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신인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다. 그 그룹은 신인답지 않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나는 블락비, B.A.P를 이을 힙합 그룹이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방탄소년단’ 이라는 이름과 맞지 않게 혼성그룹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방탄소년단의 유일한 여자 멤버이자 셋째를 맞고 있는 성여주를 주인공으로 한다.
“네?”
“혼성그룹으로 데뷔하자. 여주야.”
2012년 말. 여주는 방시혁 피디로부터 혼성그룹으로 데뷔하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말이 제안이지 통보나 다름없었다. 여주는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같이 연습하던 여자 연습생들이 하나 둘 다른 회사로 옮기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회사에 남아 있는 여자 연습생은 저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균형이 흐트러질지도 몰라요. 피디님.”
“따질 수 있는 건 다 따져보고 하는 말이야.”
“애들이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이미 걔네는 일곱 명으로 데뷔하는 걸로 알고 있고요.”
“그럼 이대로 계속 연습생 생활 할래? 너 솔로로 데뷔 하려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몰라. 여주야.”
냉정한 방시혁 피디의 말에 여주는 고개를 숙였다. 연습생 생활을 한지 얼마나 됐더라. 남준이랑 같이 들어왔으니까, 2년 쯤 됐나. 몇 개월 후에 남준이하고 애들이 먼저 데뷔하면 난 걔네의 성공여부에 따라 어떻게 될지 결정 되는 건가. 머릿속에서 결정대신 잡다한 생각이 나돌았다.
“여주야. 내가 약속했지? 내가 넌 절대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고 내 손으로 끝까지 키우겠다고.”
“….”
그래 약속 받았었다. 끝까지 제가 키워주겠다고. 여주는 방시혁 피디가 자주 가는 편의점 알바였다. 학교는 다니지 않았다. 다닐 수 없었다는 것이 바른 말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난해서. 꿈 없이 미래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던 여주에게 방시혁 피디가 말했다.
‘연습생 해보지 않을래?’
‘저 돈 벌어야 하는데요.’
‘밥도 주고 잘 곳도 주고 입을 옷도 줄게. 필요한 건 다 해줄게. 해볼래?’
필요한 건 다 해준다는 말에 여주는 연습생을 하겠다고 말했고 그 날 계약서에 도장 찍었다. 연습생 생활은 힘들지 않았다. 그저 나가는 여자 연습생들과 밀려나는 데뷔일 그 것만이 두려울 뿐이었다. 이 기회를 놓친다 하더라도 방시혁 피디는 늦더라도 제게 데뷔라는 선물을 줄 것이란 걸 알고 있지만 여주는 흔들렸다.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애들한테도 말해뒀어. 다 괜찮대. 좋대. 너 들어오는 거.”
괜찮다는, 좋다는 달콤한 그 말에 여주는 혼성그룹 합류에 동의했다.
*
“아, 힘들다.”
“진짜 떨렸어요!”
“실수는 안 했나 모르겠네.”
“누나! 누나는 어땠어요?”
데뷔 무대가 끝났다. 정신이 붕 뜬 것 같았다. 시간이 혼자 지나쳐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주는 저를 부르는 태형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태형의 얼굴이 가까웠다.
“어? 어, 떨렸어.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그쵸! 저도 그랬어요!”
태형이 들뜬 얼굴로 답하며 동갑인 지민에게로 달려갔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동료 가수들과 선배들 방송 관계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복도에 서 있는 지금도 꿈같았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방송이 끝났는지 유명한 선배들과 관계자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허리 굽혀 수차례 인사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얼마나 인사를 한 건지조차 모를 정도로 허리를 굽혔을 때야 인사가 끝났다.
“가자. 얘들아.”
매니저의 말에 멤버들이 신난 발걸음으로 방송국을 나갔다. 혹시 놓고 가는 것이 없나 뒤를 살피다 끝으로 방송국을 나가는 여주의 뒤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쟤네 혼성그룹이라며?”
“같이 사나?”
“에이 설마. 같이 자지는 않았겠지?”
각오했던 말이었다. 여주는 주먹을 꽉 쥐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누나! 우리 데뷔 무대에요. 같이 봐요!”
차에 올라타자 지민이 핸드폰을 보이며 말했다. 화면에는 누가 봐도 긴장한 멤버들이 신인 그룹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방탄소년단 리더 랩몬스터입니다.’
‘안녕하세요. 맏형 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슈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셋째 여주입니다.’
‘방탄소년단에서 희망을 맡고 있는 제이홉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지민입니다.’
‘뷔입니다! 브이!’
‘안녕하세요. 막내 정국입니다.’
“으아아! 부끄러워! 꺼! 꺼!”
조용히 화면을 보고 있던 남준이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차 안에 웃음이 가득 찼다. MC들의 멘트 후에 데뷔 무대가 나왔다. 데뷔 무대가 나오자 웃음이 사라지고 차 안이 조용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집중해서 무대를 보고 있었다. 4분 남짓한 무대가 끝나고서야 하나 둘 멈췄던 숨을 쉬어냈다.
“사람들 반응 보고 싶다….”
꺼진 화면을 보고 있던 태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른 멤버들도 같은 눈치였다. 여주는 멤버들을 둘러보다 말했다.
“안 보는 게 좋을 걸.”
“왜요?”
“그냥.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여주의 말에도 멤버들은 인터넷을 켜 자신들의 기사에 들어갔다. 태형이 대표로 댓글을 읽겠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룹명이 방탄소년단이 뭐냐.”
“하긴 우리도 처음엔 그런 반응이었지. 또?”
“노래 가사 진짜 오글거린다.”
“참 나! 우리 노래 가사가 뭐!”
처음엔 호석이 답하고 그 다음엔 석진이 답했다. 여주는 눈을 감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태형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 다음 댓글을 읽었다.
“저 마이콜은 뭐냐?”
“뭐! 내 머리가 뭐요!”
남준이 울컥하며 답했다. 차 안이 다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웃음을 가득담은 태형이 뒤이어 말했다.
“저 여자는 남자들 욕구해소용이냐…?”
걸렀어야 하는 걸 거르지 못하고 읽어버린 내용이었다. 태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 안이 고요해졌다. 멤버들의 얼굴이 형용할 수 없는 분노로 굳어있었다. 간간히 웃던 매니저조차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친 새끼가 익명이면 단 줄 아나.”
정적을 깬 건 윤기의 나지막한 욕설이었다. 윤기의 말을 시작으로 뒤이어 다른 멤버들의 입에서도 욕이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누나 미안해요.”
“응? 괜찮아.”
태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잘못이나 다름없었다. 여주가 보지 말자고 했을 때 보지 않았으면 이런 반응 같은 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괜찮다는 대답에도 태형은 미안한 기색을 지울 수 없었다. 여주가 손을 들어 태형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로 괜찮아. 그리고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고.”
“….”
담담한 목소리에 멤버들은 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위로할 수도 없었다.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수치스러울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말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 물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빨리 유명한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말을 할 수 없게끔 유명한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그들은 말없이 숙소로 가는 길에서 수 만 번을 다짐했다.
“그럼 이따가 연습실에서 봐.”
“이따 봐요.”
멤버들과 여주는 다른 숙소를 사용했다. 멤버들이 먼저 내렸고 여주는 조금 더 가야했다. 멤버들이 내리고 혼자 있는 여주에게 매니저가 말했다.
“진짜 괜찮아?”
“응. 진짜 괜찮아. 그리고 이런 반응 예상 못한 것도 아니고 왜 그래.”
“그래도….”
“괜찮아. 그리고 지금은 다신 말 저런 말 할 수 없게 하루 빨리 크고 싶단 생각 밖에 없어.”
말을 끝낸 여주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대화하기 싫다는 표현에 매니저도 입을 다물고 운전만 할 뿐이었다. 창 너머로 빠르게 건물들과 나무들이 지나쳐갔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울컥 거렸다. 여주는 고개를 숙여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사실은 무엇도 괜찮지 않았다.
★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