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작가가 자기가 편하데"
아니 전 불편한데요. ㅇㅇ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으나 아직 ㅇㅇ는 대리였다, ㅇ대리. 왜 하필 꼭 너는 나를 이렇게 꾹 잡아 당겨? ㅇㅇ는 영현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노려 보았다. 우리 이렇게 끝난 거 아니었어? 나 노력하고 있는 거 너는 안 보여? ㅇㅇ는 얼굴을 쓸어 내리고 문자를 남겼다.
- AA매거진 대리 ㅇㅇㅇ입니다. 신작 인터뷰건으로 섭외 연락드립니다. 혹시 시간 되시나요?
ㅇㅇ는 있는 시간도 없는 시간도 탈탈 털어 없애고 싶었다.
*
"얘 왜 이래 야 취했어? ㅁㅁㅁ한테 전화해줘?"
"...하지마"
결국 노력은 거품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여러모로 욕을 제대로 먹어야 정신을 차릴 거 같았다, ㅇㅇ는 소주를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야야 그만 마셔 너 진짜 취했어.
"원필아"
"너 진짜 취했네. 미쳤어 이름을 부르게"
"내가 결혼 엎고 어디로 잠적해버리면"
그때는 정말로 욕 많이 많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원필이 남은 맥주를 잔에 따르다 멈칫했다,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아니이 그냥.. ㅇㅇ는 그 잔을 뺏어 마셨다. 중간이 없어 좀 천천히 마셔, 아니 너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냐니까. 원필은 심각한 눈으로 ㅇㅇ를 붙잡았다.
"그렇게 정신 차리고"
"다시 만나면"
"아니다"
"...그만 보고 싶어"
나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거 같은데
73.
"여기서부터"
ㅇㅇ는 손가락으로 쭈욱 책들을 훑으며 뛰어갔다. 여기까지,
"다 네 책이면 좋을 거 같아"
"너무 긴데?"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나는 네 글이 제일 재밌거든. ㅇㅇ가 해맑게 웃어보였다, 꼭 그럴거야. 대형 서점에 올 때마다 하는 이야기였다. 저기까지는 무리 아닐까. 나 믿으라고, 나. ㅇㅇ는 영현을 뒤에서 안고 큰 등에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렸다.
"저기까지 네 책이 들어오면"
"응"
"한 번은 불러줄게"
"응?"
"오빠라고"
영현의 눈이 딱 튀어나가기 직전으로 커져 불쑥 뒤돌아보았다. 지금 내가 엄청난 동기부여 시켜주는 거야. 그런 거 같아. ㅇㅇ는 선심을 쓴다는 듯이 말했다, 죽어도 '오빠'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자존심도 쎄고 오글거린다고 매번 강영현 강영현 부르는게 일상이었다. 안아줘. 알겠어. 영현이 ㅇㅇ를 안았다. 영현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꼭 끌어 안고 ㅇㅇ는 말했다.
"공모전 불안해 하지마"
"이미 잘하고 있어"
"말도 예쁘게 하네"
영현은 ㅇㅇ를 내려 놓고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아 야 사람 많다고. 알아. 짧게 맞닿고 떨어지는 입술에 ㅇㅇ는 놀라 올려다 보았다, 죽을래?
"아니"
영현은 ㅇㅇ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이번엔 짧은 입맞춤이 아닌 길고 단 키스였다, 책을 펴 가리고 ㅇㅇ를 달콤하게 탐했다. 오갈 곳 없던 ㅇㅇ의 작은 손은 영현의 볼을 살짝 감싸쥐었다. 달다, 계속 줘.
*
ㅇㅇ는 차마 손에 들린 영현의 책을 펴지 못했다. 정말 지켰다, 저기까지 다 네 책이네. 이번엔 왜 책을 읽지 못했냐고? 대체 뭐가 두려워서? 그 답 알고 있어서 못 편 거다. 우리는 끝이 없구나, 아니 나한테 너는 끝이 없어 영현아. ㅇㅇ는 책 표면에 쓰인 영현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미안, 이번엔 읽을 자신이 없어.
"여보세요?"
- "할게요"
응? ㅇㅇ는 휴대전화 홀더를 켜 번호를 확인했다. 뭐야 모르는 번,
"..."
- "한다고, 인터뷰"
ㅇㅇ는 필사적으로 왼손에 쥔 책을 꾹 잡았다. 하마터면 그 책을 바닥으로 추락시킬 뻔했다. 휴대폰을 확인하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맞은 편에 서 있는 사람이 ㅇㅇ를 그렇게 만들었다. ㅇㅇ는 영현을 보고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마주한 상황도 당황스러웠다, 정확히 정의하자면 ㅇㅇ만 당황한 거 같았다. 영현의 표정은 그 무엇도 없었다.
"대신,"
"네가 그 책 읽고 인터뷰했음 좋겠는데"
단호한 목소리는 아니였다. 굳이 따지자면 다정한 목소리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더 읽을 수가 없을 거 같은데. 영현은 끝내 전화를 끊지도 그곳에서 떠나지도 않았다. 일 년 동안 괴로워했으니까 조금은 널 보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ㅇㅇ가 영현을 보고도 떠나지 않은 이유였다. 조금 더 차분해진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영현은 자신을 보고도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ㅇㅇ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먼저 갈게"
그리고 영현은 시계를 확인한 뒤 먼저 떠났다. 안녕이라고 인사도 못했는데 가버렸다. ㅇㅇ는 한참 끊어진 전화와 책을 바라보다 결국 그 책을 계산했다. 네 팀장님, 섭외했는데..아 네 그럼 바로 퇴근하겠습니다. 어쩌다보니 영현의 수락이 칼퇴를 선물 받았다, 야근을 하며 뻐기고 뻐기다 언젠가 읽으려했는데 이건 뭐 당장 집에 가 읽어야 할 판이었다.
*
"근데 넌 반지 안 껴?"
"답답해"
저녁을 먹다 원필의 질문에 ㅇㅇ는 무심코 제 약지를 매만졌다. 그냥 답답하고 불편해서 끼기 싫어. ㅇㅇ는 그냥 자신이 반지 끼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손에 걸리는 그 차가운 감촉이 언젠가부터 싫었어. 너 오늘 야근이지? 응. ㅇㅇ는 밥을 국에 말아 떠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책 읽어야 하는데. 무슨 책? 있어 그런게. ㅇㅇ는 휴대폰에 뜨는 알림을 확인하고 수저를 내려 놓았다.
"더 먹어라"
"..입맛 없어"
원필은 반찬을 ㅇㅇ의 숟가락 위에 올렸다. 그냥 먹어. ㅇㅇ는 원필을 한 번 바라보고 밥을 수저를 입에 물었다. 맞아, 사실 입맛 없을 자격도 없지. ㅇㅇ는 더 말 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원필이 제지했지만 ㅇㅇ는 넘어가지 않는 밥을 더 푹푹 떠 넘겼다. 천천히 먹으라고, 결국 원필이 ㅇㅇ의 팔목을 붙잡았다.
"..닦아"
그리고 옆에서 휴지를 뽑아 건넸다. 너 체해 그만 먹어. 그러나 ㅇㅇ는 원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싫어 야근하려면 배고파. 꼭 원필에게 혼날 말만 골라서 하는 ㅇㅇ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할까. 밥그릇의 바닥이 보일쯤 ㅇㅇ는 수저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물도 닦았다.
"가다가 소화제 사가"
"괜찮아"
"뭘 괜찮아, 사줄게. 가자"
"괜찮아"
원필이 수저를 소리나게 내려 놓았다. 구내 식당이라 좀 참으려 했는데, 너 진짜 말 안 들을래? ㅇㅇ는 그런 원필을 물기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왜 다 이해해"
"그냥 욕해"
"너도"
다 먹었음 버리고 가자. 원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나와. ㅇㅇ는 자리에서 원필을 따라 일어났다. 이미 속이 시원치가 않았다. 평소에 다 먹지도 못하는 양을 그렇게 밀어넣었으니 이미 목구멍까지 답답하게 만들었다. 구내 식당을 나와 ㅇㅇ는 잠시 벽을 짚었다, 약간의 식은땀이 흘렀다. 앞서 가던 원필이 뒤를 돌아 바라보았다.
"괜찮아? ..야 너 땀,"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대체. 영현을 결국 놓지 못하고 도망치듯 약속한 결혼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또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그 못된 사람은 좀 이런 거에 괜찮아도 돼. 아니 더 아파도 돼. 그러니까 별로 안 아파, 좀 있음 내려가. ㅇㅇ는 블라우스로 식은땀을 닦고 사원증을 꺼냈다. 미안한데 나 다시 올라가 봐야 돼, 먼저 가. 그와중에 다시 평온한 표정을 애써 돌이켜 짓는 ㅇㅇ를 원필은 잡지 못했다.
"우욱"
오늘은 정말 읽으려고 했는데 미안, 나 속이 좀 안 좋아서. ㅇㅇ가 다시 회사로 올라와 책을 펴들었을때 ㅇㅇ의 몸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였다. 급하게 화장실에서 미어터졌던 속을 수차례 개워냈다. 더 나올 것도 없는데 계속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래도 내려가지 않는 속에 ㅇㅇ는 한 손은 변기를 쥐고 다른 한손으로 등을 탁탁 쳤지만 끝내 뒤집어진 속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았다.
"ㅇㅇ씨 괜찮아? 어떻게 땀 좀 봐.."
"아, 아 저 괜찮아요"
동료 대리가 달려와 ㅇㅇ를 살피자마자 ㅇㅇ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아까 먹은 게 뭐 좀 잘못 됐나봐요, 저 바로 들어갈게요. 입안을 헹구고 의무적인 미소를 곧바로 지어보이는 것이 마무리단계였다.
ㅇㅇ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메일함이 꽉꽉 차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다 지운다고 지우고 있는데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메일에 대체 얼마나 그냥 둔 건가 싶었다. 그러게 스팸은 좀 꼬박꼬박 지울 걸 나 진짜 후회한다, 아 손가락 아파.
"강영현!"
"으아, 진짜 예쁘다. 빨리 와"
"..."
그리고 주구장창 스팸에 스팸만 거듭하다 퍽 몇 글자의 짧은 제목의 메일을 눌러 확인했을때, ㅇㅇ는 잠시 놀랐다.
"아씨 강영현!"
이거,
"ㅇㅇ야"
"매번 하는 말인데,"
"정말 많이 사랑해"
영상 속 ㅇㅇ는 눈이 부시게 웃으며 영현의 손을 맞잡았다. 그 손에는 분명 영현이 그때 선물한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그리고 영상은 넘어갔다, 어 이거 그건데.
"울어?"
"...어?"
"왜 울어"
매번 지하철에서 눈물 짜던 그때였다. 와 나 그때마다 운 거야? 화면 속 ㅇㅇ는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울다 영현에게 안겼다. 아 어떡해, 그리고 영현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ㅇㅇ도 영현도 퍽 어렸을 적이었다. 맞다 우리 이럴때도 있었지. 턱을 괴고 화면을 향한 ㅇㅇ의 표정이 살짝 웃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바뀌어 영상을 바라보았다.
"야야 ㅇㅇㅇ"
"ㅇㅇ야"
"우리 ㅇㅇ는 맨날 강영현 등에 업혀가서 어쩌냐"
"우으으으, 토할 거 같애.. 내려주"
화면 흔들리고 영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 이거 완전 흑역사인데, 강영현 뭐야. ㅇㅇ는 술에 떡이 돼 멍멍이가 된 자신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나 저때 왜 저런 거야.
"아 잠깐만"
"안돼 잡았으면 빼기 없어"
"쓰러질 거 같은데?"
"네 차례 아니면 나란 말이야. 아 쓰러져라 제발 제발 으으!"
어 이거 내가 찍은 건데, 이때 내가 졌던 거 같은데 아닌가? ㅇㅇ는 마치 정말 젠가가 쓰러진 것마냥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영상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저거 하나 가지고 뭘 저렇게 웃고 잘 노는 거야 진짜 미치겠다.
"ㅇㅇ야"
"ㅇㅇ야"
"나 자꺼야..조용히 해"
어 이건 모르는 영상이었다. 이불을 꽁꽁 덮고 영현의 품에 들어가 영현의 입을 막는 제 모습에 픽 웃음이 나왔다.
"사랑해"
아. ㅇㅇ의 표정이 천천히 굳었다, 아니 눈물이 고였다.
"아직도 삐졌어?"
"아 찍지마라 진짜, 죽을래?"
"알겠어 다음에는 져줄게"
"야!"
ㅇㅇ는 굳은 표정으로 계속 화면을 바라 보았다. 저땐 언제였지,
"ㅇㅇ야"
"ㅇㅇ야"
"왜!"
"사랑한다고"
기어코 ㅇㅇ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보다 더 오래 더 많이 너는 사랑한다고 해주었다, ㅇㅇ는 툭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계속 화면을 바라보다 어느순간 끝이나 다시 첫 장면을 재생하는 영상에 종료 버튼을 눌렀다.
"..."
웬만한 팀원들이 퇴근한 다음이었다. 울음이 마구 쏟아져 나온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툭툭 떨어지는 눈물을 ㅇㅇ는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메일의 날짜는 두 사람이 헤어지고 일 년 뒤 ㅇㅇ의 생일이었다.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영상과 영현은 짧은 메시지를 동반해 보냈다.
'보고싶어'
그 네글자는 차오르는 눈물에 금방 잠식 되어 보이지 않았다. ㅇㅇ는 눈물을 닦다 어이없게 웃었다. 너 울 자격 없어, 그만 울어. 아무래도 오늘은 퇴근을 해야할 거 같았다.
74.
"계속 야근이었어서 많이 피곤하죠, 영 컨디션 별로이면 그냥 중간에 나올까요?"
"네?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꼭 가야하는 결혼식이었다. 언젠가 나의 결혼식이 될 거였다, ㅇㅇ는 약간 붓기가 빠지지 않은 눈두덩이를 살살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식장은 갑갑했다. 티를 내진 않았으나 사실 공기가 텁텁하고 감흥이 없었다. 그냥 밥이나 먹고 가야지 뭐, 멀리서 원필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 이제 너도 수트빨을 좀 받는구나"
"니가 모르고 있었던 거거든?"
"근데 왜 아직도 여친이 없을까"
"조용히 안해?"
"때릴 곳이 어딨어서 때려, ㅇㅇ씨 때리지마"
넥타이를 버벅거리는 원필에게 괜한 언질을 했다 등짝을 찰싹 처맞았다. 이거 진짜 농담 한 번 했다고, 김원필 솔로 생활 힘들구나? ㅁㅁ은 원필을 제지시키고 ㅇㅇ의 등을 쓸어주었다. 안 아파요? 괜찮아요, 쟤 솜주먹이에요. 원필이 어이가 털린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그나저나 식 언제 끝나 빨리 가고싶은데.
"미안, 늦었다"
"..."
그리고 원필의 옆으로 다가온 사람은 영현이었다. 셔츠 단추를 채우며 원필의 옆으로 자연스럽게 서는 영현에 ㅇㅇ는 잠시 넋을 놓았다. 어제 본 영상 속 강영현이랑 겹쳐 보여서. 그리고 이내 영현과 눈이 마주쳤다, 영현의 눈은 많은 것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 눈을 빠르게 피한 건 ㅇㅇ였다.
"컨디션 안 좋으면 끝나자마자 갈까요?"
"..."
"ㅇㅇ씨?"
"네? ..아 저 친구한테 할 말도 있고.. 괜찮아요 가도 돼요"
불편하면 이야기하라며 머리를 헝클이는 ㅁㅁ에게서 ㅇㅇ는 그냥 옅은 미소만 주었다. 자리가 불편한데, 그것도 많이. 웬지 오늘도 체할 거 같은데. 식이 끝나고 신부 대기실을 들렸다 가느라 ㅇㅇ만 조금 늦게 뷔페에 도착했다.
"...무슨 조합이야"
"..내가 만든 거 아니야"
내가 만든 거 아니라니까, 그딴 눈으로 보지마. 이번엔 내가 접시를 가방을 내려 놓고 원필을 노려보았다. 이거 어디서 한 번 본 그림 아니냐. ㅇㅇ는 불편하게 ㅁㅁ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맞은 편에 앉은 영현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죽을 힘을 다해 힘썼다. ㅇㅇ는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씹어 삼켰다, 원필이 ㅇㅇ를 아무도 모르게 툭툭 쳤지만 그 손을 무시했다. 너 체한다고. 닥치고 있어 그냥.
"드레스 같이 못 보러 가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김원필이 가면 됐죠 뭐"
"너 보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할 말 없다. 그리고 내 눈이 제일 정확해"
어디서 개소리야. ㅇㅇ는 무미건조하게 원필을 올려다 보았다. 뭐 이 기지배야. 그리고 안 그래도 이미 체기가 올라오는데 튀어나온 결혼이야기에 ㅇㅇ는 잠시 바람이라도 쐬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으"
아 소화제 사올 껄, 강영현 오는 줄 알았으면. ㅇㅇ는 옥상 건물 벽에 짚으며 가늘게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보다 더 아픈 건 방금 들은 결혼 이야기였다. 그냥 왜 이렇게 속이 아프지, ㅇㅇ는 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갑갑한 가슴 깨를 두들겼지만 그게 아니란 걸 어찌하면 알고 있었다. ..등신, 영현이 분명 들었을 이야기였다. ㅇㅇ는 조금 더 강하게 가슴 깨를 두들겼다. 등신 진짜
"아으..,"
여러모로 스트레스여서 그랬나,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고개를 들어 찬바람을 쐬다 ㅇㅇ는 시선의 한 곳에 우뚝 멈추었다.
"..."
"아, 미안. 너 있는 줄 몰랐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다 영현도 ㅇㅇ와 눈이 마주치고 바로 물었던 담배를 뺐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나돌았다. 나 내려가야 할 거 같은데, 지금 좀 위험한데. ㅇㅇ는 급하게 뒤돌아섰다. 아, 복통이 심했다. 아니 그것보다 어딘가 더 아팠다. ㅇㅇ는 주먹을 꼭 쥐고 주저 앉았다. 너 여기서 울면 진짜 등신이야, 제발 울지만 마.
"..왜 울어"
몸이 말하는대로 말을 들으면 참 좋으련만. ㅇㅇ는 입술을 꽉 깨물었으나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는 것은 불가피했다. 영현이 ㅇㅇ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마주 앉았다. 괜찮아? 어, 괜찮아. 괜찮아 정말, ㅇㅇ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제발 말 좀 들었음 좋겠어 그만 울라고.
"울지마"
영현이 말했다.
75.
"나는 개인적으로 2번. 그나마 낫네"
난 잘 모르겠는데. 사실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네 눈엔 달라 보여? 야 네가 결혼해도 되겠다. 난 모르겠어 그냥 좀 더 보자. 휴대폰으로 ㅇㅇ가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찍고 원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맘대로 해. ㅇㅇ는 옷을 갈아입고 원필과 함께 나왔다.
"너 결혼하고 싶은 건 맞지?"
"뭐?"
"네가 네 등 떠밀진 말라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할테니까. 원필은 ㅇㅇ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네가 지금 당장 하기 싫다고 해도, 아니 그 전 날 깨도 괜찮아,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지. 뭐 깨라는 건 아니고 네가 더 행복한 쪽으로 결정하란 얘기야.
"원필아"
"감동했다고 성 떼고 부르는 건 하지 마라 진짜, 소름돋게"
"...아니다"
"뭐야 기분 나쁘게"
닥치고 길 걷자 그냥.
*
결국에는 엎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만 입히는 일인 거 같았다, 내가 그렇지 뭐.
또 미안하다는 말과 잘가라는 말로 끝이 났다. 그리고 다시 출근을 하고 강영현과의 인터뷰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했다. 오피스텔로 들어와 가방을 밀어두고 소파에 누웠다. 청첩장을 찍어내기 전에 드레스를 고르기 전에 엎어버린 건 잘한 걸까. 술 먹고 싶다, 역시 혼술이지.
"이모오- 한 병만 더 주세여"
뻘하게 취했다, 정말. 근처 포차에서 오랜만에 주량 생각없이 잔을 부은 거 같았다. ㅇㅇ는 두병정도 비운 소주병을 치우고 새 병을 받았다. 감사합니다아.. ㅇㅇ는 사실 그게 기억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진짜 미안한데 네가 좀 데려다 줄래? 정말 미안하다 야"
"미안할게 뭐있어, 일이나 열심히 해라"
"걔가 그렇게 퍼마시는 성격은 아닌데.."
"나도 알아. 데리러갈테니까 걱정 하지마"
원필은 출장중이었다. 당연지사 단축번호 일번이 원필이었기에 연락이 갔으나 데리러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미친 ㅁㅁㅁ한테 물으니 며칠전에 헤어졌다고 둘이? 원필은 얼굴을 잡아 쓸어내리다 결국 영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만하면 이렇게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게 하고 싶었으나 친구가 술에 떡이 됐다는데 걱정이 먼저 앞섰다.
"ㅇㅇ야"
"후으.."
"많이 마셨어?"
도리도리. ㅇㅇ가 고개를 저었다.
영현이 ㅇㅇ를 데리러갔을땐 이미 정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후였다. 이렇게 마시는 애가 아닌데, 결혼 준비가 힘든가. 영현은 엉망이 된 ㅇㅇ의 앞머리를 넘겨주고 자연스럽게 ㅇㅇ를 업었다. 우으응.. 괜찮아 자도 돼.
"이거 영현이 향이다아"
영현이 잠시 우뚝 발걸음을 멎었다.
"기먼필 영현이 잘 지내지? 이짜나.. 걔 엄청 말랐더라아, 나 쩌번에 우윽"
영현은 ㅇㅇ를 업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퇴근하고 바로 나온 건가. 옷 답답하겠다. 영현은 ㅇㅇ의 블라우스 단추를 몇 개 풀어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게 다 뭐야"
더 같이 있을 이유는 없었다. 영현은 꼬물거리며 이불에 파고드는 ㅇㅇ의 볼을 쓸어주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짐을 챙기려는데 아까는 ㅇㅇ를 챙기느라 정신 없어 보지 못한 아일랜드 식탁 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
영현은 차분하게 그 식탁 위를 보려 애썼다. 온통 소화제 무더기였다, 빈각이 대부분이었으나 같은 소화제도 아니고 이것저것 마구 뒤섞여 있었다. 영현은 머리를 쓸어올리고 진정하려 했다. 설마 이걸 그동안 다 먹은 거야? 영현은 손에 얼굴을 묻었다 빈 각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영현의 등이 미약하게 떨렸다. 다 괜찮은데 네가 아픈 건 아직도 좀 그렇다, ㅇㅇ야.
*
"강작가 오랜만이야, 지면 인터뷰하고 잡지 촬영 순으로 가려고 ㅇ대리 안에 있어"
책 안 읽었는데.. ㅇㅇ는 회의실 맞은 편에 의자를 끌어다 앉는 영현의 눈을 피했다.
"저기,"
"물어볼 거 있는데"
"어? 어어"
"결혼식 언제야?"
뭐? ㅇㅇ는 커진 눈으로 영현을 올려다 보았다.
"가려고"
"네 결혼식"
그 사람은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니까.
-----------------
정말 막바지입니다, 끝까지 이해해주시고 넓은 마음으로 함께 달려주신 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화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