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모나 - Love Letter
첫번째 장이었다.
첫번째 편지 |
비나비나 홍비나 아, 춥다 추워.
오늘은 2013년 12월 6일. 홍빈아, 행복하지. 많이?
나도 이때 되게 행복했었는데. 울고 웃는 너네 얼굴 보면서 나도 기뻤었어. 내가 진짜 이거 말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 했는데. 가끔 물어볼 때마다 이걸 말해줄 수도 없고.
그래도 깜짝 선물 받은 느낌이라 기분 좋지? 진짜진짜 좋지?
저번에 편지말이야.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 쓰고 있어. 지금은 숙소 앞 벤치고, 옆에는 너가 많이 안 좋아하는 햇승사자님이 계신다 ㅎ_ㅎ 너의 팬심은 이해하지만 너무 미워하지는 마. 그래도 이렇게 펜도 빌려주시고 종이도 주신다야.
좀 추운 느낌이기는 한데 사실 그렇게 춥지는 않아. 원래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데, 이럴때마다 내가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라는게 느껴져.
너가 이걸 언제 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돌아간 이후였으면 좋겠어. 그전에 보면 되게 좀 부끄러울 것 같아.
그냥 나는 너가 언제나 무대에서 노래하고 웃고 춤추고 그런게 좋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항상 좋았으니까.
으 막상 이런거 쓰려니까 너무 오글거린다. 나중에 생각나면 그 때 다시 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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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귀엽다."
홍빈은 종이를 한 장 넘겼다.
두번째 편지 |
치킨 맛있냐. 나는 예전에도 못 먹고 지금도 못 먹네. 아, 오랜만에 치킨 먹고 싶다. 돌아가면 치킨부터 먹을거야. 너 빼고,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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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기념 치킨 못 먹은게 서운했나. 홍빈은 앞 장에 비해 많이 짧은 두번째 장에 의아했지만
치킨으로 가득한 편지를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 이렇게 편지로 쓰면 뭐하냐, 첫 치킨은 나랑 먹었는데.
종이는 또 한장 넘어갔다.
세번째 편지 |
겨울고백 노래 좋다. 그치? 이거 순위도 되게 높았고 방송에도 나올텐데. 사실 내 진짜 기억 속에서는 얼마 안된 노래인데 다시 일년을 살다보니까 이 노래도 너무 그리웠어.
이거 무대도 할텐데, 기대된다. 홍빈아.
PS. 나 근데 사실 라비좋아해. 랩 잘하는 남자 멋있잖아. 미리 말 못해서 미안. |
어쩐지 그 때 랩을 따라부르더라니. 어쩐지 앨범에 원식이 사진밖에 없더라
뜻하지 못한 빚쟁이의 고백에 홍빈은 심통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금방 얼굴을 풀고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귀엽다.
네번째 편지 |
크리스마스를 너랑 보내서 정말 행복해. 홍빈아. 내 진짜 기억 속의 2013년 크리스마스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파티였는데 오늘의 크리스마스는 너와 함께네.
이건 꿈일가. 아니면 진짜일까. 요즘 마음이 좀 그래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너랑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아.
사랑해, 홍빈아. 많이. |
한장씩 종이가 넘어간다.
다섯번째 편지 |
아, 홍빈아. 한달남았대. 한달. 너한테 말하기 진짜 싫다. 이거 말하면 진짜 현실이 될 것 같아. 물론 이게 진짜지만.
이런 생각하면 안되는거 알지만 그래도 가끔 나는 사고가 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해.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너와 함께 일 수 있었을까.
진짜 이런 생각하면 안되는데. 그냥 요즘 눈 앞이 먹먹한 느낌이야. |
여섯번째 편지 |
우리가 함께한 이 기억들을 너 혼자 끌어안고 가야한다는게 너무 미안해서 너한테 차마 말할 수가 없어.
어쩔 땐 내가 이렇게 돌아온게 좋을 때도 있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차라리 모두가 다 잊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없는 사람이 되면 좋을텐데.
그냥, 좀 많이. 미안해, 홍빈아. |
"너가 왜 미안해 해 바보야."
홍빈은 눈 앞에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빚쟁이의 손을 잡았다.
여섯번째 편지에서 한동안 종이는 넘어가지 않았다.
남은 종이가 가벼워지고 있었다.
일곱번째 편지 |
시간이 이렇게 빠르구나. 요즘 새삼 느낀다.
처음에는 언제 일년을 기다리나 싶었는데, 엄청 길어보였는데. 뭐했다고 지금 이렇게 끝에 와 있는 건지 모르겠어.
열흘 남았다. 진짜 코 앞이야. 아, 무서워. 나 정말 무서워.
내가 이제 어떻게 되는건지, 나 사고난 건 어떻게 되는건지 감당해야 할 무게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그것까지 너에게 주고 싶지 않아.
내가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혹시라도 줄 수 있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게 이 무게 같아서 정말 싫어. |
여덟번째 편지 |
9일. 예전에는 생각날 때 마다 썼는데 음, 시간이 시간이니까 매일매일 일기처럼 써야겠어.
그냥 이제는 하루하루가 지날 때 마다 머리 속이 비워지는 것 같아. 오늘도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PS. 너네 다 잔다. 이때 편지지 숨겨야지. 조심 |
다음 장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빈 종이였다. 한 장 한 장 넘겨보아도 빈 종이 뿐이었다.
그렇게 다섯장이 넘어가고 순식간에 빚쟁이의 편지가 줄어들자 홍빈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드디어 여섯장째에 글씨가 보인 홍빈의 표정은 눈에 띄게 좋아진다.
열네번째 편지 |
3일 남았다. 중간에 비는 건 좀 이해해 줘 아무것도 없이 떠나가는 건 좀 그래서 다른 멤버들에게도 썼어.
정택운 분 이재환 분ㅋㅋㅋㅋㅋㅋㅋ은 그래도 쓸 말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팬레터 쓰는 기분이라 뭔가 묘하더라.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편지를 쓴 기억도 되게 아득한데 마지막 한달 동안 엄청 열심히 쓰다 가는구나 싶어.
진짜 신기한게 햇승사자가 준 종이는 써도 써도 줄지를 않아. 신기하지? 이거 남으면 나중에 햇승사자가 가져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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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번째 편지 |
이틀. 48시간.
나는 이제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 아까는 무슨 생각도 들었냐면, 뺑소니 범인이 고맙기까지 했다. 너랑 나랑 만나게 해주려고 일부러 사고를 낸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들었고.
사실 이렇게까지 않아면 그 사람이 너무 미워. 사고 나고 나 병원에서 잠깐 눈을 떴었는데. 아니 정확히는 귀만 열려있었지만. 나는 그 때 우리 부모님이, 내 친구들이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어. 그게 너무 슬퍼서 내가 햇승사자에게 범인을 찾아달라고 했나봐.
근데 이렇게 일년이 지나고 너를 만나고 빅스를 만나고 이렇게 있다보니까 그 사람 자체에 대한 미움은 조금 줄어들고 왜 나를 두고 그냥 가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원망? 의문?
이런 생각도 하면 안되는 거 알지만 그래도 너랑 있으면서 뭔가 내 진짜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 한것 같아. 그래서 사고낸 사람이 고맙다는 생각도 한 것 같고.
내가 말야. 만약에 이 일년 동안의 기억이랑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게 된다면 눈을 떴을 때 사고낸 사람. 안 찾을 것 같아.
하도 옆에서 운명, 운명하는 햇승사자랑 있다보니까 그런가. 예전에 햇승사자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거든. 사고 낸 사람이 잡히지 않은 것도 그 사람의 운명일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일년을 돌아왔고.
원래 맞는 길이 뭐였을까 가끔 궁금해져. 내가 이렇게 일년을 돌아온 건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아, 근데 너한테 언제 말하지. 이제 시간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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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번째 편지 |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말해야겠지. 미안해, 홍빈아. 그리고 사랑해.
정말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정말로. 정말. |
홍빈은 마지막 종이까지 모두 넘겼다.
범인은, 잡힐 운명이 아니였다고. 그 때에는 잡힐 운명이 아니였다고.
이미 잡힌 것 같은데.
홍빈의 머릿 속이 복잡해진다.
언제나 언제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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