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 진짜 미안해, 우진아. ”
박우진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 박우진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어떤 눈빛으로 절 보고 있는지 보기가 무서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혼자 이기적이였다.
“ 미안할 거 없어. ”
“ …… ”
“ 사람 마음이 말처럼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
원래 알고 있었다는 듯 무덤덤하게 답하는 박우진의 목소리를 듣자 더욱 더 밀려오는 죄책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난 정말 네가 좋은데, 정말 좋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친구일 때의 이야기였다.
“ 우진아, 너 좋은 사람인 거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러니까… ”
“ 나 좋은 사람이니까 너 말고 다른 좋은 여자 만나라고? ”
“ …… ”
“ 내가 좋은 사람인 게 무슨 소용인데. ”
“ …우진아. ”
“ 정작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곤 못 만나는데. ”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박우진의 눈빛이 말없이 저를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진아, 넌 왜 하필 나를 좋아해서.
내가 뭐라고.
“ 미안해. ”
“ 임영민 다시 만나는 거야? ”
“ …아직은 아니야. ”
“ 그럼 곧 만나겠네. ”
“ …… ”
“ 임영민은 뭔 일을 했길래 이렇게 복에 겨워서 사냐. ”
뼈있는 박우진의 말들에 대꾸도 못 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야만 한다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 …… ”
“ 미안할 것도 없어. ”
“ …… ”
“ 내가 마음대로 좋아해놓고 마음대로 고백한 거니까. ”
“ …… ”
“ 당분간은 같이 못 다니겠다. ”
“ …… ”
“ 나 좀 멀쩡해지면 그때 다시 보자. ”
자리에서 일어난 박우진이 저를 슬쩍 쳐다보곤 카페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였다.
사람의 마음을 거절한다는 게 참, 못할 짓이다.
“ 짜증나… ”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드려 한숨을 내쉬었다.
땅을 파고 들어간 기분은 아마 오늘 내로는 나오기 힘들 것 같았다.
지금 제 기분이 이런데 박우진은 얼마나 더 최악일 것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뭔가 텅하니 빈 것처럼 마음이 허했다.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 길에 유난히 조용한 핸드폰이 어색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임영민에게 카톡 하나 없는 게 저도 모르게 뭔가 짜증이 났다.
지금 이 사단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건데.
핸드폰을 꺼내어 임영민과의 채팅방에 들어가 뭐라고 보낼까 곰곰히 생각을 하다 당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오후 5:13 짜증나요
14 임영민 선배
어디야? 오후 5:13
오후 5:14 집
마치 제 카톡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카톡을 보내자마자 없어지는 숫자 1에 순간 흠칫해 채팅창을 나왔다.
하지만 이내 어디냐는 물음에 거의 집에 도착한 터라 답장을 보내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근데 어딘지는 왜 물어봐.
“ 아, 진짜 짜증나네. ”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있기를 30분.
제 카톡을 읽고 여전히 답장이 없는 임영민에 안 그래도 우울했던 기분에 극도의 예민함이 더해져 누군가 쿡 찌르면 당장 터질 것 같은 그런 상황이 되었다.
대체 밀당이야, 뭐야.
내가 좀 자기한테 넘어온 것 같으니까 다시 이러는 건가.
그러면 진짜 임영민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카톡창을 내리다 박우진과의 채팅방에서 멈췄다.
“ 박지훈이랑 있겠지. ”
아까 박지훈이 닭발 타령을 했으니까 지금쯤 둘이 닭발에 소주 먹고 있으려나.
이제 진짜 박우진과는 원래 친구 사이로 돌아갈 수 없는 건가 싶어 기분이 착잡해졌다.
편하게 닭발에 소주 먹으면서 시덥지도 않은 얘기들 할 때가 재밌었는데.
이제 다신 그렇게 못 하겠지.
순전히 제 욕심인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박우진은 지금 내 얼굴 보는 것도 싫은 텐데.
징-
“ 아, 깜짝이야. ”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진동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들썩이곤 화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건 크게 써있는 임영민 글자.
카톡은 안 하고 갑자기 뭔 전화야.
“ 네. ”
- 집이야?
“ 네. ”
- 집 앞으로 나와.
“ …? ”
- 기다릴게.
뚝 끊어진 전화에 벌떡 일어나 앉아 본능적으로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았다.
아, 카톡 답이 없다 했더니 설마 여기까지 온 거야?
누워있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정리하고 살짝 지워진 립스틱을 덧바르곤 급하게 현관으로 향했다.
귀찮아서 화장 안 지웠으니까 다행이지.
왜 자꾸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고 난리야.
“ 여긴 왜 왔어요. ”
흰 반팔 티셔츠에 검은 바지, 손엔 검은 봉지를 들고 있는 누가 봐도 임영민처럼 보이는 남자가 등을 돌려 제 집 아파트 현관 앞에 서있었다.
제 목소리에 뒤를 돌아 제 쪽을 쳐다보곤 씩 웃으며 다가왔다.
웃긴 뭘 웃어.
“ 짜증난다고 그러길래 기분 안 좋은가 싶어서. ”
“ 네. ”
“ 안 좋아? ”
“ 네. ”
아, 그렇구나…
임영민이 단호한 제 대답에 약간 당황했는지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적이다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제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또 뭐야.
“ 너 기분 안 좋을 때 단 거 먹으면 좋아하잖아. ”
“ …… ”
“ 그래서 조금이라도 좋아할까 싶어서 사왔어. ”
“ …… ”
봉지를 받아들고 열어보자 그 안에는 각종 초콜릿, 젤리, 사탕 등 군것질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고개를 들어 임영민을 쳐다보자 주인의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다 민망한지 시선을 피했다.
자꾸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펀치들이 막을 수도 없게 훅훅 날아온다.
“ …먹기 싫어? ”
“ 지금 이거 주려고 집에서 여기까지 온 거에요? ”
“ 응, 더 사올 걸 그랬나? ”
“ …선배. ”
“ 응? ”
자꾸 이렇게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지 마세요.
단호한 얼굴로 쳐다보자 임영민이 당황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다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마음 다 연 거 아니니까 안심하지도 말고.
“ 나는 니가 기분 안 좋다길래 괜히 멀리 나오라고 하면 더 싫어할 것 같아서 그랬어. ”
“ …… ”
“ 미안해, 다음에는 오게 되면 미리 말하고 올게. ”
“ …네. ”
“ 근데 혹시 기분 왜 안 좋은지 물어봐도 돼? ”
조심스레 물어오는 목소리에 임영민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 되니까 말 못 해요.
“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
“ …… ”
“ …… ”
“ …… ”
“ …그럼 나 이제 가볼게. ”
얼른 들어가라며 손을 휘적거리는 임영민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 군것질들 주려고 그 시간에, 차비에 아깝지도 않나.
제 카톡을 받고 부랴부랴 집에서 뛰쳐나왔을 임영민이 머릿 속으로 그려지자 왠지 웃음이 나왔다.
참 어렵게 돌아간다, 임영민.
“ 가시게요? ”
“ 응, 괜히 너 붙잡고 있으면 싫잖아. ”
“ …… ”
“ 들어가서 그거 먹고 푹 쉬면 기분 좀 나아질 거야. ”
“ …… ”
“ 오늘은 일찍 자고. ”
“ 네, 가세요. ”
대충 고개만 까딱거리고 등을 돌려 현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 현관문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뒤에서 급하게 임영민이 제 손목을 잡아왔다.
뭔데, 또.
“ …… ”
“ 왜요. ”
“ …… ”
“ …… ”
“ …… ”
“ 아, 왜요. ”
“ …위험해. ”
“ …… ”
“ …… ”
“ 뭐가요. ”
제 대답에 임영민이 눈만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보다 잡고 있던 제 손목을 놓고선 씩 웃었다.
그리곤 제 손에 들려있던 검은 봉지를 도로 빼앗아 들고는 제 앞을 가로막으며 섰다.
“ 니가 여기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까지 들어가는 동안에 어떤 이상한 놈이 나올 수도 있잖아. ”
“ …그게 뭔, ”
“ 세상이 흉흉해서 안 되겠다. ”
“ …… ”
“ 내가 집 바로 앞까지 데려다줄게. ”
“ …… ”
“ 물론 신발장까지도 데려다줄 수 있, ”
“ 선배. ”
“ …지는 않으니까 현관문 앞까지 데려다줄게. ”
얼른 비밀번호를 누르라며 재촉하는 임영민을 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이렇게 뻔뻔한 건 변하지를 않냐.
생글생글 웃으며 뭐가 즐거운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얌전히 서있는 임영민을 보자 우울했던 기분이 약간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 사람 마음은 왜 이렇게 약해빠진 걸까.
“ 이제 가세요. ”
“ …… ”
“ 왜요. ”
“ 여주야. ”
“ 네. ”
“ …… ”
“ …… ”
“ 물 한 모금만. ”
“ …… ”
“ 진짜 딱 물 한 모금만 마시고 갈게. ”
“ …… ”
“ 진짜로. ”
애초에 이럴 생각이였지, 임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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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씨씨입니다 ^.^
금요일에 온다고 해놓고선 일요일 새벽에 글을 들고 온 저를 쳐주세요 ㅠ.ㅠ
많이 기다리셨을 독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저번에 곧 완결이 날 것 같다고 했던 말에 다들 엄청 슬퍼하시더라구요 ㅠㅠㅠㅠㅠ
저도 슬퍼요...
근데 사실 아직 당장 완결이 난다는 얘기가 아니였어요 !
그러니까 덜 슬퍼하셔도 됩니다 ^.^
그리고 독자분들이 좋아할만한 여러 특별편들도 들고 올 예정이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
오늘 드디어 여주가 한 쪽을 택했습니다.
사실 많은 독자분들이 우진이를 남주로 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원래 제가 생각했던 스토리를 썼어요.
이런 얘기들을 자세하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이런 얘기들은 나중에 한 번에 다른 글에서 나누도록 해요 !
여전히 제 글을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에 열심히 글을 씁니다 !
다들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