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평소엔 그렇게 자의로 뜨고 싶어도 떠지지 않던 눈이 웬일인지 오늘따라 다르더라. 그래, 다르다 했어. 어제 때려부은 술들로 인해 쓰린 속을 붙잡고 눈을 뜨기가 무섭게 목격한 광경은 다시금 눈을 감고 싶게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다시금 되짚고, 또 되짚어 봐도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말이 안 되지, 그럼. 근데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거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퍽 이질적으로 다가와 욕을 뇌까렸다. 씨발……. 그러니까, 나 지금…… 사고친 거 맞지, 것도 좆나게 큰 사고.
" 아, 씨발! 야, 야. 말로 하자, 어? 왜 때리는데. "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속살의 너른 등판을 보자마자 짧은 욕을 뇌까리며 제 앞에 곤히 누워 잠든 놈의 등판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꽤 제대로 들어간 타격에 욕을 내뱉으며 잠에서 깬 놈이 이내 푹 잠긴 목소리로 제게 대꾸했다. 말로 해라, 엉? …… 협박 아닌 협박을 덧붙이면서. 근데 씨발, 이게 말로 해결이 될 일이냐? 저를 등지고 누워있던 놈이 이내 빽 소리를 지르는 저를 감당하지 못해 뒤를 돌아 제게 그 따가운 시선을 꽂았다. 동시에 제 눈에 들어오는 발갛게 물든 자국이…….
" 와, 씨발…… 이거 설마 내가 남긴 거냐? "
" 그럼 누군데, 씨발. 좋다고 난리 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
" …… 내가? "
" 엉, 네가. "
" …… 구라 치지 말고, 미친 새꺄. "
" 뒈지고 싶냐? "
날카로운 눈매를 한껏 뽐내며 저를 노려보는 놈에 한발 물러서며 시선을 숨겼다. 입술을 삐죽이는 건 덤으로. 아니, 그러니까…… 지금 저 새끼 쇄골에 새겨진 저, 빨간 자국이…… 내가 남긴 거라, 이거지.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 제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이래서 술이 웬수지, 웬수야.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니까? 남녀 사이에 술과 밤이 있으면 씨팔 다 끝난 거라고……. 인생이.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한껏 뒤집어 덮었다. 날씨는 또 좆도 더운 게 이 또한 얼마 버티지 못했지만……. 그러니까, 옆에서 지금 절 보며 실실 쪼개는 놈이랑, 내가, 어제…… 같은 침대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같이……, 같이 잤다, 이거지. 평소에는 잘만 끊기던 필름은 또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멀쩡한 건지, 제 기억속에 한 자리를 야무지게 차지하겠다는 듯 생생히 기억나는 어제의 악몽이 저를 괴롭혔다.
" 니 쇄골에 키스마크, 거 남친이 알아차리겠는데. "
" …… 어쩌라고. "
" 그냥 그렇다고, 잘 처신하라고? "
" …… 씹새끼, 개새끼, 미친 새끼. 이 씨발, 임영민 씨발 새꺄! "
…… 구남친이랑 하룻밤의 로맨스, 뭐 그딴 걸 한 편 찍었다 이거지. 하필, 하필, 하필 임영민 이 씹새끼랑.
" 나 책임져. "
연신 부채질을 해대며 자신의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빨아들이는 놈의 모습을 보기가 무섭게 제가 뱉은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런 제 말을 들은 놈은…… 제 생각보다 무덤덤해 보였고. 무언가의 반응을 바라고 했던 말은 아니었다. 그다지 진심을 담아 뱉은 말도 아니었고, 그저 놈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한 마디였기에 저 또한 큰 신경은 쓰지 않은 채 놈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제 추궁을 받는 놈은 귀찮아 보였다. 역시 씹새끼다, 이 새끼는.
" 아, 뭐 어쩌라고. "
" 아, 니가 티 다 나게 자국 남기는 바람에 걔가 봤다고. "
브이넥으로 차마 다 가려지지 않는, 애매하게 가려진 쇄골의 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놈을 추궁했다. 그런 놈은 자신의 쇄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능글맞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누가 남겼는지 거 좆나 예쁘게 남겨졌네, 안 그냐? 와, 이 씨발 뻔뻔한 새끼……. 제 앞에서 간단한 허밍을 타는 놈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아, 왜 남기냐고오.
" 그게 내 잘못이냐? 작작 예쁘던가. "
" …… 머? "
" 남기고 싶어서 남겼는데 씨발 뭐 어쩌라고, 엉? "
한 마디, 한 마디 뱉어내기가 무섭게 제 충격에 충격을 가하는 놈의 발언은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와, 이 새끼 미친 건 알았는데 이렇게 미쳤을 줄이야……. 당장이라도 제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몽땅 들이붓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허나 그런 저와 다르게 놈은 한치의 거짓도 뱉지 않았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턱을 괴고 테이블에 얼굴을 갖다댈 뿐이었다. 예쁜데 걍 까놓고 다니지, 왜. 이어지는 놈의 한 마디에 저는 뒷목을 붙잡았다. 이 씨팔 천하태평한 새끼…….
" 아니, 나 너 때문에 차였다니까? "
" 그래? 잘 됐네, 뭐. "
" …… 이 씨발. "
" 난 내가 찼거든, 그럼 됐냐? "
" …… 엥? "
그러니까, 놈과 저는 각자 나름대로 연애를 하며…… 미련에 찌든 구애인 코스프레를 흠씬 즐기던 중이었다. 그래, 뭐. 서로가 서로에 허덕이며 밀고, 당기기를 시전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 와중에 그딴 좆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뿐이고. 아무튼, 그날 이후 제 쇄골에 남겨진 키스마크를 본 제 현남친이었던…… 그러니까 지금은 구남친 1이 돼버린 놈은 제게 이별을 고했다. 물론 큰 타격은 없었다, 그냥 이 새끼 때문이라는 게 억울할 뿐이지.
그런 놈에게서 나온 한 마디는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여자친구를 자기가 찼다, 뭐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 뱉으면 다 말인 줄 아는 말, 이딴 개새끼들한테서는 빈번히 나온다는 개소리. 왜 네가 찼는데? 미쳐서? 돌아서? 아님 뭐, 객기? 아, 그랬구나? 꽈배기도 아니고, 무슨……, 제가 들어도 한참이나 비꼬는 어투였다. 하지만 놈에게는 별 타격이 되지 않는 듯 놈은 예의 표정을 유지하며 저를 주시했다. 빤히 절 바라보는 놈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지려는 찰나 다시금 놈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 왜 찼냐고.
" 니랑 사귈라고 찼는데, 왜. "
" …… 머? "
" 니랑 잤다니까 내 뺨도 치더라, 걔. "
" …… 와, 야. "
" 근까 책임은 네가 지는 걸로, 오키? "
그래, 생각났다. 한창 미친놈이 이상형이라며 떠들고 다녔을 시기에 이 새끼랑 연애를 시작한 이유. 이 새끼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새끼였지…….
ㅡ 요즘 영민이 글만 쓰는 이유 = 임영민 보고 싶어서요... 영민아... 보고 싶다... 별들아... 넌 나의 별... 스타... S. T. A. R . . . ☆★
ㅡ궁금하신 점은 댓글로 남겨 주시면 확인과 함께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 최대한 드리겠읍니다. Q. 작가님 글을 발로 적으시나여? 이런 질문도... 질타도... 뭐든 받아요...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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