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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환이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성격상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저 경험 없는 초짜라면 단칼에 쳐버렸던 이재환이 자신과 같은 비중의 주연역에
이홍빈이라는 신인을 자신이 직접 앉혔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실 그랬다. 오디션을 본 약 5000명의 연기자 중 홍빈의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주연으로 발탁하기는 좀 부족했고,
이미 조연자리는 다 차있는 상태였다. 또한 홍빈이 소문을 듣고 오디션을 봤는지는 모르겠으나 재환이 신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라도 홍빈은 이미 탈락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두명을 놓고 재환이 직접 선정하겠다고 연락이 왔고, 둘의 연기를 모니터링하던 재환은 두 명다 탈락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재환은 한장의 구겨진 종이를 꺼내들었다.
이 사람. 얘 오디션 보여줘봐요.
그 종이는 바로 홍빈의 자기소개서였다. 경험이 없는만큼 자기소개서란은 거의 공백이었고, 기껏해야 어디어디 대회 우승. 이정도였다.
그렇기에 재환의 성격을 아는 스태프가 미리 버린거였는데, 어디서 어떻게 주어온건지.
게다가 생전 신인 거들떠도 안보던 재환이 홍빈의 어디가 마음이 들어서 제 고집을 바꾼건지. 스태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홍빈의 오디션 영상을 틀었다.
우..우리 어떻게 되는거야? 어? 성현아 말 좀 해봐.. 우리 정학당해? 진짜? 정말로?!
벌벌 떨면서 울부짖는 홍빈의 모습은 애절해보이다 못해 안쓰러웠다. 재환은 씨익 미소지었다.
훈이 역은 얘로 하죠.
모두의 귀를 의심하게 만든 한마디를 툭 던지고 재환은 홍빈의 오디션 종이를 들고 그대로 오디션장을 나갔다.
그리고 며칠 뒤 홍빈에게로 재환의 소속사에서 영입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첫 미팅 날 홍빈은 한 시간이나 일찍 와서 대본을 어찌 읽을지 연구했고, 같은 건물 내에 일이 있던 재환은 지나치다 홍빈을 발견했다.
"시간관념이 없군 그래."
"ㅇ..어.. 안녕하십, 아니 안녕해..아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받겠다는 게 아니라 난 지금 네 시간관념에 대해 얘기하는 중인데."
"아..아. 죄송합니다."
"왜 이리 일찍 와있는 거야?"
"저..사실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 모르고 집에서 일찍 나와서요."
"..회사에서 매니저 아직 안왔나?"
"예..아직."
대체 형은 왜 이런건 빠릿빠릿하지 못한거야.
작게 혀를 찬 재환은 홍빈을 아래위로 훑더니 그 앞 자리에 털썩 앉았다.
"해봐."
"네?"
"두번 말하게 하지 말고, 대본리딩 해보라고. 봐줄테니까."
시간관념없다며 혼낼 때는 언제고 앉아서 봐주겠단다.
재환을 일년 이상 보아온 지인들이 보면 뒷목잡고 쓰러질 상황이었지만, 재환은 자신 앞에서 마치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는 홍빈이 흥미로웠다.
"야, 최성현. 진짜 이거 니가 잡은 거 맞아? 정말? 미쳤어 너?"
그리고 마치 육식동물 앞 초식동물처럼 대 선배라며 벌벌 떠는 와중에도 제법 감정을 잡고 제 리딩을 하는 홍빈과 그것을 들어주고 있는 저.
그 상황또한 흥미로웠다, 재환에게는.
후에 재환을 찾다 지쳐 리딩시간 십분전에 재환과 홍빈이 있던 방에 쉬러 들어온 재환의 매니저는
자신의 전화를 대놓고 씹으면서까지 홍빈의 연기를 봐주고 있는 재환과 홍빈을 발견했다.
'- 재환씨가 이번 영화의 두 남주인공 중 한분인 홍빈씨를 직접 캐스팅하셨다던데, 무슨 이유라도?
제가 시나리오를 읽어보면서 가장 인상깊었고, 이 부분이 영화의 가장 절정일 것이다라고 생각한 부분인 울부짖는 장면을 연기해달라고 했는데,
그걸 홍빈씨가 가장 잘하더라고요 벌벌 떨면서. 마치 맹수 앞에 놓인 사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