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치 4년이었다. 그리고 그 4년의 연애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종지부를 찍었다. 친구로 지낸 게 5년, 겨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군대를 간 놈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이 2년, 그리고 그런 놈이 제대와 함께 타투이스트라는 번듯한 직업을 갖기까지 놈의 옆에는 내가 있었고, 내 옆에는 놈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서로에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지.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들이 이내 들려오는 단조로운 컬러링에 그 싹을 잘랐다.
" 어어, 미연아. 나 번호 바꿨다고. "
ㅡ 임영민이랑 헤어졌냐? 이게 벌써 몇 번짼데. 야, 그런다고 임영민이 너 못 찾는 것도 아니잖아.
" …… 그런가. "
서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탓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둘이었다.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헤어지기도 수십 번 헤어졌고. 헤어짐은 저들 사이 다툼의 단순한 과정일 뿐이었고, 그 과정은 언제나 반복됐다. 그래서 좆같았다. 그래서인가,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당연스레 뱉어진 이별과 더불어 내가 취한 행동들은 그 과정의 반복을 막았다. 전화번호를 바꾸는 것은 기본이었고, 놈이 수도 없이 왔던 자취방까지 옮겼다. 바뀐 핸드폰 번호, 바뀐 집 주소. 그렇게 우리의 4년의 연애는 끝났다.
" …… 임영민 보고 시퍼. "
ㅡ …… 미친년.
" …… 전화도, 하고 시퍼. "
ㅡ …… 돌은 년.
" 미여나, 그 새끼 지금 뭐 하고 있으까……. "
그래, 끝난 줄로만 알았지. 그렇게 뚝 끊긴 놈과의 연에 죽어나는 건 놈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핸드폰 번호도, 집 주소도 모조리 바꾸어 버린 건 나였는데 그런 내 선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놈의 잔상은 떠날 줄 모르고 맴돌았다. 그런 놈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 놈과 헤어지기가 무섭게 놈을 닮은 놈들을 수도 없이 찾았다. 쇄골에 작은 타투가 박힌 놈, 꼭 티셔츠 안에 흰색 티셔츠를 레이어드 하는 놈, 은목걸이를 차고 있는 놈. 그리고 그런 일회용 만남은, 내게 더 곤욕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샤워를 할 때면 마주하는 쇄골에 작게 박힌 타투, 놈과 커플 타투라며 박았던 그 타투를 볼 때면 더욱이 그랬다. 그래, 나는 임영민을 못 잊고 찌질대는 구여친 1일 뿐이었다.
" 저, 타투 좀 지우려고……. "
꽤나 큰 결심과 함께 방문한 타투샵이었다. 하루에 두어 번씩은 꼭 마주하게 되는 놈과의 타투가 퍽 신경이 쓰였으니까. 놈과의 마지막 연결고리라며 꾸역꾸역 몸에 달고 다니던 그것이, 어쩌면 놈의 몸에서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비참함은 배로 커졌으니까. 그래서 지우기로 결심함과 더불어 친한 후배가 추천해 준 타투샵을 들렀다. 나와 사귈 때 놈이 다니던 타투샵과는 아주 먼, 그리고 놈과의 접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그런 곳으로.
" ……. "
" ……. "
근데 씨발, 왜, 대체, 왜? 왜 임영민이 저기서 삐딱하게 날 바라보고 있는 건데? 누구라도 집중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게 딸랑이는 종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퍽 분위기 있는 타투샵에 발을 들였다. 그러자 기계를 닦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향하는데……. 지금 내가 잘못 본 거 맞지? 석 달 만에 마주하는 임영민이 나를 반겼다. 예의 그 빨갛게 물들였던 머리는 어디 갔는지 까맣게 덮은 흑발을 하고선.
" …… 타투를, 지우신다고요. "
" …… 네? 아, 네. "
" 어디요. "
" ……. "
어디에 박힌 타투 지울 거냐고요. 날카롭게 파고드는 놈의 목소리가 제 귓가를 찔렀다. 그 음성과 똑 닮은 날카로운 눈매 또한, 내게 박혔고. 허나 그런 숨막히는 분위기와는 달리 내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함을 찾아갔다. 놈과 닮은 놈들을 찾았던 내 지난 노력이 무색할 만큼, 놈을 마주한 순간 그랬다. …… 그러니까, 그토록 꿈에 그리던 놈이 내 앞에 있는 지금 이 순간. 석 달 간 열심히 놈을 피한 게 우스울 정도였다. 나, 왜 그랬지?
" 아, 저 쇄골……, 아, 아니. 그냥 나중에 다시. "
" 나가기만 해. "
그때까지도 고개만 살짝 꺾어 절 바라보던 놈이 이내 몸을 완전히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몸을 돌린 놈의 쇄골 언저리에 보이는, 저 타투가…… 졸라 익숙하다. 나가기만 해. 예의 그 존대는 때려치우기라도 했다는 듯 예전 그 말투 그대로 내게 말하는 놈이었다. 그리고 그런 놈의 말보다 내 주의를 끈 것은, 리터치라도 한 듯 타투 주변을 붉게 물들인 잔상들이었다. 그 리터치 자국을 보자마자, 기분이 요상한 게 꼭…… 뭐 같더라.
" 전화번호 바꾼 거, 그래. 그렇다 쳐. "
" ……. "
" 근데 너 이사도 갔더라. "
" ……. "
" 그렇게 꺼져 있었으면서, 석 달 만에 와서 한다는 말이 뭐? 타투를 지워? "
하, 깊은 숨을 뱉어낸 놈이 곧장 제 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넘겼다. 열에 채여 제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면 쉽게 나오던 놈의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런 습관에, 지금 놈이 화가 났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고. 제 머리를 두어 번 더 헤집던 놈이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고는 내게 성큼 다가왔다. 가까이서 마주한 놈의 쇄골에 박힌 타투의 언저리가 딱지로 가득차 있었다.
" 존나 보고 싶었는데, 씨발 년아. 간만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딴 좆같은 소리냐? "
" ……. "
리터치나 해, 지운다는 좆같은 소리 다시는 하지 말고. …… 아아, 어쩔 수 없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놈을 따라 들어선 시술실, 그리고 잔뜩 놓여진 기계들의 제 긴장은 하늘을 뚫고 나갈 기세였다. 아, 씨발. 나 괜히 왔나 봐……. 제 앞에서 익숙하게 기계를 정리하던 놈이 긴장한 날 슬쩍 바라보더니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긴장되냐? 그러면서 지우긴 무슨. 그런 놈의 말이 얄미워 밉지 않게 놈을 흘겼다. 으, 얄미워. 그런 눈빛은 개의치도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인 놈이 저를 눕히던 찰나였다. 상체를 숙인 놈으로 인해 다시금 눈에 든 타투 언저리에 자리잡은 딱지들이 퍽 신경 쓰이더라.
" 야, 영민아. "
" 왜. "
" 너, 그…… 쇄골 리터치 한 거야? "
" 엉. "
근데 그, 주변에 딱지가 왜 이렇게 많아? 한눈에 봐도 상처들의 집합체로 보일 만큼 들어찬 딱지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런 내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문 채 내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어내는 놈이었다. …… 아, 씨. 대답하라고. 그리고 그런 투정 섞인 음성에 온 대답은, 퍽 상황과 알맞지 않은 답이었다. 야, 근데 너 딴 새끼한테 이거 받으려고 했지. 미쳤냐? 아, 뭐어. 내가 미치든 말든, 그거 대답 안 하면 너한테 안 받아.
" … 아, 씨. "
" ……. "
" 너 보고 싶을 때마다 리터치 했다, 왜. 그럼 씨발, 아물지도 않은 걸 매번 바늘로 쑤시는데 상처가 안 나고 배기겠냐? "
그러니까 앞으로 눈앞에서 사라지기만 해, 뒈져. …… 개같을 줄로만 알았던 구남친과의 재회는, 퍽 달달했다.
ㅡ 예전에 적어봤던 글인데 이런... 영민이가 보고 싶어 각색해서 다시 적었읍니다... 그리고 껄렁미 넘치는 짤을 찾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노력을 한 작가입니다... ㅎㅎㅎ
ㅡ 초록글, 댓글, 추천, 스크랩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__) ~ 항상 빠짐없이 댓글 읽고 있으니 글에 관한 내용, 피드백, 질문 모두 자유롭게 남겨 주셔도 괜찮습니다. ㅎㅎ
ㅡ 암호닉 신청 받습니다. 신청한 암호닉은 다음 편에 업데이트, 암호닉 신청은 항상 최근 글 댓글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암호닉의 존재 여부는 밑에서 꼭! 확인해 주세요.
ㅡ 제 글은 순도 100% 픽션으로만, 작가의 망상으로만 이루어진 글입니당, 픽션은 픽션으로 즐겨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작가는 총총총...
# ㅡ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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