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 an incurable romantic
: 기약없는 로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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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의 출처
시간은 덧없이 흘렀다. 학원과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여름방학을 보낸 고3 아이들은 다시 개학한 학교에 맞춰, 무거운 책가방과 부담감의 무게까지 지니고 등하교를 했다. 남준은 여름방학 내내 학교보충 수업과 학원 수업 그리고 체력단련장까지 다니며, 누구보다 바쁘게 방학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임에도 빈자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수시를 위해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아이들부터 무단 표시를 각오하고도 실기 학원를 가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주는 복작복작했던 교실이 이름 모를 침묵으로 가득 차거나 빈자리가 늘어갈 때마다, 아랫입술을 씹었다. 무언가에 쫒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주가 제 입술을 혹사시킬 때면 어디서든 등장하는 남준은 자연스레 여주의 입술로 손을 뻗었다.
11 - 01
반 아이들은 다른 이들의 연애에 시간을 빼앗길 정도로 너그럽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연애에는 종종 눈길을 던졌다. 거의 평생을 같이 살아온 전교 회장과 탑스타 부부의 딸이 줄곧 친구라고 우기더니, 방학이 지나서는 스킨쉽에 거침이 없다. 설정이 과해도 너무 과했다. 심지어 두 사람 중에서도 주로 치대는 쪽은 방학 사이 몸이 단단하게 만들어져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사뭇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남준이었다. 커진 덩치 때문에 작아진 교복으로 애를 먹던 남준은 선생님들의 애정과 신뢰로 인해 튀지 않는 사복과 체육복 차림을 허락 받았다. 그래서 매일 같이 어두운 색의 후드티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그런데 그런 애가 작고 하얀 애 옆에서 자꾸 몸을 붙이고 저를 봐달라며 주변을 서성이니, 윤기가 흐르는 털을 지닌 도베르만이 작은 주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꼴이었다. 그 둘의 관계성은 도베르만과 주인에서 남준이 저를 놀래키기 위해 숨어 있던 여주를 습관처럼. 집에서처럼 눈치채고는 덥썩 품에 안고는 얼굴 곳곳에 뽀뽀를 하면서, 애인으로 정의되었다. 남준과 여주는 그날을 기점으로 습관이 무섭다는 말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였다.
11 - 02
남준은 에어컨 바로 아래 자리에서 몸을 으슬거리는 제 작은 애인 - 아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주인 - 에게 제 후드티를 벗어 덮어주고는 문제집을 챙겨 자습실로 향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교실에서의 야자보다는 독서실 형태의 자습실이 훨씬 집중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더 이상 야자를 하지 않아도 되는 때였지만, 여주는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게 눈치 보인다며 10시까지 학교에 남았다. 때문에 남준은 하교를 해서 체력단련장을 다녀온 다음에 9시가 넘은 시간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제 공부를 한 다음에 함께 집으로 향했다. 남들은 남준에게 지극한 정성이라며 내둘렀고, 그 정성을 받는 여주는 제가 남준을 몇 배로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늘 전전긍긍이었다. 그걸 눈치챈 남준은 매번 집으로 곧장 가는 길 대신 집 근처의 공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해서 지금이 너무 좋다, 네가 있어서 힘이 난다. 등의 말을 진심을 꾹꾹 담아 전해주었다. 여주는 그 말들에 대한 대답을 말 대신 길고 짧은 입맞춤으로 대신했다. 덕분에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근처 공원은 정다운 길고양이 커플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공원 어디에도 그들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 데가. 그들의 입맞춤의 장소가 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을 바람마저 적당히 눈치를 보며 불어야 할 만큼.
야자를 마치는 종이 치자 남준이 자습실에서 짐을 챙겨 일어섰다. 하지만 남준보다 빨랐던 여주는 종이 치기 전에 제 책방과 남준의 책가방을 챙겨, 자습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게 덮어주고 간 남준의 후드티를 벗어 손에 꽉 쥔 채로. 남준은 몇몇 친구들과 자습실을 벗어나려던 참에 앞문에서 빼꼼거리는 동갑내기 애인의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은 굳이 앞을 보지 않아도 알겠다며 뒷문을 선택해서 나갔다. 남준은 친구들을 바라보지도 않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높이 솟아 있는 독서실 책상에 손을 퍽, 소리나게 부딪혔다. 남준이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손을 감싸자, 뒷문으로 나오는 아이들 사이 속에서 남준을 찾던 여주가 앞문을 살폈다. 다쳤어? 남준은 제 앞으로 훌쩍 다가온 익숙한 향에 당장 껴안기를 멈추고, 아픈 척을 이어갔다. 사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제가 아픈 것마냥 표정을 굳히고 걱정하는 여자친구가 귀여웠기에.
"... 아파서 가방 못 들겠다."
"내가 들 수 있어! 나 줘! 짐 다 여기 가방에 넣어!"
가방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온갖 교과서와 문제집 그리고 아령까지 있는데. 남준은 뒷말을 속으로 삼키고는 익숙하게 제 가방과 여주의 가방을 양 어깨에 멨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 여주의 왼손을 잡았다. 여주는 남준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 하며 가방을 달라고 졸랐지만, 남준은 장난이었다며 속 없이 헤실헤실 웃었다. 죽을래? 얼라 손에 죽는 거면, 죽고. 재수없어, 김남준. 고3한테는 칭찬이지, 고마워.
11 - 03
오늘도 곧장 집으로 가는 대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한 두 사람은 고작 몇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쭉 함께였으면서도, 할 말이 많았다. 남준은 밤이 된 탓에 제법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제 후드티를 다시 여주에게 돌려주었다. 여주는 후드티를 입는 대신 등에 얹어 덮었고, 남준은 바람에 흩날리는 여주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주었다. 혹여나 제 손길에 다칠까. 하며. 여주는 가을 바람보다 조심스럽고 봄빛보다 따스한 손길을 가만히 느끼며 물었다. 너는 내가 한심하지 않아?
"네가 왜 한심해."
"나는 너처럼 꿈도 없고 열심히도 안 살잖아."
"말 예쁘게 안 해서 미워 죽겠다. 지금."
"그냥, 그렇다구. 나는. 너랑 막 비교되는 거 같아서."
"하나도 안 한심해.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 진짜지?"
응. 꿈 없으면 내가 너 꿈 한다고 했잖아. 내가 너 미래도 하고 꿈도 하고 다 할게. 남준은 제 대답을 끝으로 기껏 제가 정리해 준 여주의 머리칼을 헝클였다. 여주는 제 머리칼이 헝클어지는 것에도 마냥 웃으며, 남준의 품을 파고 들었다. 그럼 나는 너 부인을 꿈으로 해야지. 부인하고 나면 꿈 이루는 거야? 그렇지. 그럼 부인 졸업하자마자 할까, 꿈 빨리 이뤄줄게. 헐, 그건 아니야. 왜. 나도 좀 예쁠 나이 즐기고, 결혼 해야지.
"뭘 즐길건데?"
"뭐든?"
남준이 여주의 볼을 투박한 손으로 감싸고, 순식간에 입을 맞췄다. 쪽. 가벼운 소리가 어리게 울렸다. 다시 대답. 뭐든이라니ㄲ,
"다시."
이번에는 대답 전에 내려앉은 입술이었다. 입술보다 먼저 맞닿는 서로의 코가 한 번 그 다음은 입술이 한 번. 다시, 뭐든. 쪽. 다시, 뭐든. 쪽.
원하는 대답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랑스러운 열아홉과 원하는 답을 듣고 싶은 패기 넘치는 열아홉의 돌림노래였다. 다시, 뭐든.
11 - 04
"네가 먼저 보고 말해줘."
"그래도 네 결과인데 내가 먼저 보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너 때문에 생긴 꿈인데. 남준은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문장 대신 네 꿈이 나잖아. 네 꿈 첫 단추 괜찮나 좀 봐줘. 나 겁 먹었어. 라는 대답을 했다. 사실 결과에 꽤 자신이 있기도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여주만 제외하고 모두가 확신하고 있는 결과였다.
경찰대학교의 1차 합격자가 발표 되는 날, 학교는 김남준은? 혹은 남준이는? 이라는 물음으로 가득찼다. 남준이는 그때마다 몰라. 아직 확인 안 했어. 라고 답하다가, 여주에게 제 휴대폰을 건넸다. 얘들이 자꾸 물어봐서. 대신 확인해줘.
여주는 제 아랫입술을 무의식적으로 깨물며, 합격자 명단이라는 공지를 눌렀다. 남준은 제 앞자리에 앉아 긴장한 티를 역력하게 내는 여주를 바라보는 데 집중했다. 재수없는 말이지만 합격이 분명했다. 경찰대 내에서 진행되는 1차 시험을 컨디션 좋게 쳐냈기 때문이다. 저의 가장 기쁜 순간을 어떤 표정으로 맞이해줄까. 싶어서. 남준은 생각보다 문학적이고 섬세한 부류의 사람이어서 어떤 순간, 어떤 장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는 했다. 그래서 합격자 발표 확인도 여주에게 넘긴 것이고. 부모님보다 먼저 알려주고 싶었다. 너 때문에 생긴 꿈이 이렇게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고. 비록 당장은 말하지 못하지만.
"합격이래! 합격! 진짜로!"
여주의 방실한 볼이 한껏 솟아올랐다. 핸드폰 화면을 확대하며 보여주는 분홍빛 손가락이 바빴다. 하지만 남준은 여주가 확대해준 화면을 바라보기보다, 여주가 깨물었던 여주의 아랫입술을 어루만지기 바빴다. 좀 고치라니까 말도 진짜 안 듣네. 생각하면서.
남준에게 꿈이 중요한 이유는 제 꿈이 제 것이 아니라서. 여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서. 그리고 그 여주로부터 시작된 꿈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가 되어도 제 눈앞의 여주였다. 남준의 1차 합격 소식을 들은 반 아이들이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고, 그 말에 여주는 괜히 제가 뿌듯했다. 꿈을 이뤄나가는 제 꿈이자 미래가 대견해서.
*
안녕하세요. 겨울입니다. 정말 오랜만의 로맨틱이에요. 낭만적인 독자님들의 흐름이 끊기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네요 (엉엉) 로맨틱 전회차는 오늘 자정 전으로 전부 포인트를 없애둘게요. (~ 0302) 이 감정이 왜 이렇게 이어졌지? 혹은 이 부분의 대사가 뭘 의미하지? 처럼 물음이 생기시는 부분들은 앞 회차들 다시 읽어보시면서, 찾아보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께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이뿐이네요. 그리고 여러분 저한테 왜 안 오냐구, 왜 이렇게 늦냐구. 막 뭐라고 하셔도 돼요. 저한테 그러실 수 있는 분들은 여러분 뿐이고 저는 여러분과 제가 같이 호흡을 맞춰가며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제가 더 부지런해야 할 이유 역시 여러분일 때도 많고 해서... 여러분이 저를 기다리시고 제 작품을 기다리시는 게 당연하게 여기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정말로.
- 경찰대학교 1차 합격자 발표는 8월 둘째주 전후로 나오더라구요. 하지만 작품 속 편리를 위해 9월 중반으로 설정했습니다. 경찰대학교에 진학하는 방법은 [경찰대학교 내부 1차 시험 > 2차 시험 (신체검사, 체력검사, 인&적성검사, 면점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그 후에 1차 시험 성적과 체력검사 성적, 면접검사 성적, 생기부 성적 (앞에서 언급한 성적 = 50%) 수능성적을 합산 (= 50%) 해서 최종 합격자가 선발 되구요. 프로파일러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심리학, 사회학, 범죄학의 석사 학위가 있는 사람] [경찰이 된 다음 앞선 해당 자격을 갖추는 자]로 나뉘어요. 아무래도 제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이야기를 하며 작품 속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있겠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이 진행시키지는 않을게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워낙 특수하기도 하고, 매년 뽑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어떤 해에는 6명만 뽑는 경우도 있고 해서. 아무래도 픽션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많이 불편하지는 않으실 것 같네요!
그럼 오늘도 감사합니다. 다들 푹 쉬셔요.
RoMantic
낭만적인 사람들
For U
*혹시 신청을 하셨는데 없으신 독자님은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ㅜ_ㅜ 저의 실수일 테니까요... (울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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