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 : 오늘 취하면 inst.
복숭아 녹차
01.
#김태형 빠순이
Side (1)
나는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이 말을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꽤 참신하다. 한껏 구겨진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미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보지만 나는 정말로 학교가는 것이 좋다. 도대체 왜? 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김 없이대답할 것이다. 김태형이 우리 학교에 있으니까. 여기서 김태형이누구냐? 바로 우리 학교 아니 어쩌면 이 동네, 이 구역에서제일 잘 생긴 사람이다. 정말 살면서 저렇게 잘 생긴 사람 처음 봤다.180까지는 아니지만 꽤 큰 키. 자기주장을 못해서 안달인 이목구비까지. 심지어 얼굴도 작다. 연예 기획사는 김태형 안 데려가고 뭐 하나싶을 정도로 진짜 욕 나오게 잘 생겼다. 작년 축제 때 김태형과 그의 친구들이 모 가수의 댄스 곡을커버했었는데, 그 사건은 아직까지도 회자 될 만큼 우리 학교의 레전드로 남겨져 있다. (물론 그 무대는 나의 입덕 계기이기도 하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그냥 완전 사기 캐. 공부도 그렇게 못하지는 않는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김태형을 위해 남들과는 살짝 다른 학교 생활을 보낸다. 일단 아침에 내 귀를 때리는 알람을 끄고 침대에서 일어나 교복을 입은 후 등교 길에 편의점에 들러 복숭아 녹차를산다. 그리고 학교 점심시간에 문과 반에 가서 신발장 안에 복숭아 녹차를 넣는다. 누구 신발장이냐? 역시 김태형의 신발장.
그렇다고 김태형을 좋아하는 거냐고 묻는 다면 그 대답은 NO다. 아니 그러면 왜 매일 매일 김태형 신발장 안에 복숭아 녹차를 넣어 놓는 거냐.음.. 아마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서포트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냥 잘생긴 김태형이 우리학교에서 전학 안 가고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그러는 거다. 잘생긴 생물체를 바라보는 건 늘기쁜 일이니까. 그래 나는 빌어먹은 외모지상주의의 희생양이었다. 그가나를 평생 모른다고 해줘도 상관없다. 물론 이해 안 가겠지. 그냥나는 김태형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축구 같은 스포츠를 하고 땀을 흘리면 내가 넣어 준 복숭아 녹차를 먹으며 갈증을 덜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그렇게 그의 갈증을 잠시나마 덜어 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정말로오로지 덕심 뿐이니까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정말로 단 1%의사심도 없다. 정.말.로.
오늘도 김태형 신발장에 복숭아 녹차를 넣어 놓고 교실로 올라와 운동장을 바라본다. 이과 반은 문과 반보다 한 층 더 위에 있는데, 그래서 김태형이자기 친구들이랑 축구 하는 모습이 매우 잘 보인다. 운동장에는 역시 나보다 더 열렬히 김태형을 따라다니는아이들이 축구장 밖에 모여 있었다. 물론 다 여자. 그리고저 애들은 사심이 가득하다. 차마 나는 저렇게 대놓고 티를 낼 자신이 없어서 그냥 교실에서 운동장을내려다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태형이 축구도 잘하고, 진짜 못 하는 게 없어.
“또, 김태형 쳐다 보고있었지?"
“응."
“너도 저기 운동장 끄트머리에 모여있는 애들처럼 수건도 주고 그래라. 그렇게 허구한 날 보이지도 않게 신발장에 음료수 가져다 바친다고 너의 존재를 알겠냐?"
“나는 저 아이들과 달라. 난김태형이랑 어떻게 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래, 덕질 대상이라며."
오늘도 운동장을 보고 있는 내 앞에 털썩 앉은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친구의 말투에서 익숙한 한심함이 묻어 나왔다. 아무렴 어떠하리.
“어? 김태형 골 넣었다."
“우리 태형이.. 역시못 하는 게 없어."
“..미친년."
“그래 우리 태형이.. 오늘도외모가 미쳤군."
“진짜 진짜 미친년."
뭐 어때? 내가 좋다는데? 저밑, 운동장에서 땀을 닦는 김태형 덕분에 나는 늘 학교에 오는 것이 즐겁다. 그래 나는 김태형 덕질 중이다.
side (2)
"…"
또 다. 또 있다. 또복숭아 녹차. 아니 넣어 줄 거면 제대로 넣어 놓든가. 나는14번이고 김태형은 13번이라고!! 벌써 이주일 째. 이름 모를 여자아이의 복숭아 녹차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정말이지 이 아이는 김태형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문스럽다. 김태형 번호도 모르고 내 신발장에 넣어 놓는 것도 그렇지만 일단 왜 하필 신발장인지. 더러운 흙이 잔뜩 묻어 지저분한 바닥, 땀에 쩔은 발 냄새로 가득한이 좁디 좁은 공간, 아니 사물함에 넣어 놓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건가? ‘태형아 오늘도 이거 마시고 힘내!’ 라고 적혀있는 메모지가 복숭아녹차 병에 팔락인다. 참나, 너 같으면 발 냄새 나는 곳에있었던 음료수를 마시고 힘이 나겠니? 김태형이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덕분에 이 복숭아 녹차는 항상 내 차지가 되었다. 왜 맨날 음료수종류도 바뀌지 않고 복숭아 녹차냐고. 이제 이주일 넘게 이 음료수만 먹으니까 현기증이 날 것 같다. 하.. 내일부터 신발장에 뭐 붙여 놔야 되나? 김태형 13번이라고? 김태형복숭아 못 먹는다고? 땀에 젖은 뒷 머리를 손으로 훌훌 털며 신발장에 있던 복숭아 녹차를 빼냈다.
“또, 그 복숭아 녹차냐?"
“어. 얘는 김태형 좋아하는거 맞긴 할까?"
“얼마나 됐냐? 얘 이러는거?"
“몰라 한.. 2주?"
“지극 정성이다. 진짜."
“야, 김태형. 오늘도 이거 마시고 힘내란다."
김태형한테 포스트 잇을 보여주며 주위 친구들과 웃었다. 야 나 목말라한 입만 줘, 나도 한 입만. 그렇게 이름 모를 여자아이의복숭아 녹차는 오늘도 이렇게 없어졌다. 아, 내일은 진짜신발장에 붙여 놓던가 해야지. 김태형이 자기는 어차피 복숭아 못 먹으니까 그냥 먹으라고 하긴 했지만그래도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거 준 애는 이주일 째 이걸 김태형이 먹는 줄 알 거 아니야? 빨리 이 사실을 이름 모를 여자에게 알려줘야 나도 죄책감 안 들고 평화롭게 살지. 축구 할 때 축구장 한 쪽 구석에 몰려 있는 애들처럼 김태형한테 직접 주면 될 텐데..
신발장에 포스트 잇을 붙여 놓겠다는 다짐도 잠시. 점심 시간 후 5교시는 역시나 HELL이었다. 쏟아지는식곤증, 잠의 유혹, 수업을 하는 건지 자장가를 부르는 건지모를 선생님의 목소리까지. 오늘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빠져 버린 나다. 그리고 역시나 잠에서 깨면 신발장에 포스트 잇을 붙여 놓겠다는 다짐은 늘 잠과 함께사라지곤 했다. 김태형 자식. 왜 쓸데없이 잘생겨가지고. 저 새끼의 실태를 알아야 여자애들도 정신차리고 떨어질 텐데.. 오늘도빈 복숭아 녹차 페트병은 내 책상 위 구석에 놓여져 있었고, 나는 그 책상에 엎드려 잠에 빠져버렸다.
<공지>-----------
안녕하세요 작가 요물입니다.
제가 아마도 몇 주 전(?)에 독방에다 투표로 올린 글이었는데..
이렇게 글잡에.. ㅎㅎ (그 때는 김태형 빠순이로 올렸었어요ㅎㅎ) 부끄럽구만요
이 글은 두 개의 시점으로 굴러가는 글입니다.
side 1은 여주 시점이고요
side 2는 윤기 시점이에요ㅎㅎ
다음 화 부터는 분량이 이거보다는 많아 질 거에요ㅎㅎ
(그리고 대요괴 텐구도 곧... 빨리 다음화로... 하하.)
암호닉 환영!!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