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사귄 전 애인 갑을로 다시 재회하는 썰 11
낭만적인 어른이 되어서
w. 랑데부
56.
"깁스 풀었네"
"어. 누구 때문에"
"아직 화 덜 풀렸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강영현 좀 노려보다가 그 문제의 원고 들었어, 하 나 이거 어떻게 써. 근데 강영현이 손에 든 원고 뺏어 가는 거야, 뭐하냐 시키야.
"이거 도와달라고 안 할게"
"뭐?"
"대신,"
"우리 친구하자"
화해하자, 우리.
57.
"뭐야, 괜찮아?"
"어? 어. 야 미안해 어떡하지"
"들어가 있어. 다쳐"
쓸데없이 손이 미끄러져서 유리컵을 깨버린거야. 야 ㅇㅇㅇ 등신 진짜, 놀래서 어버버 하는데 강영현이 들어가라고 해서 우선 좀 떨어져 있었어. 영현은 곧바로 유리조각을 줍고 청소기로 잔유리 조각을 빨아 들였다. 이거 신고 있어. 그리고 영현은 슬리퍼를 건넸다, 혹시 모르니까. 야 근데 너,
"기다려봐"
다쳤음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ㅇㅇ는 영현의 손에 흐르는 피를 보고 놀라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뒤졌다. 찾았다 연고, ㅇㅇ는 흐르는 물에 피를 씻고 있는 영현의 손을 잡아 잡히는 수건으로 지혈했다. 이거 소독하고 발라야 할 거 같은데.
"기다려봐. 넌 집에 구급상자도 없어?"
ㅇㅇ는 거실 서랍을 열었다. 구급상자 대신 빼곡한 약통에 ㅇㅇ는 물음표를 달고 뒤돌아 영현을 바라보았다.
"야"
"이거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약통을 열어 확인하려 했으나 제지하고 그 서랍을 닫아 버리는 영현에 ㅇㅇ는 입을 열었다 베인 상처에 입을 닫았다. 우선 연고 바르자.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
*
"개소리했네"
"조용히 해"
원필은 픽업해 운전을 하던 영현은 원필의 핀잔을 곱씹었다. 네 말대로 개소리 맞는 거 같은데,
"어? 뭐 너네 끝난 거 아니였어?"
"아, 우선 알겠어. 물어보기야 할게 어 그래"
"누구야?"
그 ㅇㅇ가 소개팅 한 사람. 네가 깨버린 그 소개팅. 영현이 운전대를 조금 세게 쥐었다, 왜 뭐래. 네가 알아서 뭐하게.
"ㅇㅇㅇ가 알아서 하게 냅둬"
"..."
"왜 술 땡겨?"
"가면서 사가자"
영현은 더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차를 다시 출발 시켰다. 새끼 천천히 가라, 막 나가네. 내 차야.
적당히 사 아님 제대로 사, 제대로 사. 어차피 불금이야 달리자 영현은 안주거리를 사기 위해 원필과 반대 방향으로 향해 걸었다. 어, 안주를 고르는데 조금 앞에 익숙한 인영이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물건을 고르는 ㅇㅇ가.
"야"
"ㅇㅇㅇ"
안 들리나보다.
"..ㅇㅇ야"
"...ㅇㅇ야"
정말 들리지 않는 건지, 물건 두 개를 들어 만지작 거리는 ㅇㅇ에 영현은 다시 한번 작은 목소리로 ㅇㅇ를 불렀다.
"..ㅇㅇ야"
영현은 순간 뭐하는 거지 싶었다. 이렇게 부르고 싶은 이름이었는데, 잠시 마른세수를 하며 서 있는 영현의 앞으로 원필이 지나가 ㅇㅇ를 툭 쳤다. 어? 뭐야
"뭐해 여기서?"
"술"
"아. 강영현이랑?"
ㅇㅇ는 그제서야 이어폰을 빼고 어리둥절하게 영현을 언제부터 서 있었냐 눈으로 물었다. 영현은 그 눈을 피해 물건을 골랐다, 뭐야.
*
"ㅇㅇ가 더 말 안 해?"
"어"
"그냥 들키나, 내 입으로 말하나. 거기서 거기 아냐?"
"말하지마"
영현은 원필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수면제 먹는 거 말하지 말라고, 짐이 될지 모르겠는데 신경 쓰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빈 소주잔을 채우며 원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키지 않게 잘 하던지"
"알겠어"
노력한다고 노력은 해본다고. 영현은 채운 소주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근데 너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
"이번에는 피하지 말고 딱 말해. 돕든 말든 하게"
말한다고 도와줄거야? 그런 거 없어. 원필은 뭘 어쩌란 표정이었다, 너 이렇게 쭉 혼자 가시겠다고? 지랄 잘도 하겠다. 영현은 원필을 노려보았다, 뭘봐 호구새끼야.
"내가 못 잊은 거지"
"걔가 못 잊은 게 아니잖아"
"그 마음으로 친구 같은 거 하겠다고? 퍽이나"
그렇게 조금씩 다가가면 안 되나. 말 되는 소리를 좀 골라 해. 원필은 받아쳤다, 내가 보기엔 참 위험한 길 걷네. 알아도 어쩔수가 없다, 이제 정말로. 영현은 맥주잔을 꺼냈다. 얼씨구 소맥? 아주 맛갔네. 원필은 아슬한 선 사이에서 고민했다.
이 둘, 괜찮을까.
58.
"...아 토할 거 같아"
"..나도"
근데 쟨 왜 따라 왔어. 몰라 나도.
ㅇㅇ는 원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무슨 뭣 같은 상황이냐 물으면, 세상 접점도 없는 두 회사가 하필 같은 곳으로 토요일 반강제 등산이 겹쳤다. 그래서 이 가파른 산을 원필은 취기가 다 깨기도 전에 올라가야만 했고 그 옆엔 ㅇㅇ가 한심히 바라보고 있었고, 원필을 데려다 주려다 같이 온 영현까지 함께 그렇게 걸었다.
"아,"
"무거워?"
"아 어"
"줘"
그럼 고맙고. ㅇㅇ는 영현에게 가방을 넘겼다. 무거울만 했네, 영현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 맸다. 물 줘? 응 물. 중간 중간 물을 꺼내 건넸다. 친구 먹긴 먹었네, 원필은 울렁거리는 속을 삼키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 뒷꿈치 까졌어. 어디? 저기. 꼭 자신이 끼지 않아도 적당한 대화를 나누고 걸었다.
"강영현 너 집 갈 때 나도 픽업해주면 안돼?"
"알겠어"
근데 이 망할 산은 대체 언제 다시 내려가. 하 이 회사 퇴사도 못하고, ㅇㅇ는 다시 또 금방 내려가야 하는 내리막길에 지쳐버렸다. 김원필은 어디에 두고 왔더라, 어디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온 거 같은데. 그렇게 터덜터덜 걷다 힘이 빠진 발목은 반바퀴를 돌아 접질렸다.
"아! 아으.. 씨"
"괜찮아?"
"아 아니.. 아,"
내가 이래서 아침부터 쎄하다 했어, 아나 내 발목.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아 아퍼. ㅇㅇ는 인상을 찡그렸다 입술을 물고 다시 일어나려했지만 버번히 실패해 짜증도 함께 올라왔다. 빡친다, 진짜로.
"업혀"
"뭐?"
"안고 갈 순 없잖아"
영현은 ㅇㅇ의 앞에 앉아 발목을 살피고 가방을 앞으로 맸다. 너 업고 가는게 빨라. ㅇㅇ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우선 하산이 먼저였고 이 상태로 가다간 집이 아니라 병원행이 될 거 같았다. 야 근데 나 무거운데, 너 허리 부러지는 거 아니냐. 어떡하지. ㅇㅇ가 이래저래 횡설수설하니 영현은 그냥 ㅇㅇ를 업었다.
"..야 진짜 미안"
"발목 괜찮아?"
"아 어. 그냥 집에서 파스 뿌리면 될 거 같은데, 너 진짜 안 무거워?"
"안 무거워"
개무거울껄, 니가 조금 걸어서 그래. 내 몸무게는 내가 알아. ㅇㅇ는 괜히 미안했다, 넌 무슨 죄야 강영현. 그러나 영현은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그렇게 주차장까지 ㅇㅇ를 업고 내려왔다. 뜬금없는데 되게 오랜만에 알싸한 향이 났다, 강영현만의 그 향이. ㅇㅇ는 영현에게 빚을 진 것에 미안해 하였으나 영현은 그냥 차문을 열어 주었다.
"김원필은 어딨는거야"
...그와중에 김원필 넌 어딨니
*
그후로 영현과 그저 평범한 사이를 유지했다. 뭐 가끔 성격 차로 티격거리긴 했지만 오늘도 영현의 차를 타고 동창회에 가야 하는 길이었다. 신경쓴다고 썼는데 되게 어색하네. 영현 역시 만진 머리나 셔츠가 불편했다, 너도 불편하지. 응.
진짜 할 것도 없고, 왜 왔지. 동창회를 와도 어울릴 무리대로 어울렸다. 대학 생활 내내 강영현과 김원필 이 두사람과 붙어 지냈으니 사실 올 이유가 없었던 거다. 내가 무지했네. 그와중에 이 볶음밥에 오이 들어간 거 실화냐, 누가 이 신성한 볶음밥에 오이를 넣은 거야. ㅇㅇ는 그릇에 놓인 볶음밥을 보고 얼굴을 구기니 그 사이로 젓가락이 들어왔다.
"다 먹어?"
"어. 나 오이 진짜 싫어"
영현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오이를 골라 제 그릇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오이가 쏙 빠진 볶음밥을 그제서야 ㅇㅇ는 퍼먹었다. 원필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니 뭐 둘이 이렇게 지낼 거면, 시발 처음부터 이러던가. 뭘 그렇게 둘 사이서 개불편하게 물어 뜯은 거야, 원필은 그와중에 가끔씩 나오는 오이 조각을 영현의 그릇에 올리는 ㅇㅇ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하여튼 둘 다 마음에 안 들어.
"ㅇㅇㅇ 너 맥주?"
"응"
원필은 더이상의 생각은 접었다. 그래 다시 물어 뜯을땐 나 꼭 빼놓고 물어 뜯어라. 착한 내가 참아야지 뭐, 원필은 맥주에 소주를 타는 영현을 바라보다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아 조절할 껄, ㅇㅇ는 자리를 파할 쯤 고개를 도리질쳤다. 내일 출근 안 하는걸 다행으로 알아야겠는데, 아 머리 아파. 다들 하나씩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가야하는데.
"흐어..."
저거 개야, 김원필이야.
구분이 어렵게 취한 원필을 보고 ㅇㅇ는 혀를 내둘렀다. 아 물론 그 옆에 있는 영현을 보고서도 말이다. 이것들 같이 먹었는데 상태 완전 메롱이네.
"야 집에 갈 수 있겠어? 김원필, 야"
"나 갈 쑤우..이써"
"나 강영현 데려다 줘야 할 거 같은데. 진짜 갈 수 있겠어? 우선 택시 잡는다"
아 버리고 갈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아냐 의리가 있지. 아니 의리는 개뿔 얘네 눈 풀린 거봐. ㅇㅇ는 얼굴을 쓸어 내리고 대리를 부르며 동시에 택시를 잡았다. 야, 야 우선 들어가. 아저씨 출발 해주세요. 어찌어찌 택시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원필을 확인하고 ㅇㅇ는 지폐를 내밀었다. 나머지는 모르겠다, 아직 강영현이 남았으니까.
"강영현, 야 너 괜찮아?"
하필 영현의 집을 아는 것도 저와 원필이 전부였다. 그래 데려다 주자, ㅇㅇ는 대리를 맡기고 영현을 정말 간신히 집까지 끌고 들어왔다. 주정이 그리 심하거나 그런 애는 아니었으니, 근데 너 진짜 무거운 거 알아? 낑낑거리며 영현을 부축해 거실까지 데려와 그 후 소파에 던졌다. 야 미안 진짜 잠깐만 쉬자.
"정신 좀 챙겨, 강영현. 야야"
하 이걸 이렇게 두고 갈 수도 없고. ㅇㅇ는 숨을 돌리고 다시 영현을 부축해 침실까지 끌고 갔다. 아, 야야 엄마. 영현을 집어 던진다는게 저 역시 같이 누워 버려 흠칫 놀랐으나 영현은 아무렇지 않은 거 같았다.
"..괜찮아?"
"뭐?"
"속 괜찮냐고"
얘 왜 이래. 영현의 손가락이 ㅇㅇ의 잔머리를 치웠다, 그리고 볼에 닿았다.
"너 많이 취한..."
"..좋다"
"..좋다"
"옆에 있는 거 좋아"
"너 이렇게 옆에 있는 거"
"같이 자자. 내일 데려다 줄게"
"..가지마"
"....오분만"
너도 나도 취해서 그런건가, 그때처럼 다정한 표정과 행동 웃음이 정말 그때 너 같았어. 술김인지 뭔지 등을 토닥거리는 손에 어찌할 줄 모르고 ㅇㅇ는 작게 숨을 쉬었다. 어떡하지. 잘 때까지만 옆에 있지 뭐, ㅇㅇ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리고 영현이 잠들 때까지만 옆에 있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영현은 ㅇㅇ의 작은 손을 쥐었다, 엄청 취했네 강영현. 너 지금 누구 손 잡은 건지는 알아?
ㅇㅇ는 그 손을 내려다 보다 정말 잠이 든 듯 새근거리는 영현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아"
그렇게 일어서려는 ㅇㅇ는 좀 더 제 손을 꽉 잡은 영현을 바라보았다.
59.
"잘잤어?"
"응"
"세상모르고 잠들더라?"
"그랬어?"
너 엄청 잘 자더라. 졸린 눈을 비비는 영현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귀여웠어.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넌 모르잖아. 영현은 ㅇㅇ의 입에서 나온 말에 황당했으나 또 그런 ㅇㅇ가 반대로 귀여웠다. 그리고 더 품으로 파고드는 ㅇㅇ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너는 잘잤어?"
"응, 너 보다가 잠들었어"
"그랬어?"
ㅇㅇ의 작은 발이 영현의 발 위에 겹쳐 섰다. 마치 걸음마를 떼듯이 영현의 위에 올라 걸었다, 얼마 못 가 내려왔지만. 아침이라 더 그런거야? 어리광이 심한 ㅇㅇ를 영현은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으응"
"알겠어. 이리와"
너 잠 덜 깼지? 어 사실 좀 그런 거 같아, 내가 너보다 늦게 잤잖아. 다시끔 안겨오는 ㅇㅇ를 안아 주었다. 따뜻해. 그래? 눈 떴을 때 너 있어서 기분 되게 좋았는데, 넌 모르지? 내가 왜 몰라. 찬 바람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한 날씨였으나, 너무 따뜻한 아침이었다. 아마 강영현이 있어서 그랬겠지.
60.
"....하"
영현이 눈을 떴을 땐 오후였다. 거의 열두시간을 내리 잤다, 그리고 잠든 ㅇㅇ에 숨을 죽였다. 어떻게 온 건지 필름이 제대로 끊겨 생각도 잘 나지 않았다. ..아, 그와중에 따뜻한 온기에 내려다보니 제가 꼭 쥔 작은 손이 있었다. 미쳤다, 강영현. 영현은 그 손을 내려다보고 다른 한 손으로 마른 세수를 연거푸 하고 다시 쌕쌕거리며 잠든 ㅇㅇ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ㅇㅇ의 볼을 깨지 않게 쓸었다, 진짜네. 꿈 아니구나. 영현은 복잡한 마음에서 벗어나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다시 잠에 들었다.
"..밥 먹고가"
그리고 다시 한참을 있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일어났다. 해가 질 무렵에서야 말이다, ㅇㅇ는 비척비척 짐을 챙기다 문득 어젯밤과 비슷한 어투로 들린 영현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그냥 혼밥하지?"
"싫음 말든가"
아 저 까칠, 진짜. 그래 어제 취해서 그랬구나, ㅇㅇ는 곧바로 짧아진 영현의 말투에 주정으로 수긍하고 영현의 집을 나섰다. 드럽게 까칠하네.
*
"..허"
지금 몇 번째야, 강영현 죽어 진짜. 영현과의 인터뷰 질문을 수정하고 컨펌 받고 회의 커피만 몇 번 타는 거야. ㅇㅇ는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팔을 부여잡고 영현을 씹었다. 하 진짜 그냥 좀,, 퇴근하고 싶다. 회의와 잡무 다시 회의와 잡무, 직장이랑 연애라도 해야 화를 식힐 수 있을 거 같았다.
더불어 지옥철이었다. 진심 월요일은 사라져야 돼. 아, 이 지하철도 같이. ㅇㅇ는 겨우겨우 붙잡은 손잡이에 달달 딸려 퇴근길을 맞이했다.
- 혹시 시간 되시면 연락 주세요
이거 뭐야. ㅇㅇ를 깐 그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누가 깼지만. ㅇㅇ는 그 휴대폰 화면을 뚫어지게 보다가 답장을 찍어 보냈다, 아 집 가서 빨리 쉬고 싶다. 지옥철에서 기어 나와 어떻게 씻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문제는 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거다. 따뜻하게 샤워까지 마쳤는데 잠은 개뿔, 맥주 한 캔을 까 소파에 드러누웠다.
"어,"
쟤도 안 자는 건가, 아 글 쓸 시간이네. 무심코 바라본 창문에 영현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꺼지지 않은 불빛에 쟤도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맥주를 들이켰다.
"여보세요? 뭐야"
"안잤어?"
"응"
"나올래?"
걷자.
영현의 전화에 그렇게 수락하고 나와 근처 공원을 걸었다. 넌 안 피곤해? 그냥, 그닥. 사실 별 거 하지도 않고 그렇게 걷는데 조금 추웠다. 이제 좀 슬슬 추워질 때긴 하지.
"추워?"
"어 조금"
"이제 들어가자. 오래 걸었다"
영현은 입고 있던 후드 집업을 건네며 말했다. 똑같이 바람 부는데 넌? 난 괜찮아. 그래 그럼 입을게. ㅇㅇ는 영현의 후드집업을 걸쳐 입었다. 돌아오는 길에 둘 모두 느린 발걸음으로 걸어왔다. 원래 발걸음 빠르지 않았나, 아니 느렸나. 그냥 그저 그런 잡생각과 함께 걷다보니 횡단보도를 같이 건넜다. 넌 왜 따라와.
"들어가"
"응. 아 이거"
"그냥 입고 들어가. 나중에 줘"
"알겠어 나 간다"
ㅇㅇ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아 이제 좀 졸리네, 응?
"왜?"
"물어볼 거 있어서"
그리고 갑자기 잡힌 팔목에 다시 돌아 영현을 올려다 보았다. 왜 뭐? 영현의 그리 차갑지도 따스하지도 아니 좀 누그러진 눈이 마주쳤다. 왜?
- 내일 만날 수 있을까요? 01:15
"너는 아직 내가 미워?"
"뭐?"
"나는 더이상 네가 밉지 않은데"
"..."
"사실 미워한 적도 없었던 거 같은데"
너는 그 날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했던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네가 생각날 때부터 사랑일까
머릿 속에서 떨쳐 내려고 애쓰는 순간부터 사랑일까
- 이애경,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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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그리고 항상 건강한 하루들만 있길 바라겠습니다.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