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인 밴드 (Feat. 연하남의 반란)
W. 베브
04
종인이는 끝까지 '그 남자 누구였어요?'를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배려인가 보다. 아무래도 고마운 일이었다. 말하기 쉬운 일도 아니었고 거기다가 짝사랑에 현재 썸을 현재진행 중인 사람한테 하기엔 지나치게 하드하고 안 맞는 주제였다. 대신 커피로 관심을 돌렸다.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자, 종인이는 메뉴를 고르게 시켰다. 종인이는 생긴대로 놀았다. 그래도 혹시 카페라떼 정도로 시키지 않을까 했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불러냈다. 나는 따뜻한 바닐라 라떼… 조그맣게 말했고 종인이는 알겠다며 테이블에 날 눌러앉히고 주문을 하러 갔다.
아까 본 사람, 그러니까 민석 오빠는 내 고등학교 시절의 전부였다. 그러니까, 내 첫사랑. 물론 실패했고 지금은 무서워서 피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된 사람이다. 하긴 오빠가 나쁜 건 아니었지. 오빠가 잘못한 건 딱히 또 없었다. 내 고등학교 시절 별명은 '껌딱지'였다. 입학한 순간부터 민석 오빠가 졸업하기 전까지 내내 따라다녔다. 신입생 주제에 3학년 두려운 줄도 모르고 나댔던 거였지.
그런데 좀 좋아한 게 아니라 정말 좋아했다. 병 수준으로 짝사랑을 독하게 겪었다. 오빠한테 할 짓 못 할 짓 다 해 가며 어떻게든 내게 미운 정이라도 들게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결국 안 좋은 기억으로 끝맺은 내 첫사랑은 내게 아팠던 기억이었고 병이었다. 박찬열은 아직도 민석 선배 말만 나오면 무섭게 정색을 하고 그 새끼 또 만나냐며 내 뺨이라도 칠 기세로 말했다. 그러니까 평범한 고딩 짝사랑 수준이 아니었다고. 스물 한 살 때까지 이어졌고 내 처음은 모두 오빠가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민석 오빠가 나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다시 마주치기 싫은 사람은 맞았다. 그냥 다시 마주치는 게 무서웠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어? 아니."
"벨 이리 줘요. 내가 가져올게요."
종인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내 손에서 벨을 가져갔다. 종인이를 보니 다시 깨달았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건 어쨌거나 종인이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생각나고 애써 아닌 척 안 좋아하는 척 부인하지만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인 건 맞았다. 옛날 트라우마에 빠져 현재를 놓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나는 애써 좀 웃어보였다.
"근데 너 진짜 생긴대로 논다. 아메리카노라니."
"생긴대로가 뭔데요. 나 어떻게 생겼는데."
"그냥!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눈도 뽝! 진하고, 이목구비가 그냥 남자답잖아. 시크미 흐르고. 그랬더니 얘는 또 웃는다. 그거 잘생겼단 거죠?- 맘대로 생각해라. 이렇게 대답하니까 종인이는 내 손목을 꾹 내렸다.
"그냥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건 달아서 못 마시겠던데요. 누나도 생긴대로 노네."
"난 또 어떻게 생겼는데."
"그냥. 애기 입맛 완전. 단 거 좋아하고."
"어리게 생겼다고?"
"네."
"너 그 말 다른 사람 앞에서 하면 돌 맞는다. 나 이제 이십대 중반이야. 하루하루 늙어가."
"뭐 어때요. 내가 애기 같다는데."
"그래. 너라도 날 귀여워 해주니까 다행이다."
이 때 벨이 울었다. 나는 종인이에게 눈치를 힐끗 주었다. 종인이가 일어나서 커피를 받으러 간 동안 박찬열한테 문자를 보냈다. -야 얘가 나보고 애기 같대 이거 뭔 뜻이냐.- 박찬열의 답장을 받기도 전에 종인이가 내게 바닐라 라떼를 건넸다. 나는 핸드폰을 엎어놓고 커피를 받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나 애기 같단 소리 들었다고 했다가 쌍욕 먹었어."
"누구한테요."
"친구."
"여자, 남자."
"남자."
"누군데요."
"누구일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이유없이 질질 끌며 종인이랑 눈을 마주쳤다. 사실 이러면 얘가 질투하는 거 볼 수 있나 싶기도 해서. 그러자 종인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반응이 빠르네.
"모르겠는데요. 누나 남자친구 있어요?"
"없다고 몇 번 말해. 아, 또 빈정상하게 남자친구 얘기네. 그래 미안. 박찬열이었어."
"아 찬열이 형이요? 형이 뭐래요?"
나는 흘끗 핸드폰을 뒤집어서 문자를 봤다. 답장이 안 왔다. 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보고 사십대 아저씨 만나냐던데. 아니면 콩깍지가 씌었던가, 눈알이 삐꾸거나 둘 중 하나래."
"어른스럽나봐요, 저. 아저씨 소릴 다 듣네."
"눈알이 삐꾸인 건 아니고?"
"삐꾸란 말은 또 뭔데요. 어디서 알아온거야."
종인이는 허탈한 듯 웃었다. 나는 이 타이밍에서 웃을까 하다가, 웃으면 내 볼살이 모두 리프팅된다는 걸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너는 참 안 애기 같아. 나 정수정한테 너 94라고 들었을 때 심장 토하는 줄 알았어. 잘못 들은줄."
"내가 뭐 어때서요."
"나보다 세 살은 많은줄 알았지."
"그럼 오빠라고 부르던가."
"만약에 오세훈이 그런 말 했으면 내가 뭐라고 했을 것 같아?"
"음… 이 새끼 또 나대네. 돌았냐?"
"대충 비슷한데. 그래서 어디 맞고 싶다고?"
"아 근데 누나. 나 분명히 처음 자기소개할 때 내 나이랑 같이 소개했는데."
"아 그래? 미안. 나 근데 그 때 너 엄청 자세히 봤어. 얼굴 보느라 까먹었나보다야."
"왜요? 잘생겨서?"
"아니. 나보다 몇 살 많을까 생각하느라."
"와, 진짜 너무했다."
나는 종인이가 챙겨온 스틱으로 휘핑크림을 떴다. 먹을래? 살짝 묻자 종인이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 더 들이대자 종인이가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아 이거 너무 달아요. 괜히 먹었어."
"사람이 단 걸 먹어야 머리가 돌아가."
나는 능청스럽게 대꾸하며 휘핑크림을 또 떠서 내 입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깨달았다. 미친, 간접키스네. 종인이는 딱히 그런 생각도 안 하는지 아메리카노를 쭉쭉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얼굴을 뭐라고 둘러댈까 잠깐 생각했다. 덥다는 건 너무 뻔하잖아.
"야, 나 혀 깨물었어."
"많이 아파요? 얼굴도 빨개졌네."
"야 피 나는 것 같은데…"
"봐봐요."
"뭘 봐. 곧 그치겠지."
사실 멀쩡한 혓바닥을 얌전히 굴렸다. 종인이는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귀엽다 진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손가락을 꼼질댔다. 종인이는 얼음만 쨍글쨍글 흔들리는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았다. 문득 또 정적이 찾아왔다. 실없는 소리는 다 한 것 같은데 또 할 말이 없어지니 어색했다. 무슨 얘기를 꺼내야 되지. 종인이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내가 얘기를 하면 대충 거기에 대꾸해주는 정도가 대화의 전부였다. 나는 그냥 딴청을 피웠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 섀도우 색 분석. 로즈브라운색 섀도우를 잘 깔면 되게 예쁘네. 어느 브랜드가 오늘 세일을 하고… 그런 생각을 흘렸다. 피아노랑 김종인을 빼고 내가 또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분야였다. 날 꾸미는 거. 화장, 패션, 그런 것들. 그렇다고 흔한 것은 별로였다.
"어디 봐요?"
"응. 옆 테이블 여자 화장 예쁘다."
"누나가 더 예쁜데요."
"너 그러다 진짜 잡혀간다니까?"
미간을 찌푸리고 대답하자 종인이가 웃었다.
"남자들은 원래 그런 거 잘 모르잖아요. 무슨 색 칠했는지."
"응.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보다 여자 만날 때 더 열심히 화장하잖아. 쟤넨 다 알거든."
"여자는 너무 복잡해요."
"난 단순해. 난 내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제일 예쁘진 않아도 굳이 다른 사람 들이대며 비교할 생각 없어."
"맘에 들어요. 이것저것 재는 거는 힘들잖아."
"나라도 날 사랑해야 되지 않겠냐. 자존감이라도 높아야지."
사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수없이 많은 트라우마가 있었고 콤플렉스가 있었다. 외모는 더, 특히. 남들과 차별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얼마나 시달렸던지. 아무튼 종인이는 내 손끝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내 손톱은 젤 네일, 이런 거 발리지 않은 맨 손톱이었다. 바짝 깎인 손톱. 피아노를 치면 어차피 다 부러지게 되어 있다.
종인이는 자꾸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벅찬 건가. 아무튼 무언가 미묘한 표정이었다. 나는 핸드폰 홀드를 풀었다. 박찬열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
「뭐가 뭔 뜻이야 니가 좋아서 눈알에 뵈는 게 없단 뜻이지」
연이어서 메시지가 또 도착해있었다.
「어린 애 후리고 다니지 마라」
얘 너무하네. 후린다니. 나는 왠지 억울해져서 홀드를 걸었다. 종인이도 날 좋아하고 있을 거란 어렴풋한, 또 근거 없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냥, 날 대하는 태도나 어디를 봐서든. 그래서 나도 최대한 티내려 노력했다. 종인이 부탁은 웬만해선 다 들어줬고, 어쩔 수 없이 틱틱대면서도 다정한 누나의 매력을 발산하려 얼마나 노력했던가. 내가 지금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애 데리고 무슨 삽질인가 싶었지만 종인이가 내 마음을 알 때까지 삽질은 계속될 것이었다. 그런데 얘는 오늘도 나한테 남자친구 있냐, 이런 거나 물어보고 앉아있으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누나."
"응."
"다음엔 언제 만날까요."
"우리 만나기 전에 연습 잡힐 것 같긴 한데, 어. 다음 주 토요일에 볼까."
"뭐하고 싶어요?"
홀리듯이 대답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보러 가자. 보고 싶은 거 있어?"
"누나 영화 싫다면서요."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거 했으니까, 다음엔 너 좋아하는 거 하자고. 너 영화보는 거 좋아한다며."
"누가 그래요?"
"…그냥."
종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종인이 눈에 안 띄게 내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몇 달 전, 종인이 친구 페이스북에 종인이가 '나 영화 보는 거 좋아한다'는 식으로 댓글 달았던 걸 봤었다. 하마터면 남의 페북 염탐한 것까지 따블로 들켜서 이상한 애 될 뻔했다. 오늘도 심장이 자꾸만 롤러코스터처럼 고속낙하를 계속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내 심장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다.
* * * * *
베브임니당.
여러분 제가 감기에 걸려서 어제까지 죽어있다 일어났어요...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이제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말에 진실성이 사라진 것 같지만, 아니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민석이의 정체 (!!) 가 드러났습니다. 여자 주인공의 첫사랑이에요 ☞☜
글 읽어주신 여러분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혹시 맞춤법이라던지.. 문맥 상 안 맞는 부분이라던지.. 오타라던지 하는 것들 알려주시면 감사히 수정할게요!
+++
굴레를 다시 업로드할까 고민 중이에요 어떡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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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윤아얌♡ ♡Moo♡ ♡애니♡ ♡딱풀♡ ♡챠밍♡ ♡체리♡ ♡하루♡ ♡검은봉지♡ ♡홈마♡ ♡기린뿡뿡이♡
♡푸우곰♡ ♡로운♡ ♡모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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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저.. 못 알아봐요..
혹시 제가 암호닉을 빠뜨렸더라도 너무 속상해하시지 마시고 댓글 다시 달아주세요 ㅜㅜ
ex) [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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