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복을 입으며 조금 불안함이 밀려왔다.
"저...... 민혁아, 밖에 많이 위험해?"
"네가 하기 나름이지."
C-H조, 김유권, 이민혁, 이태일.
임무 - 외부 순찰.
임무만 보면 간단해 보이나, 처음으로 미지의 세계에 나간다는게 불안했다. 그리고 민혁이가 하도 겁을 준 탓도 있었고.
다시한번 보호복을 점검한 뒤, 호흡을 고르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보는 광경이 조금은 놀라웠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배정받은 구역안 변종인류나 좀비가 있는지 확인하는거야. 세 구역으로 나눠서 조사하고 여기서 보자, 알겠어?"
조금 더 임무경험이 많은 민혁이가 리더를 맡아 지시사항을 내린 뒤, 우리 셋은 각자의 구역으로 흩어졌다. 나도 내가 맡은 구역으로 걸어가던 중, 저쪽에서 인영이 보였다. 좀비? 변종인류? '첫 임무부터 골치아파졌다'는 생각과 함께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렀다. 두려움을 가지고 점점 낯선 인영의 뒤쪽으로 접근해 가던 중, 뒤통수가 매우 낯익은 느낌이였다.
"어......?"
점점 다가갈수록 그 인영은 내가 알던 '너'였다.
"재효야......?"
'너'의 이름을 부르자, 낯선 인영은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는 못 볼줄 알았던 재효가 날 보고있었다.
"재효야......"
임무 중인 것을 잊은 채, 나는 재효를 보자마자 재효를 껴안았다.
눈 앞에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아서, 혹여나 환영일지라도 도망가 버릴까봐. 재효의 품에서 재효의 내음과 온기가 느껴져왔다.
저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보고싶었어 재효야......"
"나도."
재효가 찬찬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개를 살짝 드니, 내 눈앞에 재효의 얼굴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꿈같아서, 재효가 혹여나 사라져버릴까 겁이 났다.
치지직-
내가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재효와 나의 시간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C-H3, CH-3 응답하라."
"C-H3. 이 곳은 이상없다. 아무것도 없다."
거짓말을 했다. 첫 임무부터.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재효를 지켜주고 싶었다.
나는 무전기를 끄고, 재효에게 속삭였다.
"재효야, 도망가. 그리고 꼭 다시만나."
말을 마친 뒤, 나는 재효를 위해 재효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꼭 살아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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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갑작스레 안겨 온 태일이로 인해 조금 많이 놀랐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깐
"보고싶었어 재효야......"
태일이가 약간은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품에 안겨 조곤조곤 말을한다. 태일아......
"나도."
태일아. 나도, 나도 많이 보고싶었어.
태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예전처럼. 하얀방에서의 우리로 돌아간 듯. 그러자 태일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한참동안이나 나를 바라보던 태일이는 갑자기 표정이 굳으며, 이상한 옷 안에서 뭐라뭐라 말을 하는 듯 하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재효야, 도망가. 그리고 꼭 다시만나."
말을 마치자마자 태일이는 등을 돌리고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1개월 만에 본 태일이는 반갑기도 했지만, 왠지 많이 커보였다. 태일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혹여나 이게 꿈이 아닐까 살짝 볼을 꼬집어도 봤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다. 태일이는 하염없이 내게서 멀어지며 결국 하나의 점으로 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헉......헉헉......야, 안재효."
계속해서 태일이가 사라져버린 곳을 바라보다, 날 부르는 소리에 문뜩 정신을 차리니 급하게 달려온 듯한 박경이 다급하게 날 부르고있었다.
"어?"
"얼른 돌아가자. 빨리!"
날 재촉하던 경이는 지훈이를 업어든다. 그리고는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태일이가 사라져 버린 곳을 힐끗힐끗 다시 바라보며, 경이를 따라 달렸다.
찰칵-
문을 닫고 숨을 고르었다.
"헉......헉- 왜 그렇게 뛴거야."
"시발...... 정부의 정찰병이 있었어."
"정찰병?"
"어. 우리를 찾아다니는. 설마...... 만난건 아니지? 하긴, 마주쳤다면 이미 목숨이 붙어있질 못하겠지."
설마 아까만난 태일이가......
"맞다. 넌 우리가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지? 우지호 방으로 와."
경이는 굳은 얼굴로 먼저 걸어가 버렸다. 멀뚱멀뚱 경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지훈이가 보인다.
"지훈아, 가자."
"우으......"
자신때문에 경이가 화난 줄 아는지, 시무룩한 표정의 지훈이는 터덜터덜 날 따라왔다.
"들어갈께."
노크를 한 뒤 들어가보니 경이와 지호는 이미 얘기가 끝난 듯 했다.
"안재효. 거기 남는 의자에 앉아봐."
의자에 앉은 뒤 지훈이를 내 무릎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우지호를 바라보니, 우지호는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고있었다.
"너,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수 있어?"
"......"
"배신하지 않는다 하면 다 말해줄께."
"배신......하지 않아."
"......지훈아 잠깐 나가봐."
지훈이가 지호와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쪼르르- 밖으로 나간다. 이제 방 안엔 경이, 지호, 나 이렇게 세명 뿐이였다. 사실, 태일이가 계속해서 어른거려 많이 고민하였지만, 이곳이 아니면 나는 살아갈 방법이 없엇다. 순간 그런 나에게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날 다스렸다.
안재효 넌 나쁘지않아.
"좋아. 뭐, 아직 확실히 너를 신뢰하는건 아니지만. 우리가 나라에서 버려진 사람들이란건 알고있지?"
"응."
"어떠한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멸망 이후 생존인류보호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사육해서 자신들 마음대로 이용해. 그들이 원하는 건, 너가 먹은 '약'이야. 왜냐하면 정부는 그 기술이 없을뿐더러, 약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약이 어떻길래......?"
"너가 처음 버려졌을 때, 아마 엄청난 고통을 겪었겠지. 똑같이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류는 밖에 나갈 때 특별한 보호복이 필요해. 그러나, 이 약을 먹으면 고통없이 자유롭게 밖에 나갈 수 있지. 또 다른 효능도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거기까지는 자세히 몰라. 그래서 그 놈들이 이걸 탐내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응, 그래서 너가 아까 지훈이와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었던거지. 그리고 저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드려고해. 우리는 그걸 반대하고 저항하지. 저들은 우리를 정크(Junk)라 불러. 폐기물이라 이거지."
그렇다면 태일이도......
"아마 정부에서는 약을 제조하기위해 약을 섭취한 자도 노릴지 몰라. 앞으로 조심하고 얘기 끝났어. 나중에 궁금한 거 있으면 더 물어봐. 끝이야. 나가봐."
"응......"
지호와의 대화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문을 닫자마자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태일아, 어쩌지? 너와 나는 너무나도 멀어져버린 것 같아.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재효...... 울지마."
밖으로 먼저 내보냈었던 지훈이가 여기서 우리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는지, 문 앞에서 주저앉아우는 나를 달래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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