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호석의 입에서 욕지꺼리가 튀어나왔다.친목 도모.그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이곳에 호석이 자리해있는 것도 이곳에서 숨을 쉬는것도 어색했다.호석이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센티넬이라는 것을 다 까발린 상태로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은 왠지 모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이 어릴때부터 센티넬이라는 이유로 행했던 호석에에 대한 차별과 눈초리들이 십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에게 트라우마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호석은 센티넬들과 안목이 없다.그러나 그들은 서로 친한 센티넬들이 있고 감정을 공유한다.호석은 그들의 주변에서 겉돌기만 할 뿐.이런 센티넬을 위한 친목도모 파티는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호석에게 두달마다 열리는 이 성대한 파티는 참석을 안할수는 없고 하기는 그 무엇보다 싫은 고통의 대상일 뿐이었다.
"가뜩이나 몸상태도.."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하는 머리에 호석은 가까운 자리에 털썩 앉았다.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을 있었을까.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호석이 힘겹게 얼굴을 들었다.
"호석씨?"
"윤기씨?"
얼굴 가득히 의외라는 감정을 담은 그 표정이 조금은 웃겼다.그도 센티넬이었던가.조금은 가까워 졌다고 생각했던 호석은 이내 윤기에 대해 아는것이 너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밀려들어오는 씁쓸한 마음에 깊게 한숨을 쉬었다.그런 그를 걱정하듯 앞자리에 앉은 윤기는 다정했다.
"어디 아파요?"
"아뇨.."
"안 좋아 보여요."
"괜찮아요.그만 가봐도 돼요"
"그래도.."
쉽게 떠나가지 못하는 윤기에 호석이 더 단호한 어조로 말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잠시 고민을 하는 듯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센티넬이에요?"
"네?"
"센티넬이었어요?"
"에?아니에요"
"아.."
"불편해 하는것 같으니까 갈게요"
윤기의 떠나가는 모습이 어딘가 아쉬워보였다.그러나 어차피 이 파티장을 나갈것이었기에 미련은 없었다.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아픔을 해소하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않았다.일단 집에 가기위해 눈에 띄지않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단에 정호석씨 있어요?"
분명히 들려온 자신의 이름에 호석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그곳에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남준이 서 있었다.어째 매번 정장을 갖춰입고 만나는 것 같았다.그는 아직 호석을 발견하지 않은 듯 했고 만나면 더 귀찮아질 것 같은 마음에 호석은 급히 파티장을 나섰다.
"후아"
바깥으로 나오자 부는 시원한 바람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그러나 띵한 머리는 여전했다.좋지 못한 기분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때에 청량한 문자음이 나의 정신을 밝혔다.아니나 다를까 예상했었던 쓸모 없는 실험에 관한 문자였다.
"내일이 마지막..?"
내 눈을 사로잡아버린 그 단어에 우울하던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내일이면 지긋지긋한 힘든 일들을 모두 청산할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요즘은 한숨을 입에 달고 사는것이 호석 자신이 느낄수 있을 정도로 황폐해졌다.삶의 낙이었던 탐욕은 잃어버린지 오래였다.그럼에도 다시 바로 찾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허약해진 체력때문에 센티넬 사용시간이 너무나도 짧아졌다.고작 3초의 시간을 멈추고 헉헉거리며 한계에 도달해버리는 나는 이 빌어먹을 실험의 희생양이었다.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유난히도 별이 많은 밤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호석씨.잘 부탁해요"
오늘도 짙게 나는 역겨운 화장품과 향수냄새에 호석은 치가 떨렸다.허나 이 세상은 돈이면 다되는 물질 만능주의였기 때문에 호석은 반박할수가 없었다.그저 주먹을 꼭 쥐는것이 그가 할수있는 최선의 방법일뿐.오늘도 호석이 실험실로 들어섰을때 아무 표정없는 연구원들과 윤기가 그를 반기고 있었다.호석이 보는 윤기는 이곳에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칸 안에 들어가시면 돼요"
호석은 군말없이 칸 속으로 들어갔다.투명한 유리막이어서 바깥에서 안이 보이는 것은 물론 안에서도 바깥이 잘 보였다.처음 들어와 보는 내부를 훑던 호석의 시선이 연구원에게로 닿았다.그러자 연구원이 알수없는 제스쳐를 했고 그것을 알아들은 듯 조심스럽게 윤기가 다가와 문을 살짝 열고는 물과 알약을 호석에게 전달해주었다.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아는 호석은 그 알약을 삼켰다.이 곳에 와서 수백알도 넘는 알약을 먹은 호석이었다.얻어간 것은 알약을 잘 삼키는 것 밖에 없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호석의 머릿속에서 퍼져나갔다.
"센티넬 사용 부탁해요"
안그래도 부족한 피에 고생하고 있던 호석이 알게모르게 표정을 찌푸리며 손끝에서 세어나오는 피로 혀를 축였다.어딘가 비린 맛이 혀에 감돌고 온 세상이 또다시 고요해졌다.그렇게 한 10초가 흘렀을까 평소보다 오래 지속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형편없는 시간이었다.아마 그들이 자신에게 먹인 것은 능력 증폭의 약일 것이라고 호석은 생각했다.그리고 고개를 들었을때 두개로 나뉘어서 보이는 윤기와 연구원들에 호석은 어지러웠다.발쪽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듯 시린 바람또한 칸에서 불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그 바람의 근원이 자신이란 것을 호석이 알아챈 순간 그는 이성을 잃었다.
분주하던 연구원들의 눈이 하나 둘 호석에게로 집중되고 곧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순식간에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바람에 얇은 칸막이가 쿵쿵거리다가 결국은 부서졌다.
"진정제!!!"
"진정제 가져와,어서!!!!!!"
"호석씨!정신차려요!!"
냉정함밖에 없을 줄 알았던 연구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고 연구실의 온갖 약과 세포,도구를 담아놓은 유리창들은 산산히 부서졌다.그들이 떨어지며 엄청난 소음이 발생했지만 호석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그의 몸이 경기를 일으켰고 그 떨림이 더 심해질수록 바람은 더욱더 강력해졌다.사람이 다가오지 못할 정도의 세기에 연구원들은 손바닥에서 진정제만 굴릴뿐 아무짓도 하지 못했다.
호석이 폭주했다.
"정호석"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남준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마치 바람따위 존재하지 않는것 같은 고고한 걸음걸이였다.늘 그렇듯 그는 정장을 갖춰입은 차림이었다.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남준은 자신의 센티넬로 자신의 주변에 부는 바람을 아주 조금 억제할수 있었고 그래서 그에게 조금씩은 다가갈수 있었다.상황과 맞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침착한 걸음걸이였다.윤기가 안간힘을 쓰며 주저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겨우 벽에 붙었고 그때 남준은 호석의 앞까지 당도했다.
"정..호석"
허나 그는 가이드의 힘이 없었다.그 답답함에 그는 욕을 읊조리며 호석의 이름만 애타게 부를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남준의 센티넬 무효화로 인해 바람이 미세하게 약해졌고 그 틈을 타 윤기가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호석에게 다가갔다.
"정신차려!!!"
남준이 호석을 끌어안았다.칼날같은 바람이 그의 배와 등,어깨 뿐만 아니라 다리까지 파고들며 상처를 남겼다.피가 바닥에 흩뿌려졌지만 남준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으으...."
호석이 털썩 주저앉고 눈에 보이지 않을 진동이 그의 주변에 일어나더니 남준이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남준을 신경쓸 겨를이 없이 윤기가 가까이 갈수록 온 몸에 생기는 생채기를 무시하고 호석에게 다가갔다.그의 탁한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마치 정신이 나간 듯 했다.
"호...호석....."
탁.윤기가 힘들게 호석의 손을 잡아채고 자신의 품에 그를 가두었다.바람이 그에 대항하듯 세게 몰아쳐왔다.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놀랍게도 호석의 폭주가 멈추었다.호석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윤기가 안심해 뒤를 돌아봤을때 남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윤기...씨...."
호석의 허망한 눈동자가 유리조각이 나뒹구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자신이 무슨일을 벌인지 안다는 듯 윤기에게 대답을 갈구해왔다.그에 입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을 미처 닦지 못한 윤기가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소개하게 되서 좀 갑작스러울텐데.."
"무슨 말이에요"
"정식으로 인사할께.반가워요."
"........."
"정호석씨 가이드,민윤기에요"
암호닉&주절주절 |
희망이님 BEEN님 짐니님 항상 사랑하는 거 알죠? 이번편은 윤기의 정체가 밝혀졌어.헷헷.다음이야기도 빨리 들고 올게요.늦게와서 미안해,다음편도 기대해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