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아, 다시한번 따라해봐 '안재효'"
"아재효!"
우지호와는 아직도 어색하지만, 지훈이와는 여기서 지낸 1개월 동안 꽤 많이 가까워 졌다. 요즘은 지훈이에게 말을 가르쳐주는 재미에 빠졌다.
"오, 잘하는데?"
"지후이 잘해!"
14살이라던데,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조그마한 지훈이가 뛸 듯이 기뻐한다. 하긴, 조그마할 수 밖에 없다. 이곳은 '버려진 자' 혹은 '변종인류'라 불리는 아이들이 숨어지내는 곳이었다. 다들 영양섭취도 어려웠고, 성장이 미숙했다. 물론 교육도 대부분이 받기 어려웠다. 내가 지내던 '하얀 방'(그곳은 선택받은 '생존인류'를 위한 곳이었다.)과는 이래저래 다른 것이 많았다. 그러나 하얀방과 다른점 중 가장 놀랐던 건, 다들 가족같이 끈끈한 유대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였다.
가족......
가족은 생각도 안나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내겐 가족같은 존재가 있었다 분명.
'이태일'
태일이는......잘 지내고 있을까?
"애효!"
"응?"
"무스생각해?"
"아냐아냐."
"......애효 나갈래?"
......? 나가다니? 처음 땅에 버려졌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죽을 듯이 아팠던 그 기억.
"나가자고......?"
"응! 경이 잘 나간다!"
다른 애들은 밖과 이곳을 자유롭게 왔다갔다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몸이 적응이된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 라던지, 하지만 나는 여기서 지내는 1개월 동안 단 한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면 지호랑 겨이한테 허락받아."
저 두명이라면 어차피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럼 나가?"
"응, 허락 받으면 나가자."
밖에 나가는게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헤- 거리며 바보같이 웃으며, 쏜살같이 지훈이는 지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호! 이호!"
"지훈이 왜? 어, 너도왔냐."
나중에 알고보니 우지호 이 놈은 나보다 2살이나 어렸었다. 그래도 저 나이에 이곳의 리더였다. 그 정도로 리더십있고 능력도 있다는걸꺼고.
날보는 우지호의 눈에서 경계심이라던지, 살기가 많이 누그러진 것이 느껴진다.
"왜?"
"지훈이가 밖에 나가자는데?"
"그래, 갔다와."
?
놀랐다. 허락해주지 않을줄만 알았는데, 바로 허락이 떨어졌다. 지훈이를 바라보니 지훈이도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이아? 이짜? 약속!"
"대신."
"애시?"
"경이랑 같이가."
지훈이는 나랑 단 둘이 외출을 꿈꿨는지, 지훈이의 머리위로 먹구름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표정이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지훈이는 지호보다 경이를 더 무서워한다. 나도 경이가 지호보다 어색하다. 우지호는 조금 예민하긴 해도 자기 감정을 바로바로 표현한다면, 박경은 능글맞게 웃으며 자신을 감춰 속을 알 수 없었다. 속을 알 수없는 그 점이 가장 무서웠다.
"후웅......"
"싫으면 나가지 마."
데굴데굴- 지훈이가 열심히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싶다.
"애효."
"응?"
"나 갔다오아. 경이."
지훈이는 열심히 고민하더니, 결국 경이와 함께여도 나가는 쪽으로 결정했나보다. 갔다온다는 말을 하고는 쪼르르르- 경이가 있는 방으로 달려간다.
우지호와 나. 둘만 남은 방안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안재효"
진지한 얼굴로 우지호가 정적을 깨고 말을 걸어왔다.
"불렀어?"
"......지훈이 잘 해줘라."
"이미 잘 해주고 있어."
"더. 더 잘해줘. 그리고 고마워해라. 평생."
지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딱마침 지훈이와 지훈이의 손을 잡은 박경이 들어왔다.
"우지호 지가 나가면되지 날보내냐-"
지훈이의 손을 잡으며 들어온 박경은 나가기 싫은 듯 우지호에게 빈정거린다.
"니가 밖에 더 많이 왔다갔다하잖아. 지훈이 좀 돌봐."
"하여튼...... 지훈이만 엄청 챙긴다니까. 알았다 알았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며 나를 보고는 따라오라는 듯 고개짓한다.
조용한 복도를 걷는다. 셋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없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나는 순간 의문점이 떠올랐다.
"근데, 우리 이렇게 그냥 나가도 되는거야?"
"우리라니- 나랑 지훈이는 괜찮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뱉는다.
"난?"
"너는 위험하겠지?"
"그런데 왜......"
"지훈이가 같이 외출하고 싶다잖아-"
지훈이 핑계를 대며 은근슬쩍 말을 돌린다. 1개월 전 그 일이 생각나며 또 다시 두려움이 밀려온다. 온 몸이 경직돼왔다.
"하핫- 농담이야 농담. 얼굴 풀어!"
과연 농담일까? 농담이라기에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말이였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더 커진다.
"자, 이제 여기만 나가면 밖이야."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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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효야......어딨어??"
재효가 없어졌다. 우리가 지내던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던 그 때, 그 잠깐동안에 없어진 것 같았다. 재효가 자는 것을 보고, 잠깐 눈을 붙인 사이 재효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재효야!"
이곳에 도착한 뒤 아무리 소리를 지르며 찾으러 돌아다녀도 재효를 발견할 수 없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재효는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같은. 엄마같은 존재였다. 나는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아이가 되어 재효를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치지직-
천장에 있던 스피커에서 조금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더니, 저쪽에서 한 낯선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걸 환영합니다. 3세대 생존인류 여러분. 여러분은 선택받은 인간으로서, 이곳에서 즐겁게 열심히 활동하길 바랍니다."
뻔한 축하인사와 함께 방배정과 구역 분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요란한 와중에도 재효는 보이지 않았다.
똑똑-
내가 배정받게 된 방의 문을 두드렸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안에 있던 두 소년이 보였다.
"안녕......? 이방에 새로 배정받은 이태일이야......"
어색했지만, 앞으로 같은 방을 쓰게 될테니 용기내어 인사를 했다.
"이태일? 난 김유권. 나도 오늘 여기고 배정받은 첫 날이야! 잘부탁해!"
"......"
붉은 머리의 '김유권'이라는 소년은 밝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으나, 검은 머리의 다른 소년은 말이 없었다.
"저기......"
"말걸지마."
"어, 어?"
"딱봐도 비리비리한게 곧 죽을 것 같구만. 난 내가 정준 사람 잃는거 싫어."
죽는다니......? 지금 상황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돋았다.
"죽는다니?"
"......진짜 모르는거냐?"
검은머리소년의 표정이 뭐 씹은듯한 표정으로 일그러진다.
"여기는 말만 생존인류를 위한 특별한 보호구역이지, 실상을 알고보면 전혀 달라. 우린 그냥 윗대가리들의 일회용이지. '약'을 빼았아 윗대가리들에게 주는 임무를 맡은."
"중요한말인거 같은데 그렇게 말해줘도 되는거야......?"
"어차피 넌 곧 죽을꺼 같으니까."
죽는다- 는 저런 말을 저렇게 쉽게 내뱉으며, 검은 머리의 소년은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다.
"죽기 싫으면, 살려고 발버둥쳐. 살아남아."
누가 했는지 모를 조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검은머리 소년일까? 하고 바라본 침대에서 검은 머리 소년은 자는 것 같았다.
"에이, 너무 겁먹지마-"
빨간 머리 소년. 김......유권 이였던가? 김유권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미소짓는다.
"고마워......"
조금은 안정되는 느낌에 숨을 돌렸다. 아, 맞다.
"아, 혹시 안재효라는 애. 알거나 본적있어?"
"......왜?"
"이곳으로 오다가 친구가 없어졌어......"
"......낙오된 거 아냐?"
"낙오?"
"생존인류 자격에 맞지 않는 아이들은 이쪽에서 오는 과정에서 버려버리니까. 나도...... 아, 아니다."
버려진다고......?
"그러면, 그 버려진. 낙오된 애들은 어떻게 되는데?"
"죽겠지? 맨몸으로 나가면 밖엔 '좀비'도 있고, 병균이나 바이러스가 드글거리니까."
머리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진 기분이였다. 그렇다면 재효도......
"잊어."
"어?"
"기억속에서 말끔하게 지워버려. 마련가져봤자 너한테 좋을게 없어."
미소지으며 말하는 유권이의 웃음이 왠지 씁쓸하고 슬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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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나는 1개월 전과 같은 고통을 예상하고 눈을 질끈감았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효! 어른와!"
저 앞에서 경이의 손을 잡은 지훈이가 날 불렀다. 나는 숨을 고른 뒤 밖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나갔다.
"이상하다......"
"뭐가?"
"아냐-"
조용히 이상하다고 읊조리는 경이에게 뭐가 이상하냐 물으니, 웃기만하고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애효! 조치!조치! 히-"
지훈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폴짝폴짝 뛰어 다닌다. 그러던 중 "어?" 하는 소리와 함께 저쪽으로 혼자 뛰어가버린다.
"지훈아! 어디가!"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저쪽으로 혼자 계속해서 뛰어간다.
"바퀴벌레라도 봤나보다. 야, 안재효. 너 여기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지훈이 데려올께."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한 뒤, 경이도 저 멀리 지훈이를 따라 달려간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혼자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다. 저 둘을 기다리는 일 밖에는.
......
시간이 오래 지난 듯한데, 둘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경과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예상으로는 한참이 지난 것 같았다.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
내 뒤에서 경이나 지훈이가 아닌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재효야......?"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내 눈앞에는 태일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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