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 왔냐. ”
“ 잘 지내셨어요? ”
“ 그냥 그랬지, 뭐. ”
우진이 의자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영민의 맞은 편에 앉았다.
이렇게 단 둘만 따로 보는 건 아마 서로 알게 되고 처음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여자 때문이라면.
그들의 이야기
“ 어쩐 일로 니가 연락을 다 했냐. ”
“ 형이랑 얘기 좀 하고 싶어서요. ”
자연스레 술을 시키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오뎅탕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진의 말에 영민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곤 이미 다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우진의 쳐다보았다.
둘 사이의 얘기할 주제는 하나뿐이니까.
“ 여주 얘기야? ”
“ 네. ”
“ 저번처럼 여주랑 잘 되고 싶으니까 방해하지 말라고? ”
“ 아니요. ”
“ 그럼. ”
“ 여주가 제 고백에 대답했어요. ”
술을 따르던 영민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술을 내려놓았다.
당당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우진을 보다 혼란스러운 머리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여주는 그런 얘기 없었는데.
아직 여주가 영민을 완전하게 받아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마음이 열렸다고 생각했던 터라 영민은 이 사실이 더욱 불안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당당한 박우진의 저 표정은 뭔데.
“ …그래? ”
“ 여주가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죠. ”
“ 너 지금 나 놀리러 왔냐. ”
“ 저는 진짜 이해가 안 가요. ”
“ …? ”
우진이 앞에 놓인 술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곤 맞은 편에 앉아있는 영민을 쳐다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나는 뭐가 모자라서.
“ 솔직히 얼굴은 형보다 제가 더 잘생긴 것 같은데요. ”
“ 야. ”
“ 몸도 제가 더 좋을 걸요. ”
“ 뭔 개소리야. ”
“ 성격도 내가 더 착한데. ”
“ 술 한 잔 마시고 취했냐? ”
잔뜩 심술이 난 얼굴로 말하는 우진을 보다 영민이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새끼 오늘 나랑 싸우려고 작정을 하고 온 건가.
옆에 놓여있던 영민의 핸드폰이 반짝 켜졌다 다시 꺼졌다.
아까 보낸 카톡에 여주의 답장이 온 듯 싶었다.
이렇게 연락도 계속 하는데 박우진 고백에 설마 긍정을 답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런 영민을 바라보던 우진이 입술을 꾹 다물고 술병을 들어 비어있는 영민의 잔에 가득 따랐다.
오늘 형 취하기 전엔 못 들어갑니다.
“ 저 차였어요. ”
“ …… ”
“ 멍청한 김여주는 형이 좋대요. ”
“ …… ”
“ 진짜 형은 여주한테 엄청 잘해줘야 되는 거 알죠? ”
“ 알아. ”
순간 영민의 마음에 안도감이 생기고 저도 모르게 긴장하느라 꾹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굳어있는 우진의 표정이 어쩐지 영민의 신경에 잔뜩 거슬렸다.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
“ 여주랑 잘 만나세요. ”
“ 그 얘기하려고 부른 거냐. ”
“ 솔직히 여주 제가 먼저 좋아했는데. ”
“ …… ”
“ 형은 제가 여주를 뺏는다고 생각하겠지만, ”
“ …… ”
“ 저는 형한테 뺏긴 기분이에요. ”
“ 야. ”
“ 왜요. ”
“ 원래 내 거였어. ”
웃기고 있네.
영민의 말에 우진이 입술을 삐죽이며 속으로 말을 삼켰다.
원래가 어딨어, 세상에.
우진이 다시 앞에 놓인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곤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계속 혼자 마음에 담고 끙끙 앓고 있으면 정말 이도 저도 되지 않을 것 같아 오늘 영민을 만났다.
당장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우진에게 가득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 저 오늘 형한테 술 마시고 지랄할 건데요. ”
“ 근데. ”
“ 그래도 욕하고 때리진 말아주세요. ”
“ 욕은 할 건데. ”
“ 그럼 욕만 해주세요. ”
“ 미친 놈. ”
“ 어차피 김여주한테 차였으니까 억울하지라도 않게 형한테 지랄하고 정리할게요. ”
진심인 것 같은 우진의 눈빛에 영민이 한숨을 내쉬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
하다하다 이젠 후배 꼬장도 받아줘야 되나.
“ 내가 언제 받아준댔냐. ”
“ 그럼 저 계속 여주 좋아할 거에요. ”
“ …안 받아준다고 한 적도 없다. ”
내가 여주 때문에 참는다.
영민이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삼켰다.
“ 솔직히 저는 형보다 제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 ”
“ 여주는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 ”
“ 그러니까 김여주가 취향이 이상한 거죠. ”
“ …… ”
“ 저 김여주 좋아하느라 이제까지 고백 받은 거 싹 찼거든요. ”
“ 어쩌라고. ”
“ 이런 우직한 남자가 어딨다고 걔는 그걸 왜 못 알아볼까요. ”
속을 살살 긁는 멘트만 날리는 우진을 보던 영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 오늘 아주 작정을 했네.
“ 야, 박우진. ”
“ 왜요. ”
“ 솔직히 너보단 내가 더 나아. ”
“ 취하셨어요? ”
“ 나 여주랑 사귈 때 비주얼 커플이라고 불리던 거 못 들었냐? ”
“ 사람은 얼굴이 다가 아니에요. ”
“ 여주가 내가 가장 좋은 점이 성격이랬어. ”
“ 형의 그 지랄 맞은 성격이요? ”
“ 진짜 맞고 싶냐? ”
“ 형 진짜 재수없어요. ”
평소였으면 하지도 못했을 말들을 잘도 늘어놓는 우진을 보던 영민이 팔짱을 끼고 등을 기대어 앉았다.
그래, 오늘만 봐준다. 오늘만.
우진이 술을 한 잔 더 들이키곤 앞에 놓인 뻥튀기를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어떻게 임영민한테 지랄을 해야 잘 지랄했다고 소문이 날까.
여유로워 보이는 영민의 모습이 우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내가 잘생기고 성격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어. ”
“ 형이 이렇게 재수없는 거 왜 사람들은 모를까요? ”
“ 너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
“ 형. ”
“ 뭐. ”
“ 저 여주 집도 존나 들락거렸어요. ”
“ 뭐? ”
“ 여주 밥 안 먹었다고 하면 밥 사가서 여주네 집에서 먹고 그랬어요. ”
“ …… ”
“ 그리고 여주랑 술 마실 때에 여주 취하면 맨날 업어서 데려다주고 그랬는데. ”
“ …야. ”
“ 몰랐죠? ”
잔뜩 굳어 표정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영민을 보던 우진이 생글 웃었다.
정말 유치하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그동안 영민에게 쌓여있던 분노를 풀어야 자신이 살 것 같았다.
영민이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열을 주체를 못 하고 연이어 물만 벌컥벌컥 마셔댔다.
둘이 집에서 밥을, 그것도 여주 집에서 단둘이.
그리고 뭐, 업어줘?
“ 니 진짜 미쳤냐? ”
“ 짜증나죠? ”
“ 야. ”
“ 저는 항상 형한테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
“ 이 새끼가 진짜… ”
“ 먼저 좋아한 건 전데 연애는 형이랑 하고. ”
“ …… ”
“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맨날 저한테 와서 형이랑 연애하는 얘기만 잔뜩 늘어놓고. ”
“ …… ”
“ 제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
영민이 술을 한 잔 들이키고 마음을 다시 가라앉혔다.
이 새끼가 하는 말에 동요하지 말자.
분노로 뒤덥혔던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이 되고 영민이 우진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 니가 용기가 없어서 고백을 못 한 건데 그걸 누굴 탓해. ”
“ …… ”
“ 억울하고 짜증나고 이딴 거 다 누구 때문에 니가 느끼는 건데. ”
“ …… ”
“ 너잖아. ”
“ …… ”
“ 니가 불안해서 고백 못 해놓고 뒤늦게 나랑 잘 되니까 왜 그 화살이 우리한테 돌아오냐? ”
“ …… ”
“ 합리화 시키지마. ”
“ 그러게요. ”
구구절절 맞는 말만 늘어놓는 영민에 우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이 형은 왜 더 재수없게 맞는 말만 골라서 하냐.
우진이 테이블에 턱을 괴고 영민을 빤히 쳐다보자 영민이 짜증난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 멜로 눈깔 꺼져. ”
“ 와, 수치다. 멜로 눈깔이라뇨. 그냥 쳐다본 거에요, 착각은. ”
“ 징그러우니까 쳐다보지 말라고. ”
“ 저 정리할 거에요. ”
“ …… ”
“ 마음 정리하고 여주랑 다니는 것까진 봐주세요. ”
“ 왜. ”
“ 이렇게 지내면 여주도 저 불편해할 거고 다른 애들도 저 때문에 괜히 분위기 어색해지는 거 싫어요. ”
“ …… ”
“ 정말 사심 없이 친구로만 대할 테니까 그건 봐주세요. ”
“ …… ”
“ 안 그러면 쫌팽이라고 대숲에 제보할 거에요. ”
“ 미친 놈. ”
우진과 영민이 연달아 술을 들이켰다.
숟가락을 들어 뜨끈한 국물을 한 입 떠서 마시자 속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보단 많이 풀어진 분위기에 영민이 우진의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 오늘 진짜 뒤지겠네요. ”
“ 당연하지. 너 나 가기 전엔 못 가는데. ”
“ 형, 저 오늘 술 취해서 형한테 지랄할 거라니까요. ”
“ 지금도 계속 지랄하고 있잖아. ”
“ 뭔 소리에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
“ 한 대 때려도 되냐? ”
“ 때리지 말고 욕만 하라니까요. ”
“ 뭔 이딴 미친 놈이 다 있냐. ”
“ 칭찬으로 들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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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씨씨입니다 ^.^
오늘은 특별히 영민이와 우진이의 뒷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ㅎㅎ
다들 잘 읽으셨나요?
너무 무겁지 않게, 막 가볍지도 않게 중간선에서 잘 풀어나가려고 노력을 했으나 역시 마음처럼 되지가 않습니다 ^^...
최종 암호닉 명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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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ㅠ.ㅠ
제가 많이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