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오냐? "
" 넹. 아, 오빠. 담배 좀 그만여, 냄새 개심하다고. "
언제나 후줄근한 추리닝, 부스스한 머리카락, 제 집 앞 현관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는 임영민은 그러니까, 그냥, 옆집 오빠였다. 더하지도, 그렇다고 무엇을 빼지도 않을 단순한 그런 사이, 아는 오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단순하게 떨어지는 한 단어로 표현 가능한 임영민의 존재란 내게 그랬다. 아는 오빠, 옆집 오빠. 그랬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지.
" …… 오늘은 없네. "
그랬던 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계기 아닌 계기가 있었다. 언제나 편하게 다가오기만 했던 임영민을 다시 한 번, 내게 또 한 번 다른 존재로 상기시켜 준 그날. 언제나 내가 학교가 파할 시간이면 집을 나와 줄담배를 태우던 그가 없었다. 지독한 담배 냄새에 혀를 내두르며 그에게 면박 아닌 면박을 줬던 나였지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던 말이 있지 않은가, 아닌 척 그를 그리워하는 지금 이 순간이 꼭 그 짝이었다.
서운한 마음에 모양새 좋은 교환만 했던 그의 연락처를 거세게 두드렸다. 곧 울리는 컬러링과 더불어부러 끊긴 듯 뚝, 끊긴 전화였다. 그러니까, 이건, 누가 들어도 고의로 끊은 전화가 틀림이 없었다. 그런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 잔뜩 약오른 내 핸드폰을 울리는 문자 한 통에 다시금 핸드폰의 홀드를 풀었다. 그러자 미리보기 창을 통해 뜬 카톡 한 통이 내 시선을 끌었다.
[ 오빠 소개팅 중이라 전화 ㄴㄴ 왜? ]
소개팅? 잔뜩 열이 오르는 기분에 답도 않은 채 그와의 채팅방을 벗어났다. 짜증 나, 임영민.
임영민이 소개팅 중이다, 짜증 난다. 내가? 왜? 소개팅 중이라는 그의 말에 심술이 나 답장을 하지 않은 뒤로 임영민이 내게 다시 한 번 연락을 보낸다는 둥,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없는 게 당연했다. 평소 연락 한 통 주고받지 않는 사이임에 오늘 내가 그에게 건넨 연락은 그의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래도 짜증 난다, 짜증 나. 그러니까, 이게, 무슨 감정이지? 꼭 1년 전 학급 남자아이와 썸을 타던 시절이 떠오르는 것 같아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임영민을? 한심한 백수라고만 생각했던, 그 임영민을? 말도 안 된다.
" 야, 오늘 왜 이렇게 늦었. "
" …… 뭐요, 오빠가 알 바 아니잖아여. "
소개팅 사건의 여파가 나를 떠나기도 전인 그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에게 심술 아닌 심술이 나 일부러 시간을 늦춰 하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 뻔했지만, 어제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말을 걸어오는 그에게 심술을 부렸다. 그 이유는 별거 없었다. 소개팅을 한 임영민이 짜증 나서, 그따위 이유에 짜증이 난 내가 짜증 나서.
그에게 요상한 감정을 느낀다고 자각한 그 순간부터, 나는 티 나게도 임영민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가 눈치를 채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 감정을 숨기고 없애기 급급한 한낱 고등학생일 뿐이었으니까. 어째서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마구잡이로 나를 덮쳤다. 조언을 구하고 싶어 친구들에게 얘기를 꺼내봐도 날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 야, 내가 있잖아……. "
ㅡ ? 뭐.
" 그, 옆집 오빠. 아니, 나 진짜 이 오빠 안 좋아하거든? 진짠데, 어? 진짠데, 그……. 이 오빠 소개팅 했다는 얘기 듣고 나서부터, 짜증이 나구. "
ㅡ 좋아하네.
" 이 씨바, 아니라고……! 그 오빠, 어? 막 백수고, 막, 어? 막 그렇단 말야. "
ㅡ 그 오빠가 소개팅 조진 여자랑 잘 된다고 생각해 봐, 빡치냐?
" …… 썅, 졸라 빡쳐. "
ㅡ 응, 좋아해. 너 그 오빠 좋아해. 좋아하는 거 맞으니까 한 번만 더 아니라고 해라, 확 그 오빠 내가 꼬신다.
아, 아니라니까? 허나 아니라고 부정의 답을 내놓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친구들이란 친구들에게는 모조리 똑같은 질문을 던져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너 그 오빠 좋아하네. 야, 원래 옆에 있어서 익숙한 사람 좋아하는 거 알아차리는 게 제일 힘든 거야. 너 지금 그 상태 아니냐? 태초부터 얇았던 귀를 가진 나인지라 친구들의 말에 묘하게 설득 당하는 기분이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나 진짜 그 오빠 좋아하나? 문득 떠오른 임영민 석 자가 내 머릿속을 떠날 줄 모르고 맴돌았다.
임영민을 좋아한다. 그래, 나는 그 오빠를 좋아해. 그 웬수 자식을, …… 좋아해. 무작정 내려 버린 결론으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나는 더욱더 열심히 그를 피할 뿐이었다. 매일 학교가 파하곤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더욱 늦췄고, 그렇게 시간을 늦추니 임영민을 보기 힘들어진 게 사실이었다. 그 사실에 묘하게 안심이 되면서도, 서운했다.
" 야. "
" ……. "
" …… 저기요. "
늦장 아닌 늦장을 마구 부려가며 집에 가야 한다는 친구를 붙잡고 시간을 꽤나 허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꽤 늦은 시간.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그의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헤집으며 땅에 고개를 처박곤 걸음을 빨리 했다. 그런데, 이게, …… 무슨 상황이지? 제 앞에 수많은 꽁초를 쌓아놓은 임영민이 그것으론 부족하다는 듯 채 태우지 못한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 너 요새 나 피하냐? "
" 안, 안 피하는데여? "
" 어쭈, 말 더듬네? 안 피해? "
" ……. "
" 왜 피하냐, 오빠 속상하게. "
네? 아니, 무슨. 오빠가 속상하긴 왜 속상……!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간지러워 날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맞출 생각도 않은 채 가방끈을 두 손으로 꼭 쥐고는 숨을 들이켰다. 그 행동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던 그가, 다 태우지 않은 담배를 지져 끄고는 쭈그렸던 몸을 일으켜 내게 성큼 다가왔다. …… 다가와? 왜?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뱉을 생각도 않은 채 빤히 눈을 맞추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멈춰 선 그가 입을 열었다.
" 물었는데, 왜 피하냐고. "
" …… 뭘 피해여, 그냥 집에 늦게 들어오니까. 아, 어차피 오빠는 담배 피우러 나오는. "
" 아닌데. "
" …… 에? "
" 담배 피우러 나오는 거 아니라고, 너 보려고 나오는 건데. "
" …… 왜, 왜여? "
" 보고 싶으니까. "
입을 여는 족족 터져 나오는 폭탄과도 같은 발언들에 놀란 건 나 하나뿐이었다. 어찌나 당당하게 뱉어내는지, 그 말을 듣고는 이런 반응인 내가 이상한 건가 싶은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긴장한 탓에 흘러나오는 버릇인 침을 한 번 꿀꺽 삼키자 제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짓는데, …… 졸라 심쿵. 이 오빠가 이렇게 잘생겼었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 탓에 눈만 꿈벅이며 그를 바라보자, 이내 뭘 뚫어지게 쳐다보냐며 내 눈을 제 큰 손으로 가리는 그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을 치우며 입을 열자.
" 그, 그럼 그날은 왜 안 나왔는데요. "
" 언제. "
" 그, 소개팅…… 인가 뭔가, 한 날. "
" …… 아는 형 대타. "
" …… 아. "
" 질투했냐? 어? 했구나? 얼굴 빨개지는데? "
아니거든여, 입 다물어요. 필터링 없이 터져나온 질문들은 내가 진정으로 궁금했던 것들이었다. 생각보다 시시한 답변에 긴장이 풀리려는 찰나, 예의 짓궂은 미소와 함께 질투한 거냐며 물어오는 그의 태도에 다시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헉, 들켰나 봐. 자꾸만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한 번 쓸었다. 그러자 유혹이라도 하는 것이냐며 능글맞게 굴어대는 그를 경멸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변태져, 오빠.
" 아무튼, 그, 보고 싶어서 나왔다는 거…… 진짜예여? "
" 그럼 가짜냐? "
" 아니, 그런 게 아니고. "
" 그런 거 아니면 우리 집 놔두고 왜 현관까지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데. "
" ……. "
" 다 늦은 저녁에 집 오는데 걱정되고, 그때 아니면 얼굴도 잘 못 보니까 보고 싶고. "
자꾸만 뱉어지는 스윗함을 가득 담은 멘트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허나 그것으론 부족한 것인지 라스트 팡이라도 터뜨리겠다는 양 예의 그 장난스러운 미소를 가득 담은 그가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앞으로 오빠 피하면 죽는다. 보고 싶은 얼굴 좀 보자, 매일. "
그냥, 그저, 아는 오빠였던 옆집 사는 임영민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스윗하고, 달달하고, 더 알고 싶은 그런 임영민으로.
ㅡ 이딴 글 가져오면서 텀 느린 작가에게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부탁드립니다, 도짜님들... 글 퀄리티 꾸진 거 죄송하고 얼른 좋은 글로 찾아올게요... 그날이 굿데이... b
ㅡ 초록글, 댓글, 추천, 스크랩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__) ~ 항상 빠짐없이 댓글 읽고 있으니 글에 관한 내용, 피드백, 질문 모두 자유롭게 남겨 주셔도 괜찮습니다. ㅎㅎㅡ 암호닉 신청 받습니다. 신청한 암호닉은 다음 편에 업데이트, 암호닉 신청은 항상 최근 글 댓글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암호닉의 존재 여부는 밑에서 꼭! 확인해 주세요
ㅡ 제 글은 순도 100% 픽션으로만, 작가의 망상으로만 이루어진 글입니당, 픽션은 픽션으로만! 즐겨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작가는 총총총...
# ㅡ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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