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취향을 존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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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호모요정 JARA에요'-'// 전편 암호닉 남겨주신 여러분 기억하고 있어요 다만 귀차니즘 땜에 리스트는 fail.. 모의고사 잘 보셨나요? 집에서 열심히 기도했어요 특히 외계쏘녀님 왕댜님 힘내세요 팍팍 그리고 짱! 보고있나? 녀취존 6번째 대령이요 당신 학교에서 오자마자 보여주려고 피크 시간대를 포기했다..
ps. AAA도 열심히 읽어주세요 하트하트 |
“저, 도경수랑 같이 하고 싶은데요.”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람. 학기초지만 반에서 몸 쓰는 분야로는 난다 긴다 하는 김종인이 파트너로 날 지목했다. 반 아이들의 눈이 모두 나를 향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손을 휘휘 내저어 싫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현했지만, 담임과 김종인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출전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놓았다. 망했다. 그리고 그 날 밤은 잠을 쉬이 이룰 수 없…기는 무슨. 이불 걷어차며 잘 잤더란다.
다음 날 아침이 문제이긴 했다. 변백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치하지 않은 반티를 입고, 신발장에 꼭꼭 숨겨두었던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어도 찌뿌둥한 몸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등교길은 꽃길처럼 완벽했다. 김종인이 날 보며 한쪽 입꼬리만을 올려 웃어준 뒤부터 본격적인 문제의 시작이었다.
하루종일 김종인과 몇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모든 시선과 대화가 김종인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그녀들은 동정표라도 던져주듯 내게도 말을 걸어왔다. 김종인은 잘 웃다가도 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자신에게 쏠려야 할 온갖 관심 지분 중에서 몇이 날 향해 그런 걸까. 아니면 슬프지만 좋아하는 여학생이 그 틈에 끼여있기 때문일까. 어느 길로 가도 생각의 도착지는 같았다. 내게 말을 거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내가 싫지만 않다면야 다행이었다.
“2인3각 준비해!”
결전의 순간이었다. 넘어지지만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출전하는 학생들 중에서 어색하기로는 단연 나와 녀석이었다. 둘러보니 변백현도 아주 의외로 경기에 나가는 듯 싶었다. 비록 날 보지는 못했지만. 옆에서 김종인은 바쁘게 움직였다. 뭘 하나, 보았더니 발목을 묶을 줄을 가지러 간 것이었다. 별 것 아닌 일에 이렇게 민감해지는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서,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릴 수 밖에 없었다. 심장이 가쁘게 뛰어왔다. 하나님, 제발 넘어지지만 않게 해 주세요… 아멘.
“뭐 하냐?”
“어? 아니 그냥….”
”발목 이리 붙여봐.”
녀석은 나와 같은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있었다. 걸어 봐. 내가 걷는 걸음에 맞추어 아디다스 두 짝이 같은 호흡으로 움직였다. 뒤뚱뒤뚱거리는 내가 못미더워 보였는지, 김종인은 내 팔을 잡아 제 허리에 감쌌다. 깜짝 놀란 탓인지 심장이 쿵쾅대며 뛰었다. 내 어깨엔 어느새 녀석의 팔이 올라와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녀석과 살과 골반께가 스쳤다. 짜증나는 건, 녀석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여학생들 상대하던 버릇이 여기서 드러나나, 싶었다. 그래! 나 스퀸십엔 쑥맥이다! 왕초보 쑥맥! 마음 속에선 불끈불끈 솟아났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기로 했다.
“학생들은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너. 넘어지지 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아이들과 급하게 짜맞춘 순서는 네 팀 중 세번째였다. 곧 수직하강 하는 롤러코스터의 탑승객처럼 심장이 마구 뛰어왔다. 아마 김종인은 그걸 들었나보다. 풉, 하고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떨려? 눈이 맞닿았을 때, ‘떨림 지수’는 100을 초과하기 직전이었다.
“나 때문에 떨리는 건가?”
그래, 조금은 그럴 수도 있겠지 싶어 부정하지 않았다. 어깨에 걸쳐져있던 김종인의 손이 내 볼을 꼬집었을 땐 질겁했지만.
* * * * *
점심시간, 김종인은 오세훈을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나름 선심 써준다고 같이 나가서 축구 한 판 하자, 말을 건넸지만 거절한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멋쩍었는지 입맛을 쩝 다시며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아까 꼬집혔던 볼을 만졌다. 계주를 볼 때도, 들어와서 밥을 먹을 때도, 내게 말을 걸어올 때도 계속 그 생각만 나기 일쑤였다. 사람 마음 헤집어놓고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녀석은… 아직까진 머릿속에서 구제불능이었다. 이리튀고 저리튀는 탱탱볼 혹은 럭비공처럼.
창가에 있는 책상 위에 걸터앉아 녀석의 축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끔 녀석이 내쪽을 보긴 했지만 내가 고갤 돌리는 바람에 나인 것을 알아차리진 못했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교실엔 나 혼자였다. 변백현에겐 기대조차 않았다. 다만 섭섭했던 건, 날 향하던 동정표들이 김종인에게 쏠린 것이었다. 녀석이 공을 잡기만 하면 구령대 쪽에선 함성소리가 터졌다.
“김종인, 패스!!”
“오세훈 꺼져!!!!”
오세훈이 장난스럽게 김종인의 앞을 막아섰다. 씨발! 욕지거릴 내뱉은 김종인이 뒤에 있던 김준면에게 백패스로 공을 주었다. 함성소리가 두 배로 커졌다. 김준면이 멋지게 골을 성공시키고, 김종인과 함께 세레모니를 했다. 교실에서 듣는 함성소리가 이렇게나 큰데, 김종인 귀청 떨어지겠네. 하고 생각할 무렵 김종인이 기습적으로 내 쪽을 보았다. 이번엔 예의 그 미소가 아닌, 아주 환하게 웃는 미소였다.
“도경수!!!!!!! 너인거 다 알아!!!!!!!!!!”
김종인이 손을 들어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쑥스러웠지만 작게나마 화답했다. 창문을 열어다오! 대사는 없었지만 암묵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김종인은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보았다. 점심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은 달갑지 않아야 할 텐데, 약이라도 먹었는지 금방이라도 운동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