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ㅡ Side Of Man
예뻤고, 예쁘다. 앞으로도 예쁠 것 같다. 제 눈에 비치는 너의 모습이었다. 너를 처음 마주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너와 함께 보낸 그 시간들까지 모두 다. 티없이 맑은 웃음을 안면에 띤 너는, 곧 죽어도 황홀할 만큼이나 예쁘고, 예뻤다. 곰곰이 생각을 해 봤을 때, 그러니까…… 네가 예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저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기나긴 잠수의 끝은, 새로운 잠수를 야기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제 기억에 담긴 ㅇㅇㅇ 너는, 언제나 예뻤다. 제 고백에 한없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절 바라본 그 순간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지쳐 이별을 마주했을 순간에도, 그리고…….
" 허……. "
" 오랜만이다? "
간만에 너와 시선을 마주했을 그때도, 넌 예뻤다. 너와의 이별 후 2년 만에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노린 건 아니었는데…… 다수의 기획사들에게 캐스팅을 받았을 때 저는 주저 없이 네가 소속된 기획사와 손을 잡았다. 큰 고민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단순함 그 자체였고, 충동이었다. 또한 충동이었고, 바람이었다. 수백 번, 수천 번 마주했던 네가 소속한 기획사의 이름이 절 이끌었다. 단순히 그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마주한 그녀는, 제 반항심을 일으켰다.
" 좋아 보인다, 너. "
" ……. "
" 간만에 보면 반가울 줄 알았는데, …… 엿같네. "
" 야, 임영민. "
수없이 되뇌이고 되뇌였던 속마음은 제 마음속에 깊숙이 묻혔다. 어긋난 어투가 널 마주했을 때, 제 반항심은 더욱이 끓어올랐다.
# ㅡ 03
" 미쳤냐? 여기가 어디라고 와, 네가. "
사람들 앞이라고 예의 이미지를 차리던 놈이 곧바로 저를 자신의 벤으로 이끌었다. 가쁜 숨을 뱉으며 제 손목을 이끌던 그가 벤 앞에 닿기가 무섭게 제 손목을 거칠게 놓았다. 순식간에 들어간 힘에 놀란 제가 힉, 깊은 숨을 들이켰다. 그런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짝다리를 짚고 선 그가 제 눈을 바로 마주했다. 금방이라도 펑, 터져 버릴 듯한 눈매를 띤 그가 제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저를 노려보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어쩌라고?
" 여자친구가 남자친구 일하는 것 좀 보러 왔다는데 반응 봐라? "
" …… 뭐? "
" 왜, 자기야. 자기 보러 굳이, 쉬는 날, 힘겹게, 직접, 두 발로, 찾아왔는데 안 예뻐? "
것도 밥까지 준비했는데. 꽤나 뻔뻔하게 나간 제 말에 넋이라도 나간 듯 제 머리를 두어 번 헤집던 놈이 깊은 한숨을 뱉었다. 하…….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반복하던 놈이 다시금 어이가 없다는 낯으로 저를 마주했다.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엿 먹이는 기분이란…… 존나 째진다, 이거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이따금 자세를 이랬다, 저랬다 바꾸는 놈이 어수선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을까. 곧 기묘한 웃음을 띠던 놈이 예의 거만한 표정을 유지한 채 저와 눈을 맞췄다. 그러니까, 이건 필시…… 좆됐다는 소리고. 아, 씨발……. 쟨 또 무섭게 왜 저렇게 웃냐고. 그런 저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이까지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짓던 놈이 곧 입을 열었다. 미소에 어울리지 않는 까칠한 눈매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야, 너 왜 그렇게 웃냐고…….
" 그럼 온 김에 촬영도 보고 가, 자기. "
" …… 어? "
" 오늘 몇 시까지더라, 아마 밤샘…… 이라는 것 같던데. "
뭐? 이죽이던 놈의 시선이 반짝였다. 당황은 고이 접어둔 채 예의 장난기 넘치는 놈으로 돌아온 그가 제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여유로운 그의 태도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저였다. 아, 아니. 제가 말할 틈은 주지도 않은 채 몰아치는 놈의 발언들은 저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게 제 발언을 무자비하게 툭, 끊어낸 놈이 사람들이 몰린 곳과 등지고 있던 자세를 바꾸었다. 정확히는 감독님을 향해.
" 감독님, ㅇㅇ가 촬영하는 거 보고 싶다는데…… 그래도 되죠? "
ㅡ 어어, 나야 환영이지. 오늘 내조 아주 제대로 하시네?
아, 하하……. 자조적인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목청을 이럴 때 쓰려고 아껴둔 것인지 크게도 흘러나온 놈의 목소리로 인해 감독님은 물론이고 그 주위 스태프, 배우 할 것 없이 모두들 저희에게로 집중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내 다들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거절할 수도, 하기도… 빠져나가기도 힘든 상황을 마주했음을 직감했다. 그 틈에서 그를 노려보자 윙크를 해 보이는 놈이 퍽 어이없었다.
그러니까, 이 새끼한테 또 당했다 이거지. 아아, 울리는 골을 부여잡으며 놈을 있는 힘껏 노려보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결국 타의로 원치 않던 놈의 촬영까지 지켜보게 된 후였다. 예의 말간 얼굴이 돋보이는 카메라 화면이 제 눈에 들었다. 놈은 그러니까, 극중 여자 주인공과 함께 퍽 진지한 장면을 소화해내는 중이었다. …… 그만할까, 우리. 너나 나나 힘든 건 마찬가지잖아. 낮은 목소리가 세트장을 세게 때렸다. 대사가, 마치, 꼭…… 과거를 회상케 하는 듯해 덩달아 진지해지는 저였다. 놈이 진지한 만큼, 딱 그만큼.
ㅡ ㅇㅇ 씨 기분이 묘해 보이네, 영민 씨 연기하는 거 봐서 그래?
" 아, 그게……. "
저도 모르는 사이 울린 컷 소리에 한참 한가해진 감독님의 질문이었다. 갑작스레 치고 들어온 질문에 어수선한 분위기의 세트장을 둘러보니 놈은 스타일리스트 여럿에게 붙잡혀 머리며, 화장이며 손을 보는 중이었고 그 외 모든 사람들 또한 분주했다. 감독님의 질문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그냥, 잘하네요. 저도 몰입될 만큼……. "
굳이 사실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와의 과거, 이별, 쇼윈도. 그따위의 것들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놈의 여자친구로 이 자리에 존재하는 거니까. 어색하게 뱉어낸 한 마디에 감독님은 무어라 언질 하지 않으셨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촬영을 위한 준비를 이어갔다. 그때였다. 어느덧 수정을 마친 것인지 한가해 보였던 그가 제게로 다가왔다. 제 머리를 톡, 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 잘 봤냐? "
어떻게 심심하진 않으시고? 예의 그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제게 질문 아닌 질문을 건네는 놈을 밉지 않게 흘기며 대꾸했다. 어, 조올라 지루한데. 언제 끝나냐고. 제 투정에 어깨를 으쓱여 보인 그가 다시금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옆에서 들려오는 낯선 음성에 자연스레 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ㅡ 안녕하세요, 영민 씨 상대역 맡은 김혜리라고 해요.
" 예, 뭐……. 안녕하세요. "
그러니까 조금 전까지 놈과 호흡을 맞추던 상대역의 여배우였다. 평소 평판이 좋지 않아 그닥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다. 하하, 어색한 제 인사에 놈이 재미있다는 듯 큭큭대며 이죽였다. 그런 그의 옆구리를 아프지 않게 팔꿈치로 찌르자 이내 제게 어깨동무를 해 오며 저를 그녀에게 소개하는 놈이었다. 그에 맞서 알맞은 미소와 함께 그녀에게 이름 석 자를 내놓았다. ㅇㅇㅇ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ㅡ 촬영장까지 오시구…… 그러시네요.
" …… 네? 아, 네. "
묘하게 뒤틀린 여자의 표정이 심기를 건드렸다. 아니, 내가 내 남자친구 일하는 것 좀 보겠다는데 지가 뭔 상관…….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채 뱉고 싶은 욕망을 마음속으로 꾹 삼키며 사람 좋은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묘하게 뒤틀린 여자의 표정을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거북해지려는 찰나, 촬영의 시작을 알리는 감독님의 호출로 저희 셋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저 여자…….
대놓고 기분이 나쁘다, 저거 뭐지?
놈의 발언이 순 거짓은 아니었는지 촬영은 정말로 새벽 다섯 시가 넘어 동이 트기 시작해서야 끝을 내렸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촬영하는 것만 보고 있자니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는데, 퍽 구미를 당기는 극본 덕에 그 지루함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도착한 집이었다. 기지개를 켜며 얼음을 띄운 물 한 잔으로 피곤함을 어느 정도 풀어내고 있었을까, 오늘따라 거세게 울리는 핸드폰 진동이 퍽 신경 쓰여 곧장 집어 들게 되었다.
ㅡ 언니, 자여?
ㅡ 언니 오늘 임영민 촬영장 갔담서요 이거 ㄹㅇ?
ㅡ 니 임영민이랑 진짜 사귀는 거 맞냐?
ㅡ 영민 오빠 개아까움 ㅡㅡ
평소에도 수두룩하던 사생들의 연락이었다. 언제나 스킵하고 넘기기 급급했던 연락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수도 많은 듯싶고 중간중간 보이는 놈과 제 사이를 의심하는 연락들에 시선이 안 갈 수가 없더라.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저는 82개의 어마어마한 개수를 자랑하는 창 하나를 열었다. 들어서기가 무섭게 뜨는 메시지들에 이내 소름이 돋았다. 스크롤을 죽 내려가며 대충 읽고 있었을까, 제 눈에 띄는 사진 한 장과 메시지 여럿.
ㅡ 사진
ㅡ 임영민이랑 김혜리임
ㅡ 설마 양다리?
ㅡ 것도 아님 넌 걍 기둥이냐 ㅋㅋ
사진 속 놈과 기분 나빴던 그 여자는 둘만, 그러니까…… 단둘이서 그의 차량으로 보이는 차에 올라타 있었다. 매니저도, 뭣도 없이 단둘이서. 퍽 심각해 보이는 표정의 놈과 그에 반대되는 여자의 표정. 어쨌든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었다. 제가 왜 느끼는지도 모르겠을 배신감이 크게 제 자신을 때렸다. 요즘 들어 꽤 사이좋게 지내 놈과의 사이를 저 혼자 착각한 듯한 기분에, 그러니까…… 저도 모를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 분노다. 이건 분노야.
아, 나 얘랑 쇼윈도였지.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ㅡ 처음 영민 시점, 그 후 쭉 여주 시점입니다. 초록글, 댓글, 추천, 스크랩 항상 감사합니다. ㅎㅎ 독자님들이 남겨 주시는 댓글 보면서 큰 힘 얻고 있어요, 감사해요. b
ㅡ 궁금하신 점은 댓글로 남겨 주시면 확인과 함께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 최대한 드리겠읍니다. Q. 작가님 글을 발로 적으시나여? 이런 질문도... 질타도... 뭐든 받아요... ㅜ_ㅜ
ㅡ 암호닉 신청 받습니다. 신청한 암호닉은 다음 편에 업데이트, 암호닉 신청은 항상 최근 글 댓글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암호닉은 밑에서 확인해 주세요.
# ㅡ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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