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예정과 달리 카페에서 뛰쳐나오는 바람에 약속한 시간보다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한 민석은
갑자기 강하게 부는 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목에 걸친 목도리를 입가까지 끌어올렸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사람들이 복잡하게 왔다갔다하는 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주변에 있는 분수대에 걸터앉았다.
엉덩이에 느껴지는 찬기운에 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약속장소를 옮기기엔 곧으로 다가온 약속시간에 민석은 조금 참기로 했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한 채 서로를 애뜻하게 바라보며 걷는
수많은 커플들을 하염없이 구경하던 민석은 자신의 이름은 고래고래 불러가며 다가오는 한 인영에 눈동자를 멈추었다.
"제대로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에이~ 몇년동안 이름으로 불러왔는데 새삼스레 뭐어때?"
"사기쳐서 그래놓고 뭐가 이리 당당해?"
"어허, 사기라니. 사기는 내가 당했지!"
"뭐야?"
"그 얼굴로 나보다 두살이나 많다니. 난 당연히 동갑인줄 알았다고! 이 사기꾼아"
"푸핫."
억울함을 한껏 표정에 드러내며 반박하는 백현에 민석은 결국 웃어넘겼다.
사실 민석 또한 백현에게 형소리를 듣는 순간 손발이 꼬일 것 같았기 때문에 몇번 타박할 뿐 굳이 호칭을 바꾸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몸을 부르르 떤 백현이 얼른 자리를 옮기자며 보챘다.
"으~ 춥다 얼른 가자!"
"그래. 찬열인 도착했대?"
"그새끼야 남는게 시간이잖아. 벌써 가서 게임하고 있을걸?"
"있을걸?"
"아까 내점수 제쳤다고 자랑하기 카톡 왔어. 그까짓거 내가 금새 제치겠지만. 킥킥."
자신만만하게 찬열을 비웃던 백현이 아차하며 주머니에서 무얼꺼내 민석에게 던졌다.
갑자기 날아든 것을 가까스로 캐치한 민석의 손에 열기가 가득한 따끈한 핫팩이 들려졌다.
"?"
"내 전용 핫팩인데, 기꺼이 양보해줄게. 어디 들어가있던가 먼저가있던가 하지, 바보같이. 손가락 터지겠다."
손가락 끝이 새빨게져있는 제손과 백현을 번갈아보던 민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마도 이렇게 아닌듯 챙겨주는 백현이기에 그에게서 형이란 호칭을 듣지 못하는것이 아쉽지 않은 것 같았다.
백현과 함께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파에 정자세로 앉아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 찬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이 들어온지도 모른채 숨죽여 열중인 모습에 무엇을 하나싶어 가까이 가보니 아까 백현이 얘기했던 게임이었다.
비주얼은 마치 유능한 비즈니스맨이 주식을 하는 듯 하면서 현실은 저런 유치한 게임이라니...
새삼 얼굴이 아깝다.란 생각이 든다.
"병신. 그렇게 집중하고도 점수가 그따위냐?"
"아악! 씨발. 최고점수 낼 수 있었는데! 나보다 낮은 새끼가 왜 또 시비냐, 넌?"
"지랄하네. 내가 터치하는 순간 넌 그냥 바로 아웃이야. 제대로 알고나 말해라?"
"미친, 맨날 말만 하는 새끼가."
만나기가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민석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이제야 자신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네는 찬열에 머리를 한대 콩하고 쥐어박았다.
아야하고 엄살을 부리는 찬열을 보며 백현이 킬킬 웃자 또다시 서로를 잡아뜯기 시작했다.
저것들은 질리지도 않나, 저러면서 막상 서로가 누군가에게 당하는 꼴은 못보는터라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하며 민석은 혀를 찼다.
결국 둘에게서 눈을 떼고 가운데 자리잡고있던 마이크 앞에 섰다.
마이크를 켜고 손가락으로 두어번 톡톡 건드리자 무슨 신호라도 되는 듯 백현과 찬열은 싸움을 멈추고 각각 드럼과 기타 앞에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