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입니당.
그리고 번외 <연애의 시작> 마지막 편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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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대의 예상대로 백현이 있다는 한 대학병원의 앞은 기자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도저히 뚫고 들어갈 여력이 없던터라 종대가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도 경수는 그저 그런 종대의 뒤에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결국 종대가 경수의 팔을 잡아끌며 다시 차에 타려는데 급하게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형!!"
"어, 현석아."
백현의 매니져 현석이었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대고 머리는 산발을 해선 종대의 자켓을 잡고 허리를 숙여 숨을 고르기가 무섭게 경수의 손을 잡고 뒷문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종대는 방금 제가 무슨 일을 겪은건지 몰라 두어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는 급격하게 몰려오는 분노를 참지못했다.
"아니 씨발 내가 무슨 사랑의 메신져야 뭐야. 맨날 존나 도경수 씹덕후 대타 뛰어주는 것도 모자라서 걱정되서 여기까지 기껏 왔더니 사람을 패대기치고 도경수만 데리고 날라? 아주 기분 존나 날아갈듯 산뜻하네? 그래 나는 사랑의 카톡 김종대다 씨발. 사랑의 라인이고 페북이고 인스타다 이 변백현 씨발라마야. 이 초딩 카스같은 새끼."
아무리 욕을 해도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를 안고 종대는 자신의 차로 씁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뒷문까지 경수의 손을 잡고 뛴 현석이 엘리베이터에 오르고나서야 경수의 손을 급하게 떼어냈다.
"형. 이건 제가 형 손을 잡은게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살결이 닿은거니까 백현이형한테는 아무 말도 하시면 안돼요. 아시죠?"
살결이 닿았다는 말이 더 변백현의 기분을 잡치게 할 것 같은데...경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높은 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꽤나 길었다. 경수는 애꿎은 손톱만 자꾸 들여다보는 현석을 작게 불렀다.
"현석아."
"네?"
"백현이...언제부터 아팠어?"
"아...그냥 한 3,4일 됐어요. 요즘 스케쥴이 워낙 많잖아요. 거기다가 형 보러간다고 안그래도 없는 쉬는시간 잘라서 형네집까지 맨날 가니까 더 힘들었겠죠 뭐. 또 제가 모는 차는 죽어도 안된다고 자기가 운전을 하니까...가 아니고. 경수형..아니 그게..."
"....그랬구나."
현석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던 제 주둥이를 매우 치고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변명할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는 백현의 병실이 있는 층에 도착해 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경수의 뒷모습을 보며 현석은 부디 경수가 제가 전한 말을 백현에게 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변 백 현 님'
가장 높은 층의 가장 끝쪽에 위치한 병실 문에 달린 이름표는 굉장히 낯익은 그것이었다. 내애인 변백현. 경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미닫이 문을 열었다. 소리없이 열린 문 사이로 하얀 슬리퍼가 보였다. 경수는 다가가지 못하고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 그자리에 멈춰섰다.
"오빠가 우리 도경수 마중을 가려고 했는데."
"....."
"이 좆같은 줄이 여기까지밖에 안늘어나잖아 빡치게."
"......"
"빼면 의사가 지랄하고."
"......"
"우리 도경수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누가 안잡아가고 잘왔네."
경수는 고개를 들어 백현과 마주했다.
"우리 도경수 왜이렇게 옷을 얇게 입고왔어. 아직 아침 추운데."
벌써 매니져가 가져다 놓은건지 백현이 쓰는 스킨, 향수, 가디건과 티셔츠들이 탁상에 놓여있었다. 백현이 손에 들린 가디건을 경수의 어깨에 둘러주며 머리를 매만졌다.
"오빠가 꼭 겉옷 입고 다니라니까 말도 안들어. 예뻐가지고."
경수는 목이 메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루 새에 백현의 얼굴이 정말 말도 안될만큼 상해있었다. 가뜩이나 살이 없는 얼굴은 더 선이 날카로워져 있었고 목소리 역시 알아듣기 힘들만큼 갈라져 있었다. 항상 입맞추던 빨간 입술은 버석히 말라있었고 경수가 가장 좋아하던 길고 예쁜 손에는 보기만 해도 아픈 링거가 두개나 꽃혀있었다. 그런 주제에 누굴 걱정하는건지...경수는 조용히 백현의 손을 밀어냈다.
"...짜증나."
"..경수야."
"짜증나 죽겠어 변백현."
"..누가 우리 도경수 짜증나게 했어 누가."
"화나..짜증나..기분도 나쁘고 우울하고 막..."
"......"
사실은...
사실은 있잖아 백현아...
나 너무...
"....슬퍼."
"......."
"나 너무 슬퍼 백현아..."
말없이 다시 저를 껴안는 백현의 팔에 길게 이어진 링거 줄을 보며 경수는 백현의 하얀 병원복을 잡았다.
"너 아픈데 며칠동안이나 몰랐던 것도 짜증나.."
"......"
"내가 변백현 애인인데 무슨 팬클럽처럼 기사로 안것도 짜증나고..."
"......"
"이렇게 너때문에 우울하고 슬프고 속상한데..."
"........"
"다시 이렇게 위로받고 기댈 사람이 너인 것도 짜증나..."
"......."
"너무 짜증나서...그래서 슬퍼.."
결국 경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번 터진 눈물은 백현의 어깨를 적시고 아이처럼 경수의 호흡을 불규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변백현은 몸이 아파 쓰러질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아픔을 느꼈다. 도경수가 짜증이 나고 슬퍼서 아팠고 그 이유가 저라서 더 아팠고, 도경수가 우니까 참을 수가 없었다. 변백현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경수가 이렇게 슬프다는게...그래서 눈물을 흘린다는게 너무 아파서 변백현은 당황스러웠다. 정말...정말...고통의 정도를 단지 '아프다' 고 표현하기에는 변백현이 지금 느끼는 이 아픔과 통증이 너무 깊고 비이상적이었다. 변백현은 억지로 입을 벌려 경수를 불렀다.
"..경수야."
아프다 경수야. 네가 슬퍼서.
"...우리 도경수..."
아프다 경수야. 네가 울어서.
"..경수...우리 경수..."
아프다 경수야. 너를 너무 사랑하나봐.
"이제..안아플게."
정말 다르게 드는 생각은 없었다. 내가 아파서 도경수가 이렇게 슬프고 힘들다면 아프지 말아야지. 오직 그생각뿐이었다.
"정말...정말이야 경수야."
도경수는 밀려드는 울음을 변백현의 어깨에 계속 토해내고 있었고 변백현은 그로 인해 밀려드는 고통을 감내하느라 말없이 꽤나 오랜시간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차마 그만 울라는 소리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백현은 우리 도경수가 울고 싶다면 울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다만 앞으로 절대 울고 싶게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네가 울어서 나는 더없이 고통스럽지만 그것도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그순간에도 내가 너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나는 견딜 수 있다고.
"백현아."
"왜 우리 경수."
"미안해."
"사랑해."
"..미안하다니까 무슨소리야.."
"나도 사랑해."
"...너 아픈 것도 모르고 전화 안받아서 막 짜증났던거 미안해."
"사랑해 우리 도경수."
"....며칠전부터 아팠는데 눈치도 못채고..나 바보같지."
"사랑해 우리 경수."
"...미안하다니까...바보냐."
경수가 말하는 미안하다는 말도 변백현은 아주 아팠다. 정말 물리적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백현은 끊임없이 경수에게 사랑을 말했다. 너에게 사랑을 말할 때 나는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니까. 고통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였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모르핀을 투여해 극한의 쾌락으로 뇌가 전하는 통각을 무디게 하는 것처럼. 진통제를 먹듯이 그렇게 사랑을 고백했다.
경수는 아직도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백현을 살짝 밀어냈다. 마주한 백현의 얼굴이 다시 봐도 너무 상해있어서 경수는 속이 상했다.
"백현아."
"...어 우리 도경수."
"아프지마.."
"...그럴게."
"아프지마 백현아..."
"그래 우리 도경수."
"너 아프니까 너무 속상해."
"......."
"그리고..."
"......."
"아프니까 너무 못생겼어 백현아."
"....뭐?"
"지금 얼굴 완전 할아버지 같아. 안멋있어 아프니까."
"...야."
"뽀뽀도 못하겠어 너무 못생겨서."
백현은 눈꼬리에 눈물을 잔뜩 달고는 농담을 해대는 경수의 볼을 쓰다듬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경수의 작은 노력을 알아서.
"어차피 잘생겼어도 못해. 너 감기 옮아."
"...괜찮은데."
"내가 안괜찮아."
"......."
"경수야."
"..응."
"약속할게."
"뭐를?"
"진짜..안아플게."
"......"
"그래서 다시는 우리 도경수 이렇게 속상하고 아프게 하는일 없게 할게."
"......"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도경수가 아프지 말라니까. 그래서 변백현은 그후로 아프지 않았다. 누가 듣는다면 코웃음 칠 일이었지만 정말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도경수가 슬프지 않을 수 있고 또 원하는 일이었으니까 변백현은 했다. 그뿐이었다. 강해지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단번에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도경수가 있는 일에 어느 것 하나 쉬울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말한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사랑해보라고. 그사람이 말하는 작은 숨결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지나치게 사랑해보면 알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근데...."
"...응?"
".....나 진짜 못생겼냐?"
아직은 연인에게 보이는 겉모습이 신경이 쓰이던 어느 가을 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