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행복한 나를."
민석이 부를 노래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특별한 맞춤도 없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반주에 기분좋게 미소를 지었다.
반주가 끝나고 민석의 입이 열리며 맑은 목소리가 방울져 반주 위로 또르르 구른다.
여자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별탈없이 매끈하게 올라가는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강한 마력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세명 모두 눈을 감은 채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조화의 선율에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4분이 지나 노래가 끝나도 여운에 잠겨 숨을 내쉬던 세명은 그 노래는 마치 없었던 일인 마냥 다시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일상적인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 피아노는 어땠어?"
"아..."
"피아노? 그게 뭐냐? 뭐에요, 형??"
"멍청인 빠져라."
"아, 뭔데뭔데? 나도 알려줘 궁금하잖아!"
"진짜 바보냐? 지금 듣고 알면되잖아"
"아하."
두사람에 얼빠진 대화에 작게 웃던 민석은 아까의 일이 생각나 다시 시무룩해졌다.
민석의 모습에 백현이 찬열갈구기를 멈추고 민석을 보챘다.
찬열 역시 새로운 이야기에 눈을 빛내며 민석을 보았다.
"뭐야? 무슨일 있었어? 마스터했다고 신나서 가더니 실수라도 한거야?"
"..."
"뭔데 그래? 왜, 선생이 혼이라도 내던? 아니, 실수할수도 있지 뭐 혼까지 낸대? 진짜 선생이라도 되는 ㅈ..."
"그런거 아냐..."
"아니야? 그럼 왜그러는데?"
민석이 그사람을 신경쓰다 엉망진창으로 연주했다고 말하기 민망해 대답을 우물쭈물해하자 백현이 짐작하고 루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때문에 루한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에 발끈한 민석이지만 막상 또 대답하려니 창피한 것은 창피했다.
"그사람... 얼굴보느라 아주 엉망으로 연주해버렸어..."
"... 엥?"
"그사람? 그사람이 누군데요??"
얼굴을 붉히며 나온 대답에 백현이 잠시 멍하니 민석을 바라보았다.
민석이 눈을 피하자 이번엔 옆에 있던 찬열이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정신차린 백현이 찬열의 질문공세에 쩔쩔매고 있는 민석을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부여잡으며 연습실이 떠나가라 웃는 백현에 민석과 찬열이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돈거냐?"
"우..웃지마!"
"푸..풉...푸하하하하하하!!! 히끅, 아이고 배야. 킥킥"
백현의 폭소에 민석의 얼굴은 곧이라도 터질듯이 빨게졌다.
그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웃음을 그치긴했지만 여전히 입술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김민석, 장난해? 너가 사람얼굴을 보느라 음악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야, 이번껀 좀, 아니 많이 웃겼다. 그러니까 이제 사실을 말해봐. 킥킥"
"..."
"..."
"..."
백현은 민석의 대답이 장난이라고 여겼다. 대학 입학 후 4년째 봐온 사이다.
백현이 알고있는 민석은 음악을 대할때면 한없이 진지해지는 사람이었다.
음악과 관련된 어떠한 일을 할때면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고
그것이 방해받는 순간 평소 순딩이는 어디가고 마귀가 강림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곤 했다.
그런 민석이 한 사람의 얼굴때문에 연주를 망쳤다니...
백현으로써는 민석이 처음으로 던진 과감한 농담이라고만 생각되었다.
하지만 민석은 백현이 원하는 답을 요구할수록 점점 울쌍이 되어갔다.
그에 백현도 서서히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고 표정이 진지해졌다.
"야, 너 왜그래? 민석이 형이 어디 음악으로 장난친적있냐?"
"..."
"..."
찬열이 백현이 나무라기 무섭게 연습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백현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안다. 알다마다. 누구보다 잘 아는 사실이었다.
누구보다 잘 알기때문에 차라리 저말이 장난이라고 더 믿겨졌던 것이다.
민석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다.
새삼 피아노 선생이라는 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 그렇게 예뻤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묻자 민석이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람을 생각하는지 눈이 약간 풀리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된 민석의 모습에 백현이 헛바람을 내쉬었다.
이리도 변할까 싶다.
음악을 할때면 신이나서 적극적이 되지만 사람을 대할때는 끝도없이 소심해지거나 무심했던 그다.
나도 일년을 공들여 이렇게 스스럼없이 지내게 됐건만 누구기에 일주일도 안되는 새에 어찌 이리도 그의 마음에 들어버린 것인지...
그 능력, 아니 그 얼굴에 내심 감탄을 했다.
"형, 형, 형. 그사람이 그렇게 예뻐요?? 와~ 누군지 궁금하네. 뭐하는 사람인데요?? 어디서 만났어요??"
"카페주인이야. 그 카페 갔다가 만났구."
"우와~ 능력있네. 아까 피아노 선생이라던데. 그건 무슨 소리에요??"
"아, 그건 그사람 피아노 실력에 반해서 내가 졸랐지. 한달만 피아노 가르쳐달라고."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물어오는 찬열의 모습이 귀여워 민석은 하하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러면서 백현을 슬쩍 보면서 눈치를 보고있었다. 백현은 팔짱을 낀채 무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한동안 찬열을 상대해주던 민석은 백현이 무언가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에게로 눈을 돌렸다.
백현은 그 눈을 마주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왠지 장난스런 그의 웃음에 민석은 살짝 불안해졌다.
"자자, 조용히 해봐."
"?"
"?"
백현이 박수를 치며 집중을 시켰다.
찬열과 민석이 의문을 가지고 그를 주목하자 백현은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두어번 한 뒤 두사람이 놀랄만한 제안을 꺼내들었다.
"우리 멤버 새로 들이자. 파트는 키보드."
* 구독료 정하기가 어렵네요.
다음부터는 그냥 무료로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