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
정말 이 남자를 어쩌면 좋을까.
제 집 앞에 놔둔 쇼핑백을 확인하고 임영민에게 잠깐 볼 수 있냐는 카톡을 보내자 잠시만 기다리라는 답장이 오고, 정확히 30분 후에 집 앞이라는 연락이 왔다.
쇼핑백을 확인한지 시간이 좀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을 예상해 중간에서 만나려고 했던 제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급하게 돌아왔는지 이마엔 땀이 맺혀있고 앞머리도 약간 헝클어진 상태였다.
제가 말없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임영민이 숨을 고르며 저를 슬쩍 보곤 손을 들어 앞머리를 정리했다.
“ 왜 여기까지 왔어요. 중간에서 봐도 되는데. ”
“ 너 몸도 안 좋은데 괜히 멀리 나오면 힘들 것 같아서. ”
사람 마음 뒤흔드는 건 여전하네.
제가 가만히 서있자 임영민이 제 눈치를 보는 듯 눈만 이리저리 굴리며 제 앞에 서있었다.
사실 저도 모르겠다. 왜 임영민을 보자고 한 건지.
“ 쇼핑백 왜 두고 갔어요? ”
“ 아, 지성이 형이 너 몸 안 좋다고 그러는데 혹시 많이 아플까봐 단 것 좀 먹으면서 쉬라고. ”
“ …… ”
“ 원래 그날일 때 단 거 좋아했잖아. ”
“ 그럼 왜 두고 그냥 갔어요? ”
“ 나는 너 몸도 안 좋은데 괜히 또 신경쓰이게 하기 싫어서 그냥 그것만 두고 온 건데. ”
“ …… ”
“ 혹시 기분 나빴어? ”
표정이 없는 제 얼굴을 살피던 임영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안절부절 손을 움직였다.
기분이 나빴냐고?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다.
“ 선배는 진짜… ”
“ 미안해, 나는 그냥 너 걱정되니까 그것만 두고 온 건데. ”
“ 진짜 너무 짜증나요. ”
“ …… ”
“ …… ”
“ 미안해. ”
임영민이 짜증난다.
정말 너무 싫고, 밉고, 보고 싶지 않다.
“ 왜 맨날 이렇게 신경 쓰이는 짓만 골라서 해요? ”
“ …… ”
“ 그때는 그렇게 저 힘들게 하더니 왜 이제와서… ”
“ …… ”
“ 왜 자꾸 사람을 흔들어요. ”
제 자신이 한심했다.
임영민은 안 된다고 외치는 머리와는 다르게 자꾸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 쇼핑백을 보는 순간,
굳게 다잡고 있었던 마음이 무너졌다.
몇 시간 전까지 같이 있었던 박우진이 싹 지워질 만큼,
제게 임영민이란 그런 존재인지도 몰랐다.
“ 미안해, 여주야. ”
“ 이럴 거면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죠. ”
“ 그건 내가 진짜 뭐라고 할 말이 없어. ”
“ …… ”
“ 진짜 미안해, 앞으론 그럴 일 없을 거야. ”
“ …… ”
간절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며 말하는 임영민을 보다 고개를 숙였다.
저런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 건 반칙이잖아.
제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임영민이 흔들면 흔드는 대로, 파고들면 파고드는 대로 다 받아주는 자신이 너무 미련하게 느껴졌다.
“ 그냥 변명이라도 하자면 그땐, ”
“ …… ”
“ 그냥 좀 너무 힘들었어. ”
“ …… ”
“ 사실 너한텐 권태기라고 했지만 권태기는 아니였어. ”
“ …… ”
“ 여전히 니가 좋았으니까. ”
“ …… ”
“ 근데 다른 일들에 치여서 너한테 좀 소홀해졌던 거야. ”
“ …… ”
“ 진심이야, 많이 반성하고 있어. ”
“ …… ”
가만히 임영민의 말을 듣고 있으니 헤어지기 직전의 날들이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말이라도 해줬으면 됐잖아.
왜 이제와서…
“ 천천히 기다릴 수 있다고 했잖아. ”
“ …… ”
“ 내가 잘못한 거 어떤 식으로든 너한테 다 돌려받고 만나도 돼. ”
“ …… ”
“ 그러니까 한 번만, 딱 한 번만 기회줘라. ”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렇게 애타게 말하면 자꾸 이게 다 진심인 것 같고, 꼭 그럴 것 같고…
머리는 이미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다시 임영민과 만난다면? 끝까지 거절한다면? 박우진과 만난다면? 둘 다 포기한다면?
머리 속에선 아주 많은 경우의 수가 떠올랐지만,
사실 이미 답은 정해져있는 지도 모른다.
“ 잘 쉬었어? ”
“ 응, 너도 잘 들어갔었어? ”
“ 어. 연락이 없길래 많이 아픈가 싶었는데. ”
그렇게 주말이 지나가고 다시 월요일이 찾아왔다.
주말 내내 저는 임영민과 박우진 둘 다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다.
정말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평소처럼 등교를 하고 강의실에 먼저 와있는 박우진의 뒷자리에 앉았다.
기분 탓인가, 오늘따라 뒷모습이 쓸쓸하게 보였다.
“ 아픈 건 다 나았지. ”
“ 그럼 다행이고. ”
“ 오늘 수업 끝나고 시간 있어? ”
“ 응, 왜? ”
“ 할 말 있어. ”
제 말에 박우진은 잠깐 망설이는 듯 싶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씩 웃었다.
아마 망설인 이유는 제가 무슨 얘기를 할지 몰라서 그런 거겠지.
제가 굉장히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 박우진이랑 이런 사이가 된 거지.
“ 어쩐 일로 너네 다 지각 안 했냐? ”
“ 원래 지각 안 하거든. ”
박지훈이 들어오면서 저와 박우진을 한 대씩 툭툭 치곤 자리에 앉았다.
항상 투닥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저나 박우진에겐 참 좋은 친구였다.
제일 힘들 때 옆에서 고민을 들어주고 현실적인 조언도 해주고.
고맙다는 말은 성격상 오글거려서 못 하지만 마음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야, 오늘 끝나고 닭발 먹으러 가자. 나 어제 밤부터 계속 먹고 싶었다고. ”
“ 오늘 끝나고? ”
박지훈이 저와 박우진에게 닭발 얘기를 꺼내자 순간 약간의 정적이 돌았다.
오늘 끝나고 바로는 안 되는데.
“ 아, 오늘 끝나고 나 우진이랑 한 30분? 볼일 있는데 그거 끝나고 가. ”
“ 뭐냐, 둘이 나 빼고. ”
“ 여튼 알겠지? ”
박지훈이 뭐냐는 듯 눈을 흘기며 저와 박우진을 번갈아서 쳐다보며 치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마 박지훈은 말은 저렇게 해도 대충 눈치로 알고 있을 거다.
빨리 마음을 다잡게 해준 장본인이 박지훈이니까.
“ 야, 근데 박지훈 너 좀 인기 많더라? ”
“ 왜? ”
“ 밑에 17 애들 중에서 너 좋아한다고 소문난 애 있던데? ”
“ 미친… ”
제 말에 박우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에 반해 박지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저희에게 느끼한 미소를 날렸다.
“ 걘 분명 얼굴만 보고 그러는 게 분명해. 얘 성격 또라인 거 알면 바로 접을 텐데. ”
“ 불쌍한 새내기 앞길 막지 말고 얼른 너 또라이인 거 알려줘. ”
“ 얘들아, 부러우면 지는 거야. ”
박지훈이 손가락을 양 옆으로 까딱까딱 거리며 거만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 앉고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더니 이어진 셀카 타임.
아마 저중 절반은 오늘 페북 타임라인에 올라올 사진들일 거다.
아니면 인스타.
하루의 대부분을 자기 얼굴 만족으로 살아가는 이 인간은 대체 언제쯤 멀쩡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 근데 솔직히 김여주 너 여자애들이 부러워하지 않냐? ”
“ 나를? 왜? ”
“ 너 나랑 친하잖아. ”
“ 아, 얘 진짜 미친놈인가. ”
제가 경악스러운 얼굴로 박지훈을 쳐다보자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핸드폰 카메라에 집중했다.
아까 고맙다고 했던 거 다 취소다, 이 새끼야.
“ 뭐 마실래? ”
“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
“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아이스 초코 한 잔 주세요. ”
카운터에서 주문을 마치고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 박우진과 마주보고 앉았다.
막상 이렇게 자리 잡고 얘기하려니까 좀 떨리네.
“ 진동 울린다, 가져올게. ”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우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까지 친구였던 박우진에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제 앞으로 놓여지는 아이스 초코를 한 입 마시곤 마주 앉는 박우진을 쳐다보았다.
아마 지금 저보다 박우진이 더 떨리지 않을까.
“ …… ”
“ …… ”
“ …… ”
“ 할 말 뭔데? ”
박우진에게서 시선을 돌려 제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제 손들을 쳐다보았다.
주말 내내 생각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 니가 나한테 고백했던 거 있잖아. ”
“ …… ”
“ …… ”
“ 응. ”
대화와 대화 사이에 정적이 길게 이어졌다.
아마 앞으로 나올 말들에 대한 두려움 또는 기대감 때문이겠지.
“ 그거, 대답… ”
“ …… ”
“ 해주려고. ”
“ …… ”
“ …… ”
“ 그래. ”
막상 얘기를 꺼내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박우진의 시선도 저를 더 조여오는 것 같았다.
제가 긴장하고 있는 걸 아는지 박우진이 작게 웃으며 제게 말을 건네왔다.
“ 니가 어떤 대답을 하든 난 다 괜찮아. ”
“ …… ”
“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
“ …… ”
“ 어떤 대답을 하든 둘 다 다시 원래의 친구 사이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그래도. ”
“ …… ”
“ 난 정말 다 괜찮아. ”
다정하게 말하는 박우진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너는 왜 항상 이런 타이밍에 그렇게 다정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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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씨씨입니다 ^.^
아마 곧 글이 완결을 향할 것 같아요 !
제가 많이 애정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고 많은 독자분들이 사랑을 주셨던 작품이라 정말 많이 아쉽습니다 ㅠ.ㅠ
하지만 금방 차기작을 들고 올 거니까 너무 슬퍼하진 말아주세요 !
벌써 차기작 주제는 정해졌구요, 스토리 전개도 지금 30%쯤 완료가 되었으니 독자분들을 그냥 심심하게 두진 않을 겁니다 ^.^
항상 댓글로 많이 공감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ㅠ.ㅠ
댓글 볼 때마다 정말 전부 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
그리고 혹시 제가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발견하신다면 주저 마시고 바로 댓글로 알려주세요 !
나중에 다시 글을 쭉 읽다가 뒤늦게 발견하면 정말 민망하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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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딴 얘기지만 저는 정말 27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MXM 이름부터 그냥 멋짐이 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