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밟아보는 낮선 땅은 언제나 설레임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법이였다 공찬은 아버지가 잠든 사이 대충 가지고 나온 책가방을 등에 매고는
주소에 적힌 곳으로 발걸음을 떼었다.생전 처음보는 수 많은 사람들과 높이 솟아있는 건물들에 머리가 다 아찔해져오는듯했다
[ ..우와]
이리저리 둘러보던 공찬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고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화려한 시내를 벗어나 자꾸만 안쪽 구석으로 향했다
예전에 공찬이 아버지와 지내던 곳과 별반 다를것 없이 골목길 사이로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집들 사이를 지나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대문이 인상적인 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선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행여 주소를 잘못봤나 싶어 다시 쪽지를 꺼내어 살펴봐도 이 집이 분명했다
[ 누구세요?]
다시한번 문을 두드리려 손을 들었던 공찬이 빼꼼히 열리는 문틈 사이로 왠 낮선 남자가 고개를 내밀며 나오자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입을 떼었다
[ 아..저...그게]
뭐라고 말해야할까.쪽지에 적힌대로 찾아오긴 했지만 무턱대로 온것이니 이 집에서 모른체하면 그만이였다 남자는 공찬을 위 아래로 살피더니 이내 소매로 자신의 입을 막고
연신 마른 기침을 쏟아내더니 일단 들어오라는듯 손짓하며 몸을 비켜섰다.잠시 주춤하다 저 사람이 문이라도 닫고 들어가기전에 일단 공찬은 몸을 밀어넣었다
낮선 사람을 집안으로 들이는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없는지 아님 겁이 없는 사람인지 남자가 손가락을 들더니 앉으라는듯 쇼파를 가리켰다
[ 올줄 알았는데 오늘일줄은 몰랐네 일단 거기 앉아요]
올줄 알았다니.뜻밖의 남자의 말에 공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쇼파에 앉자 부엌쪽으로 보이는 곳으로 간 남자가 이내 김이 올라오는 차 한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 ...이거]
일단 자신을 집안으로 들여준 남자에게 공찬은 아까 못한 인사를 제데로 하고는 자리에 앉아 어머니가 적어주신 쪽지를 꺼내어 남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공찬이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를 설명하자 조용히 듣다가 자꾸만 입밖으로 새어나오는 기침을 참지 못하겠는지 미안하다며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는 참았던 기침을 크게 한번 쏟아내고는 다시금 웃으며 공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
[ 우리 아들,아들 좀 부탁드릴게요 죄송해요]
공찬의 엄마가 집을 나가기 몇달전 남편에게 맞아 팅팅 부은 눈으로 그 당시 남자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이 곳 쉼터에 다급하게 찾아와
공찬의 사진을 내밀며 당군간만 자신의 아들을 맡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종종 공찬의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가 머물기도 했던곳이라
자신이 집을 나가기전 아들을 맡길곳이 여기뿐이라 생각했나보다 그 당시 이곳에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집에 돌아갈수없는 애들이 머물고 있었고
남자의 아버지는 공찬의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사진과 함께 쪽지를 받아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남자의 아버지가 갑작스런 지병으로 남자에게 이곳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시는 탓에 남자가 여기에 남게 되었고
자연스레 그때 공찬의 어머니가 남기셨던 공찬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는것이다.
공찬이 남자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선을 돌려 집안 이곳저곳을 살펴보자 어쩐지 벽마다 아이들의 사진들로 가득차있었다
.
[ 나는 23.정진영이예요]
함께 윗층 방에 들어온 남자가 자신을 소개하며 공찬이 들고온 짐을 방 한켠에 놓아주었고 공찬이 고맙다며 머쩍게 한번 웃어보였다
진영이 저녁 준비를 할테니 좀 이따가 내려오라며 아까보다는 좀 나아진듯했지만 그래도 연신 마른 기침을 쏟아내며 밖으로 나갔다 잘은 모르겠지만 공찬의 눈에
진영이라는 남자는 어딘가 모르게 꽤 아파보였다 들어올때부터 연신 기침을 하지 않나 아까 슬쩍 2층 계단을 통해 올라올때 몸을 휘청이기까지 했다
그런 진영을 부축하며 공찬이 괜찮냐고 묻자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고는 다시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진영을 머리속으로 떠올리다가 공찬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언제까지 머물지 모를 자신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크게 눈에 띄는것없는 방이였지만 혼자 지내기엔 꽤 큰 방이였다.거기다 햇빛이 잘 들것같은
큰 창과 그 옆엔 여러 사람이 누워도 충분할만한 큰 사이즈의 침대가 놓여있었다.침대 옆으로 걸어가 풀썩하고 누운 공찬의 눈위로 새하얀 천장이 들어왔고
천장 가득 어머니의 슬픈 얼굴이 두둥실 떠오르다 또 밉긴 했지만 자신이 없으면 지금보다도 더 술에 찌들어 살지 모를 아버지의 안쓰러운 얼굴이 겹쳐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