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어쿠스틱 콜라보 - 그대와 나, 설레임 (feat 소울맨)
나도 오늘은 용기낼래요
# 아홉 번째. 너와 나, 설렘.
☆★☆★☆★
"아픈 건 괜찮아?"
"괜찮아보이냐 넌?"
"아니.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진리와 수정이, 그리고 옆 반에서 넘어온 혜미와 기타 등등 아이들이 나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혀를 쯧 찼다.
설렘과는 별개로 나는 밤을 꼬박 앓았다.
아침엔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 엄마에게 학교를 빠지면 안 되겠냐고 한 번 졸라보았다가 매섭게 퇴짜를 맞았고.
결국 1교시가 끝난 시간에야 힘들게 학교에 왔다.
선생님은 엎어져있는 날 보고 기함을 하시더니 날 마구 깨우셨다.
그러더니 나의 다 죽어가는 얼굴을 보고 조용히 다시 엎드리게 하셨다.
「아프면 보건실 가서 누워 있어.」
좀만 버티고 조퇴하려구요. 네. 아하하...
힘들게 대답하던 내가 다시 젖소 모양 목베개 위로 엎어졌다.
목을 들고 있을 힘은 없는데, 그냥 누워 있긴 심심하니까 뒷문 쪽으로 눈을 슬쩍 두었는데,
내가 오지 않았는데도 걱정이 되지도 않는지 친구들과 소세지빵을 물고 들어오는 박찬열이 내 눈에 띄었다.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나. 괜히 마음이 상해서 두꺼운 패딩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썼다.
그러자 내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정수정이 내가 삐졌음을 감지하고 박찬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려왔다.
"박찬열! 오징어 아파서 죽을려고 하는데 넌 빵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쪽팔려. 진짜 시키지도 않은 일을.
예상대로 박찬열은 소세지빵을 손에 옮겨들고 빠르게 자리로 돌아와 내 등 위에 손을 올렸다.
"체리. 괜찮아?"
"염병할 체리… 너 시발, 그딴 이름 부르면 아가리를 조져버릴거야."
원래 입이 순한 편은 아니었고, 거기다가 짜증까지 복받친 내가 마구 욕을 뱉자 찬열이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니,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중학교 때 지겹게 봤을 텐데?
"그래. 오징어, 괜찮냐?"
"안 괜찮으니까 닥쳐."
"응."
정말 훌쩍 떠나버리는 박찬열의 뒷모습을 보다가 괜히 자괴했다.
상처받았으면 어떡하지. 아, 남자는 욕하는 여자한테 정이 떨어진다던데.
혹시 내가 싫어지면 어쩌지? 그래도 걱정해 준 건데.
그런데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먼저 사과는 못 하겠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계속 눈만 찡그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수업 시간, 하필 2교시가 깐깐하기 그지없는 노처녀 교사의 문학이었다.
문학 교사는 내가 엎어져 있는 걸 인지한 듯 또각또각 걸어오더니, 내 머리를 드럼채로 쿡쿡 찔렀다.
"얜 누구야? 누군데 내 수업에서 엎어져 자고 있어?"
진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리고 살풋 웃었다.
저 목소리는 꼬투리 잡을 건 딱히 없는데 듣는 사람은 굉장히 기분 나빠지는, 특유의 업신여기는 말투였다.
"아~ 징어요? 오늘 너무 아파서 잠깐 누워 있는대요."
"그럼 나한테 직접 말을 해야지, 얜 입이 없어?"
"담임 선생님께서 그냥 누워 있으라고 하셨는데요~"
"너네 담임 누군데?"
담임은 우리 학년에서 가장 기가 센 교무부장이었고, 여차하면 짤릴 위기에 처한 노처녀 교사는 그냥 뒤돌아섰다.
그 와중에도 박찬열은 날 쳐다보는 낌새도 없다. 머리카락 너머로 보이는 폭 좁은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던 내가 그냥 눈을 감기로 했다.
-
"조퇴?"
"나 지금 다리 떨려. 집에 가다 엎어져서 죽으면 신고 좀."
"버스 타고 가."
"귀찮은데."
"그럼 죽던가."
"빠이. 나 감."
어김없이 찌질하기 그지없는 음슴체를 현실 대화에 적극 사용한 나는 손에 쥔 종이 쪽지를 계속 만지작댔다.
이걸 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박찬열은 지금 앞의 아이랑 신나게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원체 길게 고민하는 성격이 못 되었기에, 바로 그리로 다가갔다.
툭, 떨어뜨리고 유유히 나오려던 나였는데, 찬열이가 쪽지를 손에 들고 날 미친 애 마냥 쳐다보는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비틀비틀 나가면서는 뒷문에 머리를 박아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를 냈고.
나는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교무실로 뛰어내려갔다.
-
조퇴증을 제출하려 담임이 있는 특별지도실에 갔다.
담임은 걱정스런 얼굴로, '그래. 우리 징어 많이 아프니?' 하며 이마를 짚으셨고, 난 또 어김없이 철벽을 치며 내 이마에서 선생님의 팔을 끌어내렸다.
담임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수요일에, 3월 모의고사 보는 거 알지? 아파도 차근히 공부해야 한다."
세상에.
나는 대충 인사를 마치고 학교 앞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새삼 빠르게 흘러간 시간에 재차 경탄을 쏟았다.
벌써 모의고사라니. 첫 모의고사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생긴 개념이라 그런지 떨렸다.
잘 봐야 할 텐데. 모의고사, 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집에 가자마자 일단 약부터 집어삼킨 다음 푹 자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꿋꿋이 끄고 책을 챙겨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양심껏 공부는 해야겠는데, 집에는 노트북도 있고 티비도 있으니까 분명 집중을 하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간다 한들 뭐가 바뀔 리는 없었다.
애초에 집중력이 바닥이었던지라, 그 곳에서 중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를 만나자 마자 책을 차곡차곡 가방에 정리했다.
도서관이니 조용히 입으로 얘기하다가, 결국 글씨로 쓰다가, 로비까지 나와서 깔깔대던 우리는 결국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삭막하고 조용한 환경은 오히려 작은 자극에도 예민해질 수 있으니, 상대적 시끄러운 카페로 장소를 옮기자!
당연히 공부를 명분에 두었지만 공부를 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가서 체리 에이드를 시키고 찬열이와 사귀는 이야기, 엄마랑 싸운 이야기, 오빠가 데뷔했단 이야기, 하여튼 여러 가지 주제로 씹어대다 보니 벌써 밤이었다.
그 친구는 엄마가 부른다며 번호를 찍어주고 일어났고, 나는 멍하니 텅 빈 에이드 잔과 녹아버린 얼음 물, 그리고 한 번도 펼치지 않은 가방 속의 책을 보며 자괴했다.
오늘도 결국 날렸다.
앞으론 절대, 절대로 공부할 땐 집에서 해야겠다.
절대로 카페 따위는 오지 않아야지.
ㅡ이렇게 생각하면서 몇 년 뒤 또 공부를 명분으로 찬열이와 카페에 오게 된다.ㅡ
-
막상 카페를 나와 온갖 술집이 즐비한 좁은 골목을 지나기란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다.
난 문득 나의 핸드폰이 꺼져있음을 인지하고 혹시나 무슨 일이 날까봐 급하게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핸드폰을 꼭 분신처럼 꼭 붙들고 걸어가던 나는, 텅 빈 골목에 나 혼자 걸어간다는 게 문득 무섭게 느껴졌다.
원래 겁이 너무 없어서 놀이기구도 혼자 탈진할 때까지 타고, 공포 영화란 공포 영화는 싹 다 모아 보는 게 취미였는데.
실제 일상에 닥쳐오는 건 또 다른 기분이었다.
나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뒤 빠르게 찬열이의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수신음이 가더니, 전화가 연결되었다.
- 여보세요.
"뭐하고 있었어?"
- 나? 나 그냥 누워있었는데.
"무슨 24시간 누워있냐."
- 학교에 있는 시간은 빼 줘야지.
"몰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 왜 전화했어?
"어? 어… 그냥. 지금 밖인데 좀 으스스하다."
- 왜 지금 밖이야. 학원 다녀?
"아니. 공부하려고 도서관 나왔다가 친구 만나서."
- 남자?
웃었다. 이거 불안한 거지?
"아니. 그, 작년 2반에 그 선도부장."
- 아. 그래서 공부는 했어?
"했겠어?"
- 그러면서 왜 지금까지 있었어. 지금 춥잖아.
"뭐 어때. 괜찮아."
- 옷은 뭐 입었어.
"그냥. 패딩조끼."
- 춥겠다. 내가 안아줘야 되는데.
"…뭐라고 반응해야 되냐? 나 지금 욕 밖에 생각이 안 나."
- 좀 예쁘게 봐 줘. 귀엽잖아, 나.
"때려주고 싶다."
흐흐흥, 웃으면서 천천히 횡단보도 근처로 다가갔다.
신호가 막 끝났던 찰나라서, 아직 신호가 바뀌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 아 맞다. 그 쪽지 있잖아.
"엉."
- 뭐 말하는 지 알지?
"모르는데."
- 너가 오늘 점심에 줬던 거.
"아. 어. 읽어봤어?"
- 응 읽어봤는데, 진짜 보고 죽을 뻔했어.
"왜. 너무 귀여워서?"
장난으로 뱉은 말이었다.
친구들끼리 자주 하던 말인데, 혹시나 오해하면 어쩌지. 내뱉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어 뒤늦게 수습하려 입을 떼는데.
- 어떻게 알았어.
아…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었지만 차마 길을 건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떡하지. 너무 떨리잖아, 이 말은.
"…야, 너 그런 말 아무 여자한테나 막 해?"
- 아니. 너한테만.
"그럼 나한테만 평생 해. 나 방금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어. 딴 애한테 하지 마."
- 질투하는 거야?
"응. 아, 너 때문에 숨이 멎어서 신호 놓쳤어."
오늘도 너무 설레는 날이었다.
하루하루 점점 찬열이가 좋아지는 행복한 나날.
정말 딱 오늘만큼만 내일 더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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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브입니당.
원래 고딩커플이란 게 이런 저런 자잘한 것들로 자주 싸우고 또 금방 잊고 또 설레어 하는 게 묘미가 아닐까 싶어여...
애칭 오글거린다고 싫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오글거리는 거 안 좋아해여. 그래서 징어도 싫어하게 했습니다. 많이 안 쓸 거에요.
그리고 잠시 가볍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전 그냥 글 쓰는 게 좋고 지금 내 글에 진심으로 피드백 달아주시는 분들이 좋아서 계속 쓰고 있는 건데요.
그래서 아예 포인트를 없앨까 생각도 해 봤는데 그럼 제 쿠크가 남아나질 않을 듯해서... 그 점은 죄송합니다.
전 천성이 무심한 터라 댓글 조회수 그런 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늘 그래왔고요, 심지어 답글도 귀찮단 이유로 잘 달아드리지 않잖아요.
그에 반해 독자님들이 절 너무 챙겨주시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고 많이 감사합니다.
전 지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만도 감사하고, 새로운 분들이 제 글을 추천받고 왔단 말을 들을 때마다 설레고 기쁩니다.
저의 소원은, 제가 독자님들이 엑소를 좋아하는 데에 내가 조금 더 힘을 드릴 수 있도록.
엑소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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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