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대는 연하남과 철벽게임썰 2
고무줄다리기
w. 랑데부
6.
"흐아으..."
"아이고 마이 졸린갑네"
어 오늘은 좀 졸리다. ㅇㅇ는 입을 가리고 두 번이나 하품했다. 어제 늦게 잤어요? 응 잠이 안 와서. 오늘도 어김없이 플렛폼에 서있는 댕댕, 아니 도운에 ㅇㅇ는 그런 도운을 보고 함께 걸어 역을 빠져 나왔다.
"오늘 쪽지시험인 건 알아요?"
"뭐?"
야 그걸 왜 지금 말해. 어제뚜 말했잖아요! 아 그래? 엿 됐다. ㅇㅇ는 그대로 멈춰서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아 꿈일거야 제발, 깨라 좀. 그렇게 자학을 하는 ㅇㅇ의 팔을 도운은 쿡쿡 찌르고 노트를 내밀었다.
"이 요점 정리한 거에요"
"아 도운아"
너 지금 내 구세주야
"지금 성 떼고 부른 거가"
아냐 취소할게.
그렇게 또 감동을 멋대로 먹은 도운을 신경 쓸 새도 없이 ㅇㅇ는 노트에 온 시선을 꽂았다. 조금이라도 외우자 조금이라도.
"에헤이 다친다"
한참 요점을 오물거리다 한숨을 쉬고 다시 걸으려는데 앞으로 쑥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놀랄새도 없이 도운은 ㅇㅇ의 어깨를 끌어 안아 뒤로 당겼다. 조심조심. 결국 도운은 ㅇㅇ의 옷자락을 쥐고 등교 해야만 했다. 누나야는 한시도 눈을 떼믄 안 되네, 맞제. 조용히 해 도운아 누나 까먹어.
"왔어?"
"응"
먼저 와 앉아 있는 제형의 옆으로 가방을 놓고 ㅇㅇ는 앉아 도운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고마워 다 봤어.
"잘 보면 내한테 뭐 해줄낀데요"
그래 네가 쉽게 줄 애는 아니지. 제형과 대화를 나누려는 차에 쑥 밀고 들어오는 도운의 고개를 그대로 밀어냈다. 아 지짜! 알겠어 너 원하는 거 아무거나 하나 해줄게 됐지? 이제 가. 도운은 그 말에 입꼬리가 귀에 걸리고 자리에 앉았다.
아싸
*
"I thought you were a good person, sorry"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미안)
"I don't think he likes me, nothing to be sorry"
(그 사람 마음에 내가 들지 않았던 거 같아. 미안해 할 거 없어)
"nope. you're good girl. Really. It's so real ok?"
(아냐 너 좋은 사람이야. 정말로. 진짜야 알겠어?)
"알겠어"
제형은 돈까스를 집어 ㅇㅇ의 그릇에 얹어 주었다. 먹어. ㅇㅇ는 그 돈까스를 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웬일로 윤도운이 조용하네
"내도 소개시켜주세요"
"응?"
"누나한테"
7.
"누나아"
"누나야는 안 타요?"
"나 탈 줄 몰라"
에 못 타요? 와 말 안 했나. 찍고 있던 영상을 잠시 꺼두었다. 도운이 착 옆에 앉길래 급하게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넣고 한 뼘 떨어져 앉았다.
"뭔데, 와 숨겨요"
"안 숨겼어"
"와 뭐 찍었노. 아 뭐 찍었는데"
아무것도 안 찍었다니까. ㅇㅇ는 물음표를 잔뜩 물고 다가오는 도운을 밀어냈다. 씁 가. 넹. 그와중에 말은 잘 듣는다. 동기들과 함께 보드를 타러 온 다는 걸 그냥 물 흐르듯이 함께 왔다.
"얘 깍두기"
"갈 꺼지?"
제형이 ㅇㅇ의 어깨에 팔을 턱 얹어두고 끼웠 넣었기 때문이었다. 탈 줄도 무서워서 아예 시도도 안해봤었는데 어쩌다보니 제형이 보드 타는 걸 휴대폰 안에 조용히 담고 있었다. 그 앵글 안에 댕댕이 한 마리가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다. 너 빨리 가서 타. 아니 누나야랑 있을래요.
"아 빨리 가. 너도 타러 왔잖아"
"아 누나아"
"아 왜 또"
"내는 누나야랑 있는 게 더 좋은데"
어 난 싫어, 빨리 안 가? 안 가요. 하 이럴땐 또 말 안 들어. 결국 ㅇㅇ는 댕댕거리며 말을 거는 도운을 끼고 앉아 제형을 바라보았다. 잘 타네, 근데 옆에 누구지. 같이 보드를 타는 친구인지 어떤 여자애였다. 한 두번 봤던 거 같기도 하고, ㅇㅇ는 손톱을 툭툭 만지작거렸다. 되게 잘 타네, 어어 스킨십. 아니 그딴 거 생각하지마 티 내지 말라고.
"같이 타면 좋은데"
"..."
"알바 끝나고 내 알려주까"
"뭐?"
"내랑 알바 끝나고 와서 함 타봐요, 알려주께"
그리고 같이 타요 담엔 저기서. 도운은 한창 보드를 타고 있는 애들을 가리켰다. ..그럴까. 지짜? 누나 지짜? 그러던가. 제형과 같이 타려면 조금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하필 가르쳐 준다는 애가 윤도운인 건 뭐 어떻게 감안해야지 뭐.
*
"..이거 타다 죽는 거 아니지?"
"내 아직 보드 타다 죽은 사람은 못 봤다"
"아 손 잡아주께. 빨리 올라가봐요"
..무서운데. ㅇㅇ는 바퀴 달리고 굴러가는 것에 별로 취미도 흥미도 없었다. 하 진짜 박제형 너만 아니면 이럴 일 없는데, 아니 그것도 내 마음인데 왜 박제형을 탓해. ㅇㅇ는 두 발을 보드에 올라서자마자 휘청거렸다. 어어, 크게 휘청이는 ㅇㅇ에 도운은 급하게 안아주었다.
"괘안타 괘안타"
"또 놀랐제"
야 이거 타다가 내가 최초로 죽음 어떡해. 저도 모르게 도운의 목을 꼭 끌어 안은 ㅇㅇ가 말했다. 그랄 일은 없을낀데, 도운은 터지는 웃음을 참았다. 무섭긴 했는지 도운에게 폭 안긴 ㅇㅇ에 도운은 숨을 가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차근차근 알려주께요"
"계속 안아주면 내는 좋고"
"..아"
미안. ㅇㅇ는 그제서야 끌어안았던 도운을 놓았다. 이거 한 발로 밀고 어어 그렇게요. 그리고 자신 없다는 말 치곤 ㅇㅇ는 빠르게 배워갔다. 물론 중심을 잡기까지 그 작은 손으로 도운의 손을 꽉 잡았다 놓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야야 아직 놓지마 윤도운 아 윤도운!"
"알았다 알았다"
이게 슬슬 장난기가 왜 안 올라오나 했다. 조금씩 능숙해지니 도운은 슬쩍 슬쩍 ㅇㅇ의 손을 놓고 한 발짝씩 떨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ㅇㅇ만 보고 도운은 가르쳐 주었다. 이제 조금씩 타봐요. 그리고 줄곧 꽤 멀리까지 가 조정을 하는 ㅇㅇ에 도운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제 내랑 탈 수 있겠다 그제"
"그러니까"
"낼두 와요"
"..애들이랑 같이 오자"
"그러죠 뭐"
이제 슬슬 가자. 네. ㅇㅇ의 스피드에 맞추어 천천히 봐주던 도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보드를 멈춰 세웠다.
"으아, 엄마!"
"..아으, 깜짝이야"
저도 멈춰선다고 멈춰섰는데 제대로 보드가 서지 않아 그대로 넘어졌다. 아니 넘어질뻔했다, 엎어지는 순간에 ㅇㅇ를 도운이 도중 안아 올려서 무릎이 다 까져버리는 불상사는 없었다. 마이 놀랬어요? 휘청거릴때랑은 다르게 정말 크게 겁을 먹어 ㅇㅇ는 도운에게 안겨 대답도 못했다.
"마이 놀랬네"
도운은 ㅇㅇ를 고쳐 안았다. 아 제발. 아이 아이다 놀래키려 한 거 아이에요. ㅇㅇ는 더 도운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공중에 퍽 늘어진 작은 발이 동동거렸다. 안 넘어졌잖아요. 도운은 그렇게 한참을 안아주었다. 힘든 기색도 없이 폭 안긴 ㅇㅇ를 그자리에서 꽤 오랫동안. 그리고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ㅇㅇ의 이성은 돌아왔다.
"...미안, 이제 내려줘"
"와. 부끄러워요?"
"아니거든"
"아 안 내려줄래"
또 책 잡혔다. 아 빨리 내려달라고. 싫은데. 도운은 정말 생각이 없는지 공중에 붕 떠있는 ㅇㅇ를 더 높게 올렸다. 야야, 아 진짜 무섭다니까.
"내려주면 뭐 해줄긴데"
"또 뭐 해줘야돼?"
"아 안 내려줄래"
"알았어 알았어 해줄게. 아 뭐든 해줄테니까 좀 내려줘"
이제 누나 이용해 먹는데에 도를 텄지? 제가 원하는 답을 듣고서야 도운은 씩 웃고 ㅇㅇ를 내려주었다. 웃어 이게 웃겨? 넹 웃겨요. 도운은 얼굴이 발갛게 오른 ㅇㅇ의 뺨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어 안 터지네, 아!"
그리고 정강이를 까였지만 말이다.
8.
저기 저 앞에 가는 버스가 제발 내 버스가 아니길 바랐으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가 않았다. 아... ㅇㅇ는 얼굴을 감싸쥐고 흘러내렸다. 망했다. ㅇㅇ는 구두를 고쳐 신고 지하철역으로 달렸다. 콩나물시루에 이은 지옥철이라니 등교가 너무 행복해 죽어버릴 거 같네. 지하철은 더 극성이었다. 공간은 한정 되어 있는데 계속 밀고 또 밀고 들어오는 인파를 조그만 ㅇㅇ의 체구로는 좀처럼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어?"
"내 여기있는데"
입구 가까히 봉도 간신히 잡았다 놓쳐 이리저리 밀리다 제 앞으로 팔 하나가 쑥 뻗어지고 익숙한 향이 끼쳐왔다. 그리고 더이상 흔들릴 일이 없어 돌아보니 도운은 아무렇지 않게 ㅇㅇ를 내려다 보고 웃었다. 왜요.
"뭐야?"
"등교하다가 쪼그만 사람 보이길래 누난줄 알았제"
근데 지짜 맞더라고. 조그만 사람이 보이려면 넌 얼마나 큰 거니, 어이 없게 올려보고 웃으니 도운은 또 헤헤 거렸다. 덕분에 더이상 밀려다니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내릴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닌거다, 아 진짜 다신 지하철 안 탈래.
"잡았다"
내릴 때 쏟아져나오는 인파에 다시 우르르 밀려가다 ㅇㅇ의 손을 감싸쥐는 온기에 돌아서 올려다보니 다시 도운이었다. 그렇게 밀려나가믄 내가 어떻게 잡아요. 내가 밀리고 싶어서 밀린거야? 그건 아인데. 지하철을 빠져 나올때까지는 순 도운의 손만 잡고 있어야 했다. 도운은 그것도 불안했는지 아예 자신의 앞에 세워 어깨를 쥐었다.
"그대로 직진 합시다, 쭉"
"어? 어어"
도운아 너 오늘 좀 착하게 군다. 내 칭찬 받은 거에요? 응 이건 칭찬 맞아.
"머리도 쓸어주믄 안 되나"
"..하"
그래도 1절만 해라 도운아. 넵.
*
"ㅇㅇ"
"what did you make me look so, so pretty?"
(오늘 왜 그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어?"
"아 햄 내가 할라 했는데"
왜 그렇게 예쁘게 하고 왔냐고. 나? ..아닌데. ㅇㅇ는 손부채질로 얼굴을 식히며 고개를 저었다. 햄이 뺐어갔어요. 뭘. 내가 할라고 한 말. 제형은 어이없게 웃었다, 뭐라고? 상황에 도운만 억울했다. 둘이 그냥 손 잡고 가서 화해해 나는 더위 좀 식히고 갈게. ㅇㅇ는 그런 제형과 도운을 밀었다.
오후 수업은 휴강이었다. 다행이다, ㅇㅇ는 과방 책상에 엎드리듯 쓰러졌다. 아 배 아파. 생리통은 드럽게 길고 드럽게 아프다. 쿡쿡 쑤시는 것도 아니고 호흡에도 제한을 둘 정도였다. ㅇㅇ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바르작거리니 제형이 어깨를 톡톡 쳤다.
"왜"
"..아냐"
"아파?"
제형이 ㅇㅇ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넘겨주었다. 아파? 괜찮아. 표정이 괜찮은 게 아닌 거 같은데, 제형은 펜을 놓고 ㅇㅇ에게 다가갔다. 땀 나는데? ㅇㅇ는 고개를 젓고 다시 엎드렸다. 한숨 자면 괜찮아질거야.
"누나"
"누나아"
한숨 자면 괜찮아질거라고, 넌 왜 불러. 그렇게 엎드린 ㅇㅇ를 조용히 토닥여주던 제형은 조용히 하라며 도운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 잠깐만요"
"누나아, 잠깐만 인나봐요"
진짜 왜. ㅇㅇ는 다시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할 새도 없이 고개만 힘없이 들었다. 장난 칠거면 가라 죽는다.
"이거 무"
"뭔데"
뭐? 도운이 대답 대신 입만 뻥긋거려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고? 아니 진짜 답답하네. 야 답답한 건 나거든? 도운은 손가락으로 작은 네모를 그렸다. 그리고 영 알아듣지 못하는 ㅇㅇ에 결국 생수와 봉지에서 작은 각을 내밀었다. 약이요, 약. 아 게보린. ㅇㅇ는 그제야 도운의 말을 이해했다, 근데 너 어떻게 알았어?
"척하면 척이죠"
"고마워"
도운은 생수를 까 내밀었다. ㅇㅇ는 도운이 내민 물에 약을 삼켰다, 내가 먹는 걸로 사왔네. 그건 몰랐어요. 도운은 ㅇㅇ가 약을 삼키는 것을 마치 자신이 아픈것마냥 낑낑거리며 바라보았다. 네가 아파? 그거는 아인데.
"아 이것도 무"
"이건 뭐야"
"초콜릿"
너 지갑 그렇게까지 털지마. ㅇㅇ는 미안하게 도운에게 답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긴데 뭐. 도운은 초콜릿 포장을 뜯어 초콜릿을 꺼냈다. 형도 먹을래요? 아니 난 괜찮아.
"내 잘했죠"
"응?"
"잘했죠"
딱 봐도 칭찬해달라는 표정이다. 그렇게 반짝반짝 바라보고 있으면 나 뭐 어떡해야 하는 건데.
"응? 응?"
"..어 잘했어. 아니 고마워"
결국 ㅇㅇ는 어색하게 도운의 앞머리를 흩뜨렸다. 나 네 주인 아닌데. 마치 지금이라도 배 까고 누울것마냥 기분이 좋아진 댕댕이, 아니 도운은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ㅇㅇ는 살짝 웃었다. 되게 환하게 웃네.
"ㅇㅇ야"
"응?"
"나중에 어디 좀 같이 가줄 수 있어?"
"어 그래"
고마워. 제형은 습관적으로 ㅇㅇ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끅, 야 하지말라고. 왜. 급하게 ㅇㅇ는 제형에게서 떨어져 고개를 돌렸다. 아 깜짝이야. 그리고 척 옆에 붙어 앉은 도운에 파드득 놀랐다. 넌 왜 이렇게 가깝게 붙어 앉아있어.
"좋아서요"
도운이 그런 ㅇㅇ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9.
"야 윤도운"
너 죽을래? 등교 하자마자 다짜고짜 팔뚝을 맞은 도운이 낑낑거리며 내려다 보았다. 아 왜요.
"너 쪽지시험 사기쳤지"
"아니, 그건 사기가 아이고.. 아!"
너 나한테 말해준 적 없었잖아 이 사기꾼. ㅇㅇ는 도운을 올려다 보았다. 어젯밤 기차를 타고 가다 심심해 카톡창 하나하나를 올려보다 도운과 연락을 확인했을 때였다. 쪽지 시험 전날 쪽지의 '쪽'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뭐? 어제도 알려줘? 그렇게 두대나 맞았으면서 뭘 또 웃긴 웃어. 도운은 팔뚝을 잡고 헤헤 웃었다. 아 진짜 저 쪼그만게 진짜.
"소원 없어"
"아 그건 아이다"
"네가 먼저 거짓말 했거든?"
"아 그래두, 아 싫다"
이게 막무가내네. 절대절대 싫다며 손 붙잡는 도운에 ㅇㅇ는 무심하게 올려다보았다. 죽고 싶어? 누나야한테 죽으면야 그건 좋을..아! 정말 맞을 짓만 골라해 정말.
"소원 한 개 짐 쓸거란 말이에요"
"뭔데"
"누나야 동창회 따라갈라고"
"뭐?"
야 거길 네가 왜 따라와. 소원 들어준다매요. 그러니까 그게 왜 소원인데. 비밀이에요. ㅇㅇ는 어이없게 올려다보았다, 무슨 그런 소원이 있어. 와서 불편하기만 할텐데 그런 동창회를 왜 따라오는거냐는 거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선 도운은 입을 꾹 다물었다. ㅇㅇ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불편한 거 못 챙겨줘. 알아요.
"근데 누나야"
"왜"
"..아이다"
말을 왜 하다 말아. 진짜 아이다. ㅇㅇ는 그런 도운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뭐 그럼 말고.
*
"옆에는 누구야? 남자친구?"
"아는 동생"
"친한 동생이요"
"안 친해"
"친하잖아요"
야 뭣대로 친하고 자시고 정리해? 넹. 아 대답을 더 잘해서 화난다. 우리가 언제부터 친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여. 대답을 더 잘해서 화난다. ㅇㅇ는 고개를 홱 돌려 도운을 바라보았으나 도운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 아니 웃어보였다. 자꾸 웃지 좀 마 오해하잖아 사람들이. ㅇㅇ는 그런 도운의 볼을 쥐고 말했다.
"그믄 좀 웃으르.."
(그만 좀 웃어라..)
"싫응데영"
(싫은데요)
"남자친구 맞네"
"아 아니라고!"
너 이러려고 온 거지? 그건 아인데 되게 잘 왔다는 생각 하고 있었어요. 와 이거 때릴 수도 없고, 얼굴에 잔뜩 맑은 웃음을 머금은 도운을 보고 ㅇㅇ는 화를 삼켰다. 오해 받게 더 그러지 마라.
ㅇㅇ가 다른 친구들과 혹 제형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전혀 귀찮게 하지 않았다. 웬일이야 싶어 살짝 돌아보니 자신의 친구와 뭔가 굉장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같아 우선 두기로하고 ㅇㅇ는 다시 몸을 틀었다.
"나 오늘 못 데려주는데"
"괜찮아"
"내 데려다 주께요"
"너도 들어가"
제형은 일이 있다며 ㅇㅇ의 머리를 헝클여주고 먼저 자리를 떴다. 집 가서 전화해. 응. 그렇게 제형을 보낸 ㅇㅇ는 제형의 자리를 잠깐 보고 의자를 넣었다. 또 연락해 다들. 어? 어. 동창회는 조금 늦게 끝났다, 이럴까봐 좌석 예매 안 하긴 했는데. ㅇㅇ는 자리가 끝나자마 빠르게 일어났다.
"너도 가라니까"
"넹"
"아니 집으로 가라고"
"넹"
이제 대답만 하고 말은 안 듣는다. 대답은 꼬박꼬박하고 뒤에서 걷는 도운에 ㅇㅇ는 결국 달고가야하나 싶었다. 늦은 시간이었으므로 입석 밖에 없어 표를 끊고 열차에 올라타니 또 도운이 따라탔다. 야 너 집 안 갈 거야?
"누나야 데려다주고 가도 돼요"
"아는데 피곤 하잖아"
"방금 내 걱정 해준 거가"
말을 말자 말을. ㅇㅇ는 고개를 젓고 적당한 곳에 기대섰다. 피곤한 몸이라 꾸벅꾸벅 ㅇㅇ는 금방 졸았다. 어어 넘어지면 안 되는데. 도운은 졸린 자신의 볼을 탁탁 쳐 잠을 깨우고 조금씩 고개가 떨어지는 ㅇㅇ의 앞에서 손을 올렸다 내렸다. 눈꺼풀이 내려왔으나 혹여나 구두를 신은 ㅇㅇ가 다치기라도 할까 계속 잠을 쫓아내고 ㅇㅇ를 주시하다 잠시 도운은 픽 웃었다.
"..와 이리 귀여운데"
그렇게 졸고 졸다보니 내릴 역이었다. 그때까지 잠이 덜 깬 ㅇㅇ에 도운은 어찌할까 하다 결국 ㅇㅇ를 깨워 함께 내렸다.
"야 윤도운"
"네"
근데 너 아까부터 애매하게 왜 뒤에서 따라와. 같이 걸을거면 옆으로 와서 같이 걸어. ㅇㅇ는 애매한 거리에서 애매하게 뒤에서 쫄쫄 쫓아오는 도운에 돌아서 말했다. 저 괘안은데. 뭐야, ㅇㅇ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도운의 표정에 아예 돌아서 도운을 마주해 올려다보았다.
"왜"
"아니 그게 아이고.."
"응?"
"...누나야 치마가 너무 짧아가지고"
내 오늘 아무것도 안 걸치고 왔단 말이에요.
처음부터 도운이 말하려다 만 이야기였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ㅇㅇ가 민망할까봐 말을 죽이고 있다 오르막길에 어쩔수 없이 뒤에서 걸은 이유였다. 근데 왜 네 얼굴이 붉어지는데. ㅇㅇ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도운에 작게 웃었다. 도운아 부끄러워?
"아이, 아이에요"
"아닌게 아닌데?"
"아 빨리 가요. 쫌"
어어 밀어? 누나 밀었어? 아니 안 밀었어요!
그래 봐줄게 배려 넘치니까. ㅇㅇ는 자꾸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그만 쫌 웃어요. 도운은 고개를 푹 숙이고 끝까지 뒤에서 쫄쫄 쫓아왔다.
"드가요 빨리"
"알겠어"
"아 빨리. 아 웃지 쫌 말라고"
ㅇㅇ는 결국 도운의 앞에서 빵 터져버렸다. 그래서 얼굴은 언제 돌아오는데? 아이 진짜. 끅끅 웃으며 ㅇㅇ는 발꿈치를 높게 들어 도운의 앞머리를 흩뜨렸다.
"잘 가"
"도운아"
아 이 누나, 이 내 잠 못자게 하네 또.
10.
"can you come with me?"
(오늘 같이 가줄 수 있어?)
"오늘?"
"응"
"그래"
"아 진짜 고마워"
이리와, 역시 너 최고야. 아 야야! 한 팔로 ㅇㅇ를 끌어 안고 머리를 헝클이는 제형이었다. 그런 제형에 하지말라고 저항했으나 제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도 윤도운만큼 장난 심한 거 알아? 몰라. 아 진짜 박제형. ㅇㅇ는 폴짝 뛰어 제형의 머리를 똑같이 헝클였다.
"아 오늘 머리 만졌단 말이야"
"So?"
(그래서?)
"아 ㅇㅇㅇ 이리와"
야야 네가 더 심하게 했잖아, 아 야!
두 사람은 등굣길에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렸다. 죽을래? 너도 죽을래? 옆구리를 쿡 찌르면 도망갔다가 다시 끌어 안고 똑같이 허리를 쿡 찔렀다. 참나 너 진짜 짜증나. 알아. 결국엔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다가도 다시 티격태격이었다. 아 진짜 박제형 정말로.
"누나아"
"ㅇㅇ누나아"
뭐해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도운이 가방끈을 쥐고 도도도 달려왔다. 얘가 괴롭혀서. 뭐? 야 박제형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너도 갈래?"
"어디 가요?"
"ㅇㅇㅇ랑 같이 갈 데 있어서. 너도 있음 좋고"
"그래요"
도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야 가는 데는 어디든 가죠. 참 설명도 필요 없다는 듯이 반응하고 수업 있다며 다시 도도도 달려가는 도운을 ㅇㅇ는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왜 귀엽잖아"
제형이 ㅇㅇ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럼 쟤보고 너 좋아해 달라고 해. 그건 좀 아니고.
*
"이거 어때?"
"..어? 난 두번째 꺼가 더 예쁜데"
"그래?"
제형은 ㅇㅇ의 목에 목걸이를 대보았다. 이런 게 더 잘 어울릴까? 너무 크면 또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어. 그래? 제형은 정말 집중해 목걸이를 골랐다. 그리고 그런 제형을 ㅇㅇ는 도왔다. 사실 들어오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다.
"너 해봐"
"그 사람한테 어울려야지"
"너처럼 하얘서 그래"
제형은 한참을 고심해 다시 목걸이를 골라 건넸다. 한번 해봐. ㅇㅇ는 제형에게 건네 받은 목걸이를 조심히 자신의 목에 대주었다. 너 여기서 울면 다신 박제형 못 봐, ㅇㅇ는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I think it suits well"
(..내 생각엔 그거 너한테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하나 사줄까"
"아 됐어"
왜 같이 골라주는거니까 하나 사줄게. 아 괜찮다니까 진짜. 네가 사준 걸 내가 어떻게 하고 다녀. ㅇㅇ는 절대 사지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빨리 그 사람한테 줄 거로 골라 도와줄테니까. ㅇㅇ는 제형의 어깨를 붙잡아 돌렸다. 알겠어 알겠어. 제형이 그렇게 다시 목걸이 디자인에 눈길을 돌렸을 때 ㅇㅇ는 돌아서 빠르게 눈물을 말렸다.
"고마워"
"뭘"
"너 아니었음 하루 다 샜을 걸"
제형은 포장된 쇼핑백을 흔들어 보이고 웃었다. 윤도운 너도 고맙고. 제가 뭐했다고요. 도운은 어깨를 으쓱이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밥은 다음에 사줄게. 나 간다"
"...어 어 잘 가"
"너 집 가서 전화해"
"응 알겠어"
"햄 조심해서 드가요"
제형은 먼저 쇼핑백을 들고 저 멀리로 뛰어갔다. 제형이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ㅇㅇ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갑갑했던 가슴이 그제야 풀리는 것만 같았다.
"..너도 이제 가. 나 갈게"
"데려다주께요"
"괜찮아 오늘은 혼자 갈래"
"그래도"
ㅇㅇ는 도운은 극구 말렸다. 야 나 지금 당장이라도 울 거 같으니까 오늘은 좀 가라고. 결국 말을 듣지 않는 도운을 두고 ㅇㅇ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너 따라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조용한 거리에 또각거리는 ㅇㅇ의 힐 소리만 들려왔다.
별로 늦게 집에 온 것도 아닌데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워졌다. 저녁 조금 지났는데 벌써 어두워져. ㅇㅇ는 다시 답답해지는 가슴에 숨을 푹 쉬었다. 내일이 공강이라 다행이었다, 내일 눈이 붕어만큼 불어나 있을게 너무 뻔했다. 근데 너
"언제까지 따라 올 거야"
"..."
"할 말 있어?"
너 때문에 나 아직 울지도 못하고 있거든? 할 말 있음 빨리 하고 가 너.
"..."
"할 말 없어? 그럼 이제 좀 가"
"..."
"야 윤도운"
"..아 와 또 울고 그래요"
나 이미 울고 있었어? 아 그랬지. ㅇㅇ는 도운을 피해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 할 말 있음 빨리 하고 가라고. ㅇㅇ는 눈물을 닦고 다시 도운을 올려다 보았다.
"누나 제형이형 좋아하죠"
도운의 입에서 툭 나온 말이 ㅇㅇ의 눈에서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아 울지 말라니까.. 도운은 ㅇㅇ의 눈물을 닦으려 손을 뻗었으나 그 손을 ㅇㅇ는 잡아 내려주었다.
"맞아"
"근데 안 좋아할거야"
"...누나"
나랑 걔랑 친구잖아. 친구가 누구 좋아하면 응원해줘야지, 그러니까 접어야지. 장장 삼년이나 좋아했다. 정확하겐 열아홉 겨울부터 좋아한 게 맞았다. ㅇㅇ는 다시 한 번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안 좋아할거라고 이제부터.
"..울지말라니까"
다시 한 번 도운이 손을 뻗었다. 그 손은 다시끔 ㅇㅇ에 의해 막혔으나 ㅇㅇ는 그 손을 놓지 못하고 울었다. 그 애가 아까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떠나질 않아서, 나 이제 박제형 어떻게 봐. 가로등 밑에서 그렇게 숨죽여 울던 ㅇㅇ를 도운은 한숨을 쉬고 안았다.
"미안해요"
"그냥 울어라"
이거 비밀로 해주께 그냥 좀 시원하게 쫌 울어라 누나.
그제야 ㅇㅇ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단숨에 박제형을 정리하는 게 자신이 없다, 그냥 마구잡이로 좋아하기에 우리 너무 오래됐어. 소꿉친구 아니었음 제형아 나 너 좀 좋아해도 되지 않았을까. ㅇㅇ는 자신의 주먹을 꾹 쥐었다. 에헤이, 그런 손에 도운은 제 옷자락을 쥐어주었다.
"다친다"
"누나"
누나 아프게 하면서까지 울지는 말라고. 도운 역시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라고 하는 건 아인데, 아이다. 그냥 울어라. 도운은 ㅇㅇ를 꼭 끌어 안고 등을 토닥였다. 숨은 좀 쉬면서 울어라 진짜. 정말 한참을 삼년의 짝사랑을 끊어내야한다는 그 아픔을 인정하기까지에 울었다. 그게 빨라야 했고, 그러나 버거웠다. 나 어떡해, 너한테 물으면 안되는거 아는데
나 어떡해.
----------
원래 치댐썰은 짧게 생각하고 시작한거라 전개가 조금 빠르죠..?
병원 갔다오는 날이라 빨리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늦어 죄송합니다. 더 좋은 글, 꼭 채운 글로 다음화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