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초석을 닦다
열흘 간의 인도 출장이 끝나고 실장님과 사장님이 회사로 복귀하셨다.
그동안 실장님은 많은 자료를 수집하셨다.
마약 위치도 확보했고, 야쿠자와 북한 측과의 거래루트, 각 거래처별 거래액수도 확인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네. 네번째예요."
"그동안 거래했던 내역들 남겨놓으셨나요?"
"찾아보면 있을거예요. 보통 마약거래는 2년에 1번씩 해서 2년 전 자료부터 찾으면 될 겁니다."
"지민이가 그동안 서버 원격작업을 해놓긴 했는데 자료가 너무 많고 보안이 철저해서 혼자 뚫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 서버 책임자가 접니다. 보안 방화벽 초기 설계자도 저구요. 프로그램 암호 푸는 건 시간문제예요. 대신, 기밀문서가 열릴 때마다 사장님과 회장님께 알림이 갑니다."
"알림이 안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거죠?"
"방화벽 자체를 해제시키는 것 뿐인데, 지금은 방법이 없어요. 몇 년 전에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시켜서 방화벽 총괄서버를 재정비 한 다음에 암호를 재설정했으니까요.
총괄서버 암호는 회장님과 사장님만 알고 계세요. 그리고....만약 방화벽 총괄서버를 해제시키더라도 그 즉시 모든 기밀문서들이 파기되도록 프로그램을 걸어놨어요."
"그럼 서버 재정비한 그 사람을 만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 사람은 죽었어. 회장님께서 그런 위험한 사람을 가만 둘 리 없잖아."
"그 사람도 채무자였어요?"
"아니, 그 사람한테는 돈을 줬지. 자그마치 30억. 물론 그 사람을 죽이고 모두 회수했지만."
"살인사건까지 추가되겠네요.일단 정리해봅시다. 마약밀매, 주가조작, 불법사채 및 이자율책정, 장기매매, 성매매에 살인까지. 맞습니까?"
"뇌물수수 건도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물증이 없어서.."
"실장님이 동행하셨어요?"
"예."
"그럼 실장님이 증언해주신다면 효력이 있습니다. 단, 상대가 누군지 알아야 합니다."
"그건 잘 모르는데...아마 사장님 아니면 회장님이 명부는 가지고 계시겠죠."
"후...정치쪽까지 연관되어있다면 일이 굉장히 커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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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가 부탁한 아무렇지 않게 티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지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사장님과 회장님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고, 가끔 말도 더듬었으니.
"실장님. 태연하게 지내는 거, 이게 제일 힘든거였어요."
"내가 그랬잖아. 힘들거라고."
"실장님은 어쩜 그렇게 멀쩡하세요? 정말 대단하셔..."
"여기서 버틴 게 15년이야. 이정도 짬밥되면 아~주 쉬운 일이지."
"역시...대단하세요!"
"너도 대담해질 필요가 있어."
"전 노력해도 잘 안돼요.."
"이정도만 해도 잘 하는 거야.너무 무리하지 말고, 몇 달만 더 사장님 비위 맞춰드려."
실장님이 토닥여줄 때면 없던 용기도 생기는 기분이라 좋았다.
오빠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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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이 말해주신 계획에 따르면, 우선 마약밀수부터 증거 잡고 나머지 사건들도 하나씩 증거를 잡는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어려움 없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 했다.
이제 이 사건을 기반으로 대정이 무너질 생각을 하니 자다가도 웃음이 나왔다.
요즘 민윤기도 바빠서 나를 찾지 않으니 근 10년간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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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전정국이 알바가 있으니까 편의점으로 오라는 말에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알바 있는 시간은 또 어떻게 알고 왔대?
"너 보려면 뭔들 못하겠냐. 알바한테 슬쩍 물어봤지."
"잘했어~ 오랜만에 봐서 더 반갑네~"
"오늘은 너한테 꼭 말해줄 게 있어."
"뭔데?"
"검사장님이 수사 승인해주셨어! 이제 정식으로 수사 진행할거야."
"검사장님이라면...."
"그래. 우리 아버지. 나 다칠 수도 있다고 안된다고 하시는 거 내가 며칠 공들여서 조르고 졸랐더니 결국 팀 꾸려주셨어."
"잘됐다! 정말 잘됐어!"
"이제 겨우 시작인데 뭘~"
"시작이 반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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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민윤기의 호출이 있었다.
"부르셨어요"
"그동안 안부르니까 좋았지?"
"당연한 걸 물으세요"
"싸가지 없는 것도 꾸준하고."
"사람은 변하면 죽으니까요."
"내 생각에 이 태도를 유지해도 넌 죽을 것 같아."
"...일하러 가도 돼요?"
"어쭈, 말을 돌리네. 옛날 같았음 죽여달라고 했을텐데."
"나도 내 목숨 귀하게 여기긴 하니까요."
"큭...그래 뒤지기 싫으면 가서 일이나 해."
"알았어요.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오늘 난잡한 밤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내가 유순하게 구니까 재미없는 듯 다시 돌려보냈다.
이대로 관심도 꺼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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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실장님~ 어쩐 일이세요?"
"그냥 일 잘하나 보러왔지. 이것도 가져다줄 겸."
실장님이 주신 것은 사진이었다.
"어...? 이거..."
"보육원 원장님이 보내셨더라. 오랜만에 옛날 앨범 찾아보다 둘이 있는 사진이 있길래 보냈다는데?"
실장님은 엽서도 같이 주셨다.
사진 속에는 애기 때의 나와 정국이가 있었다.
"어렸을 때 정말 예쁘게 생겼었네. 옆에 있는 남자는 전 검사?"
"네..어릴 적 사진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중히 간직해. 하나뿐인 사진이니까"
"어디에 둬야하지...?아.."
너무 귀한 보물을 얻은 느낌이라 어버버거리면서 둘 곳을 못 찾자 실장님이 나를 자리에 앉혔다.
"잃어버릴까 겁나면 전 검사한테 맡겨놔. 침착하고. 나팀장 당황하는거 보니까 애같네 아직. 그래도 보기 좋다"
"뭐가 어려요! 저도 이제 20대 후반인데."
"난 30대라서 나팀장이 마냥 어려보이네"
"실장님 벌써 30대예요? 완전 아저씨 다 됐네요."
"아직 서른 셋밖에 안됐다 짜샤. 아저씨라니!"
생각지못한 선물을 받아 기뻤고, 실장님과 편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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