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보낸 간자냐"
택운이는 너를 보자마자 무표정한 얼굴로 칼을 들이밀었어
밤이라 달빛 밖에 없는 이 어두운 곳에서도 서늘하게 빛나는 칼을 보고 있자니
정말 마법처럼 너빚쟁은 거짓말도 못하고 진실을 얘기하게 됐어
나는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인데 하면서 막 손에 걸린 시계도 보여주고 이게 미래 시계인데
막 내가 돌아다니면 시계가 저절로 변해요 제 옷 좀 보세요 이거 완전 특이하잖아요 믿어주세요
칼을 보고 있자니 눈물 콧물은 저절로 나오는게 막 이러다가는 정말 너빚쟁 인생 이야기를 다 말할 정도로
울고 짜면서 무서운 택운이한테 이것 저것 말하면서 빌고 있었어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어서
그런 너빚쟁을 보면서 택운이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저 정신나간 여자를 감옥에 쳐 넣으라고 그랬어
너빚쟁은 옆에 있던 다른 병사들 손에 이끌려 옥으로 질질 끌려갔어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너빚쟁은 진짜 멘붕상태
옥 안에 들어가서는 막 울면서 이런데 갇히면 죽는거냐고 앞에 서있는 병사 아저씨 바짓가랑이 붙들고 오열했어
그렇게 울다가 언제 잠에 들었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이렇게 과거로 떨어져서 죽을 뻔 한 적은 없지만
온갖 오지에 떨어져서 죽을 뻔한 적은 많아서 면역이 되었다고 해야 되나
막상 울다 지치니까 또 잠이 왔던거야
어차피 문만 열면 충분히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으니까
한참을 자다가 큰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까 나무로 된 창살 사이로
너빚쟁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정택운이 보였어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벌떡 일어나니까 정택운이 문 앞에 서있는 병사한테 눈짓을 해
병사가 문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를 푸는데 문득 저것도 문은 문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너빚쟁은 벌떡 일어나서 자물쇠가 풀리자마자 다짜고짜 문을 열었어
얼핏 당황한 표정의 정택운이 보였는데 그것도 문은 문이라고 문을 열고 나온 곳은
그 요상한 궁궐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이었어
눈이 예쁘게 내리고 있는게 맞게 찾아온 것 같기는 한데 감옥에 혼자 갇혀있던 거라
정택운이랑 같이 있었던 시간이 사실 길지는 않아서 뭔가 불안해
추워서 어디 들어가고는 싶은데 괜히 또 문 열었다가 다른 곳으로 떨어질까봐 일단 문을 조심하면서 걸어보기로 해
현재 한국으로 돌아온 게 흔치 않은 일이니까 일단 너빚쟁은 과거부터 어떻게 찾아가보자 생각을 했어
핸드폰도 없고 일기도 없고 옛날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한국은 너무 변한 것 같고
좀 막막하기는 한데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을 했어
그래서 일단은 어린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아있는 동네를 찾아보기로 했어
기억이 맞다면 사고가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살았던 곳 같은데
그 동네 이름이 아 뭐더라 막 생각날랑말랑한데 들으면 딱 알 것 같은데 막 정확히 생각은 안나는
그런 상황인거야 그래서 막 머리를 쥐어짜면서 앞을 봤는데
눈 앞에 매번 떨어질 때마다 봤던 편의점이 보였어
그리고 편의점 간판 오른쪽 아래에 딱 써있는거지 양재점이라고
그거 보자마자 어??!! 이거 내가 살던 동네!!! 하면서 소리를 질렀어
때마침 편의점 알바생이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가 그 소리 듣고 놀랐길래
놀란 김에 지금 2015년 맞죠? 하고 물어봤어
알바생은 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어
너빚쟁은 진짜 정택운을 만나면 현재로 돌아오는게 맞구나 생각하면서 고맙습니다~ 하고
동네 탐방을 시작했어. 옛날에 살던 동네, 초등학교 근처 그렇게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지
그러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어.
학교라도 갔다온건지 평범한 캐주얼 차림에 가방을 한 쪽으로 매고 있는 남자였어
낯익은 얼굴인데 이름이 기억이 잘 안나서 어? 하고 쳐다봤는데
그 남자도 귀신 본듯이 엄청 놀라면서 어???!!!하고 너빚쟁을 바라봤어
한편 과거의 택운이는 옥 앞에 멍하니 서있었어
분명히 저 문으로 어떤 여자가 나왔는데 지금 자기 눈 앞에 없단 말이야
어디서 보낸 첩자인지 왜 왔는지 심문하기 위해 당장 왕 앞에 데려가야 하는데
그 여자가 진짜 주술이라도 부리는 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거야
요즘 말로 멘붕한 택운이는 부하 보낼 생각도 못하고 왕에게 달려가
아침이라 우리의 전하는 문안인사 다 하고 산책 겸 마굿간 쪽에서 자기 말들을 보고 있었어
전하의 일과는 다 꿰고 있는 정택운은 왕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 마굿간으로 뛰어갔어
말을 보고 서있는 왕님 뒤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오늘따라 말들이 이상해
몇 년 전에 불의의 낙마 사고 이후에 정택운도 말들을 피했지만 말들도 정택운을 피했거든
근처에만 가면 속된 말로 말들이 아주 지랄발광을 하는데 오늘따라 애들이 가만히 있는거야
그걸 보고 임금님도 그거 참 신기하다고 얘기했어.
정택운도 약간 의아한거야. 항상 자기가 근처에만 가면 지랄발광을 하던 것들이;
아무튼 빚쟁이가 사라진 걸 목격한 사람은 택운이와 문을 지키던 병사 뿐이니까
일단 입단속을 시켜서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어
괜히 이런 소문이 돌았다가는 나라가 망할 징조니 뭐니 해서 대신들이 들고 일어날게 뻔하거든
가뜩이나 여러 이유로 왕권도 약한 상태인데
택운이는 꾸벅 명을 받을겠다고 인사를 마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어
말들을 보면서 한번 갸우뚱하고 말이야
♥[암호닉]♥
비비빅
레신셋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