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17
"…아."
왜, 어디 아파? 김민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나를 쳐다보던 김민규는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더니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나는 야자가 끝나면 독서실에 가기로 했다. 개학을 하고 나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독서실에 갔던 김민규와 달리 나는 야자를 했기에 야자가 끝나면 그냥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런데 이제 모의고사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독서실로 그만 돌아오라며 계속 찡찡대는 김민규에 나는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누가 보면 김민규가 칭얼대서 독서실에 간다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 사실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눈치를 보지 않고 김민규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독서실 뿐이었으니까, 여기는 보는 눈들이 없으니까. 나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독서실에 꼬박 꼬박 갈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김민규를 만날 수가 없으니… 독서실에 있는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나는 김민규를 보면서 안정을 취하곤 했다.
요근래 느껴지던 두통과 복통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져만 갔다. 약을 하도 먹어서 내성이 생긴 건지 딱히 약효가 드는 것 같지 않아 오빠한테 말을 해볼까 싶었지만, 나는 이내 그만두어야 했다. 모의고사가 일주일도 안 남은 이 시점에서 몸 관리도 제대로 안하고 뭐했냐며 혼을 낼 게 분명했으니까.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약을 먹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약이라도 안 먹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통증에 문제를 풀던 손을 잠시 멈추고 속으로 아픔을 삼키고 있는데, 김민규가 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길래 나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야. 근데 우리 언제까지 연락하고 만나야 돼?"
"…어?"
"답답해 죽겠어! 그냥 너네 반으로 가면 안돼?"
선생님이 우리 반 앞으로 남자애들을 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한 이후, 나와 김민규는 학교에서 만날 때면 항상 카톡을 하고 만나곤 했다. 방법은 이것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우리 아는 척 하지 말자, 이러면 김민규가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을 할테니까. 김민규의 의심을 최대한 사지 않고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그런데도 김민규를 만나는 것이 눈치가 보였기에 나는 일부러 김민규의 카톡을 씹은 적도 많았다. 김민규한테 카톡이 와도 무음이라서 보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 거지. 내가 그럴 때마다 답답해 보이는 게 눈에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게 연락이 안되도 김민규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우리 반에 온 적이 없었다.
"내가 뭐 별 수 있냐. 선생님이 안된다는데 뭘 어떡해."
"…진짜 짜증나네. 됐고, 우리 시험 끝나면 놀러 가자."
"어디로?"
"어디든. 우리 요즘에 통 못 놀았잖아."
씨익 웃으며 말하는 김민규를 보며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이제 공부하자!' 기지개를 쭈욱 피던 김민규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김민규의 모습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모든 걸 다 알게 되고 나서 나한테 실망하면 어떡하지. 나한테서 멀어지면 어떡하지. 그러면 되게 무서울 것 같은데. 내 옆에 김민규가 없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무서울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겁이 많아서 또 말은 하지 못한다. 항상 말해야지, 말해야지 다짐을 해도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지금 말을 할까, 입을 열었다 말았다 반복하던 나는 벌써부터 밀려오는 두려움에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미안해, 민규야. 너한테 이렇게 밖에 못하는 내가 너무… 미안해.
일주일이란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날짜를 보니 어느새 내일이 바로 모의고사 날이었다. 김민규는 벌써부터 떨린다고 옆에서 온갖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떨리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중요하다고 말하는 게 3월 모의고사였으니까. 이번 성적이 수능때가지 간다나 뭐라나. 믿기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고3 첫 모의고사니까. 잘 봐야 한다는 부담감은 떨칠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뭐라도 다시 한번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사탐이나 한 번 훑고 잘까…. 가방에서 다시 책들을 꺼내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 순간, 정말 갑자기 전원우가 떠올랐다. 왜 지금 전원우가 생각이 난 거지. 전혀 그와 연관이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떠오르는 그의 얼굴에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그러고 보니까 안 본지 꽤 됐구나… 연락 안 한지도 꽤 됐고. 하긴 요즘에 반에서 뭐 나간 적이 있어야지. 김민규 만나는 것도 무서워서 일부러 안 만나곤 했는데. 지금 상황에선 전원우한테 연락 안 오는 것도 다행인 거지….
…잠깐. 전원우가 연락이 없는 게 정말 다행인 걸까? 그냥 전원우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진작에 눈치를 챘었어야 했는데. 하루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연락을 했던 전원우였다. 그런 애가 갑자기 연락을 안 한다는 건… 설마 그 소문을 들은 걸까? 김민규는 모른다고 해서 전원우도 모른다는 보장이 없는 건데. 소문은 내가 걔를 가지고 논다고 났으니까… 정말 그 소문을 듣고 나한테 실망을 해서 이렇게 연락을 끊은 걸까?
갑자기 초조해지는 마음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만약 정말 전원우랑 끝나더라도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진 않았다. 소문처럼 너를 가지고 논 게 아니라 나는 정말 너를 좋아했다, 이런 고백 하나 못하고 그런 식으로 끝이 난다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 카톡을 누르긴 했는데 뭐라고 보내야 할까. 뜬금없이 '안녕?' 이라 하기에도 이상하고, '너 설마 그 소문 들은 거야?' 라고 보내기에도 뭔가…. 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난감함에 입술만 잘근 잘근 깨물다가, 그냥 내일 모의고사니까 '시험 잘 봐.' 라는 카톡을 치고는 전송 버튼 앞에서 누를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
지잉- 하고 진동이 한번 울리더니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설마 전원우인가?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으면서도 나는 혹시나 전원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일 시험 잘봐. 파이팅.]
"…아."
내 기대와는 다르게 문자의 주인공의 오빠였다. 오빠가 보낸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내일이 시험인데. 이번에 시험을 못 보면 난 오빠한테 죽겠지…. 그 생각이 미치자 다시끔 느껴져 오는 통증에 나는 또 약을 꺼내 먹었다. 이 놈의 통증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 일단 시험이 먼저니까 시험 보고 나서 연락을 해보자. 애써 불안한 마음을 억눌러가며 나는 책을 폈다.
*
"우욱…!"
대망의 모의고사 날이 되었다. 첫 시험이라고 다들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을 이 시간에, 나는 변기를 부여잡고 컥컥대고 있었다. 시험을 잘 봐야한다는 긴장감과, 못 보면 어떡하지 싶은 초조함 등등 신경 쓰이는 게 많아 깊이 잠들지도 못했거니와, 속이 쓰려서 이리 저리 뒤척이던 중 갑자기 밀려오는 구토감은 아침부터 힘을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손끝이 새하얘질 정도로 변기를 세게 잡고, 계속해서 역류하는 토사물들을 뱉어내고 있으니 눈물도 본의아니게 뚝뚝 흘러내렸다. 아… 이게 뭐야, 대체. 한동안 컥컥대며 토를 하다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몸을 겨우 일으켜 입 안을 헹구곤 학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에 이미 토를 한 번 하고 나왔기 때문에 그때부터 내 기분은 최악이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도 바쁜 상황에 몸은 점점 더 아파져만 왔고, 이제는 식은땀도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언어를 풀고 있는데 지문 따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지는 오래다. 읽고는 있긴 한데 무슨 내용인지도 도통 모르겠고, 내가 문제를 제대로 풀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겠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언어를 풀고 나선, OMR을 걷어가자마자 나는 바로 책상에 엎드렸다. 이렇게 아파본 적은 없었는데. 진짜 죽을 것 같다. 시험 끝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2교시가 시작 되고, 수리는 더 가관이었다. 더더욱 심해지는 두통과 복통에 앞이 흐릿해졌다. 애써 눈을 비벼가며 문제를 하나 하나 푸는데 그때 딱 직감했다. 나 이번 시험 진짜 망했구나. 그냥 오빠한테 얘기할 걸. 그랬으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텐데. 아… 망했다. 뒤로 가면 갈수록 흐려지는 집중력에 나는 대충 찍고는 남은 시간동안 또 다시 누웠다. 그냥 울고만 싶었다.
"야…! 너 어디 아파? 상태가 왜 이래?"
쉬는 시간이 되고, 누가 계속해서 툭, 툭 건드리길래 고개를 드니 친구가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는 손짓으로 저리 가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다시 엎드리자, 친구는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내 얼굴을 요리 조리 살펴댔다.
"왜 이래…."
"안되겠다, 조퇴하자. 응?"
"안돼, 무슨 조퇴야…."
"이래서 무슨 시험을 본다는 거야! 너 지금 상태 너무 안 좋아. 가자, 응?"
안된다니까…. 안된다는 내 말은 싸그리 무시하고 나를 부축하더니 친구는 교무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거 놓으라고 반항을 하려 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나는 이내 친구가 걷는대로 따라 걸어가야만 했다. 교무실 앞에서 노크를 두어 번 하니, 선생님 한 분이 나오셔서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담임선생님의 성함을 대면서 잠시 불러달라고 하니, 곧이어 우리 담임선생님이 나와 내 친구랑 나를 번갈아 쳐다보시곤 물었다.
"무슨 일이야?"
"선생님. 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요. 더 이상 시험은 못 볼 것 같은데 조퇴 좀 시켜주시면 안돼요?"
"조퇴? 지금?"
"…네."
선생님의 미간이 티나게 찌푸려졌다. 하긴, 3학년 되서 처음으로 보는 모의고산데 시험을 보다 말고 조퇴라니. 나 같아도 어이가 없을 것 같다.
"너 지금 이게 어떤 시험인지 알고는 있는 거지?"
"…네."
"시험 끝날 때까지 참을 순 없겠니?"
"……."
참을 수 없겠냐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버틸 수 있는 경지는 이미 지났었거든.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다… 지쳤다.
"…그래. 집에 가서 푹 쉬렴."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하다니까. 좀만 아프면 아프대. 몸 관리도 제대로 안하고 뭐하는 거야, 대체? 구시렁 대며 교무실로 들어가시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는 나를 대신해서 친구가 내 가방을 챙겨주는데, 쟤 지금 집 가? 왜? 이러면서 수근대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또 다시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나는 겨우 참아냈다.
"집에 혼자 갈 수 있겠어?"
"응. 갈 수 있어…. 고마워."
"조심히 집 가고. 집 가서 연락해! 꼭!"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학교를 나왔다. 어떤 정신으로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다시 한 번 속을 게워냈다. 아… 죽겠다. 옷도 갈아입을 생각도 못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오빠한테 전화 할까? 너무 아프다고? …안돼. 시험도 다 안 치고 집에 왔다고 하면… 분명 화낼거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에 들려고 애를 썼다.
*
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집에는 분명 나 밖에 없을텐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나는 눈을 파르르 떴다. 희미하게 열려 있는 방문 사이로 누가 채소를 탕, 탕- 썰다가 냄비로 뛰어 갔다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사람을 쳐다보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김… 민규?"
뭐야. 쟤가 왜 여깄어? 시험은? 깜짝 놀라서 시계를 보는데 시간은 거의 여섯시를 향하고 있었다. 와… 나 잠들고 나서 한 번도 안 깼었구나. 잠들었을 때가 한 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나저나 쟤는 저기서 지금 뭐하는 거지. 욱씬대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부엌으로 걸어갔다. 바쁘게 움직이던 김민규는 나를 보더니 어! 하고 소리쳤다.
"일어났어?"
"…너 여기서 뭐해?"
"너 아프다며. 그래서 이 오빠가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해 보려고."
"오빠는 무슨…. 어떻게 알았어?"
"점심시간에 잠깐 너네 반 갔었거든. 마침 네 담임쌤 없길래. 그런데 친구가 너 조퇴했다고 하잖아."
"…아."
"들어가서 쉬고 있어. 금방 완성되니까."
핸드폰도 없으니 연락이 안되니까 우리 반에 왔었구나…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김민규는 나를 방에 데려다주고는 다시 부엌에 가서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김민규 밖에 없네,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은…. 침대에 누워 머리 맡에 있는 핸드폰을 키니 친구한테서 문자가 서너 개씩 와 있었다. 왜 연락이 안되냐는 둥, 제대로 집에 간 거는 맞냐는 둥 걱정이 서린 문자에 나는 집에 오자마자 자느라 못봤다고,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보내곤 다시 눈을 감았다.
"김여주. 자?"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귓가에 들리는 김민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침대에 기대 앉으니 김민규는 제가 만든 죽과 수저가 든 쟁반을 내게 건넸다. 제 동생의 밥을 항상 챙겨줬던 김민규여서 그런지 모양새가 꽤 그럴싸했다. 빨리 먹어보라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김민규에 나는 죽을 조금 퍼서 먹었다. 음… 먹을만하네.
"맛있네."
"그럼. 누가 끓인 건데."
하여튼 저 자뻑은…. 죽을 깨작깨작 먹고 있으니 김민규는 퍽퍽 퍼먹으라며 한 숟갈을 크게 퍼 주었다. 아, 싫어…. 김민규가 퍼준 죽을 조금 덜어내고 먹으니 김민규는 으이구- 하며 말했다.
"너 어디 아픈 거 같긴 했어. 애가 요즘 따라 좀 비리비리하더니만."
"……."
"그래도 많이 아프긴 아픈 가보다. 얼마나 아파서 조퇴를 하나 싶었는데… 못난 얼굴이 더 못나진 거 보면. 알만하네."
"…죽을래?"
"장난이야."
그러니까 아프지 말라고. 원래 오늘 시험 끝나면 놀기로 했잖아…. 입을 삐죽 내밀고 속상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김민규를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 새어나왔다. 왜 웃어. 김민규의 말에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고마워서."
"알면 빨리 나아. 너답지 않게 너무 축 쳐져있잖아, 적응 안되게."
"알았어. 오늘 시험은 잘 봤고?"
"뭐, 이 오빠야 항상 잘 보지."
"재수없네."
딱히 특별한 얘기가 아닌, 시덥잖은 이야기일 뿐인데도 나랑 김민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기분 탓일지는 몰라도 김민규랑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아픈 게 나아진 것만 같기도 하고. 내 옆에 김민규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드는 순간이었다.
정신 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민규는 이제 민희를 돌보러 가야겠다며 슬슬 갈 준비를 시작했다. 가려는 그를 배웅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김민규는 그냥 앉아 있으라며 내 어깨를 잡고는 다시 침대에 앉혔다.
"죽 식었으면 끓여 먹고. 오늘 푹 쉬고."
"그래."
"내일은 덜 못생긴 얼굴로 보자!"
저게 마지막까지! 내가 김민규를 째려보자 김민규는 큭큭 웃더니 내 머리를 헝클이고는 '쉬어라.' 하며 집을 나섰다. 김민규가 가고 나서, 핸드폰을 켜서 인터넷에 들어가니 실시간 검색어 1위는 3월 모의고사 등급컷이었다. 그걸 누르니 예상되는 등급컷이 쫘르륵 나와있었다. 하… 난 시험을 보지도 못하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진짜. 아, 그러고 보니까 오빠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아까는 그냥 정신이 없어서 대충 넘겼는데, 생각해보니까 이게 제일 급한 문제였다. 오빠한테 분명 전화 올 텐데…?
"어떡하지…?"
걱정되는 마음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몰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전화하면 뭐… 그냥 잘 봤다고 하면 되려나. 그런데 성적표가 다 증명을 해주겠지. 와, 나 미치겠네…. 그렇게 몇 분동안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순간 띡, 띡 하며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김민규 간 지 좀 된 거 같은데. 뭐 놓고 갔나? 김민규인가 싶어서 '민규야?' 하고 부르는데 식탁에 무언가를 놓는 소리와 함께 누가 내 방 쪽으로 걸어왔다.
"……!!! 오빠?"
나는 내 앞에 있는 오빠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나서 머리가 좀 울려오긴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내 앞에 지금 오빠가 서 있는데. 오빠가 여긴 갑자기 웬일이지? 알고 온 건가? 조금 화가 나 보이는 듯한 오빠 표정에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한숨을 파악 내쉬던 오빠는 내게 다가오더니 손을 들었다. 때리는 건가 싶어 두 눈을 질끈 감는데, 곧 이마에 따뜻한 손이 느껴졌다.
"…열은 없는 것 같고."
"어…?"
"어디가 아픈 거야?"
어… 어, 그게. 예상치 못한 오빠의 반응에 당황하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냥 머리랑 배가 좀 아파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니 오빠는 언제부터, 하고 물어왔다. 좀 됐는데….
"일주일 좀 넘었나…."
"다른 건. 토를 했다거나, 그런 거."
"…토했어."
내 말을 듣던 오빠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막 화를 내면 몰라, 저렇게 한숨만 푹푹 쉬어대는 걸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그나저나 오빠는 내가 아프다는 걸 어떻게 안 걸까?
"그런데 오빠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민규한테 전화 받고. 너 오늘 아파서 시험 보다가 조퇴했다며."
아… 김민규가 연락을 했었구나. 이 자식. 근데 연락해놓고 왜 나한테는 말을 안해줘! 머리를 쓸어넘기며 조금은 굳은 오빠의 얼굴에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데, 오빠는 괘씸하다는 듯 내 머리에 딱밤을 한 대 딱! 놓았다. 아! 머리를 감싸쥐고 오빠를 올려다보니 오빠는 타박하는 말투로 말했다.
"아프면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네 오빠가 의산데."
"…미안."
"민규가 너 혼내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을 해서 그냥 넘어가는 거야."
…아, 김민규 진짜. 대체 언제 저런 말까지 해놓은거야.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빠는 아까 딱밤을 때려 놓고 조금 미안했는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3학년 되더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왜 아프고 그러냐…. 그 말을 듣는데 순간 울컥해서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꾸욱 참아냈다. 공부 때문인 것도 있고, 학교에서 있는 일 때문인 것도 있고. 이래 저래 신경 쓰는 일들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긴 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오빠가 걱정해주듯이 말을 해주니까 더 울컥하는 것 같았다.
"나와서 죽 먹고, 내일 학교 가기 전에 병원 들렸다가 약 처방 받고 가."
"응."
"그런데 민규는 너 간호한다더니 그냥 갔어?"
"어?"
"집 앞에 죽이 있길래."
엥. 아닌데. 민규가 나 죽도 만들어주고 간호도 해주고 갔는데? 내 말에 오빠는 그럼 이건 누가 갔다 놓은 거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오빠가 들어올 때 식탁에 놨던 무언가가 죽이었나 보다. 오빠는 냄비 한 가득 있는 죽을 보고선 '진짜네.' 하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진짜 내 거 맞는 건가? 아니면 누가 잘못 놓고 간 건가…? 죽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전복죽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놓여져 있는 작은 쪽지 하나.
"뭐지…?"
……. 쪽지를 꺼내 들어 펼쳐보는데, 나는 그 쪽지를 보고 나서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야? 내게 뭐냐며 묻는 오빠에게 나는 아니라고, 친구가 나 아프다니까 편지 써준 거라고 말을 하고선 쪽지를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오빠는 아직도 교복 차림인 나를 보더니 자기가 죽을 끓이고 있을 테니 어서 옷을 갈아 입고 오라고 말했다. 응!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방문에 기대 다시 한 번 쪽지를 열어보았다.
수 마디의 긴 글은 아니었지만, 그래서였기에 더 내 마음을 울리는, 간결하게 적힌 단 네 글자. 그 쪽지를 보는데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내 헛된 망상일 수도 있지만 정말 내 예상이 맞다면, 그렇다면….
'아프지 마.'
원우야. 너 맞지…?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우와아아 세븐틴!!! 17화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따라 업뎃이 조금 빨라지지 않았나요?!!! 저만 느끼는 건가요...? 하하하하 지금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빨리 빨리 쓰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얼른 얼른 써서 독자님들 궁금증을 해결해드리고 싶네요!!! 오늘은 그래도 유진이가 안 나와서 괜찮지 않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구마 백개 천개 드신 것 같다고 하시는 독자님들께... 얼른 사이다를 드리고 싶지만... 확답을 드릴 수가 없네요.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거라 빨리 나올 수도 있고 더 있다 나올 수도 있구요ㅎㅎ... 그래도 오늘 유진이 안 나왔으니까 봐주세요ㅎㅎㅎㅎㅎ 아,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암호닉을 한 번 신청하면 그대로 쭈욱 가는 건가요...? 저는 댓글 보고 암호닉 신청하신 분이 없으시면 그냥 안 적었었거든요. 모든 게 다 처음이라 낯설네요 허허.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암호닉 : 여남님, 아봉님, 일공공사님, 꽃소녀님, 천상소님, 선뉴님, 명호엔젤님.
암호닉 아니신 독자님들도 제가 정말 많이 사랑해요ㅎㅎㅎ 오늘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