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 안녕하세요, 선배. ”
추운 겨울 어느 날, 신입생 환영회.
그게 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임영민 외전
“ 지금 잘 거 아니면 밖에서 술이나 마시자. ”
임원 엠티 마지막 날, 다들 그냥 자긴 아쉬운지 모여서 신나게 게임을 하고 난 후 지성이 형의 말에 동의하는 듯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도 뭔가 아쉬웠던 터라 일어나 간단히 겉옷을 챙기고 밖으로 나섰다.
나무 테이블을 둘러싸고 모여 앉자 다시 시작된 술판 2차전에 다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술을 넘기기 바빴다.
그리고, 제 맞은 편에 앉아있던 여주.
그때부터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 천천히 마셔. ”
술도 잘 못 마시는 게.
원래 주량도 세지 않은데 뭐가 그렇게 급한지 연이어 술을 벌컥벌컥 마셔대는 여주를 보고 있자니 자꾸 신경이 쓰여 절로 나가는 팔을 참으려 애썼다.
저렇게 마시면 내일 숙취 장난 아닐 텐데.
제 앞에 있던 과자봉지들을 여주 앞으로 쓱 밀어주자 빤히 저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안주라도 먹으면서 마시라고.
같은 과 선후배 사이지만 처음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였다.
그냥 얼굴과 이름만 알던 사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여주가 임원에 들어오고 만나는 일이 더욱 잦아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친한 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와중에 오게 된 임원 엠티에서 여주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 아, 추워… ”
늦은 밤이 되자 쌀쌀한 날씨에 반팔을 입고 나온 여주가 추운지 손으로 팔을 문질렀다.
반면에 저는 겉옷까지 다 챙겨서 나온 터라 별로 춥지 않아 제 겉옷을 벗어 여주에게 넘겨주려 팔을 빼는데,
“ 그러니까 겉옷 챙겨서 나오랬잖아. ”
저보다 먼저 선수친 박우진이 여주의 어깨에 본인의 겉옷을 걸쳐주었다.
여주가 고맙다는 듯 웃어보이자 아무렇지 않은 척 앞에 있던 과자를 집어 먹는 박우진을 보자 알지 말아야 될 것을 안 것처럼 기분이 아래로 내려 앉았다.
아, 우진이가 여주 좋아하는구나.
정작 당사자는 못 느낄지 몰라도 제 3자의 입장에선 눈에 딱 보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상하고 둘이 나란히 앉아있는 걸 보는 게 굉장히 불편했다.
여주와 우진이 둘 다 아끼고 친한 후배인데 둘이 잘 되면 좋은 거 아닌가.
“ 선배, 짠- 해요. 짠. ”
술 때문인지 잔뜩 빨개진 볼을 하고선 웃으며 제 앞으로 술잔을 내미는 여주를 보며 순간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술을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확 달아오르는 기분이였다.
아, 나 취했나.
아무것도 모른 채 제 앞에서 웃고 있는 여주의 잔에 술잔을 들어 부딪혀주곤 단번에 술을 삼켰다.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봤는데 갑자기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싶어 다시 여주를 쳐다보았다.
여주가 예뻐보였다.
그게 우리의 썸의 시작이였다.
“ 선배, 오늘 영화 완전 재밌었어요. ”
“ 나도. 늦었다, 얼른 들어가야 부모님 걱정 안 하시지. ”
“ 선배는 제가 빨리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
영화를 보고 여주의 집 앞까지 데려다주자 제 말에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툴툴거렸다.
저 눈을 흘기는 표정, 귀여워서 제일 좋아하는 표정이다.
“ 너무 답하기 어려운 질문 아니야? ”
“ 뭐가 어려워요. 와, 진짜 됐어요. 이제 선배랑 안 놀아. ”
“ 삐쳤어? ”
“ 아닌데요. ”
입술은 퉁- 나와서는 안 삐쳤다며 고개를 돌리는 여주가 오늘따라 더 귀엽게 보여 저도 모르게 팔을 끌어당겨 제 품에 안았다.
첫 포옹이였다.
제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릴 지경에 이르러 여주를 품에서 떼어놓고는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 눈치 보는 거 그만 해야지.
“ 당연히 보내기 싫은데 나는 아직 명분이 없잖아. ”
“ 무슨 명분이요. ”
“ 아직 니 남자친구가 아니니까. ”
“ …… ”
제 말에 부끄러운 건지 고개를 휙 돌려 괜히 헛기침을 하는 여주의 볼이 빨갰다.
이제 그 볼에 뽀뽀도 마구마구 해주고 싶은데.
“ 그러니까 이제 명분을 만들어야겠어. ”
“ …? ”
“ 마음대로 집에 안 보내도 되고, 손도 잡아도 되고, 포옹도 해도 되고, 뽀뽀도 해도 되는 명분. ”
“ …… ”
“ 연애하자. ”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 내일 저녁에 홍대 갈까? ”
“ 아, 저 내일 우진이랑 과제하기로 했는데… ”
“ 우진이랑 둘이? ”
“ 네, 그래서 저녁도 우진이랑 먹어야 될 것 같아요. ”
“ …그래. ”
여주와 썸을 타기 시작하고, 심지어 사귀는 지금까지도 박우진은 저에게 절대 사라지지 않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래, 둘이 원래 친한 거 다 알고 여주도 박우진한테 마음 없는 거 다 아는데,
박우진은 아닌 게 문제였다.
박우진은 여주를 좋아하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친구라는 이름 아래로 둘이 밥을 먹고, 과제를 하고, 술을 마시고.
여주에게 넌지시 말을 꺼내도 박우진은 그냥 친구라며 넘어가고, 저 또한 괜히 속이 좁아보일까 참고 참았던 게 화근이였다.
속으론 아무 일도 없으니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절대 괜찮을 수가 없었다.
“ 우진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면 나 서운하다. ”
“ 선배, 지금 질투할 사람이 없어서 박우진한테 질투를 해요? ”
“ …질투가 아니고, 서운하다고. ”
“ 근데 내일은 과제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
“ 알았어. ”
여주가 미안하다고 제 허리를 끌어안으며 품에 안겨왔다.
그런 여주의 이마에 짧게 뽀뽀를 해주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안 넘어갈 수가 있냐.
“ 연락 꼭 계속 하고. ”
“ 알았어요. ”
“ 술은 절대 안 된다. ”
“ 과제한다니까 무슨 술이에요. ”
“ 약속. ”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여주가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엄지로 도장을 꾹 찍고 볼을 내밀자 웃음소리 뒤로 촉촉한 촉감이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
볼에 도장도 찍었으니까 믿는다.
“ 선배, 요즘 왜 그래요? ”
날카롭게 날아오는 여주의 목소리에 말없이 입술만 꾹 깨물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
“ 대답 좀 해봐요. ”
“ 미안해. ”
“ …선배. ”
제 대답에 실망으로 가득한 여주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렸다.
연애 초기 때보다 서로에게 소홀해진 건 인정한다.
하지만, 마음에 변한 건 절대 아니였다.
여주와 연애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한 해가 바뀌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 학년이 더 올라갔다.
주변의 많은 환경이 바뀌었고, 막막한 현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연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마냥 연애만 해도 행복한 그런 시기가 지났다고 생각을 했다.
이제 온전히 서로에게만 쏟던 에너지를 조금 나누어 주변에도 써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이 들었고,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 다가왔다.
“ 선배, 혹시 권태기가 온 거면… ”
“ 그런 거 아니야. ”
“ 그런 거 아니면 뭔데요. ”
“ …… ”
“ 이제 질렸어요? ”
아니라고 말을 했어야 했다.
니가 질린 게 아니라고,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되겠냐고.
하지만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은 목까지 차오르고 그대로 삼켜졌다.
제 앞에 앉아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주를 보고 있으니 대체 지금 저희가 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서로 좋아서 연애를 시작했고, 좋자고 연애를 계속 하는 건데 왜 이렇게 서로 겪지도 않아도 될 감정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이기적이였다, 제가.
저도 알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했다.
차라리 서로 없는 게 더 편한 거라고 그렇게 위안 삼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후회의 감정은 생각보다 저를 빨리 찾아왔다.
저를 대놓고 피해다니는 여주를 보는 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였다.
주변 사람들 다들 저희의 일을 알게 되고선 제게 여주의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 않아 여주의 소식을 듣기란 굉장히 힘들었다.
“ 선배. ”
익숙하지만 별로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저를 불러왔다.
뒤를 돌자 예상대로 박우진이 서있었다.
“ 왜. ”
“ 전 별로 선배 눈치 보고 싶지 않은데요. ”
“ 니가 언제 내 눈치를 봤냐. ”
“ 선배가 자꾸 눈치 보이게 하시잖아요. ”
“ 내가 언제. ”
“ 선배가 아직 여주한테 미련이 남았다면서요. ”
웃음기 없는 얼굴로 제게 말하는 박우진을 빤히 쳐다보다 밀려오는 짜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넌 정말 꾸준하게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구나.
“ 니 행동이 내 눈치 보면서 하는 행동이냐? ”
“ 예의상 살짝 보는 거죠. 그래도 전남친인데. ”
“ 야. ”
“ 저 여주 좋아해요. ”
“ …… ”
“ 여주랑 잘해보고 싶어요. ”
저게 지금 내 앞에서 할 소린가.
답할 가치도 없다는 걸 깨닫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박우진이 왔던 반대로 걸어갔다.
이건 정말 인생 최악의 실수다.
헤어지면 뭔가 더 나아질 줄 알았는데, 나이지긴 커녕 오히려 피가 말라 죽을 것 같은 기분이다.
박우진도 이제 대놓고 앞에서 선전포고를 하질 않나.
한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꺼내 여주에게 연락을 하려다 참고 그대로 다시 핸드폰을 넣었다.
아직 싫어하겠지.
답답한 마음에 앞머리를 헝클이곤 한심한 제 처지에 주먹을 꽉 쥐었다.
임영민 어쩌다 이렇게 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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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씨씨입니다 ^.^
이번엔 특별히 영민이 외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짝짝)
원래 평소엔 짤을 쓰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더 특별히 짤도 넣었어요 !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고 계신가요?
항상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관심과 사랑 감사드려요 ㅠ.ㅠ
예쁘게 댓글 써주시는 독자분들과 귀여운 추천요정님들 정말 사랑합니다 (하트)
독자분들 댓글 보면서 많이 깨닫고 느끼고 배워요 !
특히 정성스럽게 길게 써주신 댓글들 보면 정말... 감격 그 자체...
다음 편도 얼른 가지고 오겠습니다 !
다들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