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우지호 미쳤냐?"
"뭐."
안재효가 나간 뒤 둘만 남은 방 안네 불안한 기류가 흐른다.
"믿을 만한 새끼도 아닌데, 저 놈이 약먹은걸 알고도 놔뒀단 말야?"
"지훈이가 준거야."
"그래서. 지훈이가 줬다고 저걸 그냥 놔뒀어?"
"......지훈이가 좋아하잖아. 나쁜 놈은 아니라고 생각해."
"시발. 그 놈의 지훈이. 저 놈이 어떤 놈일지도 모르고, 어디로 갈 지도 모르잖아. 지훈이가 좋아하면 끝이냐? 너 우태운 때 일 생각안나? 한번 데인거로는 모자라? 어?"
"박경 닥쳐라. 니가 나랑 아무리 각별한 친구라 해도 주제 넘어"
"뭐가 주제넘는건데. 우태운 얘기 꺼낸게? 그 때도 지금같이 이러지 않았냐? 우태운 배신자 새끼도 형이라고, 혈육이라고 감싸고 도는거냐?"
"닥치라고 했다."
"니가 그렇게도 싸고도는 그 새끼가 니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약'들고 튄 새끼야. 니가 그렇게나 아끼는 지훈이 저렇게 만든 놈이라고."
"......박경 나가. 생각 좀 하게."
"미친새끼."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박경이 나가버린다.
혼자 남은 방 안에서 우지호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할 뿐이다. 아마도 그 생각은 '우태운'에 관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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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
"어?"
이민혁이 내 이름을 불렀을 때, 흠칫 하였다. 아직도 민혁이와는 어색한 사이여서 깜짝놀라고는 한다.
"비리비리한 놈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버티네."
"......해야할 일이 있어. 중요한."
1년 전. 재효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난 약속했다.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난 죽으면 안된다. 무조건 살아남아야한다. 그리고, 성공해야한다. 지켜내려면.
"처음엔 마냥 애같더니......"
"애같다니. 에휴- 얼른 진급하고 싶어."
지나가는 말 같겠지만, 사실이였다. 얼른 진급해야 재효를 만날 수 있을테니.
2032년. 18살의 이태일은 조금씩, 아니. 너무나도 많이 변해가고 있었다.
"욕심많네. 근데, 그러고보니 3세대 중 우리 셋만 초고속 진급이잖아."
김유권, 이민혁, 이태일
"나도 얼른 진급하고 싶어서. 나도 해야할 일이 있어-"
웃으면서 해야할 일이 있다는 유권이도 자신의 욕심을 은근슬쩍 비추고 있었다.
우리 셋은 다들 욕심이 많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열심히 하지고."
"그래."
우리는 다시 보호복을 입으며, 임무 준비를 한다.
재효야, 꼼짝말고 날 기다리고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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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노크를 한 뒤 지훈이가 문 뒤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재효형"
"응?"
"지호형이 밥먹자네요."
"알겠어. 곧 나갈께. 오, 하루만에 키가 또 큰거같다?"
"아니에요. 히히-"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은 나는 1년 동안 지호와 경이의 신뢰를 얻고, 그들의 일원이 되어 이곳 아이들의 교육이나, 인터넷 통신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훈이도 일년 사이에 말도 곧잘하고 키도 많이커서 벌써 내 어깨정도에 닿는다.
태일이는...... 1년 전 그 일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었다.
"형! 오늘은 지호형이 황도통조림도 먹는데요."
"그래? 너 그거 좋아하잖아."
"넵. 그래서 지금 기분 좋아요-"
"내꺼도 먹을래?"
"진짜요? 먹어도 되요?"
"응, 좀 이따 줄께."
"히-"
황도 통조림 하나에도 좋아하는 지훈이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재효형."
"응?"
"재효형은 나 좋아해요?"
"당연한거 아니야?"
황도통조림을 먹던 지훈이가 뜬금없이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어온다.
"그러면 경이형도 좋아해요?"
"응"
"지호형도?"
"응. 당연하지."
"......"
지훈이는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한다.
"나도 재효형 좋아해요."
"그래?"
"근데 어떻게 말해야할지를 모르겠어요."
"응? 그냥 좋아한다고 하면 되지-"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니라며 복잡미묘한 얼굴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뭘 그렇게도 골똘히 생각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
......
쾅-
"여기 있었네! 우지호! 지훈이 여기있어!"
"엇, 경아 무슨 일......"
"재효형, 지훈이 데리고 도망가요. 얼른! 눈에 띄지않게. 알았죠?"
......? 갑자기 문을 열고 급하게 온 듯한 경이가 나와 지호를 번갈아보며, 지훈이를 데리고 도망 가라한다.
"무슨일인데 그래?"
"저희 위치를 들킨거 같아요. 형은 지훈이 챙겨요. 알았죠?"
그제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아, 위급상황 이구나.
급하게 준비를 마치니 경이 뒤에 있는 지호가 지훈이와 나를 부른다. 어, 잠깐.
"경아 너는?"
"전 나중에 꼭 뒤따라 갈께요. 먼저가요 형."
말을 마치고 나와 지훈이의 등을 떠미는 경이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그러나, 경이를 뒤로한 채 지훈이와 나는 경이를 뒤로한 채 지호를 따라 걸었다.
"지호야. 어디로 가?"
"지금 이곳과 비슷한 안전한곳을 찾아서 다시 터를 잡아야죠."
"......그렇구나."
그 말은 이런 곳을 발견할 때까지 끝없이 이동해야한다는 것이였다. 조금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멍하니 걷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오는 다른 손이 있었다.
"형, 걱정하지 마요."
그 손은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하며, 나에게 내심 안정감을 주었다. 그러고보니,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훈이는 항상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었다. 그렇게 나를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줬다.
마주잡은 지훈이의 손을 보니 뭔가 애틋하고 아련한 마음이 들며, 심장 한 구석이 먹먹했다.
"......고마워."
"히-"
지훈이는 뭐가 그리좋은지 내게 미소짓는다. 아니, 좋기보다는 아마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것 일지도.
"둘이 그만 시시덕 거리고, 이제 조심해. 밖으로 나가니까."
찰칵- 하는 익숙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만약, 적과 마주치게 된다면 다같이 죽지말고 한명만이라도 살아남아야해. 알겠어?"
"......"
"......"
이제야 실감이 났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이미 죽을 뻔한 내 생명을 구해준 지훈이가 내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두렵지 않았다.
지훈이의 손을 조금 더 꽉 마주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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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이라 분량이 평소보다 짧기도 하고 좀 늦었네요...ㅜㅜ 죄송하여라.... 아마 다음편은 시험 끝나면 올릴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