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너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순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나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너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어느새 너만 찾고, 너만 보고, 너만 쫓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선 스스로 내 마음을 인정해야만 했으니까.
박우진 외전
“ 야, 우진아. 나 영민선배랑 썸타는 것 같아. ”
“ …아, 그래? ”
“ 어. 계속 연락오고 저번엔 집도 데려다줬어. ”
“ …잘됐네. ”
여주가 저와 둘이 술을 마시자고 했던 건 처음이였던 터라 혼자 잔뜩 설레어서는 착각은 자유라니까 마음껏 혹시, 하는 착각도 좀 했었다.
그런데 저를 보자마자 제 착각들을 그저 정말 착각일 뿐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바로 임영민 얘기부터 꺼내는 여주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조잘조잘 제 앞에서 임영민 얘기들만 하는 여주를 보며 여러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밀려왔다.
이제까지 고백은 커녕 관심의 표현이라곤 하나도 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후회.
사실 엠티에서 임영민이 여주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사실로 밝혀졌을 때의 착잡함.
자신이 고백했을 때 앞으로는 친구로도 남을 수 없다는 두려움.
왜 자신이 아닌 임영민인 건지, 여주에 대한 원망.
그렇지만, 여전히 여주에 대한 좋아하는 감정이 제일 크게 느껴졌다.
다른 남자 이야기를 하며 설레어하는 사람을 보고도 좋아하는 감정을 없애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영민선배가 고백 언제 할까? ”
“ 때가 되면 하겠지. ”
“ 내가 만약에 사귀게 되면 너한테 제일 먼저 알려줄게. ”
“ …그래. ”
넌 전혀 모르겠지만 그 날 나는 집에 도착해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 야, 괜찮냐? ”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는 제 연락을 받은 박지훈이 한 걸음에 제가 있던 술집으로 달려와주었다.
친구 좋다는 게 이럴 때 딱 쓰는 말이네.
결국 여주는 임영민과 사귀게 되었고, 저한테 가장 먼저 말해주겠다는 말은 진심이였는지 어제 전화가 왔었다.
영민선배와 사귀게 되었다고.
오늘 학교를 가보니 다들 알게 된 건지 우리 과 공식 커플이라며 축하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저도 그저 웃으며 오래 만나라는 텅 비어있는 말만 던져주었다.
“ 니가 보기엔 어떻게 보이는데. ”
“ 하나도 안 괜찮아보여. ”
“ 어. 하나도 안 괜찮아. ”
제 말에 박지훈은 그저 술잔에 술만 따라주며 제 어깨를 토닥였다.
대학 와서 처음했던 짝사랑이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바보처럼 좋아한다는 말 한 번 하지도 못 하고.
“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 ”
“ 니가 뭐가 미안한데. ”
“ 그냥, 너 이러고 있는 거 보니까 많이 좋아했구나 싶어서. ”
“ …… ”
“ 어차피 오지랖 떤다고 욕 먹는 거 그냥 너네 둘 엮어주기라도 할 걸 그랬다. ”
“ 뭐래. ”
박지훈이 웃으며 술잔을 내밀어 저도 술잔을 들어 건배를 하곤 한 번에 다 삼켜버렸다.
그냥 빨리 취했으면 좋겠다.
원래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오늘따라 술을 마실수록 정신이 더 멀쩡한 기분이다.
지금 여주랑 임영민은 좋다고 만나고 있겠지.
“ 약간 억울하다. ”
“ 뭐가. ”
“ 이럴 거면 좋아한다는 말이라도 한 번 해보는 건데. ”
“ …… ”
“ 이제 진짜 임자 생겼으니까 그런 거 말하지도 못 하잖아. ”
“ 말하면 친구도 못 할 것 같아서 무섭다며. ”
“ 그때는 그랬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후회된다. ”
제 말에 박지훈은 말없이 술만 계속해서 들이켰다.
아마 어떠한 말들도 제겐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겠지.
앞으로 계속해서 아무렇지 않게 여주와 임영민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세상에 이렇게 저만큼 미련한 사람이 또 있을까.
“ 요즘 영민선배 좀 이상해. ”
“ 왜? ”
“ 그냥 좀… 변한 것 같아. ”
여주가 우울한 얼굴로 제게 만나자는 말을 꺼냈을 때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 임영민 얘기구나.
제 앞에서 잔뜩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앉아있는 여주를 보자 기분이 좀 이상했다.
만약 이러다 정말 여주가 임영민과 헤어진다면?
아마 제겐 가장 큰 기쁜 일이 아닐까 싶다.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가장 친한 친구라니, 여주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들었다.
근데 나는 너를 친구로 생각했던 적이 없는데.
“ 영민선배한테는 말 꺼내봤어? ”
“ 응, 근데 자꾸 피해. ”
“ 권태기 아니야? ”
“ 그런가… ”
그리고 임영민도 한심했다.
좋다고 만났으면 잘해줄 것이지, 이런 걸로 여주 고민이나 하게 만들고.
나였으면 안 그런다.
힘들어하는 여주를 보고 있으니 제 기분까지 덩달아 우울해지는 것 같아 애써 웃었다.
기분 안 좋은 김여주 기분 풀어주는 건 내 담당 아니겠냐.
“ 오랜만에 게임방이나 갈까? ”
“ 게임방? ”
“ 어, 가서 스트레스나 풀자. ”
“ 헐, 짱 좋아. 나 게임방 안 간지 엄청 오래됐는데. ”
“ 가자. 오빠가 쏜다. ”
제 말에 신나는 얼굴로 자리에서 방방거리는 여주를 보자 저까지 덩달아 신나는 게 느껴졌다.
항상 이렇다.
니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니가 우울하면 나도 우울하고.
넌 정말 내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 걸까.
“ 야, 여주 헤어졌다며. ”
“ 어, 헤어졌대. ”
여주가 헤어졌다.
사실 어제 술 마시자는 여주의 카톡을 받고 신났던 자신이 좀 나쁜 놈처럼 느껴졌다.
이제 다시 여주는 혼자가 되었다.
즉, 고백을 하더라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상태.
“ 너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
“ 별로 안 좋아했는데. ”
“ 지금 웃고 있잖아. ”
아, 내가 웃고 있었나.
박지훈의 말에 얼른 입꼬리를 내리고 박지훈의 어깨를 툭 쳤다.
근데 좋은 걸 어쩌냐.
박지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곤 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 왜. ”
“ 그래서 너 고백할 거야? ”
“ …상황봐서. ”
“ 그러다 저번처럼 또 그냥 놓치려고? ”
“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야, 지금 여주 헤어진지 하루 지났다. ”
나도 최소한의 양심은 챙겨야지.
저를 못 믿겠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박지훈에게 강력한 의지의 눈빛을 보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번에 절대 안 놓친다.
이번에도 또 놓치고 또 후회하면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못 견딜 것 같았다.
“ 여주가 거절하면? ”
별로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아마 제일 가능성이 큰 확률의 상황이다.
여주가 거절하면…
“ 친구 끝나는 거지, 뭐. ”
답은 간단했다.
너무 간단하지만 제일 하기 힘든, 어려운 일이다.
제가 이제까지 고백을 가장 망설였던 큰 이유, 친구로라도 못 남을까봐.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며 사랑을 하는 여주의 옆에서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보는 건 이미 겪어봐서 느꼈지만 정말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차라리 여주에게 차이더라도 깔끔하게 끝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너무 쉽게 답하는 거 아니냐? ”
“ 왜. ”
“ 너 그 친구 관계 끝날까봐 이제까지 고백도 못한 거잖아. ”
“ 근데 이렇게 미련하게 가만히 있는 것도 못할 짓이더라. ”
“ 모든 건 어차피 니 선택이니까. ”
“ 나 차이면 같이 술 마셔줘야 된다. ”
“ 당연하지. ”
씩 웃는 박지훈을 향해 등을 토닥여주곤 자리를 빠져나왔다.
고백…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제발.
니가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전국에서 제일 한심한 사람 뽑기 대회를 열게 된다면 아마 1등은 제가 하지 않을까 싶다.
지훈이에게 말은 그렇게 떵떵거리면서 다 해놓고 막상 고백을 하니 마음 한 구석이 엄청나게 불안해졌다.
원래 하려던 고백도 아니었고, 얼떨결에 한 고백이라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당황스러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여주.
그 고백 후, 집에 와서 그저 가만히 쇼파에 앉아있었다.
대체 제가 뭔 일을 저지른 건지 생각도 하기 싫었다.
고백을 하면 다 끝날 줄 알았다.
질질 끌던 감정도 다 꺼내놓고, 뭔가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그런데, 너무 불안했다.
친구라도 못 할까봐.
차라리 친구 끝내고 얼굴 안 보는 게 낫다고 말은 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닥쳐오자 친구 관계조차 끝이 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꼴이라니.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당장이라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 고백을 했던 자신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지금 여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싸나이 박우진 아니냐, 그냥 확 밀어. ”
제 모든 상황을 아는 건 박지훈 뿐이라 가볍게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냥 밀기엔 임영민이 너무 거슬렸다.
헤어질 땐 언제고 다시 만나고 싶다고 여주를 미친듯이 흔드는 중이었다.
더 짜증이 나는 건 거기에 흔들리는 여주였다.
제가 봐도 여주는 저보다 임영민에게 더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밀긴 뭘 밀어. ”
“ 야, 어차피 아직 다시 만나는 것도 아니고 뭐가 문젠데. ”
“ 여주가 영민선배한테 미련이 남은 것 같아. ”
“ 답답한 새끼. ”
여주가 임영민과 다시 잘 될 것 같아 조금 무서웠다.
대체 임영민은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싶으면 여주를 그렇게 뒤흔들까.
뭐가 그렇게 잘났길래.
“ 나도 안다. ”
“ 니가 영민이 형보다 더 잘해주면 되잖아. ”
“ …… ”
“ 니가 계속 신경이 쓰이게 만들라고. ”
“ …… ”
“ 이러다 여주랑 영민이 형이랑 잘 되면 그때가서 또 후회하려고? ”
박지훈 말이 맞았다.
이렇게 이도저도 안 하다가 둘이 또 잘 되기라도 하면 그땐…
“ 그럼 나 스트레스로 쓰러져. ”
“ 그러니까 병신아, 좀. ”
“ …… ”
“ 너 후회 안 하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고. ”
“ …… ”
“ 어차피 여주가 아직 너 완전히 밀어낸 거 아니잖아. ”
지훈아, 넌 정말…
박지훈의 말을 듣다보니 제 마음도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 좋은 쪽으로.
그래, 박지훈 말처럼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여주가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내가 좋아한 게 지금 몇 년인데.
이번에도 다시 임영민에게 여주를 보내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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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씨씨입니다 ^.^
이번 편은 우진이 외전입니다 !
노래가 딱 여주에 대한 우진이의 마음과 잘 맞는 것 같아서 넣어봤어요 ~.~
처음엔 가벼운 분위기로 시작한 글인데 이젠 점점 애들 다 맴찢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제가 더 아픕니다...
사실 영민이와 우진이를 이어주고 싶습니다 (아무말)
하지만 그럼 안 되니까 한 명에게만 행복을 줘야겠죠...
아마 다음 편이나 다다음 편부터 여주의 마음이 굳어질 것 같습니다.
다들 좋은 새벽 보내세요 !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