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민 나 안 좋아해……. "
안 좋아하는 것 같아. …… 나 어떻게 해, 연지야? 줄곧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귀담아듣던 친구를 뒤로 하곤 앞에 놓인 복숭아 아이스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달다, 달아. 쨍한 단맛이 치고 들어오는 게, 조금 전까지 엿같았던 기분이 풀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기분은 좀처럼 나아질 줄을 몰랐다. 제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던 친구가 이내 카페를 크게 울릴 만큼 소리를 질렀다. 야, 좀 조용히!
ㅡ 질투 유발, 뭐 그런 거 해 봐.
" …… 엉? "
ㅡ 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네가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냐.
…… 질투 유발? 구미가 당기는 발언에 축 늘어트렸던 상체를 일으켜 앞에 앉은 친구와 눈을 맞췄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이유가 뭐더라. 대학교에 와서 만나게 된 같은 과 동기 임영민, 그리고 한 달의 시간이 지난 후 어쩌다 보니 같은 무리에 속하게 된 임영민. 놈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가 우습다는 듯 함께 다니게 된 이후로, 부쩍 친해진 둘은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에는 별거 없었다.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무슨 일이 일이던 서로를 찾는다던가, 애인이 아니면 해 줄 수 없을 법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해 준다던가. 퍽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스킨십, 데이트 따위로 부를 수 있을 법한 만남까지도. 이러한 이유들로 놈과는 동기들 사이에서도 언제 사귀냐, 따위의 질문들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아니라며, 우리는 친구 사이라는 답을 내놓기 일쑤였는데 나는 아니었던 거지. 그랬다, 나는 임영민을 좋아헀다.
" …… 어떻게? "
ㅡ 음……. 남자를 이용해야지.
" …… 무슨 남자? "
놈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깨달은 후 놈과의 사이에 변화를 주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놈과의 연락을 줄이며,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했던 것들은 피하는 족족 나를 찾아내는 놈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시기쯤, 놈이 날 좋아한다며 뭣도 아닌 가십을 떠들어대는 동기들의 말을 듣고는 내게 없던 희망, 김칫국…… 따위의 것들이 늘어갔다. 나는 임영민을 좋아한다, 임영민도 날 좋아한다. 근데 우리 왜 안 사귀어?
" …… 나, 김칫국 아니겠지? "
어어, 아니야. 야, 빼박이라니까? 놈의 마음을 확인도 전에 잔뜩 들이켜고 만 김칫국은, 시큼했다.
" ㅇㅇ야, 오늘 시간. "
" 아, 영민아. …… 미안, 오늘 다니엘이랑 영화 보기로 해서. "
" 아, 그래? 그럼 말고. "
작전은 꽤나 수월하게 진행됐다. 우리와 같이 다니지 않으면서, 내 사정을 다 알고 있으면서,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 남자, 강다니엘. 강다니엘을 포섭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치맥 세 번, 뭐 그 정도. 안 그래도 빠듯한 용돈이 물 새듯 나가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흔쾌히 작전을 수행하는 그를 위해 내가 하지 못할 게 무엇이겠나. 그리고 그를 포섭한 뒤 진행된 작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 어, 미안……. "
" 괜찮아, 나도 영화 보자고 하려고 했는데. 수정이랑 보러 가지, 뭐. "
" …… 어, 어? "
" 왜 그렇게 놀라. 전에 수정이한테 밥 사 주기로 했었거든, 밥 먹으면서 영화도 보지 뭐. "
아, …… 그래. 놈의 발언으로 인해 잔뜩 굳은 표정을 풀 줄 모르는 나와 달리 놈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방실대는 표정을 지울 줄 몰랐다. 김수정이랑 영화 보는 게 그렇게 즐겁냐, 어? 얼마 전부터 놈을 쫓아다니는, 그러니까 티는 내지 않으면서 놈을 좋아하는 티가 나는, 그런 후배였다. 강다니엘과 영화를 보러 간다는데도 별다른 동요 없이 저 또한 다른 이와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임영민의 태도에 확신했다.
" 영화 잘 봐, ㅇㅇ야. "
" …… 어어. "
" 아, 나 갈게. "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내게 등을 보이는 놈이, 미치도록 미웠다. 그러니까, 임영민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ㅡ 야, 그만 좀 마시지?
" …… 넌 닥쳐, 짜증 나는 강다니엘. "
ㅡ 허, 얘 좀 봐라.
" 니 때문에, 어? 영민이랑, 영화도, 못 보고……. "
으앙. 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에 오히려 더 당황한 강다니엘은 저희를 흘기며 수군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헉, 저 때문에 우는 거 아니에요.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예? 그와 더불어 내 옆으로 몸을 바짝 끌어당긴 놈은 내 손에 들린 소주잔을 확, 뺏으며 말했다.
ㅡ 야, 걔 같은 남자가 아무리 봐도 아니야.
" …… 디지고 싶지. "
ㅡ 아, 내가 남소해 줄게. 너 모델과 권현빈 아냐? 얘 요새 외롭다고 난리거든? 어때, 콜?
" 콜이고 자시고, 씨바……. 내 앞에서 임영민 욕하지 마, 짜증 나는 강다니엘. "
와, 니 진짜…… 참사랑이네. 잔뜩 술에 취한 와중에도 놈의 편에 선 나를 보던 강다니엘이 혀를 찼다. 금방이라도 게우고 싶을 정도로 타는 속을 붙잡으며 답답한 곳을 벗어나려 강다니엘에게 지갑을 던지곤 급하게 술집을 빠져나왔다. 뜨거운 여름과 비교되는 꽤나 시원한 밤공기가 나를 반겼다. 아아, 정신이 들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임영민, 보고 싶다. 따위의 생각들에 깊게 잠겨있을 때 계산을 마치고 나온 강다니엘이 나를 툭 치며 불렀다.
ㅡ 가자.
" 어? 어……. "
ㅡ 야, 나 잡아. 너 넘어지겠다.
" 아니이, 나 걸을 수 있거든? "
어어, 야! 걸을 수 있거든? 패기가 가득한 한 마디와 함께 발을 앞으로 뻗자마자 휘청이는 몸을 넘어지지 않게 붙잡은 건 강다니엘이었다. 헤헤. 고마어……. 이로써 혼자 걷는 것에 무리가 있음을 깨달은 후 강다니엘에게 몸을 맡긴 채 집으로 향했다. 그 새끼는 김수정이랑 즐겁겠지……. 11시가 겨우 넘은 시간, 심야 영화를 좋아하던 놈의 태도를 생각하면 김수정과 임영민은 아직 영화관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들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ㅡ 어? 야, 쟤 임영민 아니냐?
" …… 응, 아니야. 임영민 지금 김수정이랑 영화 봐. "
ㅡ 야, 잘 좀 봐. 우리 존나 노려보는데?
" …… 아, 아니라니. "
까……. 옆에서 저를 재촉하는 강다니엘이 귀찮아 고개를 들고 앞을 향해 시선을 꽂았는데, 그랬는데. 왜, 임영민이 저기 있어? 저 멀리 보이는 자취방 앞 익숙한 인영이 내 시야에 들어찼다. 아까 전과 같은 착장을 한, 잔뜩 굳은 표정의 임영민이. 그 모습에 놀라 강다니엘의 품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않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자, 이내 성큼 저희에게로 다가오는 놈이었다. 그와 동시에 금방 저희에게로 닿은 놈이 내 팔을 제 쪽으로 죽, 잡아끌었다.
ㅡ 어, 야. 임영민, 간만이네.
" 어, 오랜만. 이제 가라, 나 있으니까. "
ㅡ …… 어어, 얘 술 많이 마셨으니까 잘 챙기고.
" 엉, 내가 알아서 해. "
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놈의 품에 안긴 꼴이 된 후부터 심장이 빠르게도 뛰어댔다. 그런 놈의 품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않으며 가만히, 두 남자의 대립을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이내 시야에서 멀어지는 강다니엘에게 손짓으로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날 품에 앉은 채 떼어낼 생각을 않는 놈을 한 번, 쳐다보자 이내 내게 깊게 박힌 놈의 시선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하하, 왜?
" 이것도 밀당이야? "
" …… 어? "
" 다 큰 여자가 술 취해서 외간 남자 품에 안겨서 오는 거, 그것도 밀당이냐고. "
" ……. "
아, 짜증 나. 앞에 선 나를 두곤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말을 뱉어내는 놈의 태도에 긴장이 잔뜩 들어갔다. 마른 침을 삼키자 내게 향하는 놈의 시선에, 또 한 번…… 긴장은 배로 다가왔다. 미간을 잔뜩 구긴 놈의 표정은 실로 처음 마주하는, 그런 것이었으니까.
" …… 아, 진짜. "
" ……. "
" 처음엔 밀당인지, 뭔지 그거 귀여워서 그냥 넘어간 거 인정. 근데 너. "
" ……. "
" 내 연락 자꾸 피하고, 매번 다른 사람이랑 약속 있다고 피하고. 그것도 남자랑. "
" ……. "
" 그것도 모자라서 외간 남자 품에 안겨오냐? "
우수수 쏟아지는 불만 섞인 투정이 내 귓가에 박혔다. 처음에는 마냥 무섭기만 하고, 미안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제 의견을 쏟아내는 놈을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진짜, 귀여워 죽겠다. 꽤나 포커페이스에 능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내 앞에 선 임영민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잔뜩 찌푸린 미간, 묘하게 올라간 눈썹. 그 모든 것들이 놈의 투정을 말해 주고 있었다. 가만히 놈의 투정을 듣고만 있자 이내 제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 놈이 나와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는.
" …… 밀당 그딴 거 그만해, 너 좋아하니까. "
김칫국인 줄 알고 들이켰던 건 꿀물이었던 듯싶다. 이렇게 달아도 되나?
# ㅡ Side of Man
" …… 영민이 나 안 좋아하는 거 맞다니까, 아무런 반응도 없음. "
변했다, 확실히 변했어. 요즘 들어 연락을 자꾸만 피하는 듯한 네 행동에 똥줄이 탔다. 좋아했다, 그래서 이런 사이만으로도 만족했던 나였는데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는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툭하면 생기는 약속들, 툭하면 씹히는 연락들. 심지어는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너였기에 오늘도 나는, 너를 찾았다. 벤치에 홀로 앉아 누군가와 심각하게 통화를 하는 모습에 가까이 다가서자, 들리는 내 이름에 두 발이 멈췄다.
" …… 연지야, 진짜 죽을래. 질투유발 그딴 거 아무 소용 없잖아, 이러다 친구로도 못 남으면 어떡해? "
" ……. "
" 임영민이 친구 해 준다고 할 때 곱게 친구로나 지낼걸,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
들려오는 내 이름 석 자와 함께 꽤나 흥미를 끄는 대화의 주제는 오로지 나와 너, 둘이었다. 몇 날을 앓았던 내가 우스워졌다. 그러니까, 이게 다, 깜찍하고 요망한 질투유발이었다, 이거지. 입가에 잔뜩 걸리는 미소와 함께 널 부르려던 행동을 뒤로 하고는 네게서 멀어져 갔다. 나를 좋아하는 너, 깜찍한 행동을 보이는 너. 그 모든 것들에 내 기분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붕 떠올랐다. 너 오늘 나사 하나 빠진 것 같다, 미친놈. 그 어떤 소리를 들어도 행복했다.
" …… 뭐냐, 저거? "
그랬다, 그랬는데. 점점 늘어가는 강다니엘과 너의 약속. 물론, 네가 그 새끼랑 항상 같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그래도. 빡쳤다. 그리고 그것을 한 번에 폭발이라도 시켜 주겠다는 양 잔뜩 취한 채 강다니엘의 품에 안겨 걸어오는 너는, 내게 빡침을 안겨 주었다. 와, 저거…… 뭐야? 실실거리며 강다니엘에게 애교 아닌 애교를 부려대는 네 모습을 보자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들끓었다. 그리고 직진.
아아, 요망하고 깜찍한 행동에 속아 널 가만히 둔 내 잘못이었다.
ㅡ 요새 연재가 조금씩 늦어지는 기분이네욤... 죄송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적어오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차기작은 조만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ㅡ 초록글, 댓글, 추천, 스크랩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__) ~ 항상 빠짐없이 댓글 읽고 있으니 글에 관한 내용, 피드백, 질문 모두 자유롭게 남겨 주셔도 괜찮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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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제 글은 순도 100% 픽션으로만, 작가의 망상으로만 이루어진 글입니당, 픽션은 픽션으로만! 즐겨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작가는 총총총...
# ㅡ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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