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흩날리는 4월의 캠퍼스. 나는 썸을 타고 있는 중이다. 쌈 말고. 싸움 말고 썸. 뭔가 미묘한 감정이 오가는 중이다.
내가 지금 누구랑 썸을 타고 있냐면..
“징어야”
동아리 선배인 김종대. 실용음악과 12학번. 나이는 나보다 한 살이 많고. 싹싹하고 성격도 좋아서 모두가 좋아하는 나의 썸남. 내가 좋아하는 남자. 김종대. 나를 부르는 선배의 목소리에 동기들과 함께 기숙사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예술대학 건물로 옮겨가다가 나를 발견한건지 손을 흔든다. 밥은? 먹었어? 하며 밥 먹는 시늉을 해보이는 모습에 안 먹었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사실 먹은지 오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지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항상 곰 같다는 말만 들어온 나인데 선배 앞에서만 서면 여우가 되는 기분이다. 저멀리서 이미 건물에 도착한 선배의 친구들이 부르자 알았어~ 하고 대답을 하고는 카톡할게 징어야! 라는 말과 빙그레 웃으며 예술대학 건물쪽으로 달려가는 선배다. 뛰어가는 모습까지도 사랑스럽고 멋있다..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을 보다가 빨리 오라는 동기들의 재촉에 정신을 차리고 어어! 하며 동기들과 함께 기숙사로 향했다. 아까전보다 빠른 속도로 뛰는 내 마음처럼 곧 진동이 울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않은채.
빨리 오면 좋겠다. 카톡도. 김종대도. 흐흐.
지잉-하고 진동이 울리기 무섭게 패턴을 해제하고 카톡을 확인했다. 헐. 카톡 프로필 사진마저도 귀여워. 끙끙. 한 번 앓고나서 바로 답장을 했다. 말투도 씹덕. 생긴 것도 씹덕. 어떻게 나보다 한 살이나 더 많으면서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어요.. 아차차 일단 프사 캡쳐. 찰칵.하고 캡쳐되었다는 팝업창이 뜨자마자 확인을 했다. 캡쳐도 잘 됐네. 쪽쪽쪽. 입술을 쭉 내밀고는 선배의 셀카에 대고 뽀뽀를 했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러는 내 모습이 살짝 미쳐보였는지 룸메이트인 수정이가 과제를 하다말고 드디어 미쳤어 오징어? 하고 물어왔다. 평소라면 스무살밖에 안 된 처녀한테 미쳤다가 뭐야! 라고 얘기했을테지만 지금 나는 미쳤으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미쳤어! 나는 미쳤다고! 김종대한테 완전 미쳐버렸어 하하하하하!
가디건과 가방. 어느것 하나 벗어두지않은 채 그대로 침대를 뒹굴거리며 크게 웃었다. 아싸! 김종대랑 점심 먹는다! 단 둘이 먹는다! 아. 잠시만. 화장 지워졌으려나? 다시 세수하고 할까? 침대에서 뒹굴던 몸을 벌떡 일으켜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조금 번진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옷이 마음에 안 들지? 이리저리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나를 제정신이 아니라며 혀를 차고 있는 수정이에게 물었다.
“나 화장 다 먹었어? 다시 할까? 옷이 너무 촌스럽나?”
“괜찮으니까 파우더만 바르고 나가. 정신없어”
귀찮다는듯이 손짓을 하던 수정이가 다시 몸을 돌려 끝마치지 못한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너가 그렇게 얘기해줘도 고마워. 사랑해 수정아. 세상은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 김종대랑 나랑 썸을 타게 해주다니.
*
공강이어서 시간도 떼울 겸 동방을 찾아갔다. 사실은 선배가 동방에 있다는 동아리에서 친해진 진리의 카톡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 날 점심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 기점으로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갔다. 동방 문을 활짝 열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이야기를 하고 있던 희수선배와 백현선배 찬열선배. 그리고 종대선배까지 전부 나를 쳐다보고 인사를 받아주셨다. 어 징어 왔어? 장난끼 많은 찬열이오빠가 내게로 다가와서 헤드락을 걸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오늘 쌩얼이냐? 렌즈 어디갔어. 눈 크기가 반으로 줄었어!”
“금일휴업입니다. 눈이 피로해서 렌즈는 오늘 하루 쉽니다 선배”
헤드락을 걸던 손을 풀고 렌즈 어디갔냐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찬열선배때문에 일부로 두 눈덩이를 가렸다. 안 돼 동태 눈알같은 내 눈을 보면 종대선배가 실망할거야. 절대 사수하겠다는 듯이 찬열선배 손에서 이리저리 얼굴을 도리질 치며 눈을 마주치지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찬열선배가 얼굴을 확 가까이 들이대며 내 눈을 쳐다보았다. 으익. 제발 그냥 넘어가줘요. 나도 내 눈 상태 너무 잘 아니까.. 혹시나 종대선배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봐 조마조마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열선배는 내 눈을 보고 푸하하.하고 웃기 시작했다. 얘 눈 좀 보라며 사마귀 마냥 안면붕괴웃음을 미친듯이 내지르며 동방을 구르는 찬열선배를 살짝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종대선배의 눈치를 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오늘 렌즈도 안 껴서 이렇게 못 생겼는데 김종대는 오늘도 멋있어. 오늘도 잘 생겼어.. 하. 매일매일이 리즈구나 정말. 찬열이와 나를 한 번 미묘한 시선으로 쳐다 본 종대선배가 백현선배와 끊겼던 이야기를 다시 나누기 시작했다.
“아 망했어.. 내 눈 진짜 많이 작아졌어?”
“어우 렌즈빨”
“오늘 사방준 중에서 사마귀만 있는 걸 다행인 줄 알아라.”
그렇게 얘기하는 태연이와 미영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방준 셋이서 모이면 아무래도 나는 크런키마냥 부서지고쓰러지고잊혀지고넘어지겠지.. 그때 점심이후로는 이틀만에 만나는 종대선배앞에서 그런 추한꼴을 보이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태연이와 미영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주제는 거의 먹을 것 위주였다. 카페 톰앤제리에 허니브레드가 그렇게 맛있다며? 다음에 먹으러가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고 두리번 거렸다. 그러자 동방 저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백현선배와 찬열선배. 희수선배와 함께 있는 종대선배가 눈에 띄었다. 언제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입꼬리를 끌어올려 아빠미소를 짓고있는 종대선배. 그런 선배의 모습에 동그랗게 눈을 뜨고 왜요? 하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그러자 선배가 고개를 두어 번 젓더니 입모양으로 이야기했다. 조금 긴 말에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는 제스쳐를 취하자 선배가 다시금 얘기했다.
‘예뻐서.’
예뻐서. 그 말을 이해하자마자 얼굴이 붉어지는게 느껴졌다. 오늘 렌즈도 안 끼고 쌩얼인데.. 그런 내 얼굴을 보더니 웃음을 참으려는 듯 손으로 코를 건들이던 선배가 이야기했다. 시끌시끌하게 떠들고 있는 두 무리들의 대화따위는 이미 들리지않은지 오래였다. 그저 이 동아리 방에 종대선배와 나만 있는 것 처럼.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입모양에 집중했다. 종대선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징어야.’
고개를 갸웃하고는 선배를 쳐다보았다. 눈부시게 웃고 있는 선배가 나에게 얘기했다.
‘좋아해.’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의 캠퍼스. 나는 썸을 타고 있다. 벚꽃보다도 찬란히 빛나는 나의 썸남. 김종대와 함께.
종대야 저번 편에서 쥬겨서 미안해.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겠닝? 우리 화해하쟝.
흐헣헣 이번 편은 제 실화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물론 픽션도 어느정도 가미되어있습니다. 대학교가면 전부 저런 선배가 있냐구요? 최효종군단과 유리상자 95%에 아주 가끔 아주아주 가끔 훈대딩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은 이미 임자가 있죠..(씁쓸)
암호닉은 백현홈마썰 10화에서 받고있습니다ㅎㅅㅎ! 그럼 저는 이제 푸른밤 들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