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번외 3
아기를 안고 토닥여주는 사이 누님이 들어와 우리둘 사이를 보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이제 빈이 화가 다 풀렸냐고 물었다.
"그럼 아가 원래 저 알고 있었던거였어요?"
"그럼. 야, 그래도 명색이 애 엄만데. 처음부터 너 알아보고 내 뒤로 숨은건데? 빈아 그치? 엄마 말 맞지?"
아기는 내 품에서 고개를 끄덕이곤 내 가디건 안쪽으로 얼굴을 숨겼다. 누님은 나온 커피를 홀짝이며 아줌마한테 아기가 내 얘길 엄청 했다고 전해줬다. 고개를 밑으로 내리니 보이는 아기의 귀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가디건을 꼭 쥐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편하게 웃으며 아기를 안은채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누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기는 꼼지락대던 손마저 조용해지고 잠이 든 듯 싶었다.
"어? 아가 자는데요? 우리가 그렇게 오래 얘기했나.."
"아냐, 빈이가 잠이 많은 편이야. 누굴 닮았는지.. 아침엔 또 일찍 일어난다니깐?"
"하긴, 아가한테 8시 반 정도면 이른시간이긴 하죠. 요즘도 그렇게 일어나요?"
"응. 뭐.. 거의 비슷하지"
이제 일어나잔 누님의 말에 아기를 안아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전 걸어갈게요. 문 좀 열어줘요. 아가 내려놓고 가게"
"아냐. 데려다줄게 타고가. "
"아이. 괜찮아요. 걸어가도 빨라요."
"어차피 너 내려주고 5분만 가면 우리집인데 뭐. 그리고 빈이도 자기 작별인사 안해주고 그냥 갔다고 하면 또 삐질껄? 지금은 깨워도 안 일어날 것 같으니까 집앞에서 내릴때 인사해. 빨리 안타고 뭐해?"
음...그런가? 역시 그렇겠지..? 누님의 설득력있는 말에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아기와 같이 앉아서 출발을 외치자 누님은 우리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차를 몰았다. 차를 몰고 10분 즘 지나자 보이는 아파트. 1층에 차를 대놓고선 누님은 아기를 살살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빈아, 빈아 형한테 인사하고 우리집 가야지"
"우웅.."
뒤척이던 아기는 고개를 돌리더니 창 쪽을 바라보고 다시 조용해졌다. 나도 아기를 살살 흔들어봤다.
"아가. 아가 이제 빠이빠이하고 형아 집 가야하는데. 아가 형이랑 인사 안 할꺼예요?"
"...비니 자여"
아기의 말 한마디에 나와 누님은 시선을 맞췄다. 누님도 알아챈 듯 싶었고 나도 이해했다. 지금 아기는 자고 있지 않단 사실을. 아기는 깨 있었다. 아마 예전에도 이런 적이 한번 있었지.. 또다시 예전 일을 생각하며 다시 아기를 흔들어 깨우려는 누님의 손을 살짝 붙들고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어? 이상하다. 아가는 잠자면 말 못하는데. 아가 자는거 맞아요?"
"...비니 지짜 자여"
"안되는데... 그럼 아가 놔두고 형아 그냥 가야겠다.. 아가 진짜 빠이빠이 안 해줄꺼예요?"
눈을 꼭 감고 입을 가리고 있는 아기 볼을 콕콕 찌르며 계속해서 말하자 아기는 가만히 손을 내리곤 눈을 떴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아.."
"빈아, 아닌게 아니고, 형 집에 가야 한다니까? 형 지금 피곤해서 얼른 올라가야해. 그러니까 얼른 인사하고 가야지"
"아니, 아니이..."
입꼬리와 함께 말까지 죽죽 늘어뜨리며 계속 아니라고만 말하는 아기가 답답했던건지 누님은 예전처럼 또 재촉하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안 피곤해요. 응. 아가. 왜그래? 형아랑 빠이빠이하기 싫어서 그러는거야?"
"아니, 아니이... 흐...흐잉.. 힝 가지 마세여. 형아. 형아 비니랑 가치 가자아"
계속해서 아니라고만 말하다 결국 눈에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가지말라고 말하는 아기모습에 우리는 둘 다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빈아 무슨소리야. 형은 형 집에 가야지. 빈이는 빈이집 가고"
"집 가기 시러 형아랑 가치 갈래!"
"아가. 이제는 형이 자주 갈게. 진짜로 약속할까 우리?"
"시러 거진말! 형아 쩌번에도 그랬으면서 안 왔자나! 비니랑 그양 가치 가여. 가치 가자아아아!"
이런저런 말로 달래봐도 막무가내인 아기는 급기야 대성통곡을 하며 내 옷자락을 세게 움켜쥘 뿐이었다. 난처한 얼굴의 누님이 아기를 떼내려고 팔을 뻗는 순간, 갑자기 어디서 그런 용기가 튀어나왔는지 모른채 내 행동은 누님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홍빈"
"잠시만요. 잠깐. 아가 쉿. 쉿 누님. 아니, 빈이 어머님.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응?"
"아가, 아니. 빈이 잠시만, 잠시만 제가 데리고 있으면 안 될까요..?"
"뭐?"
"웅웅! 돼여!"
갑작스럽게 말을 뱉은 나도, 그 말을 들은 누님도 무슨말을 어떻게 다시 꺼내서 이어나가야 할 지 몰라 쳐다보기만 할때, 아기 혼자 눈물을 닦고 웃으며 품에 안겨 누님쪽을 바라봤다.
"누님 아까 작품 준비하신다면서요. 저 이제 쉬어요.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저기, 그러니까..그게..."
불과 몇분전의 당당함은 어디로 간 건지 말을 더듬는 날 게속해서 빤히 쳐다보기만하던 누님은 정신이 돌아온건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무슨뜻인지 알겠어. 알겠는데 효신아. 이건 좀 갑작스러운 것 같다"
"아..."
"아니야! 엉마 나 형아랑 살래!"
"이홍빈. 쉿"
한마디에 조용해진 입과 억울한 눈꼬리로 나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보는 아기가 그 순간에도 귀여워 웃음이 날 뻔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기만 토닥이며 누님을 바라봤다.
"일단, 빈이 아빠하고도 말해봐야 할 문제고, 나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니까. 애아빠랑 상의해보고 다시 연락할게"
"예. 알겠어요. 아가. 아가 이제 형 진짜 빠이빠이 할 시간. 엄마가 생각해본단 말 들었지? 형이 놀러갈게 꼭. 응?"
"흐잉..."
아기는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눈꼬리는 축 쳐져 있었다. 오래있으면 또 떼를쓸까 바로 출발해버리는 차 뒷모습이 안보일때까지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갔다. 텅 빈 집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며 연락을 해볼까, 조금 더 기다려볼까. 란 고민으로 3일이 지났다. 4일째에 결국 핸드폰을 들어 누님의 핸드폰 번호를 찾다 액정에 뜬 찾고있던 번호에 긴장하며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 안.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던 누님과 약간은 어색하게 인사를 한 후 주문한 음료가 앞에 놓여질때까지 한마디도 없던 누님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드디어 내게 말을 전했다.
"그 때 가고 난 다음에 생각 많이 해봤어. 애아빠랑도 말해보고. 막말로 우리가 피가 섞인 사이도 아니고, 더군다나 남자 혼자 사는집에 아기라. 지난번엔 급해서 그랬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너무 곤란한거야. "
"..."
"근데, 3일내내 빈이가, 네 얘기만 하더라"
커피잔을 쥐고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푹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어올렸다. 누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진짜. 네 얘기밖에 안했어. 말하다가 울기도 하고.. 그래서 빈이한테 물었어. 왜 너랑 살고싶냐고. 그랬더니 따뜻했데. 빈이가. 1년이나 지나간 추억을 아직까지도 따뜻했단거야. 그래서 네가 좋대. 솔직히 서운하기도 했었어. 최대한 아이랑 같이 있으려고 노력했었거든. 근데, 우리도 따뜻했는데 네가 조금 더 따뜻했다고, 그러더라. 반성도 많이 했지. 아. 우리가 줬던 사랑이 아이한테 모자랐었구나.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거구나.. 지금이라도 듬뿍듬뿍 사랑 주면서 키우고 싶은데, 아직은 우리가 여유가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솔직히 변명이겠지만 빈이가 원하는대로 해주려고. 우리 아가. 너한테 잠시만 맡길게. 괜찮지?"
"그럼요. 당연한 말씀을. 감사합니다. 누님 너무 감사드려요"
"..너, 너무 좋아하는거 아니니? 빈이가 그렇게 좋아?"
길었던 이야기의 끝은 아가가 나에게 다시 돌아온단 내용이었다.눈을 크게뜨며 대답했던 내 표정에서 그렇게 티가 많이 난 건지 놀리듯 말하는 누님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저도, 저도 따뜻했었거든요. 아가랑 지냈던 그 일주일이. 그래서, 그래서 그냥 저도 아가가 좋더라고요.
속에 있는 말은 창피함에 차마 꺼낼 수가 없어서 그저 웃으며 누님과 차를 마셨다.
"암튼, 빈이가 지금은 어린이집에 다니니까. 유치원까지는 너네 동에서 다니고, 초등학교는 너네집 앞 배정이 안 될꺼야. 우리쪽에 있는 초등학교가 빈이가 다니기에 더 가깝거든. 그때까지만 네가 데리고 있는걸로 하자. ok?"
"예. 알겠습니다."
"음.. 지금쯤이면 빈이 마쳤겠다. 같이가서 데려가. 짐은 내가 저녁에 갖다줄게"
"아. 그럴까요?"
-
"어머. 빈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왠일이세요? 원장님이 안 계셔서 오늘은 상담이 곤란한데.."
"아, 아니요. 상담은 아니고. 내일부터 빈이 데리러 올 사람이 바뀌거든요. 전해드리려고 왔어요."
"아. 정말요? 빈아. 이제 아줌마 아니고 다른사람이 빈이 데리러 온다는데? 누굴까?"
"웅?"
문 옆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누님과 아기. 그리고 아가손을 잡고 서 있는 선생님과 같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궁금해하자 누님이 옆으로 비켜주고 내가 아기와 마주하고 섰다.
"어어?"
"아가 안녕"
눈이 커진 아기는 몇초간 멍하게 서 있더니 활짝 웃으며 달려와 내 품에 쏙 안겼다.
이제 기한은 한정되지 않았다. 아, 한정이 되긴 했지만 짧지 않은 기한에 나와 아기는 서로 만족했다.
-Fin-
안녕하세요 연홍차 입니다.
4월의 끝자락에서부터 5월의 첫걸음까지. 한 해가 지난 듯 다사다난했던 시간동안 정말 많이 보고싶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ㅎ 모두들 이제는 조금. 아주 조금은 미소짓고 사실꺼라 생각하고,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아가야는 다음주, 빠르면 황금연휴 기간동안에 한 편 더 있을 예정입니다ㅎ 이번 편보다 훨씬 짧을거라 예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나오는 편이 원래 결말이었는데 너무 버프된 것 같아서.. 살을 좀 붙이다보니 이렇게 길게 이어지게 되었네요..하핳ㅎ...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고,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ㅎㅎ 사랑합니다!!
암호닉 Heal님, 달돌님,요니별우니별님,정모카님,달나무님,작가님워더 님,하마님,천사천재님,정인님,꼼도리님,코쟈니님,별레오님 모두모두 행복한 황금주말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