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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만의 시간
21.

 

 

 


 “너희 반 체육 언제 들었어? 빨아서 줄게.”
 “지금 줘.”
 “나 지금 입고 있는데 여기서 벗으라고?”

 

 김종인이 나를 아래위로 훑다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여기서 벗으라는 말은 못하겠지?

 

 “이번 주엔 체육 없어.”
 “진짜? 그럼 세탁해서 돌려줄게!”
 “됐어, 그냥 집에 가서 갈아입고 나와. 기다릴게.”

 

 엇, 당황했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안 되는데. 내 예상 밖의 시나리오잖아! 눈을 크게 뜨고 김종인을 바라봤다. 또, 시선을 피한다. 체육복을 핑계로 또 찾아갈 핑계가 생겨야 되는데.. 이러면 안 돼.

 

 “싫어. 다음에 줄게.”

 

 그래서 그냥 대놓고 솔직하게 말했다. 내 것도 아니고 자기 것을 돌려달라는 데 싫다고 하자 어이없단 눈으로 김종인이 나를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귀에 이어폰을 꽂으며 나를 지나쳐 걸어가 버린다. 헐? 방금 또 무시한 건가? 앞서 걸어가는 등을 바라보다가 얼른 쫓아갔다. 그리고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체육복은 꼭 돌려 줄 테니 걱정 말아라, 덕분에 체육한테 안 맞았다. 고맙다. 오늘 체육 시간에 농구공에 머리 맞아서 너무 아프다는 둥 별 얘기를 다 해봐도 여전히 들은 척 만 척. 이런 거야 뭐, 한 두 번이 아니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내가 옆에서 신나게 떠들 든 말든 묵묵하게 걸으며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김종인을 봤다. 그리고 그냥 입을 다 물었다. 그랬더니 나를 슬쩍 쳐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이거 봐, 다 듣고 있었네. 말 안하는 거 알고 쳐다본 거 아냐 지금. 그래서 그 아이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슥 잡아 뺐다.

 

 “뭐야.”

 

 그랬더니, 인상을 쓰고 나를 바라본다. 아, 좀 무섭다. 내 손에 있는 한 쪽 이어폰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역시, 노래를 안 듣고 있었던 거야.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났다.

 

 “같이 가자.”

 

 뜬금없는 내 말에, 여전히 인상을 풀지 않은 채 날 바라보던 김종인이 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가고 있잖아.”
 “그거 말고. 매일 같이 다니자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 손에 들린 이어폰을 바라보고, 김종인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 집도 가깝고 학교도 같은데 같이 다니면 좋잖아? 나만 좋은가.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무턱대고 내뱉고 보니 나한테 꽤 좋은 일 인거다. 물론, 이건 김종인이 내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의 일이지만. 아니면 내가 매일 쫓아다니면 되는 거고! 혼자 흡족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김종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는다. 그래서 나도 똑바로 그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또 눈이 마주쳤다. 역시, 그 애가 먼저 피한다. 고개를 돌리며 내가 손에 쥔 이어폰 한쪽을 빼앗아간다.

 

 “안 돼.”

 

 이럴 줄 알았지. 예상하던 대답이다. 그래도, 거절의 말에 힘이 쭉 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왜, 안 돼?”


 또 무시한다. 또!

 

 “왜 안 되는데? 왜?”

 

 그래서 계속 물었다. 대답해 줄 때까지 물어 볼 거야. 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래 뵈도 내가 좀 끈질긴 구석이 있다. 나는 끈질기게 계속 따라다니며 왜? 왜? 하면서 묻고 있고, 김종인은 여전히 대꾸가 없다.

 

 “왜 안 되냐고.”

 

 집 앞에 도착 할 때까지 물었다. 틈만 나면 왜냐고 물었다. 입이 다 아플 지경이다. 그 애 집 앞에 딱 도착했을 때 김종인이 드디어 나를 보며 말했다. 이건 뭐, 같이 온 것도 아니고. 내가 김종인을 쫓아온 거다. 그래도 둘이 같이 집 앞에 서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아직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못 들었지만 그래도 좋다. 오늘은 뭔가 잘 풀리는 것 같다. 아까 김종인이 체육복을 안 빌려 준다고 대놓고 거절했을 땐 되게 속상했는데 그게 액땜이었나. 체육복도 받고, 집에도 같이 오고. 좋다, 좋아!

 

 “…다녀.”

 

 혼자 생각하느라 김종인이 문 앞에서 중얼거린 말을 못 들었다.

 

 “뭐라고?”

 

 그래서 되물었다. 방금, 나 표정 되게 찐따 같았을 것 같다. 젠장.

 

 “내일부터 학원 다닌다고.”
 “학원? 어디 다니는데?”

 

 학원? 학원을 다닌다고. 그 아이의 입에서 학원 다닌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나도 같이 다니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학원 핑계로 더 다가가야지. 갑자기 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김종인에게 대놓고 물었다. 대답해줬으면 좋겠다. 눈을 빛내며 그 아이를 바라보는데, 김종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결국 닫아버리곤 뒤돌아서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려는 게 아닌가.

 

 “어디 다니는데?!”

 

 그래서 뒷모습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이런 다고 대답해주겠느냐마는. 표정 보니까 딱 알겠다. 쟤는 나한테 알려줄 마음이 없다.

 

 “몰라도 돼.”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가던 김종인이 휙, 고갤 돌려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그러곤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그걸 빤히 지켜보고 있다가 웃었다. 그래도, 김종인이 내일부터 학원을 다닌다는 걸 안 건 큰 수확이다. 그것도 직접 본인 입에서 들었다. 나한테, 자기랑 관련된 얘길 해줬어. 이런 건 처음 아닌 가…. 그리고, 나한텐 정보통이 다 있지. 숨기려고 해도 못 숨긴다 이거야. 순간, 머릿속으로 웃고 있는 백현의 얼굴이 지나갔다. 내일 맛있는 거 사주면서 은근슬쩍 던져봐야지. 흐흐.

 

 

 

 

 

 

 

 

 

 

 변백현 최고! 사랑해요 변백현! 당신 없인 못살아!!

 백현이의 도움으로 김종인이 오늘부터 다닌다는 학원을 알아냈다. 학원 좀 알려달라니까 처음엔 입 꾹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매점 데려가서 이것저것 사주면서 또 한 번 묻자 그제야 털어놨다. 언제 마치는 지, 무슨 과목을 듣는 지, 그 학원은 어디에 있는 지. 아, 진짜. 백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좋은 놈. 진짜 좋은 놈이야 넌. 백현이가 근데 그건 왜 묻느냐고 물었지만 그냥 나도 다니려고 그런다고 대충 둘러댔다. 그리곤 수업 마치자마자 그 학원으로 달렸다. 처음엔 학교 마치자마자 등록해서 바로 다닐 생각이었는데, 아직 엄마한테 말을 안했네. 오늘 집에 가서 말 해봐야겠다.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탐색했다. 학원가라서 그런 가 구경할 것도 없다. 단과 학원 몇 개가 드문드문 위치해있고, 그 근처엔 편의점과 독서실도 있다. 아, 별거 없네. 재미없다. 위치도 알아놨으니 오늘은 그만 집에 갈까, 하다가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김종인의 놀란 얼굴을 보고 싶어서.

 

 “어! 너 여기 학원 다녀? 아, 이게 아닌데. 너무 연기 티나!!”

 

 편의점 앞에 멍하니 서서 혼자 허공에 대고 몇 번을 연습했다. 그 아이가 마치고 나오면 태연하게 물어야지. 그러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시하려나. 아니면, 내 바람대로 놀란 표정을 지어줄까? 궁금하다. 그렇게 바보처럼 서 있다가 다리가 아파서 주저앉았다. 백현이 말에 의하면, 김종인은 한 시간짜리 수업 듣는 댔으니까 금방 나올 거다. 멍하니 앉아서 하릴없이 김종인만 기다리고 있자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 많은데,

 내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그 애가 나와서 손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

 

 ‘오래 기다렸어? 미안, 좀 늦었지.’

 

 상상만 해도 좋다. 예전처럼 날 향해 웃어주고, 손 내밀어주는 김종인이라니. 꿈만 같다. 예전엔 현실이었는데 지금은 꿈이다. 참, 웃기지. 고작 1년 만에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다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널 생각하며 혼자 웃음 짓는 것처럼 너도 작년에 날 떠올리며 웃음 지었을까. 머릿속으로 네가 바라는 내 모습을 수백 번도 넘게 그려보며 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주기를 바랐을까. 그러면 난 또 갑자기 그 애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미안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렇게 혼자 아팠던 너를 방치했던 내가 너무 밉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 그러니까 날 좀 용서해줬으면 좋겠다. 이것도 내 욕심인가. 어휴, 너무 어렵다. 그냥 생각 하지 않고 부딪힐래. 벽에 부딪혀 튕겨져 나가든, 아니면 그 벽이 부서지든 둘 중 하나겠지. 나는 자신이 있다. 1년 동안 쌓아왔을 그 단단한 벽을 무너뜨릴 자신이 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는 지금도 행복하다.

 

 

 


 

 

 

 

 

 기다렸는데 끝내 나오질 않아서 그냥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허탈했지만 그래도 어딘지 알았으니 내일 또 가면 된다고 위안 삼았다. 엄마한테 학원 얘기를 꺼냈는데 씨알도 안 먹혔다. 지금까지 학원을 다녀서 성적이 오르거나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느라 떨어지기만 했었다. 그건 중학교 때 얘기지 않느냐고, 지금은 다르다고 엄마를 설득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학원 다니지 말고 차라리 일대 일로 과외를 하란다. 아, 우리 엄만 학원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다 나 때문이긴 하지만. 속이 바짝바짝 탄다. 이러면 내 계획이 틀어지잖아. 에이씨, 짜증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이 와중에 엄마가 슈퍼 가서 콩나물 사오라며 심부름을 보냈다. 안 간다고 짜증을 냈다가 등짝을 세게 맞았다. 아파 죽겠다. 등을 문지르며 집을 나서다가 옆집을 또 힐끗 봤다. 김종인은 뭐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학원은 잘 다니고 있나. 망할 학원. 학원만 아니면 나랑 같이 학교 다니고 그러면 되는데. 아쉬워. 옆집 근처에서 괜히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시간을 지체하다가 엄마가 보낸 문자에 하는 수 없이 슈퍼로 걸었다.

 

 [5분 준다.]

 

 빨리 안 오면 또 때리겠다는 의미다. 엄만 손이 너무 매워서 아프다. 맞기 싫다. 생각만 해도 등에 땀이 흐른다. 슈퍼에서 콩나물을 찾았다. 계산대에 서 있는데 누가 나를 툭 친다. 뭐야, 또. 고개를 돌려봤더니 누나다.

 

 “여기서 뭐해?”
 “어, 누나.”
 “까까 사먹으러 왔어?”
 “아뇨, 엄마 심부름이요.”

 

 손에 쥔 콩나물 봉지를 들어보였더니 누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봉지 안에 든 아이스크림을 하나 내민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랬더니 누나가 웃는다.

 

 “까 줘?”

 

 아, 먹으라고. 어설프게 웃으며 누나가 내민 걸 받았다.

 

 “감사합니다.”
 “뭘, 이 까짓 거 수십 개도 사줄 수 있어. 누나 알바 하는 여자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달라고 그래도 돼. 경수 너라면 다 퍼다 줄 수도 있어. 아, 백현이랑 손잡고 와도 되고.”

 

 그냥 말없이 웃었다. 그랬더니 누나가 또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웃은 것 뿐인데 내가 귀엽나? 김종인도 내가 웃으면 귀여워 해줄려나.

 

 “야, 김종인 빨리 안 나와?”

 

 놀랬다. 머릿속으로 김종인을 떠올리자마자 누나가 그 애 이름을 불러서 나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놀란 얼굴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찾았다. 짜증난 얼굴로 구석에서 걸어 나오던 그 애가 내 얼굴을 보고 얼른 표정을 굳힌다.

 

 “아, 이 새낀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야, 경수야, 김종인 돼지 새끼다. 너 그거 알아? 얘 존나 많이 쳐 먹어. 근데 살로 안 가고 키로 간다는 게 함정이다. 아, 존나 짜증. 난 물만 먹어도 살찌는데 재수 없다. 그치?”
 “쫌.”
 “뭐가 좀이야? 그나저나 너네 왜 아는 척을 안 해? 내외 하냐?”

 

 누나의 말에 찔려서 김종인을 한번 힐끗 봤다. 김종인도 나를 슥 내려다본다. 말 걸려고 했는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누나가 없었다면 차라리 눈 딱 감고 이런 저런 말을 붙여 봤을 테지만 왠지 좀 쑥스러워서 말을 못하게 된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입이 안 떨어지네. 내가 말을 안 하면 당연히 김종인도 말을 안 한다. 고로, 지금 그 아이와 난 눈빛 교환만 한 번 하고 여전히 침묵 상태다.

 

 “뭐야, 이 분위기?”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누나가 나와 김종인의 팔을 한 번씩 툭툭 치며 물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김종인은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가버린다. 또 무시하네. 그래도 어제 집에 같이 오면서 나한테 학원 다닌다고 말도 해줘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못 본 척 한다. 조금 서운했다가 그러려니 했다. 이런 걸로 무너지면 안 된다. 이게 뭐 한 두 번인가. 내일 학원 앞에서 기다리면서 우연히 만난 척 해야지. 그러면서 점점 더 다가가면 된다.

 

 “너희 싸웠어?”

 

 누나가 내 팔을 잡으며, 앞에 가고 있는 김종인을 고갯짓 했다. 아니라고 말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누가 봐도 어색했는데 여기서 싸운 게 아니라고 했다가, 그럼 왜 그러냐고 누나가 되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단 표정으로 날 보는 누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그 표정을 본 누나가 확신을 가졌는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싸웠구나, 짜식들. 유치하게 고딩이 되 가지구선 싸우고 말도 안하고 그르네. 으이구, 왜 싸운 건진 모르겠지만 빨리 화해해라. 알겠지?”
 “네.”
 “종인이가 잘못 했더라도 니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 쟤가 좀 성격이 안 좋아서 먼저 다가가서 사과하고 그런 거 못하거든.”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 말을 속으로 삼키고 누나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김종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엄마가 도저히 허락해 주질 않아서 결국 학원을 같이 다니는 건 포기했다. 대신 독서실을 끊었다. 성적 올려서 꼭 학원 보내달라고 해야지.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김종인이랑 같은 학원 다닐 거야. 공부에 대한 열의가 마구 불타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김종인이 마칠 시간에 미리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려고 알람까지 맞춰 놨다. 공부 하다가 시간 되면 가방 싸서 나가야지. 또 같이 집에 가면 좋겠다. 혼자서 상상을 했다. 전에 한번 같이 갔을 땐 나 혼자 떠들었지만 그래도 기분 되게 좋았는데. 흐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렇게 생각만 하다가 또 시간을 날릴 것 같다. 안 돼! 정신 차리고 공부 하자. 무슨 공부를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서랍 한쪽 끝에 끼워져 있던 영어 듣기 책을 꺼내들었다. 교재를 펴고, 엠피쓰리를 귀에 꽂는 것 까지는 아주 쉬웠다.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서 그런가보다. 이어폰에서 들리는 외국인의 유창한 영어 발음을 들으며 샤프를 쥐었다.

 

 

 

 

너와 나만의 시간
22.

 

 

 


 “어! 안녕?”

 

 진동으로 설정해놓은 알람이 울리기가 무섭게 바로 가방을 메고 독서실을 나왔다. 오늘은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뿌듯하다. 뭐랄까, 마음이 되게 가볍다고 해야 되나? 내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대단해, 도경수. 수고했어! 나 혼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외쳤다. 그리고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봐 얼른 주위를 살폈다. 어, 다행이다. 아무도 없다. 만족하며 독서실을 내려와 상가 건물 앞에 섰다. 맞은편 건물에 김종인이 다니는 학원이 있다. 타이밍도 어쩜, 딱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건너편에서 이어폰을 꽂으며 지나가는 그 아이가 보였다. 혹시나 못 만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얼른 쫓아가서 팔을 툭 치며 말을 걸었다. 멍한 표정으로 걷던 김종인이 나를 슥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좀 놀란 얼굴이다. 귀엽다.

 

 “…뭐야, 너.”

 

 놀란 얼굴을 지우고, 또 그 시큰둥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본다. 얘가 언제쯤 나한테 이런 반응이 아닌 다른 걸 보여줄까. 궁금하다. 너를 따라왔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모른 척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아이를 올려다봤다.

 

 “나 여기 독서실 다니거든. 넌 학원 이 근처 인가봐?”
 “…….”
 “왜?”

 

 예상대로 어이없다는 듯한 눈빛이 나를 향한다. 시선이 꽤 따가웠지만 모른 척 되물었다. 내가 되물으면 김종인은 또 대답을 안 할 걸 알거든.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잘 됐다. 같이 가자!”

 

 그러면서 은근 슬쩍 김종인의 팔을 잡았다. 나를 또 모른 척 내칠 것 같아서. 내 얼굴을 보던 김종인의 시선이 자기 팔을 잡은 내 손으로 옮겨갔다. 여전히 대답은 없이 눈빛으로 말하던 그 아이가 한동안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스윽 잡아 뺀다. 힘없이 팔이 미끄러져 내렸다. 아, 붙잡고 있던 게 손에서 빠져나가니 허전하다. 괜히 손에 땀이 다 난다.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해서 그냥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김종인은 이미 앞서 걸어가고 있다. 오늘도 또 무시하네.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사람인데 몇 번이나 이러니까 좀 속상하다. 그래도 꿋꿋하게 그 애를 쫓아가서 말을 붙였다. 나도 참 바보 같다.

 

 “공부는 잘 돼가?”
 “…….”
 “너 수학 잘하지? 난 수학 되게 못하는데. 근데 넌 왜 이과 안 갔어?”
 “…….”
 “내가 수학을 못해서 그런가, 수학 잘하는 애들 보면 신기하더라.”

 

 대답도 없고, 봐주지도 않는데 옆에서 졸졸 쫓아다니며 계속 말을 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민망하고 뻘줌하고 어색한 거 다 참아가면서 이러기 쉽지 않다고. 응? 너는 알고 있을까. 김종인 좋아하는 거 참 어렵다.

 

 “아참, 체육복은 어제 세탁기 돌렸거든? 내일 쯤 마를 거야! 그럼 갖다 줄게.”
 “…….”
 “어디로 갖다 주면 돼? 집으로 갖다 줄까? 아니면 학교?”
 “…….”
 “니 덕분에 체육한테 안 맞았어. 아, 내가 고맙다고 말 안 했었지? 고마워.”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다.

 

 “고맙다고.”

 

 대답이라도 해주면 안 되냐고. 말 한마디 하는데 닳아? 목소리 안 나오냐? 인어공주야, 무슨? 속상하고 답답하고 울고 싶고. 자존심이 무너진다. 그래도 내가 좋아서 이러는 건데 누굴 원망할까. 따지고 보면 김종인이 나한테 이러는 것도 다 내 잘못이니까. 이 아이의 마음을 닫게 한 건 나니까. 한숨이 나온다. 조금 지쳐서, 가만히 자리에 섰다. 내가 멈춰 서든 말든 무관심하게 제 갈 길만 가는 김종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울컥한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남자였나. 가슴에서 뭔가 따뜻한게 훅 치고 올라온다. 억지로 숨을 크게 쉬며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체육복.”
 “…….”
 “백현이한테 줘라.”

 

 그러고 있는데, 김종인이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근데 그게 썩 감격스럽진 않은 내용이다. 나한테 직접 받는 건 싫은가보다. 체육복 때문에 또 나랑 엮이는 게 싫으니까 아예 싹을 자르려고. 근데 어쩌지, 이렇게 상처를 받고 너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도 나는 너를 포기 못하겠다. 그래서 김종인에게 한 마디 했다.

 

 “싫어. 내일 보자, 안녕.”

 

 그리고 먼저 뒤를 돌아 정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걔가 이제 나 무시해.”

 

 아침을 안 먹고 왔다고 억지로 매점을 끌고 가는 찬열이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왔다. 셋이서 매점 옆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박찬열은 빵을 흡입하고 있고, 백현이는 우유를 마시고 있다. 입맛이 없어서 그냥 그 둘을 쳐다보다가 툭 말을 던졌다. 예전 같았음 혼자 고민하고 말았을 텐데, 내 머리를 굴려서 답이 나오질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둘 다 알고 있으니까 털어놓는 게 나을까 싶어서 얘기를 던졌는데, 애들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거봐, 내가 너 착각이랬지? 내가 뭐랬어, 과대망상이라니까.”
 “걔가 너 무시하는 거 하루 이틀이냐?”

 

 백현이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다시 빨대를 앙 물고, 박찬열 또한 마찬가지다. 아, 이것들이. 난 지금 엄청 심각한데 빵이랑 우유가 목에 넘어가? 괜히 말했나. 아무 일이 아닌 듯 그냥 넘어가려는 둘에게 짜증이 난다. 그래서 번갈아가면서 노려봤다.

 

 “니들은 친구도 아니야.”

 

 둘 다 먹던 걸 멈추고 날 보더니 픽 웃는다. 웃어? 웃음이 나? 난 지금 심각하다고!

 

 “야, 얘가 똥줄이 타긴 하나보다. 얘기 안 들어줬다고 삐지고. 우쭈쭈 우리 경수 삐졌쪄여?”
 “박찬열, 닥쳐.”
 “도경수 완전 귀여워! 야, 형아가 물 떠다놓고 빌어줄게. 백일기도? 그거 맞지, 암튼 백일동안 기도하면 이루어지려나? 약 빨 금방 먹힐걸? 좀만 기다려.”
 “변백현, 너도 닥쳐라.”
 “시간을 좀 주라니까, 그걸 못 참고 또 들이대셨어요?”
 “시간은 무슨 시간이야. 딱 봐도 나 밀어내려고 작정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기다려. 마음 정리하기 전에 가서 들쑤셔 놔야지.”

 

 진짜, 말을 하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한 것 같다. 그렇다고 생각을 아예 안 할 수도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감정. 이런 건 너무 어렵다.

 

 “맞아. 게다가 걔 완전 예쁘다며. 가만 두면 딴 놈한테 뺏길지도 모르잖아. 잘했어, 잘했어.”
 “아, 복잡해. 진짜 어려워.”

 

 판단 미스다. 그냥, 혼자서 생각하는 게 낫겠다. 얘네랑 얘기하니까 그냥 머리만 더 아프고 얻은 게 없다. 그냥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근데 걘 알아, 니가 좋아하는 거?”
 “모를걸.”

 

 백현이와 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찬열이 툭 끼어들었다.

 

 “왜 몰라, 너 티 다 난다니까.”

 

 당연히 내가 말 하지 않았으니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박찬열의 말을 들으니 또 그럴 것도 같다. 나름, 새로 알게 된 사실인데도 전혀 놀랍지가 않았다. 그렇구나. 알고 있을 수도 있는 거구나. 멍한 표정으로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니가 직접 말 한 건 아닐 거 아냐.”
 “응.”
 “걔가 자꾸 너 무시하고 그래서 힘들고 그러면 한 번 부딪혀 보던가.”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찬열이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데, 오히려 내막을 모르는 백현이가 허를 찌르고 들어온다. 나는 그냥 내가 옆에서 자주 보이고, 말 걸고 그러면 당연히 걔가 나한테 맘을 열고 다가 올 줄 알았는데…. 백현이의 말에 좀 놀랬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왜, 부딪혀 볼 생각을 못했었지?

 

 “야, 너 그거 모르지.”
 “…뭘?”
 “짐작해서 알고 있는 거랑, 직접 말로 듣는 거랑은 달라.”

 

 엄청난 얘기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우유를 마시고 있는 백현이를 바라보았다. 나를 마주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러면서 힘내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그냥 바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이다. 좀 놀라서 멍하니 계속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옆에 앉아있는 찬열을 바라봤다. 박찬열은 나랑 눈이 마주치자 니 맘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짐작해서 아는 거랑, 말로 확인 받는 건 다르다고…?”


 
 백현이 했던 말을 조용히 곱씹었다.

 

 

 

 

 

 

 

 

 혼자 수업시간에 집중은 안하고 또 생각만 했다.

 역지사지.

 김종인이 분명 나한테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건 분명한데. 어떻게 해야 다시 누그러뜨릴 수 있지? 이렇게 내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가 전에 했던 박찬열 말대로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꿔서 김종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또 이해가 가는 거다. 나한테 흔들리는 게 싫겠지. 또 상처받을까봐 두려우니까 나를 일부러 멀리하는 거다. 내가 더 좋아질수록 더 크게 상처를 주면서 멀어지게 만드는 거고. 그래, 이게 정답이야! 물론, 이것도 그냥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게 답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아침에 집에서 챙겨온 김종인의 체육복이 담긴 종이 백을 바라봤다. 기회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

 

 

 

 

 

 

 

 

 

 

 

 


 오늘은 독서실도 가지 않았다. 그냥, 학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그 아이를 기다렸다. 어차피 심란한데 앉아있어 봐야 공부가 될 것 같지도 않아서. 오늘도 무시하면 어쩌지. 체육복만 받고 그냥 가려나. 에이, 설마. 아냐. 그 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마음 한 편으로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달랬다. 초조하다. 빨리 나왔으면 좋을 것 같은 마음과 조금이라도 더 늦게 나왔으면 좋을 것 같은 마음이 공존한다. 참, 희한하지. 이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시간이 꽤 지났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 뿐만 아니라 학원 입구에 아무도 없다 이 말이다. 오늘 학원 쉬는 날인가? 아닌데…. 엄지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잘근잘근 씹었다. 긴장된다. 긴장 돼.

 거의 매일 무시당하면서 또 기다리고 있는 내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놓곤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이어 어쩔 수 없다고 이런 내 행동을 합리화 한다. 이젠 모든 게 확실하다.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고, 그 아이도 나에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너를 잡을 것이고, 너는 나에게 잡혀주기만 하면 돼. 그러면 끝인데…. 아, 말로는 이렇게 간단한데 상황은 쉽지가 않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이렇게까지 떨리고, 초조했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감정도 김종인이 먼저 느꼈겠지? 그 아이가 날 기다리며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하니 또 마음이 이상하다. 예전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지. 어찌됐든 난 지금 그 아이를 좋아하니까 미안해 하지말자. 충분히 미안해했어. 미안한 만큼 더 잘해주면 된다고. 그리고 오늘 사과도 할 거야.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계속 서 있으려니까 다리가 아프다. 그래서 근처 편의점 앞에 주저 앉아있었다, 일어 났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시계를 봤다. 아, 벌써 9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안 나온다. 오늘 늦게 마치냐고 문자라도 보내볼까. 아냐, 문자 답장을 안 하는 건 물론이고, 그 걸 보면 내가 기다리는 걸 알고 피해 갈 거야. 핸드폰을 꺼내다가 다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냥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다. 어제처럼 나를 못 본 척 하고, 내가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 하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내가 엄청난 얘기를 꺼낼 거니까.

 나를 보는 그 무심한 표정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시큰둥하고, 무표정하고, 달갑지 않은 그런 눈빛 말고 예전처럼…. 그러면서 예전의 김종인을 생각해내려고 애썼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때의 나에겐 김종인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의 그 아이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조금 아쉽다.

 

 “어, 비 온다….”

 

 정수리 위로 빗방울이 툭 떨어져내렸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떨어지는 거다. 머리 위로 손을 들어 막았다. 하늘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가득 몰려온다. 소나긴가. 아, 우산 없는데. 한숨을 내쉬며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종이 백을 내려다봤다. 김종인 체육복…. 그걸 보자마자 젖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백을 품에 끌어안고 고갤 돌려 비를 피할 곳을 찾았지만 마땅치 않다. 근처 편의점이라도 들어가 있을까 했는데, 그 곳에선 학원 입구가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거기 들어갔다가 놓치면 어떡해. 아, 어떡하지. 빗방울이 점점 더 거세진다. 독서실이라도 들어갈까. 독서실에 들어가는 건 괜찮은데 그 아이가 언제 마칠지 모르니까. 마칠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왜 아직도 안 내려오는 거야. 어쩔 수 없었다. 독서실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겨 다시 그 아이의 학원 앞으로 향했다. 이까짓 비, 어차피 소나기 같은데 조금 맞는 다고 드러눕기라도 하겠어? 나는 젖어도, 김종인 체육복은 젖으면 안 된다. 품에 안고 있었지만 종이라서 젖을 것 같다. 그래서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체육복이 든 종이 백을 집어넣었다. 그랬는데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서 그걸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다행히 소나기라서 금세 그쳤다. 비를 많이 맞진 않았는데도 아직도 젖은 상태였다. 비 조금 맞았다고 콧물이 찔끔 나온다. 교복이 물을 먹어서 그런 가 좀 무겁다. 으, 찝찝해. 얼른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씻고 싶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드디어 학원 입구가 웅성거린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 원래 마치는 시간보다 훨씬 늦게 마쳤네. 한숨을 내쉬다가도 김종인을 혹여나 놓칠까봐서 얼른 고개를 들어 그 아이를 찾았다. 근데 똑같은 교복을 입은 애들이 너무 많아서 찾기가 힘들다. 추운 날씨도 아닌데 비를 맞아서 그런가, 으슬으슬하다. 그래도 밤은 밤인가 보다. 오른 손으로 왼쪽 팔을 문질렀다. 어! 저기 김종인이 보인다. 진짜, 많이 기다렸다. 반가운 얼굴이 보여서 활짝 웃었다. 그냥, 그 아이만 보면 웃음이 난다. 그러다가,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오늘도 그냥 보고 무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김종인이 나를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선다. 나를 보는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한건 내 착각이었을까.

 그 표정이, 전에 김종인의 집에서 봤던 표정과 비슷했다. 꼭 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든 그 표정. 그래서 멍하니 서서 그 눈빛을 마주했다. 김종인이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 얼굴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 뭐야, 대체.”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나를 마주보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게 신기하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몽롱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나를 보는 눈빛이, 내게 말하는 목소리가 좀 더 다정했다면 좋았을 텐데. 뭐랄까, 화를 내는 것 같다. 조금, 멍하게 그 아이를 올려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가방에서 종이 백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건넸다.

 

 “체육복, 돌려주려고.”

 

 다행이다. 손에 쥔 가방이 젖지 않아서.

 

 “…….”

 

 내가 내민 가방을 받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보던 김종인이 다시 고갤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근데 너무 뚫어져라 보는 거다. 조금, 민망할 정도로. 그래서 눈동자를 굴렸다. 김종인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려고 애썼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 어떻게 하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난 것 같다. 초조하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눈만 깜빡거렸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지금 상황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이 흘러간다. 김종인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야.”
 “…….”
 “너,”
 “…….”
 “나한테 이러지 마.”

 

 낮은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이를 악 물고 말한다. 그 아이가 내게 화가 났다는 게 느껴졌다. 이번엔 조금 다르다. 그 아이가 말하고, 내가 대꾸를 안 한다. 낯설다. 그 아이가 나를 피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거부한 건 처음…, 아. 처음이 아니구나. 그래 두 번째. 두 번째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아파. 울고 싶다. 이렇게 또 내칠 거면 어제 집에 갈 땐 왜 나를 받아줬냐고, 괜히 기대 가지게 만들어 놓고 이렇게 또 실망만 가득 안겨준다고. 그 아이를 조금 원망했다. 나한테 이러지 말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 단호하다. 체육복만 주고 갈 거라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한 마디라도 꺼냈다간 그대로 그 애 앞에서 울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니가 이제 와서 이러는 거…,” 

 

 독한 김종인이다. 처음이었다. 이런 모습은.

 

 “싫다.”

 

 너무 낯설었다. 내 팔을 붙잡고 화를 내는 김종인이 무서웠다. 미웠던 감정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감정을 표현 한 적이 없었는데. 대놓고 이렇게 말 한 적은 처음이라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니가 나한테 흔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 다가가려고 했을 뿐인데. 너무 경솔했었나. 그동안, 억눌렀던 걸 다 토해내듯 내 팔을 쥔 손이 억세다. 겨우 화를 억누른 김종인이 내 팔을 놓고 뒤돌아 갈 때까지도 아무 말도 못했다. 조금만 더 흔들면 다시 나를 좋아해줄 거라고 자신해놓고.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김종인에게 잡혔던 팔을 문질렀다. 아프다. 멍 들것 같아. 어찌나 세게 쥐었던지 힘이 다 빠져서 팔에 힘이 안 들어간다.

 아직 내 손에 있는 종이 가방을 꽉 쥐었다. 멀어지는 그 아이에게로 달려갔다.

 

 “…김종인.”

 

 그 아이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말했다. 지금 말을 해야 될 것 같았다.


 
 “귀찮게 해서 미안. 다 미안해.”

 

 조금 전, 내게 화를 내던 모습과는 다른 표정의 김종인이 나를 바라본다. 조금은 힘이 빠진, 복잡한 표정을 하고서.

 


 “진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어떡하지, 그 표정에 눈물이 날 것 같다.

 

 “근데…, 내가 왜 이러냐면….”

 

 그래도, 김종인 앞에서 울 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울 자격이 없다고. 그래서 입술을 꽉 깨물며 울음을 삼켰다. 그 아이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렇지만 어제처럼 잡은 팔을 밀어내진 않았다. 젖은 머리 사이에서 물방울이 얼굴로 떨어져내린다. 다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 진짜 울고 싶어. 나를 보는 그 눈빛 때문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내가 왜, 이러냐면….”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그 아이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는다.

 

 “나 너 좋아해.”

 

 알고 있는 거랑, 직접 말로 듣는 거랑은 다르다던 백현의 말이 생각났다. 내 말에, 조금은 넋이 나간 듯 했던 김종인의 표정이 다시 돌아왔다. 조금 전, 입구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처럼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카만 그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다시 한 번 똑똑히 말했다.

 

 “나 너 좋아한다고.”

 


 

 

 

 

 

 

 

 

 

 

 

 

 

 

***

설명을 드리자면 너만시는 1부, 2부로 나눠서 연재할 계획이에요ㅎㅎ

근데 1부는 지금 완결을 낸 상태구요,

다음 편이 완결이에요!

 

1부가 답답, 아련 터진 카디였다면 2부는 아마 달달터지는 카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ㅎㅎㅎㅎ

 

그나저나 진짜 이렇게 빨리 와도 돼요?ㅠㅠㅠㅠㅠㅠ

감사해요 진짜

완전 사랑해요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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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작가님진짜사랑합니다ㅠㅠㅠㅠㅠㅠ너무좋아요ㅠㅠㅠㅠㅠㅠ다음편도빨리오실거죠 ㅠㅠㅠㅠㅠ제발 ㅠㅠㅠ
12년 전
독자2
감사감사해요~
12년 전
독자2
빨리와도되요ㅠㅠ아느므느므재밌드...
12년 전
독자3
짱 빠르닷 ㅎㅎㅎ 기대되여
12년 전
독자4
작가님ㅜㅜ저어제도밤새서다읽었어요
ㅜㅜㅜㅜ사랑합니다ㅜㅜㅜ

12년 전
독자5
와진짜좋아녀 ㅠㅠㅠㅠㅠㅠㅠ완전빠르세요ㅠㅠ 기대
12년 전
독자6
기다릴게요 완전 기대
12년 전
독자7
진짜쩔어요대박ㅜㅠ다음편기다릴게요사랑합니다ㅠㅠ
12년 전
독자7
지금 읽고있는데 작가님이 속도가 진짜 빠르다 못쫒아가겠어요헥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좋다♥
12년 전
독자8
빨리와도되요!!!완전사랑해요♥♥♥♥♥♥♥♥♥♥♥
12년 전
독자9
작가님사랑해요ㅜㅜㅜㅜ사랑한다고여ㅜㅜㅜㅜㅜ제사랑다가져여ㅜㅜㅜㅜㅜㅜ빨ㄹㅣ와도대여ㅜㅜㅜㅜㅜ♥♥♥♥♥♥
12년 전
독자10
당연히 빨리 와도 되죠ㅠㅠㅠㅠ 기다리고 있을게요
12년 전
독자11
이랗게빨리오면좋슴다s2ㅜㅜㅜㅜㅜ
12년 전
독자11
아 작가님. 사랑해요 정말로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12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빨리와두되요 아 진짜 사랑해요 작가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여기서 연재하시는거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저 정주행하면서 댓글 다달아쪄영 암호닉신청해두되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마지막 눈물날뻔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요 하트
12년 전
독자13
작까님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1분에 한번씩 1초에 한번씩 오셔도 돼요 퓨ㅠㅠㅠㅠㅠㅠ퓨ㅠㅠㅠㅠㅠ퓨ㅠ사랑해요 ㅜㅜㅜㅜㅜㅜ어떡하지 진짜??
12년 전
독자13
아ㅠㅠㅠㅠㅠ이런 안타깝고 아슬아슬하고...감정선 최고에요ㅠㅠㅠㅠ달달카디도 기대할게요 힘내세요 하트
12년 전
독자14
아자까님다읽고왔어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여 ㅠㅠㅠㅠ엉엉엉여기서 끊으시면 저 쥬금..................담편도 기대할게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15
아 쩔어....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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