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아빠 '윤기 편'
w. 채셔
A. 신혼 2년차, 아내가 애기 엄마가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애기 아빠의 흔한 반응
"나 왔어어."
길게 말꼬리를 늘이는 오빠를 현관에서 맞았다. 오빠의 얼굴이 말도 안 되게 지쳐보여서, 평소에 하던 퇴근용 뽀뽀는 고사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서는 오빠를 따라 침실로 들어가야 했다. '많이 피곤한가보다, 우리 남편.'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느릿느릿 오빠가 벗어내는 양복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럴만도 했다. 회사에서는 곡 만들지, 가사 만들지, 할 것들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저번 주부터는 내 양호까지 해야 했으니까. 요즘 몸이 으슬거려서, 한 사흘 꼬박을 침대에서만 지내야 했다. 우리 남편 밥도 못 챙겨주고, 얼마나 속상했는데. 그러고보니 남편, 다크서클도 장난이 아니다. 오늘 말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생략해야 하나…. 오빠 눈에 졸림이 그득하게 담겨있다.
"나 좋은 소식 있는데."
"…뭔데에."
"오빠 너 애기 아빠야, 이제."
그래도 이건 알려야겠다 싶어 말을 꺼냈더니 오빠는 연거푸 큰 눈을 깜빡였다. 아빠라구, 아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오빠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오빠는 '뭐어?' 하고 입을 쩌억 벌렸다. 개구리 같아. 나는 뒤늦게 반응이 온 오빠를 보며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오빠는 곧 나를 그대로 꼭 안았다. 아, 진짜, 아.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 듯 똑같은 단어만 반복하는 오빠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애기 놀래겠다. 그치."
꼭 안고 어느 곳 하나 소중하지 않은 데가 없다는 듯이 뽀뽀를 하던 오빠는, 이내 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오빠의 얼굴에는 아까 진득하게 눌러 앉아있던 피곤함은 싹 가시고 이제는 생기가 가득 돌았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더 빨리 말할 걸. 오빠는 반짝이는 눈으로 내 머리와 볼을 유하게 쓰다듬다 고개를 숙여 쪽, 하고 입맞춤을 했다. 조금 조심스러워진 얼굴로 뒷머리를 긁던 오빠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라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것도 잠시. '아, 나 진짜 좋아죽겠어. 어떡해?' 하며 오빠는 다시 잽싸게 호선을 그린 내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대었다가 떨어뜨린다.
"이건 퇴근용."
오빠는 한 번 더 빠르게 내 입술에 쪽, 하고 뽀뽀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쪽-하곤 '이건 고마워서'. 또 다시 쪽, 뽀뽀하고 '이건 예뻐서'. 아, 잠깐만. 이러다 내 입술 닳겠어, 남편.
B. 부부 싸움일까, 아닐까?
"으응…."
"일어나, 지금. 일어나라, 진짜!"
나는 침대에 앉아 오빠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발로 툭툭 찼다. 순간의 움직임에 놀란 서준이가 잘 안겨있다 울음을 터뜨린다. 결국 울음소리에 깬 오빠는 주말의 아침을 이렇게 맞이한다. 나는 서준이를 고쳐 안고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금세 울음소리가 잦아든다. 회사에 다닌다고는 하지만 어쩜 이렇게 육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어. 안 그래도 활동적인 애긴데….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육아를 하면서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는 것도 참, 내가 봐도 기적 같은 일이다. 밤새 회식으로 달리는 바람에 해독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오빠의 간을 위해 꿀물을 건네주었다. 뭐가 예쁘다고 이런 걸 챙겨주는지. 꿀물을 생명수처럼 받아들고 꿀떡꿀떡 넘기는 모양새가 아주, 미워 죽겠다.
"어제 일찍 들어온다고 했잖아."
"미안, 미안."
"…됐어, 맨날 이런 식이잖아."
오빠는 언제나처럼 내 허리에 뱀처럼 손을 슬쩍 감으며 능글맞게 웃었다. 나는 냉정하게 손을 탁 쳐내고 고개를 홱 돌렸다. 서준이의 입술이 동그랗게 오므라든다. 엄마, 아빠 간의 미묘한 기류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서준이는 평소와 달리 옹알이를 주절주절. 오빠는 '아이, 왜 그래.'하고 슬쩍 웃었지만, 나는 전혀 여기서 넘어갈 리가 없다. 오늘은 정말 뿔났어.
"너무한 거 아냐?"
"…응?"
"오빠 나 시집 올 때 물 한 방울 안 묻힌다고 해놓고선 이게 뭐야. 나 손 다 갈라지구 서준이는 맨날 울고 먹고 싸기 반복이구."
내 허리를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다가 그제야 침묵하는 오빠. 서준이는 낯선 분위기에 내 품에 꼭 안겨들었다. 갑작스레 분유 냄새가 코를 감싼다. 오빠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너무해. 여기서 화나면 정말, 정말 나도 화날 거야. 마음 속으로 여러 번 다짐했지만, 늘 오빠에게서 이렇게 화난 분위기가 감돌면 자연스레 움츠러든다. 진짜 무서우니까. 너무해…. 오빠가 입을 꾹 다물면서 점점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원래 오빠는 부부 싸움할 때 이렇게 굴지 않았는데.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서준이는 이제 두살 남짓 되어가는데, 엄마를 많이 찾는 시기라고는 하지만…. 항상 내가 봤단 말이야. 오빠는 나를 노려보다 이불보를 박차고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어디 가는데."
"……."
"어디 가냐구!"
오빠에게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크게 외쳤지만, 오빠는 답이 없다. 들려온 소리는 철컥- 삐리리-하고 문이 열렸다가 잠기는 소리. 나는 서준이를 꼭 안고 결국 울었다. 서준이도 엄마의 눈물은 처음 보는지 한껏 당황해 저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내 울음을 그치고, 아이의 울음을 달래준다. 눈물을 닦고 침대에서 일어나 위아래로 토닥였다. 울음기를 멈춘 서준이 코가 빨갛다. 서준이는 내 품에 다시 폭 안겼다. 그런 모습이 사랑스럽다가도, 아빠를 똑 닮은 얼굴을 보다보면 울화가 치민다. 매일 회식한답시고 친구들 만났으면서. 친구들 만나면서도 일찍 들어온 적이 없으면서. 나는 다시 침대 헤드보드에 등을 기댔다. 서준이를 고쳐 안고, 찹쌀떡 같은 볼을 만지작거려본다. 애기 볼을 만지작대다보면,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지니까…. 이런 습관이 산후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 하나의 방어막일지도 모른다.
"민윤기 나쁜 놈…."
그래도 내가 너무했나…. 매일 야근하고, 작사하고, 작곡하느라 파김치처럼 들어와서는 자는 서준이 한 번 들여다보고 배시시 웃는 사람인데.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입술을 삐죽였다. 분명 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다시금 문 소리가 들렸다. 서준이는 아빠가 들어왔다고 말하려는 건지 옹알이를 열심히 해댄다. 나는 서준이의 볼을 다시금 만지작거렸다. 나가지 말아야지. 그래도 자존심은 있으니 나가지 않기로 한다. 이건 그래도 서준이 아빠 잘못이 30% 이상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가만히 앉아있는데 오빠의 얼굴이 빼꼼, 하고 보인다. 얼굴만 드러내놓고 웃고 있는 게 영 미워서 그쪽에서 고개를 훅 돌려버렸다.
"아이, 이것 좀 봐봐. 응?"
오빠의 애교 담긴 목소리에 보지 않으려다가 호기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손에 웬 야구 유니폼이 세 개 들려있다. 오빠는 자랑스럽게 하나를 탁 펼쳐보였다. 아기 유니폼에 크게 이름이 쓰여져 있는데, '윤기 아들'이라고 적혀져 있다. 슬쩍 입 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꾹 참았다. 그게 뭐. 단답으로 일관하니 도리어 오빠 입 꼬리가 축 쳐진다. 그럼 이거 볼래? 오빠는 반대 쪽 손에 들려있던 유니폼을 착 펼쳐보였다. '윤기 아내'라고 적혀져 있는 여자용 유니폼. 그리고 또 하나는 당당하게 제 이름을 드러낸 '민윤기' 유니폼. 나는 결국 입을 씰룩거리며 웃어버렸다. 오빠는 그제야 맥이 탁 풀렸는지, 들어와서는 내 이마에 뽀뽀를 해댔다. 꺄르륵하고 서준이 웃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오빠가 미안해. 응? 오늘 데이트하자, 야구장 데이트."
"치…. 그렇게 피곤한 사람이 어떻게 데이트를 해?"
"너랑 하는 데이트인데 어떻게 피곤해."
오빠가 자랑스레 손을 내민다. 오빠가 너랑 서준이랑 데이트하려고 일주일 전부터 예약하고, 배송 받고, 표 예약하고 얼마나 바빴는데. 오빠는 볼멘소리로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결국 웃으며 서준이를 고쳐 안고 일어섰다. 그동안 내가 서준이 보고 있을 테니까 준비해. 샤워도 하고. 오빠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말했다. 나는 서준이을 넘겨주고 기지개를 쭉 폈다. 계속 서준이를 안고 있느라 입고 있던 옷에 금세 땀이 배었다.
"1등 신랑감이지?"
"아냐, 꼴등이야. 꼴등."
"에이, 그래도 1등 신랑감으로 해주라. 응?"
"알았어, 1등. 1등"
샤워실로 들어가는데 오빠가 자랑스럽다는 말투로 물어오기에 져줬다. 한동안은 이걸로 우려먹겠네, 민 사골 씨. 그래도 TV 앞에 앉아서 서준이를 안고 있는 걸 보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지금은 TV 앞에서 MC의 말에 폭소하고 있지만, 3초 뒤에 TV도 못 보게 될 거다, 민 사골 씨. 나는 유유히 화장실로 들어가 속옷을 벗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을 틀려는 찰나, 오빠의 다급한 말이 들려왔다.
"여보, 이거 어떡해! 쏟았어!"
것 봐.
C. 아빠 침대가 좋아요
"야, 민서준, 아빠 침대가 그렇게 좋아?"
"응, 조아!"
"아아, 민서주운!"
서준이 너, 아빠가 아빠 침대 올라가는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몰라? 오빠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몰라아!' 하고 나에게 안겨드는 서준이의 표정에는 오늘도 나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결연하게 담겨 있었다. 나는 아빠를 닮아 하얗고 통통한 서준이의 볼을 주욱 늘였다. 서준이는 그것마저 좋은지 꺄르르, 하고 기분 좋게 내 품에서 다리를 동동 굴렀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웠는지 오빠의 얼굴에는 '아들 미움.'을 드러내는 표정이 조금은 사그라져 있었다. 둘 다 똑같이 생겨가지고는, 진짜. 나는 서준이의 머리에다 쪽, 쪽, 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서준이 너, 그럼, 끝말 잇기 해서 네가 이기면 여기서 자게 해줄게."
…얘가 여보를 어떻게 이겨! 나는 입 꼬리를 한껏 올린 오빠에게 투정을 부리듯이 말했다. 그런 나를 보며 오빠는 둘째 손가락을 제 입에 가져다대며 쉬잇,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는 확고한 표정으로 내 품에서 벗어나 오빠를 노려보았다. 오빠는 귀찮거나, 서준이를 놀리고 싶거나, 배고프거나,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이 있거나, 특히 내게 진득하게 스킨십을 할 때 서준이와 끝말 잇기를 하곤 했다. 끝에는 항상 져서 으아앙, 하고 크게 우는 서준이를 서둘러 달래고는 오빠의 배를 퍽퍽 쳐야 했고. 서준이는 꽤 승부욕이 많아서 항상 지면 우니까, 내딴에는 내 품을 파고들며 답지 않은 애교를 피우는 오빠보다 서럽게 울어대는 서준이를 달래는 게 더 일이었다.
"아빠가 먼저 해!"
"티셔츠."
"츠…. 츠…. 츠으…."
츠, 하고 몇 번을 중얼거리며 눈을 위로 떴다, 아래로 떴다, 여기저기를 굴리던 서준이는 결국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는지 울고 말았다. 으이구! 나는 행복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올리는 오빠의 머리를 콩 찧고 서준이를 안았다. 서럽게 울던 서준이는 연신 뽀뽀를 해주는 나를 붙잡곤 '혼자 자기 시러어!' 하고 매달렸다. 오빠는 이번에는 정말 져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으앙 하고 우는 서준이를 그냥 두는 걸 보니. 서준이가 울다가 지쳐 잠들 때까지 오빠는 가만히 누워 핸드폰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으이구, 진짜.
"서준이 잠 들었지?"
코가 빨개져 잠든 서준이를 제 방에 눕혀놓고는 안방에 들어왔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여유롭게 말하는 오빠가 얄미워서 다시 머리에 꿀밤을 놓았다. '왜 애를 울리고 그래!' 하고 잔뜩 투정을 부렸더니 되려 아랫입술을 쑤욱 내미는 오빠. 결혼 생활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려지는 이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오빠는 손을 삐죽 내밀어 제 옆을 탕탕 쳤다.
"자기야, 키스."
이럴 땐 또 제 나이 같으면서. 대답 없는 나의 허리를 끌어안아 오빠는 그대로 입술을 물었다.
덧붙임
오늘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애기 아빠 소재 글은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아요
에 아닌가...
또 올렸었나? 애기 아빠 글은 정말 사랑이져!
오늘도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