곳에 온 것이. 그래도 조금은 빨리 오려고 한 건지 약하게나마 들려오는 네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제 왔어?"
너를 보며 씨익 웃을 뿐이었다. 어색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멀뚱히 서 있는 김여주를 보며 나는 거기 서서 뭐 하냐며, 너의 손목을 잡고는 내 옆자리에 너를 앉혔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는 너를 보는데 미안하긴 무슨. 나는 네가 이렇게라도 나와줘서 너무 좋은데. 사실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만약에 너랑 이렇게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화 좀 풀렸냐는 나의 말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심이 된 나는 '다행이다….' 하고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가까이서 보는 너는 아까 울어서 그런지 아직도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우리 몬난이.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지면 안 되는데."
"뭐라고?"
"얼마나 운 거야, 대체."
"어?"
"눈 퉁퉁 부었잖아."
김여주의 눈두덩이를 톡, 톡 치며 말을 하는데 말은 장난스럽게 해도 마음이 아려와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네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항상 너를 웃게만 해주고 싶은데…. 초등학생 때 너 대신 싸워 교무실에 불려갔을 때에도, 그런 나를 보며 울었던 너를 보면서 나는 당황해했었지.
9년이 지나도 똑같아.
나는 여전히 모르겠어.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아깐 내가 미안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으응."
민망한 건지, 어색한 건지. 점점 내려가는 네 고개에 나는 네 볼을 잡고는 나와 눈을 마주치게 했다. 놀란 듯 크게 떠진 네 눈을 보니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이제 나 좀 보지?"
"아. 알았어. 이거 놔."
"니 얼굴 봤으니까 됐다."
이젠 정말로 풀렸다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갑자기 뻐근해진 몸에 나는 끄으 앓는 소리를 기지개를 쭈욱 폈다. 계속 앉아있었더니 몸이 굳은 것만 같아 나가서 잠깐 걷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한 바퀴만 돌고 오겠다고 말을 하니, 그런 나를 따라 너도 같이 가잔다.
"밖에 추워. 넌 여기 있어."
"아, 싫어. 같이 가."
여기 답답하단 말이야. 나도 나갔다 올래. 추우니까 안 나갔으면 좋으련만, 나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이는 김여주의 모습에 나는 내가 입고 있던 후드집업을 벗어 김여주에게 건넸다.
"야. 이걸 왜 나한테 줘."
"이거 안 입으면 너랑 안 가."
"그럼 너는?"
"난 아까 계속 히터 바람 쐬고 있어서 그런지 더워."
"야. 니가 아까 니 입으로 밖에 춥다고 했잖아! 다시 가져가."
"쓰읍. 그냥 줄 때 입어라."
"너는 어떡하고!!"
떽떽대는 김여주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김여주에게 내 후드집업을 억지로 입히고는 지퍼도 끝까지 올려 잠갔다.
"됐다."
뿌듯한 마음으로 김여주를 보는데 제 체구보다 훨씬 큰 옷을 입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여주가 어찌나 귀엽던지. 웃음이 실실 나오는 걸 참느라 죽을 뻔했다. 포기를 한 건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김여주에 나는 어깨동무를 하며 가자! 하고 문을 향해 손짓했다. 그런 나를 보며 너도 픽 웃더니,
"그래. 나가자."
하며 나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밤공기가 차긴 해도 그렇게 추운 정도는 아니었다. 아까 너무 생각이 많았던지라 머리에 열이 많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괜찮은데 김여주는 내가 걱정이 되는 건지 계속 후드집업을 벗어주려고 했다. 나 진짜 괜찮다니까…! 하나도 안 춥다고 말을 해도 김여주는 안 믿는 눈치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입에서 나오는 입김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아니, 근데 입김은 겨울이니까 당연히 나오는 건데. 이걸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잖아.
"…편의점 갈래?"
"? 그래."
편의점에 가자는 김여주의 말에 별말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근데 참 사람이란 게 웃긴 게 뭐냐면, 분명 배고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눈앞에 잔뜩 놓인 먹을 것들을 보고 있으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아, 나 돈 안 가져온 거 같은데.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지 김여주도 주머니를 막 뒤지기 시작했다. 설마 돈이 있겠거니, 하면서 별로 기대는 안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여주의 교복 주머니에서 오천원이 떡- 하니 나왔다. 대박. 놀래서 김여주를 쳐다보니 김여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이 누나가 쏜다. 먹고 싶은 거 있음 골라봐."
"헐. 누나 진짜 사랑해요."
김여주랑 나는 각자 컵라면 하나씩 지어들곤 계산을 한 후에 얼른 물을 부었다. 물을 부어 뜨끈한 컵라면 용기에 얼었던 손을 대고 녹이고 있는데,
"아, 근데 할 말 있다며. 뭐야?"
……. 아까는 대충 언질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얘기를 듣고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실망할까? 아니면…
…경멸할까.
"…어?"
"아까 문자로 그랬잖아."
"…아."
"뭔데?"
…아니야, 지금은 아닌 거 같아. 아직은 좀 더 지켜보고, 그 후에 생각해보자. 네가 전원우에게 마음이 있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이번 방학 보충 수업 이후로 네가 전원우랑 더 이상 엮이지 않을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전원우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면… 나는 또 전원우에게 죄를 짓는 게 되고 말 테니까.
"…아니야.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아, 뭐야. 장난? 지금 얘기해줘."
"지금 말고. 나중에."
뭐야. 그럴 거면 얘기를 하질 말지. 사람 궁금하게…. 김여주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툴툴대기 시작하자 나는 정말 미안하다며, 나중에 진짜 꼭 얘기해 주겠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다. 김여주는 조금 그러다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응?"
"너무 믿지 말라고."
"…? 뭘?"
"끝. 오늘은 여기까지."
아, 뭐야. 진짜! 그게 더 궁금하잖아! 화를 버럭 내면서 막 내 어깨를 쳐대는 김여주에 진짜로 아파서 아파!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라면이 익었으니까 빨리 먹으라며 나는 김여주의 라면 껍데기를 벗겨주었다.
"진짜 나중에 얘기했는데 별 거 아니기만 해봐라."
김여주가 주먹을 들어 보이며 말하길래 나는 진짜, 조금 무서워져서 진정하라며 한 발자국씩 뒤로 가다가 다시 안 오냐는 김여주의 말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김여주는 나를 보면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라면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런 너를 보며 나는 씁쓸히 웃을 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을 이것뿐이야.
믿지 마.
전원우를… 너무 믿지 마, 여주야.
네가 상처받는 건 죽기보다 싫으니까.
*
"…에휴."
재미없다. 역시 이건 김여주랑 같이 했었어야 돼. 뭐 딱히 친한 사람도 없고…. 벤치에 앉아 그저 멍하니 애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야."
"……?"
"뭐 해. 빨리 라켓 들어."
…권순영? 누가 내 어깨를 툭툭 치길래 뒤를 돌아보니, 웬 익숙한 노란 머리가 나 보고 여기서 뭐 하냐며, 운동장 쪽으로 고갯짓을 하더니 얼른 따라오라고 말을 하곤 앞장서기 시작했다. 뭐지.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쟤는 권순영이 맞는데. 아니, 어제는 그렇게 행동해놓고 왜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거는 거지…? 쟤 이제 나 아는 척 안 할 줄 알았는데. 나는 의아해하면서 권순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받아."
셔틀콕은 언제 챙겨온 건지 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그것을 꺼내던 권순영은 정말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내게 서브를 날렸다. 생각지도 못한 스매싱에 받을 생각도 못하고 눈만 꿈벅꿈벅 뜨고 있으니, 안 받고 뭐 하냐며 핀잔을 주던 권순영은 내게 빨리 공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지금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공을 주우러 가고 있긴 하지만, 혼란스러움에 뭐가 뭔지 당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끊길 듯 말 듯 몇 번의 랠리 끝에 나는 또다시 권순영에게 지고야 말았다. 힘없게 생겨가지고 은근하네…? 나는 헉헉대며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나와 같이 숨을 고르고 있는 권순영을 향해 말했다.
"너. 뭔데."
"뭐가."
"갑자기 말 거는 이유가 뭐야? 어제는 쌩깔 것처럼 굴더니."
내 말이 잠시 말이 없던 권순영은, 후우- 하고 숨을 크게 내쉬더니 내게 서브를 날리라며 손짓했다.
"그냥."
텅-
"나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며."
텅-
"얘기는 들어봐야 할 것 같더라고."
텅! 하늘에 울려 퍼질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강스매싱을 날리는 권순영에 나는 또 공을 놓치고 말았다. 사실 강스매싱에 공을 놓친 건지, 그의 말에 놀라서 공을 놓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얘기를 듣는다고? 무슨 얘기, 전원우 얘기? 예상치도 못한 말에 그를 바라보니, 권순영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말해봐. 대체 뭔지."
오랜만입니다. 독자님들ㅠㅠ |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너무 늦었죠... 진짜 염치가 없네요 저...ㅠㅠ 본편으로 찾아뵙는 건 거의 두세 달 만이네요.... 항상 찾아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바쁘다는 것도 이제는 핑계겠지요...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 저를 잊으셨다 하더라도 할 말은 없어요 정말ㅠㅠㅠㅠ엉엉 그래도 다시 이렇게...! 천천히 써보려고 합니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시기에 저는 그만 둘 수가 없더라구요ㅠㅠㅠㅠㅠ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정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ㅠㅠㅠㅠㅠ
암호닉은 다시 처음부터! 새로 받으려고 합니다. 전에도 암호닉을 신청해서 받기는 했지만 암호닉을 신청하시고 안 보이시는 분들도 계셨고 다시 돌아온 만큼 새롭게 시작하려고 해요. 전에 신청하셨던 분들은 번거로우시겠지만ㅠㅠㅠㅠ 다시 한번 신청해주세요! 신청해주실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많이 많이 신청해주셨으면 좋겠네요....ㅠㅁㅠ...
그리고 민규 과거 이야기가 정말 궁금하실 텐데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ㅠ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제가 과거 이야기라도 밝혀야 될 거 같아서 이렇게 온 것도 있습니다 이대로 끝내면 예의가 아니잖아요ㅠㅠㅠㅠㅠ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쓸 겁니다.... 전부터 항상 말했다시피 저는 이 소설에 애정이 참 많으니까요...
사실 새벽이라 약간 새벽 감성도 있고 그래서 말이 두서없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정말 감사하고, 또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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