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가네.
이제는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 글로벌 쇼케이스.
쇼케이스를 위해서 빅스 멤버들이 출국하는 날이 다가왔어.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오랜 기간 떨어져 있으려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어.
아무리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촉박한 일정과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따라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가지 않기로 했지만
막상 가는 순간이 오니 무엇이라도 다 감수하고 따라가고 싶어졌어.
그래도 현실적으로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니까. 그렇게 너빚쟁은 마음을 잡았어.
올 때 선물 많이 사 오고. 아 그리고 좋은 일 있을거에요.
홍빈이에게는 장난으로 선물이나 많이 사오라고 말하다가
문득 택운이의 생일 날이 생각났어. 좋아하는 뮤지션인 트레이 송즈를 LA에서 만난 택운이.
그래서 너빚쟁은 고개를 돌려 택운이를 바라보면서 말했어.
너빚쟁의 말을 들은 택운이는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였지만 너빚쟁은 그저 웃기만 했어.
나는, 나는 뭐 없어? 하면서 홍빈이가 너빚쟁의 얼굴을 잡고 고개를 돌려
자기를 바라보게 했지만 너빚쟁은 뭐 없어. 하면서 빠져나왔어.
잘 갔다 와.
그렇게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서 홍빈이가 없는 시간들이 흘러갔어.
며칠이 지났을까.
너빚쟁은 빅스 멤버들이 없어서 텅 빈 숙소 안에 있기보다는
주로 햇승사자와 함께 숙소 밖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어.
과거로 온 처음에는 밤이 되어도 자지 못해서 일분 일초가 더디게 흘렀는데
점점 날이 추워질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야.
으. 그러면 제가 사고난 거 보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거에요?
단풍도 많이 떨어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선명히 잘 들리는 서울숲 산책길.
사람들의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너빚쟁은 햇승사자와 나란히 걷고 있었어.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그 날에 도착하면 너빚쟁은 어떻게 되는걸까.
사고가 난 건 너의 운명이고, 병원에서 눈을 뜬 것도 너의 지나간 과거니까. 그렇게 되겠지
발은 여전히 낙엽들을 밟고 있었고 햇승사자는 조근조근 입을 열었어.
이미 겪은, 정해진 과거대로 모든 일은 계속될거라고.
그 후에, 너가 눈을 뜬 후에, 너가 아직 겪지 않은 일들은 이제 너의 선택이지. 그게 운명이니까.
여전히 운명이야기를 늘어놓는 알쏭달쏭한 햇승사자의 말을 뒤로 하고
너빚쟁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어.
햇승사자의 발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어.
산책길의 끝은 너빚쟁이 사고가 났었던 그 길과 연결되어 있었어.
여기서. 그러니까 아직은 하얀 스프레이 자국이 없는 깨끗한 저 길 위에서.
너빚쟁은 아스팔트 길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어.
그리고 몸을 돌려 너빚쟁을 기다리고 있었던 햇승사자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너빚쟁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뜬 눈으로 지새운 밤들을 생각하면서 멤버들이 돌아올 때가 됐다고 느끼고 있었어.
예전에는 사진으로라도 매일매일 봤었고 최근에는 얼굴을 맞대고 있지 않았던 날이 없었을 정도로
항상 옆에 있었던 홍빈인데 이렇게 한 달 가까이 얼굴을 못 보니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갔어.
오늘은 너빚쟁은 따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저 숙소 쇼파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었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조심히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밖에 나가는 일도 사실 신경써야 될게 너무 많아서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
햇승사자도 나가고 아무도 없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조용한 숙소 안.
쇼파에 늘어져있던 너빚쟁은 문득 멤버들의 방이 궁금해졌어.
일년 가까이 숙소 안에 있었지만 멤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방 안을 자세히 본 적은 없었거든.
가끔 재환이나 홍빈이의 손에 이끌려 방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어도
방을 자세히 보지는 않아서 사실상 제대로 본 적은 없었어.
갑자기 재미있는 일이 생긴 너빚쟁은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향했어.
아무도 없는 지금이 최고의 타이밍이야! 하면서.
방 구조는 예전에 다이어리에 나왔던 것 그대로였어.
방송으로 봤던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직접 눈으로 보고 있으니 너빚쟁은 모든 게 다 신기했어.
방 한쪽에 쌓여있는 이불도, 옷장도.
방도 구경하고 화장실도 구경하고 베란다고 구경하고 주방도 구경하고
생각보다 집 안에 많은 것들이 있지 않아서 숙소 구경은 일찍 끝났어.
다시 거실로 돌아온 너빚쟁은 거실 한가운데에 털썩 앉았어.
왼쪽에 탁자가 치워져있었는데 탁자 위에 요즘에 홍빈이가 읽고 있던 책이 놓여있었어.
요즘 이 책 읽더니 왜 안 들고 갔지, 다 읽었나 생각하면서 너빚쟁은 그 책을 집어들었어.
무슨 내용인지 보려고 책을 펼쳤는데 툭하고 반 접힌 종이가 떨어졌어.
그리고 접힌 종이 위에 빚쟁이에게하고 삐뚤삐뚤한 글씨가 써 있었어.
조심스럽게 펼친 종이 안에는 홍빈이가 너에게 남긴 편지가 있었어.
사랑하는 빚쟁이에게, 로 시작하는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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