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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방탄소년단 정해인 더보이즈 변우석
키마 전체글ll조회 2013l 5

 

 경수에게 다가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친해지고 싶다. 대화를 나누고 싶다. 마주보고 웃고 싶다.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우연히 복도에 서 있다가 체육복을 입고 나가는 그 아이를 봤다. 체육시간인가 보다. 다음 시간이, 영어시간이다. 영어 선생님은 조금만 떠들어도 복도로 나가라고 한다. 수업에 집중을 안 한 적은 많아도 떠들어서 쫓겨난 적은 없었는데 일부러 떠들었다. 복도로 나가고 싶어서. 아니나 다를까, 괜히 짝에게 시덥지 않은 말을 걸며 웃다가 걸렸다. 김종인, 복도로 나가. 그 말에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가라는데 웃음이 날 것 같아서 일부러 입술을 깨물었다. 눈치 보는 척하며 복도로 나왔다. 슬그머니 교실 안으로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다 창가로 붙었다. 창문 너머로 운동장이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같은 옷을 입고 흩어져있는 애들 가운데 배구공을 들고 걸어가는 경수가 보였다. 참, 신기하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너만 뚜렷하게 아주 잘 보인다.

 너에겐 언제나 내 시선이 닿는다.

 

 

 

 

너와 나만의 시간
11.

-종인의 이야기 Ⅲ-

 

 

 


 세훈이가 알았다. 내가, 7반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백현이가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러 간다고 나가버리고, 교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세훈이 다가와 시덥잖은 말을 걸다가, 본론을 툭 던졌다. 너, 7반에 누구 좋아하지? 이건 뭐, ‘좋아하는 애 있어?’도 아니고 말에 이미 확신을 담고 있어서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내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면서 그럴 줄 알았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어떻게 알았어?”
 “척하면 척이지.”

 

 세훈이는 눈치가 빠르다. 아마, 조용히 달라진 내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가 알아챘나보다. 그나저나, 7반은 남자반인데. 아무렇지도 않나? 내가 7반에 좋아하는 애가 있다는 건 남자애를 좋아한다는 건데 세훈이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다가와선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나조차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 안 이상해?”

 

 그래서, 고갤 돌려 세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눈이 마주쳤다. 묻는 말엔 대답을 안 하고 퉁퉁 부어있는 내 눈을 보며, ‘눈 진짜 많이 부었네. 멍청한 새끼’ 라고 말한다.

 

 “백현이도 알아?”
 “걘 몰라. 눈치 없잖아.”
 “응.”
 “너, 완전 티나.”
 “뭐라고?”
 “티 많이 난다고. 좋아하는 거.”

 

 좋아하니까 티 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세훈이를 쳐다봤더니,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고 주의를 준다. 그래서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고마워서 마주보고 웃었다.

 

 “김청승, 웃지 마라. 징그럽다.”


 
 든든하다. 내 옆엔 세훈이도 있고, 준면이 형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 애도 날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一

 

 

 

 

 청소시간이다. 복도 창문을 열어놓고 칠판지우개를 털었다. 뿌옇게 먼지가 얼굴로 날아들어 와서 고개를 돌리며 털었다. 짜증난다. 오늘도 경수를 많이 봤다. 운동 하는 것도 보고, 화장실 가다가 마주치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도 보고. 이제 곧 마칠 시간인데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일부러 복도에 나와 칠판지우개를 털었다. 반에서 털 수도 있었는데도, 복도에 나와서 어슬렁거리면 혹시나 한 번 더 마주칠까 싶어서. 청소시간이 끝나가는 데도 안 보인다. 에이, 아쉽다. 깨끗해진 칠판지우개를 들고 반으로 들어가려다가 경수를 봤다. 쓰레기통을 들고 간다. 그걸 보자마자 쫓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칠판지우개를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경수를 쫓았다.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다. 오늘도 혼자다. 이러다가 또 박찬열이 어디서 툭 튀어나와서 경수한테 어깨동무 할까봐 경계를 했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같이 있는 모습은 보기 싫다. 그나저나, 그 아이의 손에 쥐어진 쓰레기통을 대신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차마 그러진 못하고 뒤만 졸졸 쫓았는데, 소각장으로 향한다. 쓰레기 버리러 가나보다. 청소시간이 끝날 때라 그런지 한산했다. 일부러 조용할 때 온 건가. 이런 상황에 빈손으로 소각장 안으로 들어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소각장에서 나오는 길목에 섰다. 조금 지났을까, 빈 쓰레기통을 들고 나오는 경수와 마주쳤다. 아니, 마주쳤다기보다 내가 그 앞을 가로 막고 섰다고 봐야 되겠다. 왠지 모르게 용기가 생겼다. 방해꾼들도 없고, 이곳에는 오직 너와 나 둘 뿐이다. 앞을 가로막고 선 나를 경수가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본다. 가까이서 보니까 눈이 더 큰 것 같다. 여전히 귀엽다.

 

 “안녕.”

 

 인사를 하자, 대답 없이 그냥 빤히 쳐다본다. 나를 보는 그 눈빛에, 입이 바짝 마른다. 가까이 온 보람이 있다. 경수가 나를 이렇게 봐준다. 심장이 두근두근 엄청 빨리 뛰고 있다.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경수의 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아해.”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이 더 커졌다. 내 가슴팍에 붙어있는 명찰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살짝 입을 벌리며 눈을 여기저기로 돌린다. 도르륵,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반응에 다시 한번 더 용기를 내서 말했다.

 

 “나 너 좋아해. 너랑, 사귀고 싶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내 마음을 너에게 전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내가 왜 그랬는지 이유조차 잊었다. 그냥, 뚫어져라 경수만 바라봤다. 곧, 내 말에 머리를 긁적이던 경수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아랫입술, 윗입술 번갈아가며 깨물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게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아, 어….”
 “……응?”
 “그래, 알겠어….”

 

 웃음이 났다. 경수가 내게 더럽다고 하지 않았다. 너무 기뻐서 활짝 웃었다.

 

 

 

 


 

 

 

 


 [뭐해?]

 

 경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귄다. 내가. 무려, 경수와. 그 날 한 고백은 우발적이었다. 계획된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쓰레기 소각장 앞에서 했던 거고. 그 아이가 받아 줄 거라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경수가 받아주었다. 그리고, 핸드폰 번호도 교환했다. 처음엔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싶었다. 그 정도로 너무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꿈에서 깨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나도 행복한 꿈이니까. 근데, 꿈이 아니었다. 나는, 경수랑 사귀는 사이다. 그 생각만하면 절로 웃음이 났다. 요 며칠 내내 실실 웃으며 다녔다. 어제는 누나가 술에 취해서 토하는데 그 옆에서 그걸 지켜보면서 웃었다. 누나가 욕을 했다. 그래도 웃음이 났다.
 비록, 내가 문자 서너 개를 보내면 답장이 한 개 올까말까 했지만, 그래도 이젠 문자도 하는 사이다.

 

 [공부해?]

 

 고심 끝에 또 문자를 썼다. 방금도 뭐하냐고 보내놓고 또 이러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너무 문자를 많이 하면 귀찮을까 싶어서 전송버튼을 누르지는 못하고 괜히 핸드폰만 붙잡고 망설였다. 답장이 오면 좋지만 안 와도 바빠서 그런가보다 하며 섭섭한 마음을 감췄다. 그냥, 내가 경수에게 문자를 할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하자고 나를 달랬다.

 혹시나 내가 경수의 문자를 못 봐서 늦게 답장할까봐 일부러 무음으로 해놓은 걸 진동으로 바꾸었는데도 울리질 않는다. 괜히 또 나 혼자 실망할까봐 다시 무음으로 바꾼다. 그렇게 핸드폰을 손에서 떼지 못했다. 원래 핸드폰에 집착하고 그러지 않았는데 경수를 좋아하면서 내가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수업 중.]

 

 답장이 왔다! 까맣던 액정에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뜬다. 아무것도 아닌 딱딱한 저 세 글자를 보고도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진다. 경수가, 수업시간인데 나한테 답장을 해줬어! 혼자 기뻐서 교과서에 머리를 쳐 박고 큭큭 웃었다.

 

 

 

 

 

 

 

 요즘 좀 심각했다. 공부를 하나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성적이 떨어졌다. 모의고사 가채점표를 보자 한숨이 나왔다. 반도 못 맞추다니. 이런 점수는 처음이었다. 그나마 수학은 과외도 하고 있고, 하니까 그럭저럭 괜찮은데 이것도 괜찮다뿐이지 잘 친건 아니었다. 등급도 두 단계씩은 떨어질 것 같다. 점수표를 한참이나 봤다. 속상했다. 수업시간에 딴 생각 하기 일쑤에, 전엔 떠들다 복도에 쫓겨나기까지 하고, 핸드폰만 줄곧 붙잡고 있었으니. 성적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다가 점수로 보니 충격이 조금 컸다. 그래서 내가 먼저 경수에게 공부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경수가 옆에 있으면 혼자 있을 때 보단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옆에 두고 보고 싶었다. 이 정돈 괜찮겠지. 오늘은 진짜, 열심히 할 거라고 다짐했다. 경수도 모의고사를 망친 모양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같이 걸었다. 막상 공부를 하자고 해놓고 둘 다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서 말없이 걷고만 있었다. 요즘은 이렇게 매일 경수와 함께 집에 간다.

 

 “근데, 어디 가서 공부하지?”
 “도서관 갈래?”
 “아, 그래.”

 

 어디 가서 공부 하냐는 내 말에, 경수가 도서관에 가자고 말했다. 저번에 따라 갔던 거기 갈 건가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를 따라서 지나가는 길이 익숙하다. 며칠 전까지 만해도 경수는 내 앞에서 걷고, 나는 그 뒤에서 뒷모습만 보며 걸었는데…, 조금 떨어져서 걷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 아인 내 옆에 있다. 진짜,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떨려서 혹시나 말실수라도 하게 될까봐 그냥 바라만보고 있는 건데 경수는 내가 좀 불편한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일 때와 달리 내 옆에선 항상 말이 없다. 조금 아쉽다. 그렇지만 아예 말을 안 하는 건 아닐뿐더러 내가 말을 걸면 꼬박꼬박 다 대답해준다. 그래서 안심했다. 점점 다가가는 나를 밀어내진 않는다. 그걸로 만족한다.

 

 

 

 

 오늘은 옆자리에 앉았다. 등을 맞댄 자리보다 더 떨려서 공부를 못 할 뻔했지만 모의고사 성적을 떠올리며 억지로 나를 잡았다. 자꾸만 옆으로 돌아가는 고개를 바로 잡으며 영어 문제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진짜 열심히 했다. 옆이 보일까봐 일부러 고개를 더 푹 숙인 덕분에 시야가 가려지고, 옆에서 들려오는 경수의 소음에 집중하게 될까봐 일부러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딱, 한 시간만 집중하고 옆을 바라봐야겠다고 꾹 참으며 집중했더니, 벌써 공부한지 2시간이 넘었다. 머리가 조금 아파 와서 한 장을 넘기고 쥐고 있던 샤프를 내려놓았다. 몸이 찌뿌둥해서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다가 은근슬쩍 옆을 봤는데 경수가 엎드려서 자고 있다.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순간 헉, 숨을 들이켰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인데. 진짜, 오목조목 잘생겼다. 공부에 집중하긴 정말 힘들었는데, 경수에게 집중하는 건 한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조금 벌어졌다. 잠든 그 얼굴을 천천히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니가 너무 좋아서….

 어차피 잠들었으니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조금만 만져 봐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어 까만 머리를 쓰다듬었다. 멀리서 지켜보면서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고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너에 대한 마음이 커졌었다. 며칠 전 바로 여기에서 너와 등을 맞댄 자리에서 공부를 하면서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던 너를 만지고 싶었다. 니가 너무 좋아서, 준면이 형을 붙잡고 울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너에게 닿았다. 지금, 내가 너를 만지고 있다. 가슴이 벅찼다.

 손이 얼굴로 내려가 볼록한 이마를 건드리고, 속눈썹 한 올까지 만져보았다. 그랬더니 간지러운지 경수가 인상을 쓴다. 놀래서 헉, 숨을 들이키며 얼른 손을 뗐다. 가만히 눈치만 살폈다. 눈을 들까봐 마음을 졸였다. 한참 지켜보는데 경수의 인상이 풀어지며 다시 편안해진다. 아아, 다행이다. 마음을 놓으며 다시 볼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책상위에 올려진 경수의 오른손 손가락을 잡아보았다. 엄지부터 약지까지 하나씩 쓸었다. 마지막으로 새끼손가락을 만져보았다. 귀엽다. 살풋 웃으며 깍지를 꼈다. 꽉 잡지도 못하고 느슨하게 그 아이의 손가락에 내 손을 가져가 걸었다. 맞잡은 손에서 땀이 다 났다.

 행복하다.

 

 

 

 

 

 

 

 

 

 

 


 욕심이 자꾸 커진다. 처음엔 바라만 봐도 좋다고 생각했고, 그러다가 그 아이의 옆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경수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점점 욕심이 커지니까 행복도 잠시였다. 가까이서 너에게 닿지 못한다는 게 난 더 슬펐다. 선생님 심부름으로 복도를 지나다 경수를 마주쳤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자동으로 웃음이 났다. 인사하려고 다가가는 나를 본 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입모양으로 인사를 했다. 경수가 당황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옆에 있는 박찬열의 눈치를 한 번 보며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급하게 나를 지나쳐 갔다. 좀, 천천히 가자고 짜증을 내는 박찬열의 팔을 잡아 이끌며 붙잡을 새도 없이 엄청 빠르게 내 곁을 지나간다. 내가 아는 척 하는 게 싫었던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끝도 없이 섭섭해지기 시작했다.

 

 

 

 

 

 토요일, 학교를 일찍 마치고 같이 서점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문제집을 사러가야 되는데 경수랑 같이 가면 좋을 거 같아서 일부러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하며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경수는 언제쯤 오는 걸까. 시간이 점점 흘러간다. 어디냐고 문자를 하려다가 꾹 참았다. 내가 재촉하면 싫어할까봐. 처음엔 서 있다가 다리가 아파서 의자에 앉았다.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셀 수도 없이 바뀐다. 앉았던 사람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같은 버스를 10대나 지나쳐 보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약속 시간이 지난 지 3시간째다. 안되겠다 싶어서 경수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또, 부담스러워 할까봐 어디냐고 문자를 보냈다. 역시나, 한참 뒤에야 답장이 왔다.


 [나 지금 집인데?]


 그 문자를 본 순간 멍해졌다. 기분이 끝없이 추락했다. 서운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답장 할 생각도 못하고 그렇게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보니, 경수였다.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미안! 진짜, 미안. 나 깜빡했어.

 

 이제야 기억이 났는지 전화를 받자마자 사과를 해온다. 진짜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를 하는 경수의 목소리에 나는 또 기분이 풀리고 만다. 전화는 처음인데, 언제까지나 미안하다는 목소리를 듣고 싶진 않아서 ‘괜찮아. 나 혼자 서점 갔다 왔어, 신경 안 써도 돼.’ 라고 말했다. 내 말에 경수가 안심한 듯 한숨을 푹 내쉰다.


 -아, 다행이다. 아직 밖이야?
 “응.”
 -아…, 그렇구나. 저기…,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 끊을게.

 

 그러고 전화가 끊겼다. 아무리 서운해도 목소리만 들으면 풀리는 내가 병신 같다고 생각했다. 손에 쥔 핸드폰을 보다가 고갤 들어 지나가는 버스만 멍하니 쳐다봤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연락해오는 법이 없었다, 늦은 밤, 너무 보고 싶어서 목소리라도 들어볼까 하고 전화를 하려다 혹시나 네가 깰까봐 망설이고 망설이다 핸드폰을 닫아버리는 내 마음을 알기는 하는 걸까…. 친구들이랑 있을 땐 잘만 놀다가도 날 보면 굳는다. 내 앞에선 항상 굳어있다. 웃지도 않고, 표정 변화 한 번도 없이. 말을 하다가도 멈추면서 나를 의식하고, 멀리하고, 거리를 둔다. 옆에 있는데도 멀리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날 의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네 모든 걸 좋아해 줄 수 있는데….


 

 

너와 나만의 시간
12.

-종인의 이야기 Ⅳ-

 

 

 

 

 “나 걔랑 사귀기로 했어.”

 

 아침에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자리에 놓으면서 말했다. 준면이 형한테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대학생은 요즘 시험기간이래서 말을 못했다. 형이 괜히 신경쓸까봐. 그래서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세훈이한테 가장 먼저 말했다. 내 말에 세훈이가 얼른 주위를 살피며 누가 들었을까봐 경계를 한다. 그래봤자 주위엔 아무도 없다. 왜냐면, 교실엔 나랑 세훈이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본 줄 아나. 딱 둘만 있기에 말을 꺼냈는데, 저 혼자 놀래서 기겁을 하는 꼴이라니.

 

 “헐. 진짜? 7반 걔?”
 “7반 걔 아니고 도경수.”
 “도경수? 그 키 작고 눈 완전 큰 애 이름이 도경수야?”

 

 고개를 끄덕이자, 세훈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진짜, 너랑 사귀겠대?”
 “응.”
 “니가 걔한테 고백하니까, 걔가 사귄다고 했다고?”
 “그래.”
 “이상한데….”

 

 처음, 그 애가 날 받아준 날이었다면 그저 좋아서, 들떠서 아무 말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다. 세훈이가 뭘 걱정하는지도 알겠고. 나도 거기에 대해서 절실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다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건, 어찌됐건 나와 경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훈인 내 친구니까 내 입장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요즘 좀 좋다가도 힘들다고 말을 해버리면 경수는 세훈이한테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 거니까. 난 그게 싫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듣게 하고 싶진 않았다.

 눈물 나는 감정이다. 이정도로 애틋할 줄이야. 내 걱정을 이만큼만 했으면 좋겠는데, 바보같이 또 경수 걱정부터 하고 있다. ‘사귄다’고 정의를 내리자마자 마음이 더 깊어졌다. 그깟 타이틀이 뭐라고. 따지고 보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 말이 너무 설렌다. 그래서 또 말하다말고 바보같이 웃었다.

 

 “좋댄다. 김청승.”
 “어. 좋다.”
 “그나저나, 7반 걔…”
 “경수.”
 “그래 경수. 걘 믿을 수 있는 거지?”

 

 세훈이가 뭘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빤히 쳐다봤다.

 

 “너, 막… 안 좋은 소문내고 그럴 애 아니지?”

 

 안 좋은 소문이라면,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 뭐, 그런 소문을 말하는 것 같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부풀려져서 커지기 십상이니까. 특히, 남의 연애사나 안 좋은 소문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 감정이 우선이어서,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의외로 세심하다. 그렇게까지 날 걱정해주는 세훈에게 새삼 고마워졌다. 이제야 생각해보는 거지만, 경수가 그럴 애는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걱정스런 눈으로 내게 조심스레 묻던 세훈에게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절대.”

 

 내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정말 괜찮은 애라고, 언젠간 너에게 소개해 주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경수도 나를 좋아하게 되면.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당연히 집에 가는 길은 나와 함께 라고 생각했다. 현관은 복잡해서 늘 하던 대로 교문 앞에서 경수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박찬열과 경수가 함께 나온다. 멍하니 그들을 지켜봤다. 신발을 고쳐 신는 박찬열을 뒤로하고 경수가 혼자 뛰어와선, 숨을 몰아쉬며 내게 말했다.

 

 “나 오늘은 친구랑 갈게. 미안.”

 

 그렇게 말하는 경수에게 괜찮다며 웃어보이곤 먼저 뒤돌아서 걸었다. 널 기다리며 설레었는데 지금은 또 기분이 바닥을 친다. 서운함이 온 몸을 휘감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발걸음을 떼는데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내 바로 뒤에서 박찬열과 경수의 목소리가 번갈아서 들려왔다.

 

 “야, 오늘 형님 집 비는데 놀러올래?”
 “누가 형님이야. 미친놈이. 니가 오라면 내가 가야되냐?”
 “당연한 거 아님?”

 

 티격태격.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볼 수 없는 경수의 모습이다. 나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널 대하고 싶어서 너에게 다가갔는데. 니가 평소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서 다가갔는데…. 이런 게 사귀는 건가? 나는 지금 혼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경수에게 고백한 걸 후회했다. 이럴 거면 받아주지 말지, 기대하게 만들지 말지. 이런 걸 두고 희망고문이라고 하는 건가? 왠지, 길을 걸으며 그 단어가 생각이 났다. ‘사귄다’는 그 타이틀이 뭐라고 기대치가 높아지고, 점점 더 욕심만 커졌다. 그러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실망뿐이었다. 실망, 허탈함, 허무함.

 경수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건 알고 있지만, 받아줬으니까. 그 때 나에게 더럽다며 욕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더 잘하면 언젠가 너도 날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아니, 더 멀어진 기분이다. 나 혼자 좋아할 땐 가까워 질 수 있을 거란 기대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연락 하면 의무적으로 대답하고, 무슨 행동을 하든 어색하게 날 의식한다. 날 불편해하는 게 느껴져서 차라리 고백하지 말걸. 친구로 다가갈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내가 친구로 너에게 다가갔다면, 마음을 숨기고 네 곁에 있었다면 최소한 너는 자연스럽게 날 대했을 텐데.

 

 지금,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한 발짝만 잘 못 내딛으면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一 

 

 


 “뭐라고?”
 “넌 뭐 7반 걔 얘기만 하면 유별나게 구냐?”
 “경수.”
 “아, 아무튼! 걔 아까 피 철철 흘리면서 보건실 가는 거 봤어.”

 

 경수가 다친 걸 세훈이를 통해서 들었다. 넘어졌는지 체육복을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절뚝거리며 보건실에 가는 걸 봤다는 얘기에 마음이 철렁 가라앉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7반으로 달려갔다. 7반 교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경수를 찾았다. 문을 너무 세게 여는 바람에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러건 말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어딘가에 있을 경수를 찾아보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말 한번 섞어보지 않은 박찬열에게 달려가 물었다.

 

 “도경수 어딨어?”
 “어?”
 “어딨냐고 도경수.”

 

 상황설명도 하지 않은 채 다급하게 물으니, 박찬열이 꽤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걔 도서실 갔을 걸? 하고 대답해주었다. 그 말에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급하게 도서실로 향했다.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도서실은 꽤 조용했다. 빨리 뛰다가 갑자기 멈추니 심장 박동이 제멋대로였다. 숨이 찬다. 제자리에서 숨을 고르면서도 눈으론 경수를 찾아다니기 바빴다. 그러다가, 책장 사이로 지나가는 경수를 발견했다.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다리를 봤는데, 많이 다친 것 같진 않았다. 교복차림으로 멀쩡하게 잘만 걷는다. 그걸 두 눈으로 보고나서야 안심이 됐다. 허탈한 마음에 헛웃음을 지었다. 체육시간에 넘어지기라도 한 걸까. 조심 좀 하지. 그냥, 경수가 다쳤다는 말에 앞뒤 잴 것 없이 달렸다. 나도 참 바보 같다. 운동 하다가 넘어져서 피가 나는 건 흔히 있는 일인데, 그게 뭐라고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했는지. 세훈이 말대로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이렇게까지 반응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 날 돌아보며 새삼, 내가 그 아이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무언가, 씁쓸했다. 이런 날 경수는 알고 있을까. 알면, 부담스러워 하진 않을까. 걱정이 꼬리를 물며 커지기 전에 멈춰야 했다. 자꾸만 나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고개를 저으며 다시 경수를 바라보았다. 7반이며, 도서실이며 열심히 뛰어다닌 덕에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경수에게로 다가가 많이 다치진 않았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책 몇 권을 들고 있는 경수의 옆으로 키가 작은 여자애가 보였다. 창을 통해 햇빛이 비치는데, 경수와 여자애를 비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도서실에 꽤 많은 인원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둘만 보였다. 경수에게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숨겼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그러고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여자애가 말을 하면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내 앞에선, 그 흔한 웃음도 없었는데. 씁쓸해졌지만, 애써 괜찮은 척 나를 위로했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만 그들을 보게 된다. 어느새 주먹을 꽉 쥔 손을 내려다봤다.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대충 봐도 좋아 보이는 분위기였다. 주먹 쥔 내 손을 한번, 그들을 한번 그렇게 바라보다가 손에 힘이 풀렸다. 마음 같아선 그 애랑 떨어지라고, 말도 하지 말라고, 나한테도 그렇게 웃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말 한다 해도 경수가 내 말을 들어줄까…. 스스로, 고개를 저으며 도서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경수 너 여자 친구 있어?”

 

 그 말에, 경수가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다. 혀로 입술을 축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라고. 그러면, 여자애가 또 묻는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경수가, 대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날 옥죄어 왔다.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답을 알면서도 기대하는 내가 싫다. 나 혼자 기대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내가 너무 싫다.

 

 “…응?”
 “…….”
 “…….”
 “…아니, 없어.”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뭔데, 너 어디 갔다 오는 길인데?”

 

 힘없이 교실로 돌아와 내 자리에 앉았다. 칠판 앞에서 백현과 놀던 세훈이 나를 보더니 쪼르르 달려와 내 어깨를 마구 흔들며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대답할 힘도 없어서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았다.

 

 “7반 갔다 왔냐? 그거 뭐 조금 엎어지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
 “걔가 뭐래? 많이 안 다쳤으니까 걱정하지 말래?”
 “…….”
 “야, 김종인! 대답 좀….”

 

 말 좀 그만 씹으라며, 짜증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붙들던 세훈이 내 표정을 보았다. 순식간에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며 붙잡고 있던 얼굴을 놓아주며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좀 전까지는 그래도 옆에서 세훈이가 자꾸 얘기하는 바람에 정신없었는데, 지금은 고요하기만 하다. 내 주위만 온통 까맣게 변해버린 것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왜 이래야만 하는 건지. 난 그저 너를 좋아하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아파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니가 내 고백을 받아주어서, 이제 행복한 나날들만 계속 될 거라고 믿었는데, 너로 인해 우는 날이 늘고, 마음에 상처가 늘었다. 나 자신까지 무너뜨린다. 머리가 아프다. 나도 이젠 잘 모르겠다.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다가 책상에 엎드렸다. 와이셔츠가 볼에 닿는다. 두 팔에 얼굴을 깊숙이 파묻었다. 눈물이 났다. 난 그렇게 또, 울었다.

 

 

 

 

 

 


 

 

 

 

 

 

 


 아팠다. 다음 날 학교에 억지로 왔는데, 말할 힘도 없어서 아침부터 시체처럼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그런 내 꼴이 안쓰러웠는지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날 지적할 때 백현이가 ‘종인이 아파요.’ 하고 대신 변명해주다가 결국 세훈이랑 둘이서 같이 날 보건실에 있으라고 데려다주기까지 했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온몸이 불덩이였다. 선생님이 내민 약을 먹고 보건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3교시 쉬는 시간 쯤 되었을까, 백현이 몰래 내려온 듯한 세훈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날 한심한 눈으로 보다가 대뜸 말했다.

 

 “걘 아냐?”
 “뭘.”
 “너 이렇게 아픈 거.”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러자, 긴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7반가서 걔 데려다 줄까? 어?”
 “하지 마.”
 “너 어제 어떻게 했는지 기억 안나? 그깟 무릎 조금 까졌다고 놀래서 7반 뛰어간 거 기억 안 나냐고.”
 “…….”
 “나 7반 간다.”

 

 진짜로 가려는지 문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세훈을 급하게 붙잡았다. 경수는, 내가 어제 그렇게 찾으러 간 거 모른다고 말하려다가, 어제 그 일이 생각이 나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고개만 저었다.

 

 “너 걔랑 연락 안 해?”

 

 응, 안한다고. 내가 먼저 하지 않으면 그 애가 먼저 오는 법이 없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표정 보니까 딱 알겠네. 너 뭐라 그랬어. 걔 괜찮은 애라고?”
 “아, 나 아프니까 좀 나가라.”
 “야. 뭐가 괜찮은데? 니가 좋다니까 지금 호기심에 만나는 거 아니야?”
 “머리 울린다고.”
 “이게 사귀는 거냐? 사귀는 거야?”
 “시끄러.”
 “김청승. 야. 너, 그만해.”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던 세훈이가, 끝까지 못 들은척하며 경수를 감싸는 내 모습에 화가 났는지 자기 머리를 헝클인다. 그래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휴지통을 세게 발로 차더니, 날 곱지 않은 시선으로 한번 보곤 고갤 돌려 나가버렸다. 세훈이가 나가자마자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고갤 들어 하얗기만 한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려서 아무런 생각도 하기가 싫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조퇴를 했다. 핸드폰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냥 잊었다. 오늘 하루는 그 아이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이제야 학교를 가던 누나와 마주쳤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면서 시비를 거는데 대답할 힘도 없어서 누나를 밀치고 힘없이 방에 들어가 누웠다. 신발을 신던 누나가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마를 짚으며 놀란다. 니가 어쩐일로 아프냐고 놀라다가 이불을 덮어주며 약은 먹었냐 물으며 누나마저 날 걱정해줬다. 김혜인이 날 걱정하다니. 내가 진짜 아프긴 아픈가보다.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 나가라고 손짓했다. 누나가 방을 나서는 걸 보고 눈을 감았다. 지금 내가 이렇게나 아픈데. 경수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모를 거다. 내 연락을 기다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프면 감정적으로 변한다더니 딱 그 꼴인 것 같다. 아직 내겐 마지막 남은 희망이 있었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문자하나 쯤은 와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에서 깼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니 몸이 가벼워졌다. 다행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손을 뻗어,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찾았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가 여러 개 와있다. 백현이, 누나, 세훈이, 엄마, 담임선생님. 그게 다였다. 여러 개의 문자 속에서 경수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고. 지쳤다. 한참을 고민했다. 더는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경수를 놓아줘야 될 것 같았다.

 분명 눈을 떴을 땐 캄캄한 어둠뿐이었는데 창밖을 보니 벌써 동이 텄다. 불을 켜지도 않았는데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만나고 싶었다. 만나자고 연락하려다가 순간 겁이 났다. 만나면, 또 니 얼굴 보고 무너져서 모든 걸 다 잊고 웃어버릴 것 같아서. 만나서 헤어지자고 하면, 정말 아무렇지 않을 니 얼굴을 보기가 힘들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너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니가 전화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신호음이 몇 번 갔을까. 전화가 연결 되었다.

 

 “…나야, 경수야”

 


 힘겹게 입을 떼자, 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어…아침부터 웬일이야?

 


 자다 깼는지 목소리가 가라앉고 제멋대로 갈라져 엉망이었다. 이 순간마저 난 그런 니 목소리조차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막상, 말하려니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말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힘들게 하는 너를 나는 아직도 많이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너를 위해, 그리고 내가 널 미워하지 않으려면 지금 놓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 미워하기 싫어. 경수야…. 니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헛된 내 바람일 뿐이니까 이쯤에서 내가 그만 두는 게 맞는 거겠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거겠지?

 망설이고, 망설였다. 내가 입을 열었을 때 니가 전화를 끊었으면 하고 바랐다. 니가 다시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있잖아,”
 -어,어?

 

 안타깝게도, 네가 대답을 해 온다.

 

 “내가, 많이 생각 해봤는데….”
 -…어,어어.
 “우리,”
 -…….
 “헤어…질까?”

 

 너는 아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에게 헤어짐을 고하는지 모를 것이다.

 

 “…헤어지자.”

 

 목이 메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그게, 좋을 것 같다.”
 -…….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내 말에 늘 그랬듯 넌 대답이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헤어지자 말하면 곧바로 알겠다고 하는 네 목소리가 없어서. 혹시나, 대답을 할까봐 겁이 나서 그 아이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내 말만 하고 끊었다.

 분명히, 내가 먼저 헤어지자 했는데. 차인 것 같은 기분이다. 눈물이 난다.

 

 

 

 


 헤어지고 얼마 있지 않아서, 사랑니가 났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고 볼이 뜨거웠다. 사랑니 때문에 아픈 거라고 그렇게 나를 달랬다.


 일부러 그 아이를 피해 다녔다. 혹시라도 마주칠 일이 없게끔 잊으려 애썼다. 주위에서 살 빠졌단 소리를 많이 들었다. 새로 여자 친구도 만나봤다. 그렇게 점점 너를 잊어갔다.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빠 차를 타고 오면서 익숙한 동네라고만 생각했다. 이삿짐을 옮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익숙하다. 느낌이 왠지 좋지 않아서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가 이거나 옮기라고 나에게 박스 하나를 올려 줬다. 그걸 가져다 놓고 나오는 길에 무심코 옆집 창문을 봤다. 자다 일어났는지 머리가 산발이 된 상태로, 인상을 찌푸린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과 마주했다. 그 아이였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너와 나만의 시간
12.

-종인의 이야기 Ⅳ-

 

 

 “이거 옆집 가져다 주면 돼.”
 “나 방금 집에 왔거든?”
 “알거든?”
 “니가 가라고. 나 가기 싫다고.”

 

 마치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누나가 토마토가 담긴 소쿠리를 내밀었다. 심부름이야 또? 그렇지 않아도 짜증나죽겠는데 옆집엘 가져다주란다. 그 말에 더더욱 가기 싫어졌다. 못들은 척하며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가방을 잡고 안 놓는다.

 

 “어이, 막내.”
 “아, 왜 또”
 “너 전에 집에서 술 마신 거 아빠한테 다 말한다?”

 

 전에 한번, 집이 비었을 때 누나도 외박을 한다 하고, 해서 오세훈과 변백현을 불러 집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거 딱 한번인데 하필 걸렸다. 그것도 아침에 귀가하던 김혜인한테. 아빠가 엄한 편이라 고등학생 주제에 술 마신 걸 들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상을 찌푸리며 누나에게서 쟁반을 받아들었다.

 

 “이거 주고 그냥 오면 돼?”
 “응응~ 아, 쟁반은 다시 가져오고!”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가기 싫은데, 진짜 가기 싫은데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옆집 문 앞에서 가만히 있었다. 전에, 이사 올 때 봤던 그 아이를 떠올렸다. 제발, 그 아이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어…?”

 

 누구세요 묻지도 않고,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사이로 도경수가 나타났다. 날 보고 깜짝 놀랐는지 눈동자를 굴리며 굉장히 멍청한 얼굴로 날 보고 섰다. 이런 식의 대면은 반갑지가 않다. 거의 약 1년만의 마주침인데, 아무렇지 않고 싶지만 그럴 리 없다. 나도, 도경수도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 아이와 나 사이의 공기가 어색하게 흐른다.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아, 이래서 오기 싫다고 했던 건데. 집에 있을 누나를 원망했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그 아이에게 들고 있던 쟁반을 내밀었다. 어차피, 내 심경의 변화 따위 알 수 있을 리 없고, 관심도 없을 테니까. 겉으로만 태연한 척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 수확한 토마토야, 엄마가 나눠주라고 하셔서.”
 “아…, 고마워.”
 “쟁반 없어? 아님 니가 나중에 갖다 줄래?”
 “아, 잠깐만!!”

 

 내 말에 멍청하게 서있던 도경수가 부엌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가서 쟁반을 가져온다. 이거 빨리 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토마토를 옮기는 도경수의 손만 가만히 쳐다봤다. 빨리 좀 옮겨라, 빨리 좀. 또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어서 이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시방석 같다.

 그러고 있는데, 도경수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도 야자 안 하고 집에 왔나봐?”

 

 나한테 말을 먼저 거는 그 아이가 익숙하지 않았다. 예전엔 내가 열 마디를 하면 그제야 겨우 한 마디를 했으면서…. 그동안 잊으려고 애썼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자 잠시,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을 지우며 짧게 그렇다고 했다. 내 반응에, 민망했는지 더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잘됐다고 생각했다.

 


 “아, 어…잘 먹을게! 고마워!”

 


 손이 느린 편인지 빨리빨리 옮기지 않고 느릿느릿하기에 답답해서 도와줬다. 토마토 아홉 개를 다 옮기자 도경수가 내게 고맙다고 말한다. 그 말에 그 아이를 한번 슥 쳐다보곤 간다는 인사도 안하고 뒤를 돌았다.

 

 

 

 

 

 하필 이사 온 옆집이 도경수네 집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빠 차에서 내릴 때부터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옆집 창문으로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차 했다. 지난 1년간 잘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졸업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또 마주쳤다. 2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이 아니란 걸 알고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너의 그늘에서 벗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처음엔 내 자신을 원망했었다. 내가 왜, 헤어지자고 했었지. 조금만 더 참을걸. 내가 그렇게 인내심이 없었나. 그게 뭐라고, 그깟 무관심이 뭐라고 힘들다고 한 거지. 그러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그 아이를 원망했다. 니가 뭔데, 날 이렇게 만들었나. 니가 무엇이기에 날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건지. 나를 한번만 더 쳐다봐주지, 내가 불편하게 한 것도 아닌데, 나한테 조금만 더 편하게 대해줬다면 이렇게 내가 아픈 일도 없었을 텐데. 결국 이렇게 될 거였다면, 그때 고백하던 날 받아주지나 말지….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지났다. 그 아이를 만난 건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징하다 싶을 정도로 끈질기게 긴 후유증이 날 따라다녔다.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이 나서, 들여다보고 있던 정석 책을 덮어버렸다. 책상위에 있던 핸드폰이 지잉-하고 짧게 울렸다.

 


 [토마토 고마워. 잘 먹을게! 아, 나 도경수야!]

 


 그래도,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본 순간 떨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버렸다. 난 아직도 도경수가 너무 어렵다.

 

 

 

 

 

 

 


 엄마가 야근한다고 연락이 와서, 누나와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 배가 불러서 책상 앞에 앉았다간 그대로 잘 것 같아서 배가 꺼질 때까지만 거실에 앉아있기로 했다. 티비를 보는데, 재미가 없다. 흥미를 잃고 손에 쥔 꺼진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이상태다. 꺼놓고 던져놓진 못하고 계속 들고 다닌다. 아, 짜증나. 머리가 복잡하다. 이게 다 김혜인 때문이다. 내가 옆집에 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복잡하진 않았을 텐데. 소파에 드러누워서 발로 리모컨을 건드리는 누나를 노려봤다. 내가 노려보는 것도 모르고 재밌다고 배를 잡고 웃는다. 한심하다.

 

 “재밌냐?”
 “어이, 고딩. 공부해라 공부.”
 “지는.”

 

 누나가 괜히 시비를 건다. 공부하라는 말에 짜증이 나서 세 번째 손가락을 들어 올렸더니 발로 찬다. 아프다.

 

 “아, 왜 때려.”
 “어디서 반말이야. 죽고 싶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위협하기에 내가 참아야지, 하며 고개를 돌렸다. 재미도 없는 티비를 조용히 보다가 자꾸 생각이 나는 거다. 옆집, 토마토, 문자. 도경수. 왜 또 그렇게 생각이 미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휙휙 저어도 자꾸만 떠오른다. 아, 짜증난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 혼자 이러다간 끝도 없겠다 싶어서 어느새 티비 삼매경에 빠져있는 누나에게 슬쩍 물었다.

 

 “야, 넌 전 남친 우연히 만나고 그럼 기분이 어떠냐?”

 

 그랬더니, 티비만 보던 누나가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전 남친? 기분 더럽지. 게다가 안 좋게 끝난 경우면 더더욱.”

 

 그래, 내 기분이 딱 그렇다. 안 좋다고, 지금.

 

 “좀, 복잡하고 그런가?”
 “어. 완전 복잡하지.”

 

 당연한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누나가 발끝에 걸려있던 리모컨을 휙 발로 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다.

 

 “아, 니가 얘기 꺼내니까 갑자기 김민석 생각나잖아!”
 “김민석?”
 “아, 있어. 내가 진짜 완전 제일 좋아했던 새낀데, 바람나서 헤어진 새끼 있어.”

 

 저 혼자 화가 나는지, 이번엔 앉아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가서 생수를 벌컥벌컥 마신다. 표정이 굉장히 안 좋던 누나는 묻지도 않았던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연히 학교 돌아다니다가 마주쳤는데, 기분이 존나 더러운 거야. 진짜 하루 종일 기분 완전 안 좋아가지고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니까? 아니 근데, 친구가 걔가 복학을 한 대. 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소식이냐고. 처음엔 진짜 싫었어. 진짜 싫었다? 근데, 나도 모르게 걔가 언제 복학을 할지, 복학하면 무슨 수업을 들을지 자꾸만 신경을 쓰고 있는 거야. 꼴도 보기 싫다고 할 땐 언제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자꾸 걜 찾았어. 자꾸 찾게 되고, 보면 의식하고, 그러면서 또 좋아지는 거라? 내가 걔한테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내가 지금 너한테 무슨 얘길 하는 거냐. 아, 암튼 헤어지고 나서는 만나면 안돼. 오케이?


  그래서 싫다는 거야, 좋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아, 1교시 문학인데. 문학책을 집에 두고 왔다. 그게 학교에 와서야 생각이 났다. 그래서 책을 빌리러 옆 반에 가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백현이가 옆 반이다. 하지만, 그 아이도 옆 반이다. 알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일부러 피하기만 했던 그 아이 소식을 백현이를 통해 듣게 되었다. 물론, 백현이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른다. 2학년이 되면서 세훈이와 나는 같은 반이 되었지만 백현이 혼자 옆 반이 되었다. 우연히, 백현이가 박찬열, 도경수와 같은 반이 되었는데 하필 그 둘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도경수에 대한 얘기를 백현을 통해 듣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현이가 내 친구 경수가 어떻다고 얘기를 할 때면 세훈이는 안 좋은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고,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럼 나는 관심 없는 척 하다가도 어느새 백현의 말을 기억하고 뒤에 혼자 곱씹는다. 그 아이에 대해 의식하기 싫다면서도 사실은, 의식하고 있었다. 한때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함으로써 남게 된 습관 같은 거라고 해두는 게 내 마음이 편했다. 그 아이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싫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나를 빼앗긴 느낌이랄까.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게 무섭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옆 반으로 향했다.

 4반 앞문을 열고 들어서니 자리에 앉아있던 백현이 바로 보였다. 그리고, 백현의 자리와는 꽤 먼 창가 쪽 뒷자리에 엎드려있는 그 아이도 보였다. 의식하고 싶지 않은데, 또 의식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다.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백현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변백.”

 

 백현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어? 니가 웬일이냐?”
 “넌 이 시간에 웬일로 학교에 다 있냐?”
 “아, 나 엄마한테 혼나가지고 쫓겨나왔잖아. 너 알지, 우리 엄마 화나면 나한테 얼마나 닦달하는지?”
 “니가 또 혼날 짓 했나보지.”
 “야, 난 그렇게 큰 잘못 안했거든? 그나저나 요즘 너랑 세훈이랑 뜸하다. 섭섭해잉. 다른 반이라고 나 빼고 놀기 있냐?”
 “놀기는. 오세훈 공부한다고 나랑도 안 놀아줘.”
 “그 새낀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했다고 유난이야?”
 “그리고, 우리가 널 빼고 논게 아니라 니가 우릴 빼고 논거지.”
 “아, 왜 그래 또? 그런 거 아닌 거 알면서 그러네? 야, 암튼 담에 셋이서 오랜만에 한번 뭉치자.”
 “어, 그래 그러자. 아참, 나 문학 책 좀 빌려주라.”
 “문학책?”
 “어어. 그거 빌리러 왔어.”

 

 백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문학책이 있을라나, 하면서 분주하게 서랍을 뒤적이던 백현이 여기 없다며 사물함 갔다 오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교실에 있을까 하다가, 괜히 여기 있으면 그 아이를 의식할 것 같아서 얼른 백현을 따라 나섰다.

 

 “맞다! 나 사물함에 아무것도 없는데!”

 

 가던 걸음을 멈추며, 백현이 자기 머리를 세게 때렸다. 쯧쯧, 그래. 얘한테 교과서를 빌리러 온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그럼 나 다른 반 가서 빌린다고 말하려고 했다.

 

 “아, 나 깜빡했어... 야, 기다려봐. 내가 너 책 꼭 빌려줄게.”

 

 그렇게 말하던 백현이 말릴 새도 없이 자기반 뒷문을 쾅 열고 들어가 성큼성큼 그 아이의 자리로 걸어간다. 아, 그러지 말라고. 난 그냥 다른 반에서 빌리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미 벌어진 일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뒷문에 서서 그 아이와 대화하는 백현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또 그 아이를 보게 될까봐 고개를 숙여 바닥만 쳐다봤다. 다음부턴 절대, 변백현에게 교과서 빌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백현이와 있으면 자꾸, 그 아이에 대해 듣게 되고 또 이렇게 자주 마주치게 되고, 엮이게 되니까 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는데도, 그 아이를 보면 태연할 수가 없다. 난 다 잊었다고, 이젠 1년이나 흘렀으니 그 아일 봐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그 아이와 마주하게 되었을 때 담담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버텼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슴이 뛰거나, 설레었던 작년과는 또 다른 감정이 나를 지배한다. 그 아이를 보게 되면 자꾸 마음이 답답하다. 언제쯤 괜찮아질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이번엔 그 아이가 먼저 시선을 돌린다. 그러면서 서랍에서 문학책을 꺼내어 백현에게 건낸다. 그걸 받아든 백현이 웃으며 그 아이와 몇마디 나누더니 이내 나에게 다가왔다. 어느새 내 시선은 백현의 손에 들린 문학책으로 향해 있다.

 

 “이거 도경수껀데, 쟤가 딴 건 몰라도 언어는 기가 막히게 잘해. 필기도 되게 잘 돼있을걸? 깨끗하게 보고 돌려줘야 된다.”
 “아, 어…고맙다.”

 

 백현이가 웃으며 내게 문학책을 건낸다. 그걸 받아들었다. 백현에게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며 복도를 걸었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문학책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손에 있는, 그 아이의 문학책이 너무나도 낯설다.

 

 

 

 


 

 

 

 


 ‘도경수.’

 

 작년 이맘때 쯤, 내 교과서 귀퉁이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책에 다 도경수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 이름 하나에 애틋함과 설렘, 기쁨과 눈물…. 몇 가지의 감정을 느꼈는지 셀 수도 없다. 서서히 일상에 묻혀가며 그 아이를 지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젠 옆집에 심부름을 가고, 오늘은 문학 책을 빌리기까지 했다. 내 일상에 그 아이가 끼어들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예전과는 같지 않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 있지만, 과거의 기억들 때문인지 마음이 복잡하다. 이러면서 난 또 느낀다. 내가 정말 그 아이를 많이 좋아했다는 걸.

 느릿하게 교과서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열여덟 소년의 글씨가 교과서에 한 가득이다. 언어는 잘한다더니, 잘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꽤 열심히 한 흔적이 보인다. 문학책을 빌려 왔지만 오랜만에 도경수로 인해 공부를 못하게 되었다. 수업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나 혼자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내가 만약, 다가가지 않았다면.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면 지금까지도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룰 수 없었던 짝사랑을 떠올리며 애틋해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수도 있었는데 그러질 못한다. 그 아이에게 받은 상처가 조금 커서 담담할 수가 없다.

 선생님 몰래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문자 수신함에 들어갔다.

 

 [토마토 고마워. 잘 먹을게! 아, 나 도경수야!]

 

 그 아이가 보낸 문자다. 이 문자를 받고 난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아닌 척, 신경 쓰지 않는 척 핸드폰을 꺼버렸지만 핸드폰을 껐다는 것 자체가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1년 전 삭제했던 번호와 똑같다. 잊어버렸을 줄 알았는데 숫자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핸드폰과, 책상 위에 올려진 그 아이의 교과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머리가 아프다.

 

 

 

 

 

 

 

 

 

 

 

 

 

 


 문학 책만 붙잡고 있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돌려줘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가려니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치 빠른 오세훈이 나도 모르는 무언가를 알아챌까봐 도경수의 책을 서랍 속에 꼭꼭 숨겨두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농구하러 나간다는 세훈을 뒤로하고 혼자 교실로 돌아왔다. 책을 돌려주러 4반에 갈 생각이었다. 서랍에 넣어둔 그 아이의 책을 꺼내서 그냥 가져가려다가, 그래도 고마움의 표시는 해야 될 것 같아서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고마워’라고 쓸까, ‘잘 봤어’라고 쓸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잘 봤다고 썼다. 그래, 이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도경수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고맙다는 말은 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들고 4반으로 갔다.

 드르륵, 앞문을 여는데 꽤나 조용하다. 백현에게 전해 주려했는데 교실에 없다. 또 어딜 나간 모양이다. 그래서 비어있는 백현이 자리로 걸어가 문학 책을 올려두려다가, 교과서에 붙어있는 ‘잘 봤어’ 라고 적힌 포스트잇 때문에 망설였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아침에 봤던 도경수의 자리로 고개를 돌렸는데. 하필, 자리에 있었다. 갈까, 말까. 한참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백현이에게 전해주든 직접 전해주든 어차피 도경수 책이니까 결국엔 그 아이가 들고 있을 거란 걸 알아서 그 아이의 자리로 걸어갔다. 엎드려 있는 까만 정수리를 보았다. 작년에, 함께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갔던 때가 생각이 난다. 잠들어 있던 그 모습과 겹쳐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조심스럽게 책을 내려놓았다.

 

 

 

 

너와 나만의 시간
14.

-종인의 이야기 Ⅴ-

 

 

 

 

 

 “너 요즘 4반 자주 가더라?”

 

 집에 오는 길, 세훈이가 불쑥 말을 꺼낸다. 얜 좀 무섭다. 방심하고 있을 때 찌르고 들어온다. 공부 한다고 정신없는 줄 알았는데 또 그걸 봤나보다. 날카로운 세훈의 말에 움찔했지만 못들은 척 되물었다.

 

 “뭐라고?”
 “못들은 척 하기는. 그냥, 변백현 보러 갔다 그러면 되지. 아무튼, 연기 졸라 못해요.”
 “연기는 무슨….”
 “왜, 또 걔가 갑자기 보이냐?”
 “뭐래. 변백한테 볼 일 있어서 간 것뿐이야. 오버하지마라.”
 “그래? 그럼 말고.”

 

 나도 지금 몹시 혼란스러운데, 오세훈까지 몰아붙이니까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암튼, 복잡한 일 있거나 그러면 말하고. 또, 혼자 끙끙 앓지 마라. 어?”
 “알겠으니까, 걱정하지 마.”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요즘 학원을 옮긴 세훈에게 거긴 괜찮냐고 묻자, 세훈이가 전에 다니던 곳 보다는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너 성적 오르는 거 보고 나도 다니던가 해야겠다며 말했다. 세훈이가 자기는 당연히 성적이 오를 거라며 자신한다. 하긴, 열심히 하니까 오르겠지. 나도 열심히 해야 되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갈림길에서 세훈이와 흩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연스럽게 옆집으로 눈길이 갔다. 현관 앞에서 토마토를 옮기던 게 생각이 난다. 나도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마음이 복잡해 지기전에 얼른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왔냐?”

 

 또, 누나가 집에 있었다. 아무리 대학생이라지만 공부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만날 집에서 뒹굴 거린다. 또 소파에 드러 누워있는 김혜인을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난 대학생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누나를 보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참, 좋은 누나다.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교복을 갈아입고 있는데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야, 김종인 밖에 누구 왔나봐! 나가봐!”

 

 방문 밖으로 쩌렁쩌렁 외치는 누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짜증을 내며 방문을 열었다.

 

 “니가 나가면 되잖아.”

 

 그랬더니,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향하면서 소리친다.

 

 “나 지금 급해! 암튼, 빨리 문 열고 나가봐. 알겠냐?”

 

 진짜,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한숨을 내 쉬며 어쩔 수 없이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하며 문을 열자 문 밖으로 과일이 든 쟁반을 들고 선 도경수가 보인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라 흠칫 놀랐다. 대놓고 놀랄 수는 없어서, 잠깐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하게 도경수를 바라보다가 쟁반을 번갈아 보았다. 사과, 오렌지, 바나나…. 이게, 다 뭐야.

 

 “엄마가 감사하다고 전해 달래서.”

 

 말없이 서있는 내게 쟁반을 들이밀며 불쑥 말한다.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그 모습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나를 보고 웃은 건 처음 인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아득해져서 가만히 그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쟁반 없어? 아님 니가 나중에 갖다 줄래?”

 

 그러다가, 어제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는 도경수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그 아이에겐 기다리라고 말한 뒤 부엌으로 가서 옮겨 담을 쟁반을 가지고 나왔다. 하나씩 과일을 옮겨 담으며 생각했다. 또, 어색해서 미칠 것만 같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방에서 못들은 척 하며 버티는 거였는데. 젠장, 김혜인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오늘도 야자 안 했네? 집에서 공부하나봐?”

 

 어제와 같이 도경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럼 난 또, 어. 하고 짧게 답한다. 무안하게 하려던 건 아니고 그냥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랬을 뿐인데. 도경수가 조금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더니 굴하지 않고 또 말을 건다. 조금, 의외였다.

 

 “문자 봤어?”

 

 근데, 그게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라 더 놀라서 아주 잠깐, 도경수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에 확신을 가진 건지, 그 아이가 눈을 빛낸다.

 

 “문자 봤지?”
 “…….”
 “근데 왜 답장 안 했어?”

 

 토마토 잘 먹었다던 내용의 문자를 떠올렸다. 번호를 저장하지도, 문자를 삭제하지도 못하고 이틀 동안이나 나를 괴롭혔던 문제의 그 문자를 말하는 거다. 그건 그 것 대로, 지금 내 앞의 도경수는 도경수 대로 나를 괴롭게 한다. 그 문자가 뭐라고 이렇게 자꾸 말을 붙이려는지 모르겠다.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다. 예전의 너와는 너무도 달라서 나는 지금 너무 혼란스럽다. 그래서 못들은 척하려고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너 공부 꽤 열심히 하는 것 같더라.”
 “내 번호는 저장 했어?”
 “필기도 잘 돼있던데.”
 “답장은 안 해도 되는데, 내 번호 저장 안했으면 저장해.”

 

 과일을 다 옮겼다. 내가 알던 도경수가 아니었다.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야 대답하던, 여러 개의 문자를 보내면 뒤늦게 한 개의 답장을 보내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그 앨 쳐다보고, 그 앤 날 쳐다본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내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 잘 먹을게. 어머니께도 고맙다고 전해드려.”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손에 힘이 풀렸다. 들고 있던 쟁반을 놓쳐서, 과일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다니는데도 주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다르다. 너무도 다른 그 아이의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 때, 내가 널 좋아하던 때 오늘의 모습만 보여주었더라면…. 왜 이제 와서 나한테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화가 나다가도 그 아인 아무 생각도 없는데 나 혼자 민감하게 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나한테 왜 이러냐고 화를 내고도 싶고, 작년에 니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묻고도 싶었다. 친구로 다가오는 거라면 작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거다. 그럼 내가 작년에 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내가 그렇게 힘들고, 아팠던 게 그 아이에겐 아무것도 아닌 거지. 근데 그게 아니라면…. 아닌 경우는 상상 조차 되지 않는다. 여하튼 그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이 너무 괴로웠다. 작년이든, 지금이든 그 아이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비가 온다. 오늘은 학교 남아서 공부를 하고 갈 생각이어서 우산을 들고 왔다. 사실, 비가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누나가 우산 챙겨 가라고 말해준 덕분이다. 웬일로 도움이 된다. 세훈이는 학원 때문에 먼저 갔다. 남아서 공부를 하는 애들은 몇 없었다. 창밖으로 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교실에 남은 인원도 몇 없다. 한적하니, 공부가 잘 될 것 같았다. 제일 자신 있는 수학책부터 꺼내들었다.


 꼭 틀리는 유형만 틀린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어서 해설지를 펴다가 무심코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우산이 있다지만 집에 갈 땐 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화가 젖는 그 축축한 느낌이 싫다. 그런 생각을 하며 펼치다 만 해설지로 고개를 돌리려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비가 오던 그 날이.

 그 날, 난 새로 산 파란 우산을 썼다. 첫 등교, 새로 산 우산, 그리고 창가에 서있던 그 아이와의 첫 만남.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느꼈던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 그 아이와 있었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지어졌다가,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네가, 내 첫사랑이었다는 걸.

 첫사랑이라고 특별히 의미를 부여해서 그런 것인지, 너로 인해 그렇게 괴로워했으면서 나는 아직도 너를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과거의 일만 두고도 충분히 복잡한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나에게 다가온 네가, 내가 알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서 나는 더욱더 혼란스럽다.

 

 “…어렵다.”

 

 생각만 하던 걸,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아이도 어렵고, 이 문제도 너무 어렵다. 그리고, 피하려고 애쓰면서도, 의식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아이를 자꾸 생각하는 내 마음도 어렵다.

 

 

 

 

 

 

 

 


 한 시간 반 동안 수학 문제 3개를 풀었다. 학교에 남은 보람이 없었다. 비는 왜 와가지고선, 날 복잡하게 만드는지. 애꿎은 날씨를 원망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책상 옆에 비스듬히 세워 두었던 우산을 들고 복도로 나섰다.

 

 “어? 깜종!!”

 

 멍하니 걷던 와중에,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현관 앞에서 백현이가 서 있다.

 

 “이제 집에 가냐?”
 “넌 웬일로 야자를 다했어? 철들었네.”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백현을 툭 치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백현과 복도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예 백현을 향해 몸을 틀었다.

 

 “니가 김종인이지?”
 “아, 어….”
 “반갑다. 난 백현이 친구 박찬열이야. 이름, 알지?”
 “응, 알아.”

 

 주저앉아서 운동화를 고쳐 신던 박찬열이 뜬금없이 나와 백현이 사이에 끼어들더니, 날 보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온다. 작년 이맘 때 쯤 이유 없이 미워하던 아이였는데, 백현에게 들은 것도 있고, 직접 얘기를 나눠보니 성격이 꽤 좋은 것 같았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이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멍하니 서 있는 도경수를 힐끔 쳐다보았다. 끼어들 생각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 그 아이를 잠깐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 맞다, 깜종 너 경수네 동네로 이사 했었지?! 넌 우산 있냐?”

 

 갑자기, 백현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도경수가 우산이 없는 모양이다. 잠깐, 망설이다가 들고 있던 파란 우산을 백현에게 흔들어보였다. 그러자, 백현이 멀찍이 떨어져있던 도경수를 끌어당기더니 내 옆에 세우며 박수를 친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힐긋, 도경수를 바라보자 어색한지 눈을 도르륵, 굴리며 혀로 입술을 축인다.

 

 “와우! 도경수 구사회생이야~!”
 “아, 이 무식한 새끼. 구사일생, 기사회생이겠지. 모르면 쓰지를 말던가.”
 “암튼, 십년감수했다 그치?!”

 

 같이 쓰고 가겠다고 말 한 적 없는데, 백현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눈치다. 그런데, 말을 좀 잘 못했다. 그러자 박찬열이 바보냄새 난다고 놀린다. 백현이가 못들은 척 발을 밟는다. 둘이, 이렇게 노는 구나. 좀,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백현이 나에게 뻘줌하게 서있는 도경수를 가리키며 말한다.

 

 “얘랑 같이 쓰고 가. 얘가 너 문학책 빌려주고 그랬는데, 어? 기억나지?! 집도 가까울 텐데 둘이서 우산 같이 쓰고 가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

 


 이럴 때, 세훈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백현이 원망스러워졌다. 이러지 않아도 난 지금 도경수로 인해 충분히 복잡한데. 우산까지 같이 쓰고 가라고 부추기다니. 상황은, 도저히 싫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 굳은 표정으로 백현이를 보자, 백현이 울상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그 눈빛에, 제발 한번만. 하는 부탁이 서려있다. 누군가와 함께 같이 우산 쓰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였지만,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밖엔 비도 많이 오고. 백현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니까. 옆집인데, 우산 같이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말없이 도경수를 바라보다가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 우산을 펼쳤다. 그리고 뒤를 돌아 그 아이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 아이를 밀어내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밀어내지 않는 나는 과연 어떤 마음인 걸까.

 

 

 

 

 

 

 


 기분이 이상했다. 비 오는 날, 같은 우산을 쓰고 걷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도경수와 우산까지 같이 쓰게 되었을까. 그것도, 하필이면. 그 아이를 처음 본 날 쓰고 있던 그 파란 우산을. 혼자 복잡한 생각을 하느라 말을 할 생각도 못했다. 어제 까지만 해도, 먼저 말을 잘 걸어오던 도경수도 조용하다. 조금 큰 우산이지만 다 큰 사내 녀석들 둘이 쓰기엔 좁았는지 어깨위로 빗방울이 톡톡 떨어졌다. 젖은 어깨를 내려다보는 사이, 도경수가 내 쪽으로 성큼 다가선다. 그 아이의 반대쪽 어깨를 보니, 내 어깨만큼이나 젖어 있었다.

 

 “내가 들까?”

 

 그 말에, 대답 없이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이런 저런 말을 붙이려고 애쓰던 도경수의 말이 있었지만, 난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낯설어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항상, 둘이 함께 걸을 때면 이런 저런 말을 붙이던 건 나였고, 어쩌다 한번 선심 쓰듯이 대답하던 게 너였는데. 상황이 어쩌다가 이렇게 반대가 되었을까.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과일 잘 먹었어. 맛있더라.”

 

 나 혼자 생각에 빠져있다가 조용해서 옆을 돌아보니 도경수가 조금 뚱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토마토 고맙다는 문자도 받았는데 어제 과일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먼저 말을 걸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입술이 조금 떨려왔지만 그 아이가 눈치 채지 못하길 바랐다.

 

 “그래? 다행이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네 웃음이 이렇게도 쉬운 거였던가. 작년엔 너무나도 어려웠는데…. 조금, 씁쓸해져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도경수가 나에게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에, 흠칫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섰다. 니가 다가오는 건 익숙하지가 않다. 단순히 비를 피하려고 다가온 건데도 마음이 무언가 들어찬 것처럼 답답해져왔다.

 

 “우산이 좀 좁다. 너 비 맞아, 이리와.”

 

 젖어 있는 내 어깨를 슥 쳐다본 도경수가 내 팔을 잡아당긴다. 이끄는 대로 순순히 끌려가면서 머릿속은 하얘져있었다. 자꾸만 계속되는 접촉에,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과부하 상태. 폭발 직전이다. 그 아이가 또 말을 거는데,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대답을 한 게 신기할 정도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걷고만 있는데 도경수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어온다.

 

 “이 우산 어디서 샀어?”
 “…왜?”
 “나도 살려고.”

 

 ‘전에도 생각했는데, 색깔 진짜 예쁘다.’ 혼잣말로 덧붙이는 도경수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전에도 생각했다니. 그럼, 이 우산을 기억하는 건가. 작년에, 창가에 서 있던 그 날 나를 본 걸, 기억한다는 건가. 기억을 다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 올 수 있는 거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억 안나? 아님 말하기 싫나?”
 “…….”
 “내 번호는 저장했어?”
 “…….”
 “집도 가까운데 앞으로 자주 마주칠 거 아냐. 책도 빌려주고, 우산도 같이 썼고 하니까 뭐 백현이 말대로 친하게 지낼 수도 있는 거고.”
 “…….”
 “…아닌가?”

 

 도경수가 내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얗게 지워졌다, 복잡하게 엉켰다 수백 번도 넘게 반복되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일부러 우산 어딘가를 짚으며 어디서 물이 새는 것 같네, 우산에 구멍이 났나,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나의 혼란스러움을 몰랐으면 했다.

 

 “…나랑 친하게 지내기 싫은가?”

 

 끝까지, 그 아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던 도경수가 끝내 조금 섭섭한 말투로 투덜거린다. 힐끗, 쳐다보니 표정이 또 뚱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기나 하는 걸까.

 

 “난 널 좀 더 자주 봤으면 좋겠는데….” 

 

 방심하던 사이에, 도경수에게 한방 먹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툭 던지는 그 말에 난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난 너 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겠고,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날 흔들어 놓을 수가 있는 건지. 내 생각은 조금도 안하는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울컥, 눈물이 날 뻔 했다. 조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도경수를 내려다보았다.

 너에게 반했던 날, 나는 이 우산을 쓰고 있었어. 이 우산은, 너를 떠올리게 해.

 

 “자. 이거 너 가져.”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도경수에게 우산을 쥐어주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다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날 괴롭히는 너를 모르겠다. 더 이상 같은 우산을 쓰고 있을 자신이 없어서 난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너와 나만의 시간
15.

-종인의 이야기 Ⅵ-

 

 


 어제 비를 너무 많이 맞았다. 우산을 가져가놓고 쫄딱 비를 맞고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누나가 기겁을 했다.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걸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너무 어지러웠다. 그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머리가 띵하니 울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감기에 걸렸다. 코를 훌쩍이는 나를 보며 누나가 코찔찔이 병신이라고 놀린다. 반응하면 더 재밌어 할 것 같아서 무시하고 집을 나왔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힘이 다 빠졌다. 책상에 엎드리듯 누웠다. 왜, 하필이면 학교에 딱 도착하니까 못 견딜 정도로 아픈지 모르겠다. 아플 거면, 좀 미리 아프던가. 아, 모르겠다. 자꾸 기침도 나고, 코가 막혀서 숨을 못 쉬겠다. 머리도 어지럽고, 열도 있는 것 같다. 아침부터 골골거리며 힘없이 엎어져 있었는데, 누가 내 어깨를 마구 흔들어 깨우길래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울상을 지은 백현이와, 인상을 찌푸린 오세훈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왜.”
 “야, 너 또 어디 아프냐? 왜 이렇게 골골거려?”

 

 자주 아픈 편은 아니다. 평소엔 흔한 잔병치레도 하지 않는데, 마음이 고되면 몸도 따라서 아픈 것 같다. 작년에 두세 번 아프고, 올해 들어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니까. 그걸 아는 세훈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대답할 기운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열 있네. 기침도 하는 거 같드만. 감기 몸살이냐?”
 “몰라.”
 “야, 깜종. 너 감기 걸렸어?”

 

 세훈의 말에, 그저 가만히 나를 지켜보기만 하던 백현이 따라서 내 이마를 짚어보더니 놀랜다.

 

 “야. 너 이마가 완전 불덩이야.”
 “아, 이 미련한 새끼. 아프면 아프다고 말이라도 하던가. 쫌, 어?”

 

 백현이, 세훈이가 번갈아가면서 타박을 준다. 자꾸 옆에서 말 거니까 머리가 더 어지럽다. 그래서 손으로 이마를 짚고, 가라고 손짓했다. 그런데, 가기는커녕 의자를 끌고 와서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김종인. 너 혹시, 어제 비 맞고 갔어?”

 

 세훈의 말에, 대답하려고 입을 떼는데 백현이 먼저였다.

 

 “아닌데? 어제 도경수랑 같이 우산 쓰고 가는 거 내가 봤어.”

 

 백현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세훈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나를 한번 바라보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백현이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만다. 근데 그 표정이 심상치 않다. 백현이가 가고 나면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놓을 것만 같다. 아, 그 생각을 하니 머리가 더 아파온다. 딱히, 변명을 할 말도 없다. 같이 쓰고 가라고 부탁한 건 백현이었지만 그걸 받아들인 건 나였으니까.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난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 그랬다. 모든 건 다 내 탓이다. 불행을 자초한 것도, 모두 나였다.

 

 “야, 말해봐. 너 혼자 비 맞고 갔냐고. 도경수는 멀쩡하던데?”


 세훈이는, 백현이의 입에서 도경수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입을 꾹 다물어버린 상태였고, 백현이만 혼자 날 붙잡고 계속 묻는다. 끝까지 못들은 척 하며 대답해주지 않았다. 귀찮게 물고 늘어지는 백현을 외면하며 또다시 엎드려 누웠다. 머리가 아프다. 쉬는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어쩔 수 없이 백현이 자기네 반으로 돌아간다. 아, 이제야 조용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팠는데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다시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드니, 내 옆으로 세훈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제 수업 시작인데, 니 자리로 가야되지 않겠냐고 물으니 너무도 당당하게 하는 말이, ‘자리 바꿨어. 이번 시간에 여기 앉을 거야.’ 한다.

 

 “김종인. 내가 아까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아까 다 들었잖아.”
 “변백 말이 맞아?”
 “…….”
 “너 어제, 7반 걔랑 우산 쓰고 간 거 맞나보네.”

 

 예전에는, 세훈이가 7반 걔라고 말하면 이름을 말해줬었는데….

 

 “도경수가…”
 “어.”
 “…이상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지금 몸이 아파서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세훈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씩 다 털어놓았다. 내게 말을 듣는 동안 세훈의 표정이 알 듯 말 듯 미묘하게 변해갔다. 세훈이는 내가 모르는 나의 감정변화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읽지 못한 그 아이의 의도까지도. 그리고, 그걸 다 눈치 챘으면서도 나에겐 말 하지 않을 것이고.

 

 “걔 몇 반이라 그랬지? 변백현이랑 같은 반이라고?”
 “…응.”
 “찾아 가서 한 대만 패도 되냐?”
 “…….”
 “어? 그래도 돼?”

 

 내게, 허락을 구하는 세훈의 말에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때리라고 할 수도, 때리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읽은 세훈이가 그때처럼 화를 낸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씩씩거리는 세훈의 팔을 가만히 붙잡으며 말했다.

 

 “이 시간 마치고, 나랑 보건실 좀 같이 가자.”

 

 그냥, 세훈이가 그 아이를 때리지는 않았으면 했다.

 

 

 

 

 

 

 

 

 

 보건실에서 약을 먹고 왔다. 여전히 기침이 나고 콧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가 없지만 약을 먹었으니 괜찮아 지겠지. 더운 날씨 탓에 에어컨을 틀어놔서, 내 자리로 찬바람이 불어온다. 으, 조금 추워서 체육복 상의를 꺼내 입었다. 책상위에 펼쳐둔 개념원리 책을 덮다가 우연히 보았다. 내 이름표 위에 올려 져 있던 약 두 알을.

 그걸 손에 쥐었다. 손에 쥔 약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누구지? 누가 두고 간 거지? 내가 아픈걸 아는 사람은 오세훈, 변백현밖에 없다. 세훈이는 나랑 좀 전에 보건실에 갔다 왔으니까 당연히 아닐 것이고, 백현이는…. 변백현일리 없다. 오세훈이나, 변백현이나 둘 다 약을 가져와 줄 애들은 아니니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누구지…?

 누가, 대체, 왜 나한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고개를 갸웃 거리는데, 오세훈 때문에 저번 시간 자리를 바꿔 앉았던 짝이 제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 그거 눈 되게 큰 애가 와서 놓고 가던데?”
 “눈 되게 큰 애?”

 

 내가 되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생김새를 묘사해주는 짝의 말을 듣고 있으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도경수. 그 애 밖에 없다. 그 아이를 생각하자 코가 괜히 시큰해져서 손으로 콧잔등을 문질렀다.

 기침은 자꾸 나오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약을 먹지도 않고, 손 위에 올려둔 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알 수 없는 기분이다. 이젠 그 애를 생각해도 머리가 복잡하지 않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그냥. 오로지 그 얼굴 하나만 생각이 났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멍하니 나를 보던 그 표정 하나만.

 핸드폰을 꺼내어 그 아이가 내게 보냈던 문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번호를 저장했다. ‘도경수’ 이름을 저장하는데 나도 모르게 체한 것 같이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죄를 짓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 찔려서는 혹시나 누가 볼까봐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볼까 망설이다가 순간, 화가 났다. 자고 일어나면 문자 하나쯤은 와있을 거라고 기대를 가지던 예전의 내가 생각이 났다. 알 수 없던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그 아이의 반에 찾아가서 멱살이라도 쥐고 묻고 싶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또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피하고 싶었다.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 다녔다. 어제는 주말이어서 그 아이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심부름 갔다 온 사이에 도경수가 우리 집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걸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조금은, 어색한 얼굴로 내게 인사하는 그 아이를 보며 조금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현관 구석에 세워둔 파란 우산을 보고, 그 아이를 다시 쳐다봤다. 내 일상에 끼어들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엄마와 누나의 눈치 때문에 억지로 내 방으로 들였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가시방석 같았다. 말을 걸려고 눈치를 보는 그 아이를 일부러 무시했다. 그러면서도 아예 신경이 안 써지는 건 아니었다. 신경 쓰여 미칠 것 같았다. 책을 펴놓고 앉아 있는데, 공부 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낙서를 하고 있었다.

 도경수, 약, 우리 집, 우산. 왜? 나한테 왜? 복잡하다.

 연습장도 아니고 책에 끄적여 놓은 낙서를 보다가, 등 뒤로 앉아있는 도경수에게 말을 걸었었다. 우산 가지라고 있는데 왜 다시 가져왔냐고. 해명을 바랐는데 딴 소리만 늘어놓다가 내게 역으로 질문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 때문에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었는지, 집에 가보겠다는 그 아이에게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될 것 같아서 뒤늦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 말에 진짜 말도 안 되게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얼른 나가버리는 도경수의 얼굴을 보고 책을 덮어버렸다.


 그 아이를 떠올리기 싫어서 줬던 우산이었는데….

 결국, 우산은 내게 돌아왔다.

 

 

 

 


 

 


  “형, 저 술 좀 사주 세요.”

 

 과외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 준면이 형에게 말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날 한번 바라보던 형이 무슨 일 있냐고 묻길래, 고개를 저으며 그냥요 하고 웃었다. 그랬더니 형이 술은 너 대학가고 나서 마시자고, 저녁 사줄 테니까 나가자고 한다.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을 따라 나선 곳은 형의 자취방 근처 밥집이었다. 실컷 따라 와놓고 막상 가게에 앉아 메뉴를 시키는 형을 보고 있자니 미안해졌다. 형도 자취하는 대학생인데 내가 괜히 사달라고 졸랐나 싶은 거다. 조금 미안한 눈으로 형을 보고 있으니, 형이 씩 웃는다.

 

 “무슨 일인데?”
 “뭐가요?”
 “무슨 일 있으니까, 나한테 술 사달라고 그런 거 아냐.”

 

 빈 컵에 물을 따르면서 묻는 그 말에 조금 찔려서 멋쩍은 듯 웃었다. 내 주위엔 날카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준면이 형도 그렇고, 오세훈도 그렇고. 나만 빼고 다 눈치가 빠른 것 같아서 가끔은 무서울 정도다. 평소엔 따로 연락도 잘 안하면서 괜히 힘들 때만 형에게 의지하는 것 같아서 또 미안해졌다. 그렇다고 김혜인에게 의지할 순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편안하게 대해주는 형에게 의지하게 된다. 에이, 안되겠다. 다음엔 내가 밥이라도 한번 사야지. 형이 나한테 얻어먹을 지도 의문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편하다.

 

 “그냥, 뭐….”

 

 막상, 얘기를 꺼내려니까 쉽지가 않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무슨 말부터 꺼내야 될지도 모르겠다.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이 무엇인지, 그 아이는 이제 와서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딱 두 가지 뿐인데. 내가 그 아이 문제로 혼란스러워하며 형에게 답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우습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놓고 이젠 그 아이만 생각하고 있다. 정말, 우스운 일이다.

 

 “뜸 들이는 거 보니까, 연애 문제 같은데?”
 “연애 문제는 아니고,”
 “그럼, 성적 문제야?”

 

 연애 문제는 아니다. 성적 문제도 아니다. 아닌가, 연애 문제 맞는 건가…. 연애 문제라고 생각해 본적 없는데. 형의 말에,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다.

 

 “인간관계 문제인 것 같은데….”
 “인간관계? 친구랑 싸웠어?”
 “싸우고 그런 건 아닌데…, 형 혹시 그 애 기억해요?”
 “그 애라니?”
 “…….”

 

 설명을 하려니 조금 어려워서 입을 달싹이게 된다.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형이 내 얼굴을 슥 보더니 갑자기 생각났는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 걔?”
 “네.”
 “너 걔 얘기 꺼내는 거 1년 만인 것 같다.”
 “그러게요.”

 

 나도, 그 아이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었다고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지금 웃는 건지, 우는 건지도 모르겠다.

 

 “걔가 자꾸 저한테 와요.”
 “…너한테 온다고?”
 “이사 온 집 옆집이 걔 집이었어요. 그때부터 자꾸만 엮였어요. 보기 싫어도, 봐야 되고…. 처음엔 그게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좀 혼란스러워요.”
 “…….”
 “작년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얘가 먼저 말 걸고, 막 웃어주고, 아프다고 약도 가져다주고….”
 “……”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럴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너무 혼란스러워졌어요.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형은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고개를 몇 번 끄덕이기도 하고, 한숨을 푹 내쉬기도 했다. 세훈이와는 다르게 형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만 한다. 그래서, 더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난 지금 너무 혼란스럽고, 그 아이의 의도를 모르겠다’ 였는데 말을 다 쏟아내자마자 약속 한 것처럼 밥이 나왔고,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내게 형이 수저를 쥐어주며 일단 밥부터 먹자고 말했다.

 그 아이가 나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 게 싫다. 밥을 꾸역꾸역 삼키며 애써 떠오르는 얼굴을 지웠다. 형은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를 꺼냈다. 사소한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밥그릇이 비어있다. 포만감에 배를 문지르며 물 한잔을 마셨다.

 

 “형이 생각해 봤는데,”
 “…….”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형이 툭 치고 들어온다. 조금 놀란 눈으로 형을 쳐다봤다.

 

 “넌 지금 그 애 때문에 흔들리고 있고,”
 “…….”
 “걘 널 좋아하는 것 같은데?”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형의 말을 듣고 놀래서 나도 모르게 형에게 물을 뿜어버렸다. 갑자기 물벼락을 맞은 형이 인상을 쓰기에 얼른 티슈를 몇 장 뽑아 형에게 건넸다. 미안해서 죽을 것 같았다. 얼굴을 닦던 형이 괜찮다고 웃어줬다. 형은 진짜 착한 것 같다. 그러고 식당을 나와 형이 조심해서 들어가라며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해줬던 것 까지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탄 이후부터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다.


 ‘넌 지금 그 애 때문에 흔들리고 있고, 걘 널 좋아하는 것 같은데?’


 형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돼. 거짓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거리에서 그렇게 계속 고개를 흔들었다. 느릿느릿, 집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문득, 옆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방향이었던가, 이사 온 첫날 이쪽에서 보였던 방, 그 방의 도경수를 떠올렸다. 산발이 된 머리, 나를 보고 커지던 눈. 나는 이렇게 또, 그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자꾸만 너를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내가, 너에게 흔들리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너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의미 부여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었으면, 좋겠다….

 

 

 

 

 

 

 

 

 

 

 

 

 

 

***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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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재밋써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ㅡ다음편기대되요!!!!!하...종인이의마음앓이ㅠㅠㅠㅠ
12년 전
독자1
진짜 금손 갑이예요 정말
12년 전
독자1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요ㅕ작가님S2
12년 전
독자2
헐..?!?!?!?이렇게좋은글을왜인제서야본거지ㅜㅜㅜ일편부터다읽고왔어요보면서느낀거지만정말글잘쓰시네여s2ㅈ조으다조으다ㅋㅋ앞으로내용이기대되요!스릉흡니드↖^♡^↗
12년 전
독자2
으어ㅜㅜㅠㅜㅜㅜㅠ이글뭐야ㅜㅜㅠ왤케조아ㅜㅜㅠㅠㅜㅜ
12년 전
독자3
작가님!사랑해요ㅠㅠ 정주행하고 왔어요ㅠ
12년 전
독자4
처음에댓글달고 정주행하고 왔습니다..ㅠㅠ왜이런금작품을 이제서야발견했는지..ㅠㅠ아 아련한짝사랑들이 너무 이쁘고 안타깝고 그래요 ㅠㅠ 역시나 글을 잘쓰세요 완전 제가 원하던 학원물 ㅠㅜㅜㅜ교복입은 카디가 느므나 이쁩니다. 잘읽고갑니다 ㅠㅠㅠㅠㅠㅠ빨리와주세요♥ 제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5
흑흑 작가님 완전 좋잖아요ㅠㅜㅜㅜㅜㅠㅠㅜ 종인이가 경수를 정말 많이 좋아했네요 ㅠㅠㅠㅠ 경수는 너무 준비가 안됐던거구 ㅠㅠㅠ 준면이형 말에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왤케 눈물이 나는지ㅠㅠㅠㅠㅠ 종인아 맞아 맞다고ㅠㅠㅠㅠㅠ 앞에글들 읽으면서 종인이가 이제 마음이 떠나버렸으면 어떡하나 많이 마음 졸였는데 아직 경수가마음에 있어서 혼란스러운 거 맞죠? 이제 서로 마음을 확인하면 좋겠어요 ㅠㅠㅠㅠ 키마님~완전 잘보고 있어요!!!!! 스크롤 줄어드는게 어찌나 아까운지요 ㅠㅠㅠㅠㅠ 다음편도 기대할께요 키마님 글들 너무 좋아요~ 하트 하트 S2
12년 전
독자5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이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저의 마음에 아련함과 행복함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완전좋아요
12년 전
독자6
담얘기도있네요ㅠㅠㅠㅜ아 종인이야기를 읽으니까 이해가됩니당!!!!얼른다음꺼 읽으러갈게요♥♥
12년 전
독자7
헐.. 진짜 글 한구절한구절에 감정표현 쩔어요 특히 마지막에 아니었으면, 좋겠다 의 쉼표하나하나까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8
진짜 와 정말 대단해요 그냥 와 쩔어 종인이 얘기를 보니까 경수 너무 못됐네요ㅠㅜ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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