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고백 - 2am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外
IF - 2
만약에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표현했다면
아니 조금만 더 빨리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지금쯤 우리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 형, 오늘 알죠? "
동아리 후배인 다니엘이 씩 웃으며 가방을 싸고 있던 내게 물었다. 야, 그 전에 양심이 있으면... 내가 그런 다니엘을 보고 수업할 땐 필통이랑 노트 정도는 챙겨라. 라고 말을 하려다 기침을 하고 말았다.
" ...수업할 땐 필통이랑 노트 정도는 챙겨서 와. 교수님 보기 안 부끄럽냐. "
기침으로 끊겼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잇자 다니엘이 금세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가방을 다 챙겨서 강의실 앞문으로 향하는 나를 졸졸 따라왔다. 에이, 형. 어차피 대형강의라 아무도 몰라요. 라는 천진난만한 말을 던지며.
" 군대 갔다와서 학점 복구할 생각말고 미리미리 잘 해놔. "
" 어차피 저는 이번 학기가 마지막인데요. "
" 말대꾸하기는... "
충고를 해줘도. 그 말을 하려다 또 기침에 말이 막히고 말았다. 다니엘을 피해 옆쪽으로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자 좀 전처럼 다니엘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핀다. 뭐, 잘 생긴 얼굴 첨보냐.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며 코를 훌쩍이자 다니엘이 눈을 꿈뻑이다 답했다.
" 형, 감기 걸렸어요? "
" ...그걸 이제 알았냐. 수업 내내 기침하고 있었는데.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기침이 나왔다. 아, 목 아파 죽겠네.
" 그냥 병원 가서 푹 쉬고 공결하는게 낫지 않아요? "
" 얌마. 이 교양 수업에 아는 사람 너밖에 없는데 노트도 필기도구도 안 들고 오는 그런 놈을 뭘 믿고 빠져. "
" ...아, 그런가. "
다니엘이 앞니가 보이게 웃고선 머쓱하다는 듯 뒷머리를 쓸었다. 무튼 오늘 6시 워너포차. 알겠으니까 걱정말고. 코를 훌쩍이며 말을 하자 옆에서 졸졸 따라오던 다니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형 많이 아픈거 같은데 그냥 쉬시죠. 형들도 이해해주실텐데. "
" ...됐어. 간만에 진탕 마시고 싶었어, 나도. "
수요일. 하필이면 오늘은 수요일이고, 하필이면 오늘은 김여주가 소개팅을 하는 날이다. 주말에 걸린 감기가 아직까지 붙어 있다는 건 뒷전인지 오래였다. 내 모든 신경이 거기에만 쏠려있었다. 그 빌어먹을 소개팅에만.
" 뭐 안 좋은 일 있어요? "
" 안 좋은 일은... "
" 감기까지 걸렸는데 술 마시면 더 아픈거 아니에요? 차라리 집에 가서 약을 먹고 자거나 병원을 가는게... "
" 너무 걱정하지마라. 눈물나려고 하니까. "
그 말을 하며 다니엘의 어깨를 툭툭 치곤 나는 경영관에 간다. 전공. 하며 교양관을 빠져나왔다. 다니엘이 어어, 형. 그럼 좀따가 봐요! 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고, 난 다니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기침을 뱉어냈다. 자연스레 떨어질 줄 알았던 감기는 꽤나 질겼다. 다니엘의 말대로 병원에 가야하나 싶었지만, 딱히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런 얼얼한 기분으로 모든 생각을 잊고 싶었다. 내 신경이 온통 쏠려있는 김여주에 대한 생각을.
" 괜찮아? "
어디서 나타난건지 경영관을 가는 도중에 내 옆에 슬그머니 서서 내 안부를 묻는 황민현이다. 그런 황민현에게 괜찮다는 듯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자 황민현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 병원을 가. 성우야. "
" ...뭐 그깟 감기 때문에 병원을 가냐. "
" 그깟 감기가 큰 병 만든다? "
황민현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큰 병 걸렸으면 좋겠냐, 내가? 그렇게 말하고 픽 웃자 황민현이 농담이지. 하며 미소를 지었다.
" 그래도 오늘 수업 마치고 바로 집 가서 좀 쉬어. "
" 오늘 술약있어. 안돼. "
" 감기 걸렸는데 술을 마신다고? "
" 소주에 고추 넣고, 마늘 넣고 마시면 게임 끝. 다 나아. 민간요법 알지? "
" ...몸을 아주 혹사시키는구나. "
황민현이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괜찮아. 안 죽어. 내가 담담한 얼굴로 말하자 황민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 주위 사람들이 걱정 많이 하겠다. "
"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
사물함에서 두꺼운 영업관리론 책을 꺼내던 황민현이 무심하게 툭 뱉었다. 무슨 소리냐고 말하며 기침을 뱉자 황민현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 너 아프면 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 많이 할텐데 그 중에서도 누가 되게 걱정 많이 하겠다고. "
" ...뭐야, 뜬금없이. 고백하는거야? 야, 넌 내 취향 아니다. 민현아, 알지? "
" 웃겨. 나도 아니거든? "
황민현이 다시 장난스레 웃고는 먼저 강의실로 향했다. 뭔가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인데? 그.. 학식 먹을 때처럼. 그 생각이 들자 대체 황민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 내 걱정을 한다는걸 돌려 말하는건가?
" 형, 진짜 괜찮아요? "
옆자리에 있던 다니엘이 소맥을 말며 내게 물었다. 말던거나 계속 말아. 심드렁하게 말하며 한 팔로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하자 다니엘이 혀를 끌끌 찼다.
" 우리 동아리 그렇게 정없지는 않아서 형 안 오는 것도 이해해줄텐데. "
" 내가 집에 갔으면 좋겠냐? "
" 에이~ 아니죠~ 나는 우리 옹형이랑 마시는게 제일 재밌는데. "
다니엘이 또 앞니가 보이게 킥킥 웃으며 내게 잔을 건넸다. 형이 오늘 마신다고 한거에요? 나는 아프다고 봐주는거, 그런거 없어요. 알죠? 다니엘이 그렇게 말하곤 내 잔에 자신의 잔을 짠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다니엘이 먼저 술을 마시고 나도 술잔을 입에 댔다. 감기에 걸려서 그런건지 이상하게 쓴 맛이 평소보다 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니엘 뿐만이 아니라 동아리 사람들과도 얼마나 잔을 부딪혔을까, 어느 순간부터 주위의 웅성대는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 아... 머리야... "
역시 몸이 안 좋은 탓인건지 평소보다 빨리 취하는 것 같았다. 머리도 깨질듯이 아픈데 이 와중에 기침은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목이 쩍쩍 갈라지는 것 같았다. 다니엘 뿐만 아니라 몇몇 주위의 동아리 사람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보는게 느껴졌다.
" 괜찮아요? 오빠? "
" ...어. 괜찮아. "
" 형 표정이 안 좋아보이시는데요. "
" 바람 쐬고 오면 돼, 괜찮아. "
" 형, 바람 쐬러 같이 나갈까요? "
" 됐어. 다니엘 너는 술이나 마셔라. 혼자 갔다올게. "
괜찮냐는 동아리 사람들을 뒤로하고 혼자 술집 밖으로 나오자 습한 바람이 훅 느껴졌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메슥거리는 속 때문일까, 울려오는 머리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습한 바람에도 나오는 기침 때문일까. 술집 옆 전봇대에 기대 머리를 짚었다. 열이 오르는게 느껴졌다. 픽, 작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미련한 새끼. 황민현의 말이 떠올랐다. 몸을 아주 혹사시키는구나. 라는 그 말.
" ...그러게... 존나게 혹사시키네. "
황민현의 말에 이제서야 대답을 하듯 혼잣말을 하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홀드 버튼을 누르자 7시 26분이라는 시간이 보이고 아직 읽지 못한 김여주의 카톡 한 줄이 보였다.
[ 이제 간다!!! ]
김여주는 이제 저녁 다 먹고 커피라도 마시고 있으려나.
" ...그걸 니가 왜 궁금해하냐... 병신. "
자조적인 말을 뱉고 다시 기침을 뱉어냈다. 메슥거리는 와중에도, 머리가 울리는 와중에도... 황민현이 말한대로 몸을 혹사시키는 이 와중에도 나는 결국 너를 떠올렸다.
" ...병신새끼... "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네가 소개팅을 한 그 사람과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는 그럼에도 두려웠다. 네가 누군가를 만나 예쁜 미소를 짓고 얼굴을 붉히며 그 사람에 대한 이성적 호감을 키운다는게. 그 상대가 내가 될 수 없음이 나는 참으로 아팠다. 내가 너를 소중한 친구로 보았던 것처럼 너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울컥하고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너를 친구가 아닌 여자 김여주로 보고 있는 나를 너는 친구 옹성우라는 이름으로 보고 있겠지. 나는 네 옆을 차지할 그 남자에게 짓는 미소도, 표정도 볼 수가 없겠지.
그래서 고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피어올랐음에도 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너를 잃을까봐. 너와 나의 지난 시간이 빛이 바래지는 것처럼 흐려져버릴까봐.
" 병신 옹성우... "
여전히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몸이 좋지 않은 이 상태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미웠다. 이 와중에도 네 얼굴이 떠오르는 내가 미치도록 싫었다.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IF
" 난 갈게. 어차피 더 마셔봐야 짐밖에 더 되겠냐. "
밖에서 들어온 후 몇 잔을 더 마시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더 마신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김여주에 대한 생각을 잊겠다고 그렇게 마셔댔는데도 생각나는걸 보면 말이지. 괜히 더 마셨다가 우리 집을 아는 다니엘만 고생할 것 같았다.
" 괜찮아요, 형? 혼자 갈 수 있어요? "
" 택시 타고 갈거야. 걱정마. 다들 미안. 먼저 갈게. "
" 에이. 몸도 안 좋은데 와 줘서 우리가 더 고맙지, 성우야. 가서 푹 쉬고. "
" 응. 고맙다. "
" 오빠~ 조심해서 가시구 카톡 하세요! "
" 아아, 됐다. 형! 나한테 해요. 알겠죠? "
다니엘이 맞은 편에 앉은 동아리 여후배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이며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오냐. 고맙다. 다니엘의 말에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동아리 술자리가 있으면 항상 끝까지 가던 나와 다니엘이라 그런지, 다니엘은 술자리에서 늘 나를 먼저 챙겼다. 손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다시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이런 날씨에 감기에 걸리는 나도 참. 헛웃음을 짓고 술집 골목을 빠져나왔다. 비틀거리며 걷진 않았지만 세상이 핑 도는 기분이었다.
" ...ㅇㅇ동으로 가주세요. "
택시를 타고 편하게 몸을 기댔다.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머니를 뒤적여 다시 휴대폰을 켰다. 8시가 안 되는 시간이었다. 지금쯤 너는 뭘하고 있을까. [이제 간다!!] 라는 한줄의 카톡을 여전히 읽지 않은 상태로 다시 홀드 버튼을 눌렀다. 한참을 창밖만 보고 있는데 우연찮게 택시 기사 아저씨가 튼 라디오의 DJ말이 내 귀에 꽂혔다.
' 그렇죠. 친구라는 그 관계 때문에 고백을 못하는 경우도 참 많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죠. 그 친구도 그 친구라는 이름하에 마음을 숨기고 있었을지도.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익명의 사연 신청자분께 노래 보내드릴게요. 2am의 친구의 고백. '
그럴까? 그런 기적같은 확률이 얼마나 될까? 노래가 나오고 눈을 감았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말하지 못한 고백. 심지어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것도 제대로 자각하고 있지 못한 멍청한 놈이었다. 기회. 나에게 그런 기회가 있었을까? 어쩌면 네가 남자친구가 없었던 그 긴 시간, 6년이라는 시간이 내게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했다. 고백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우리의 관계가 틀어질까 무서워 결국 말하지 못한 지난 짧은 고민의 시간을 후회했다.
' 친구로 지내야한단 이유로 목까지 차올랐던 그 고백을 참아야했어 '
노래 가사가 내 이야기 같아서 나는 눈을 더 꼭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작은 공간에 나와 택시 아저씨 밖에 없는데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괜히 조마조마해져서.
" 아픈 애가 무슨 술이야, 술은! "
" 별로 안 마셨어. "
" 으이구... 진짜. 뭘 별로 안 마셔! 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나는구만! "
집에 오자마자 들리는 엄마의 잔소리다.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엄마가 답답하다는 듯 내 뒤를 따라오며 계속해서 내게 말했다. 병원을 가야지, 무슨 술이냐며.
" 멀쩡하다니까. "
" 멀쩡하긴! 너, 밥은 제대로 먹었어? "
" ...술 마시는데 무슨 밥이야. 아아아, 엄마. 나 아파! "
무슨 밥이야, 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이어졌다. 어이구 아주 나이는 스물셋이나 먹은게 하는 짓은 세살이랑 다름이 없어요! 엄마가 답답한 듯 내 등을 한 번 더 때리고는 내 방을 빠져나갔다. 안 그래도 슬픈데 엄마까지 이러기 있냐고.
" ...이거 먹고 자. "
" ...뭔데, 이건? "
" 뭐긴 뭐야. 죽이지. "
" 엄마가 끓였어? "
옷을 갈아입는데 엄마가 김이 피어오르는 죽을 가지고 들어왔다. 웬 죽이냐고 묻고 기침을 하자 엄마가 으이구, 하며 다시 내 등짝을 때리더니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 니가 뭐가 이쁘다고 내가 죽을 끓여? 여주가 주고 갔다. 너 먹으라고. "
" ...뭐? "
옷을 갈아입다 말고 멈칫하자 엄마가 내 책상에 죽을 놓고는 먹고 자! 하며 방을 나가버렸다. 죽을... 누가 가지고 왔다고? 조금 전 엄마의 말이 웅웅 울렸다. 여주가 주고 갔다. 김여주가, 나를 위해서.
" 엄마! 김여주 언제 왔다 갔어? "
대충 옷을 입고 방문을 열며 엄마에게 묻자 엄마가 깜짝 놀라 화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 언제 왔다 갔긴! 저녁때 왔다 갔지! "
" 아, 그니까! 저녁 언제? "
엄마는 뭘 그런걸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봤지만 난 알아야했다. 8시 15분이 막 되고 있는 이 무렵에, 대체 김여주는 언제 우리 집에...
" 7시 전에! "
" ... "
분명히 김여주는 내게 6시에 소개팅을 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말에 들고 있던 폰의 카톡을 확인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김여주는 내게 이제 간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러면 이제 간다는 김여주의 말은 소개팅이 아니라...
" 엄마,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
" 이 밤에 어딜? 또 술 마시러 가? "
" 아니! "
" 성우야, 야! 옹성ㅇ... "
엄마가 날 잡기 전에 대충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조금 전과 달리 이상하게 들뜬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처럼. 이제야 막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기침을 뱉으며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아파트 정문에 있는 택시를 잡아타고 다급한 목소리로 김여주의 동네 이름을 불렀다. 거기로 가주세요. 빨리요. 기사 아저씨께 말을 하고나서 다시 휴대폰을 켰다. 김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신호가 얼마 가지 않고 김여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 뭐야, 갑자기? 죽 받아서 전화한거? ]
" 너... 너 오늘 소개팅 안했어? "
[ 응? ...아... 응. 미뤄졌어. 그 분이 일이 있으시대서. ]
" ...너 지금 집이지? "
[ 응. 집이지. 왜? ]
" ...조금만 기다려. 나 지금 너네 집으로 간다. "
[ 우리집? 우리집은 왜? ]
" 할 말 있어. "
[ ...무슨 말? 그냥 전화로 해. ]
" 안돼. 나 택시 탔어. 금방 가. 도착하면 카톡할게. "
[ 야야, 옹성... ]
너의 부름을 무시한 채 통화를 종료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할 말 있다는 그 말. 네가 소개팅이 미뤄졌다는 말을 했을 때, 그 순간 롤러코스터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듯 내 심장도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회가 아닐까, 조금 전 라디오에서 말했던 그 기회.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집을 미친듯이 빠져나와서 너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게 아닐까.
" ...아저씨, 조금만 더 빨리 가주세요. "
너에게 해야하는 일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고백이었다. 우리의 관계를 뒤엎을 수 있는 나의 고백. 남보다도 못한 사이든, 연인관계든 완전한 터닝 포인트가 되어버릴 고백.
" 허허, 뭐 급한 일이라도 있나보네. "
하지만 나는 하지 못했다. 너를 잃는게 무서워서. 소중한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러다가도 참 모순되게, 이기적이게 네 옆에 누군가 서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래.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다는 합리화를 하며 너에게 고백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잊고 있었다.
" ...빨리 해줄 말이 있어서요. "
내가 겁쟁이라는 사실을. 너를 잃고 싶지 않다면서 너를 일부러 애써 피해왔고, 너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며 내 몸을 혹사시켰다. 나를 갉아먹고, 나를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대해주던 너에게 상처 아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아픈 나를 이렇게나 챙기는 너를, 내가... 미안했다. 그리고 보고싶었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모든건 너에게 맡기고 싶었다. 더이상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늘 생각해주는 너를 잃고싶지도 않았지만, 피하고 싶지도 상처주고 싶지도 않았다.
" 지름길로 가야겠네. "
그리고 아주 조금은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다. 네가 나와 비슷한 마음이길.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IF
" ...무슨 일인데 이 밤에 택시까지 타고 여길 와, 그것도 아픈 애가. "
놀이터 정자에 나란히 앉아 있던 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 표정에 가슴이 뛰는건 술기운 때문이 아니란것 쯤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죽은 먹고 온거야? "
" ... "
" 너...근데 술 마셨어? 술냄새 나는데... 아픈 애가 술 마신거야? "
화가난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너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멋있는 말로 고백을 해야겠다고 늘 생각은 했는데 막상 때가 오니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다.
" 야, 옹성우. 불러놓고 왜... "
" 김여주, 있잖아. "
있잖아, 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는데 기침이 새어나왔다. 정자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에 너의 모습이 잘 보였다. 내가 기침을 하자 인상을 찌푸리는 너의 모습이. 내가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네가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네 손이 느껴졌다.
" 열 있네. 열 있는데 술을 마셔? "
" ...아니... 그게... "
" 잘 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 "
네가 혀를 끌끌 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전화나 카톡으로 할 것이지 아픈 애가 왜 이까지 와서... 네가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뱉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네 모습에 또 속절없이 가슴이 두근거리는게 미칠 것 같았다.
" 죽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얘기 해주러 온거야? "
" ... "
당장이라도 너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참았을까. 어떻게.
" 야, 옹성우. "
" ...좋아해. "
화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너에게 나도 모르게 뱉어낸 말이었다. 너를 보다가 주체할 수 없는 내 마음에서 그냥 튀어나간 말이었다.
" ... "
" 좋아해, 김여주. "
나의 말에 너는 여전히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의 표정에서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뱉어낸 말을 주워담을 수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 됐다. 밤에도 울어대는 매미 소리만 우리 사이의 정적을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 ... "
" ...이 말 하러 온거야. 좋아한다고. "
기침을 뱉고 한 말이었다. 코맹맹이 목소리로 한 말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네 시선이 나를 따라 움직였다. 여전히 미동도 없는 너의 생각을 나는 읽어낼 수가 없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기침을 뱉었다. 이번엔 헛기침이었다. 무슨 말을 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뱉은 기침.
" 술 마셔서 하는 말 아니고, 아파서 정신이 어떻게 돼서 하는 말 아니야. 진심이야. "
" ... "
혹시라도 장난처럼 여겨질까봐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네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이 아까보다 더 반짝였다.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어떤 반응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고백을 들어서 놀란건지, 아니면 이제 우리 관계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흘린 눈물인지. 네가 코를 훌쩍이고 고개를 돌렸다.
" ...여주야. "
너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는데 그 전에 너는 네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네가 물기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와중에도 네가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내가 미친놈 같았다.
" ...나쁜놈... "
네가 그렇게 말하고선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가질 않아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와중에도 콧물이 나오고 기침이 나오는 내 몸상태를 원망했다. 그냥 병원갈걸.
" 이 나쁜 새끼야... "
" ...아, 김여주... 그러니까... "
" 왜... 왜 이제 말해... 이 등신아. "
네가 소리를 내며 울었다. 흐느끼는 너를 어떻게 할 지 모르다 네 옆에 나도 털썩 앉아 등을 토닥였다. 들썩이는 너를 보고 있자니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전남친이라는 미친새끼가 너를 울렸을 때.
" ...옹성우 나쁜 새끼야... 왜... "
" ...미안해. 미안해, 여주야. "
자꾸만 날 나쁘다고 하는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네 반응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왜 이제서야 말하냐는 너의 말을 곱씹을 틈도 없었다. 네가 우는데 내가 생각을 할 수가 있겠냐고.
" 나도 너 좋아하는데!...이씨... "
네가 고개를 들고 눈물 범벅이 된 채로 나를 보고서 외쳤다.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잠시만. 너도... 날 좋아한다고? 다시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떨리는 것 같았다. 네가 계속해서 울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덩달아 일어서 여전히 너의 등을 토닥이다가 예전처럼, 6년전처럼 너를 내 품에 안았다. 조심스럽게, 그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 ...옹성우 나쁜놈... 나쁜새끼... "
몸에선 술냄새가 났지만 이미 네가 운 후부터 모든 술기운이 날아간 것 같았다. 너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고, 나는 그런 너를 안은 채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등을 쓸어내려줄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울어서 정신이 없는 이 와중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너 좋아하는데. 그 말이 자꾸 맴돌아서. 그러다 문득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에도 늦었구나. 늘 늦었던 옹성우는 이번에도... 늦었구나. 조금만 더 빨리 말할걸. 조금만 더 빨리 표현할걸 그랬다. 늦지 않게, 너와 비슷한 속도로 발 맞춰서... 그렇게 고백할걸 그랬다.
조금 긴 사담... 스킵하셔도 돼요.. 다만 오늘 ★암호닉신청★ 받아요 |
빨리 왔습니다 여러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는 늦지 않겠어요...ㅎ 다음편에서 아마도 성우의 이야기는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네 그 말은 곧... 우리 짝용필이 다음화면 진짜로 리얼로 안녕이라는 소리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 아직 짝용필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여러분...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정말로 여러분의 댓글을 보면서 힘을 낸 적이 많아요... 저까지 생각하게 되는 댓글도 있었고, 정말로 제 글을 많이 좋아해주시는게 느껴져서 엄청나게 감동을 받은 댓글들도 있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7할은 여러분 덕이에요 ㅠㅠㅠㅠㅠ 단순히 워너원이 좋아서 그리고 가슴 절절한 짝사랑물을 써보고 싶어서 쓴 글이었는데 이렇게나 좋아해주셔서.. 정말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 ㅋㅋㅋ 그런 기분이에요! 마지막화에서 더 많은 얘기들을... 풀게요... 흑흑...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요... 암호닉 신청 못하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제가 아무래도 연재텀이 중간에 한번 엄청 긴 적이 있어서 정주행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ㅠㅠㅠㅠ 그치만 이제 다음화가 마지막이라 암호닉은... 받기가... 좀 그래요!!!! 라고 하려 했으나!!!!!! 암호닉을 받으려 합니다!!!!! 다음화에서만... 제가 인사를 드릴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암호닉을 원하시는 분들은 [ ] 요 안에 넣어서 신청해주세요! ㅎㅎㅎ 차기작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요... 제가 사실 지금 짝용필 연재 초반부터 생각하던 구상이 하나 있어요 음... 주인공은 정했고 대충 구상도 짜놨는데... 짝용필을 연재 중이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아서 어떻게 될진 잘 모르겠어요 ㅋㅋㅋ 짝용필 끝나면 두어편의 짧은 단편은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ㅋㅋㅋㅋ 힌트를 드리자면... 제 모든 글에서 한번도 남주가 아니었던 멤버입니다 사실 이것도 확답을 드리진 못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 궁금해 하실 분들이 계실까 싶어 살포시 말씀 드립니다 키키 쓰다보니 사담이 매우매우매우 길어졌네요... 스킵하셔도 돼요 ㅋㅋㅋㅋ ㅠㅠㅠㅠㅠ 하지만 이제 글 내용을 말할거라는 점!! 뚜둥!!!! 성우의 고백은 민현이 때와 사뭇 다르죠? ㅋㅋㅋㅋㅋ 좋아해 쓰리 콤보 !!!! 민현이와 성우의 차별화 된 점이 아닐까요 ㅋㅋㅋㅋㅋ 둘의 연애도 궁금해하실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과연~~ 어떻게 연애를 할지 ㅋㅋㅋㅋ 다음화에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여러분 진짜진짜진짜 늘 댓글 하나하나 꼭꼭 다 읽고 있어요! 항상 답댓 달지 못하지만 정말로 감사합니다 ㅠ.ㅠ 오래오래 보아요... 하뚜 아 그리구! 궁금한거 있으시면 다 질문해주세요~~~ 다음화에서 모두 답하겠습니다 (차기작은 어떤 장르 생각하고 계신가요, 콘서트에서 본 워너원은 어땠나요 등 아무 질문 다 오케오케 입니다!! 마지막화니까 궁금한거 다 물어보세용) 암호닉 호두 / 옹옹 / 요뎡 / 옵티머스 / 민트초코 / 콜국 / 푸름 / 빈럽 / 쩨아리 / 헬로키티카 / 꾸쮸뿌쮸 / 여름 / 루쇼 / 다녜리 / 뀨뀨 / 류제홍 / 포뇨 / 옹히 / 애플파이 / 여름동화 / 1111 / 밍밍 ♥ / 뚜기 / 두부 / 흰둥이 / 배배 / 갸똥이 / 윤윤이 / 충성황제 / 쥬쥬 / 옹기종기 / 즈쿠 / 0622 / 햄아 / 1232 / 김짼 / 빵 / 핑핑핑핑 / 자몽솜사탕 / 1217 / 강낭콩 / 진짜대박리얼옹 / 옹옹옹 / 오늘도행복해 / 지오 / 쟈몽 / 황갈량 / 짝지 / 봄꽃 / @불가사리 / 별두개 / 깡다 / 옹웅 / 별빛하늘 / 성우미녀 / 포뇨부기 / 봄파카 / 옹왕 / 민꾸꾸 / 후렌치후라이 / 민꽃 / 000 / 새벽달빛 / 행자 / 0215 / 녤꽃 / 하나둘셋 / 보호 / 러버 / 설빙 / 마이쮸 / 포로리 / 나침반 / 황제 / 페이버 암호닉 분들!!!!! 쏴랑해요!! 마지막까지 같이 달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