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달에닿아 - 별의 축제
푸른 밤을 가르고 별자릴 밟으며 은하수를 건너서 네게 닿아
너는 나를 꼭 안고 다정히 인사해
어서 와. 기다렸어.
많은 밤을 지나서 많은 길을 건너서
비로소 만난 우릴 축복하는 별들의 축제
# 스물 여덟번째 이야기. 많은 길을 건너서
☆★☆★☆★
대학생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새로운 학번이 주어지고, 과 소속이라는 단어가 주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축하를 해 주었고, 혹자는 질투하기도 했다.
나는 그저 웃었다. 감사해요, 아니에요.
주말 동안 머리를 짧게 잘랐다.
어깨 한참 위에 올라가있는, 칼단발.
화장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캣츠라인으로 살짝 아이라인을 올려 그리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마음고생을 하며 살이 빠졌더니, 쌍꺼풀이 자연스레 생겨 있었다.
쌍꺼풀 수술할 돈이 굳었다고 자기 위로를 하며 화장법을 바꿨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립 컬러도 더 현란한 걸 고를 수 있었다.
나는 코랄핑크색을 선택했다. 고등학생에게는 너무 어려운 색을, 대학생인 나는 립스틱으로 간단히 그어버렸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겨울의 거센 바람이 몰려오는 날에,
나는 발목까지 몸을 감싸며 내려오는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섰다.
이어폰을 꽂고, 지하철을 타고, 2호선의 지옥 같은 공기 사이에서 간신히 숨을 쉬고.
지하철에서 가까스로 내려 플랫슈즈를 사뿐히 플랫폼에 내딛었다.
천천히 걸어서,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고.
익숙한 건물로 들어섰다.
"선영아!"
"어, 징어야. 마침 잘 됐다. 나 좀 도와줘."
"왜? 뭐 만들어?"
"음.. 우리 과 홍보물."
"홍보물을 왜? 신입생 모집 기간도 아니잖아."
"그냥.. 우리 좀 있으면 MT 간대."
"그걸 너한테 시켰어?"
"뭐 어떡하겠어. 4학년 과대 언니가 나랑 친하잖아."
"왜? 너 고등학생 때 연애했구나?"
"응. 아니, 그렇기는 한데."
"왜? 나는 모르잖아, 누군지. 잘생겼어?"
"응. 잘생기고 키 크고 공부 잘 하거든. 걔가 나랑 같은 대학 오기로 약속했었어."
"아, 그럼 헤어졌던 거야?"
"음.. 헤어지자고 말은 안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좀."
"어느 과야?"
"아마도.. 여기 입학했으면 의예과?"
"그럼 만날 수도 있겠네! 우리 바로 옆 펜션에서 지내는데?"
"어?"
선영이가 내 팔을 꼬집으며 웃었다.
"많이 좋아했나봐. 표정에서 딱 느껴져."
-
신입생의 MT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었다.
선배의 눈치도 보이는데, 술도 잘 마실 자신이 없었다.
선영이야 과 선배들 중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나는?
선영이와는 간단하게 친해졌다.
1교시부터 수업이 있는데 건물을 찾지를 못해 핸드폰만 달깍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선영이가 말을 걸었다.
"C관은 저기 있는데, 너 나랑 같은 수업 듣지?"
그 이후로 쭉 둘이 다니기 시작했다.
나랑 똑같은 머리 스타일에, 비슷비슷한 키, 그리고 비슷한 패션 스타일을 가진 친구였다.
가끔 둘이 쌍둥이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아주 커다란 가방에 옷가지들과 약, 그리고 다른 것들을 챙기면서 생각했다.
혹시 찬열이와 마주치면 뭘 해야 하지?
그런데 찬열이가 나랑 같은 대학을 가기는 했을까. 의예과가 맞는 건가.
버스를 타고, 선영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정말 대학생이구나. 실감이 났다.
지갑에 민증이 꽂힐 때도, H대 영어영문학과 학생증이 꽂힐 때도 실감나지 않던 사실.
이거는 비밀인데.
내 지갑 속에는, 찬열이의 증명사진이 들어 있다.
내 사진과 나란히 들어서, 카드 거울로 가려져 있다.
그 이후로 다시 볼 생각도, 꺼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막연히 여기 들어있겠거니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와 늘 찬열이가 함께라는 그런 기분만 주기 위한 것이었다.
MT 장소는 소박했다.
계곡이 보이는 충청도 어느 지방이었다.
펜션이 밀집해 있었고, 그 펜션들이 하나의 계곡을 끼고 있었다.
우리는 펜션 입구에 영어영문학과 어쩌고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보통 과들은 엄청난 체력 훈련을 시킨다고 했지?
그렇지만 우리 과는 여초였고, 대부분 의욕도 없고 체력도 없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그냥 뜨끈한 바닥에 배깔고 누워서 잠이나 자길 바라셨다.
힘없는 후배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충전기를 꽂고 구석에 앉아서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그렇게 자주 들어가지는 않고, 원래 일주일에 한 번 들어갈까 말까인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어제자 크리스탈 무보정 직찍'
'너무나 사랑스러운 설리♡'
나는 천천히 좋아요를 눌렀다. 아마 정수정이랑 최진리가 이걸 보겠지.
카페에 가서 허세샷을 찍어 올리는 애들도,
남자친구랑 찍은 사진을 올리는 애들도,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명언을 공유하는 애들도 있었다.
'끝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캡쳐를 하고 홀드버튼을 눌렀다.
선영이가 계곡 쪽으로 나가 보자며 손을 까닥였다.
핸드폰을 꼭 쥐고 몸을 일으켰다.
-
계곡에 들어갈 생각은 단연코 없었다.
그냥 주변 돌가에 앉아서 멍하니 건너편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는 찬열이가 있었다.
"쟤가, 맞지."
"어. 응. 맞는 것 같아."
"진짜 의예과였네."
훨씬 더 커지고, 남자다워졌고, 약간 노란빛이 도는 머리는 좀 길다 싶을 정도로 내려와 있었다.
멋있게 컸네. 과에서 인기 탑 먹는 건 아닐까?
여자친구가 있을까? 있겠지. 당연히. 저렇게 멋있는 애를 가만히 냅둘 리가.
그런 내 고민을 끝내주듯, 무슨 술게임이 진행되었다.
하필 계곡은 그렇게 넓지 않아서 충분히 뭘 하는 지도 보이고, 마이크로폰에 대고 진행하는 소리도 당연히 들렸다.
그리고 첫 주자는 찬열이었다.
선배들의 지시에 안절부절못하던 찬열이가 결국 과 여자애한테 입술을 갖다댈 때, 나는 벌떡 일어났다.
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차올랐다.
선영이는 내 손만 꼭 잡아주었다. 선영이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선영이한테 사과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우리 펜션 쪽으로 돌아가며, 마지막으로 욕심이 나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찬열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애와 손을 잡고 있던 찬열이는 내 눈을 그저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나는 선영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후에 내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조금 더 내리자,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박찬열 ㅣ ***님과 연애 중'
나는 멍하니 액정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나도 남자친구나 사귈까.
☆★☆★☆★
...!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썼읍니다 김베브가 1일 1연재라니
선영=박선영=f(x) 루나입니다. 어디서 함수 여덕 냄새가 나지 않나여?
-혹시 오해하실까봐 사족을 달자면-
찬열이가 왜 다른 여자를 만난 건지에 대한 이유는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냥. 그런 겁니다. 둘 다, 서로를 버렸다거나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일체 하지 않을 거에요.
마음 속으로는 둘 다 헤어진 게 맞으니까요 ㅠㅅㅠ. 애초에 서로가 서로에게 애인이 있더라도 개방적인 마음을 갖고 있어요.
좀만 기다려주세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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