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우효 - Vineyard
(제시카 앤 크리스탈 보고 매일매일 들으면서 자고 있어요. 진짜 전곡 다 좋은..)
멀리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가버린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몰래 몰래 그린 그림을 지워가요
You'll never know 아직은 좀 선명하죠
# 스물 일곱 번째 이야기. 걷다가 보면 그대로인 내가 미워요
☆★☆★☆★
터덜터덜.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어느덧 가슴께까지 오는 머리가 거슬렸다. 자르러 가야 하나?
야자를 빼고 그냥 조퇴증을 끊어서 집을 가고 있었다.
찬열이는 공부에 열중하느라 내가 오는지, 가는지도 몰랐다. 그게 차라리 다행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퇴를 했는데도 해가 지고 있었다. 멀리서 하나둘씩 가로등이 반짝하고 점등되었다.
집에 가면 아무도 없겠지? 그럼 나는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 공부를 하다 자겠지.
사실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건가?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거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른들은 잔인했고,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
내가 상처 받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한 번도 못 해 본 걸까?
오히려 차분한 말이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징어야. 너는 꿈이 있니?'
'아니요.'
'그럼 찬열이는 꿈이 있는 걸 아니?'
'네.'
'그 꿈이 뭔지도 알아?'
'아뇨.'
'찬열이가 자기 꿈이 의사라고, 도와달라고 했어. 자기 성적으로는 어림도 없다면서.'
'아….'
의사면. 괴물 같이 공부를 하고 십 여 년을 더 공부만 죽어라 해야 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찬열이한테 직접 듣고 싶었던 이야긴데.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단 건, 방해요소를 지워달란 말과 같지.'
'네.'
'학교 실적도 중요하고, 찬열이는 워낙 입학 때부터 촉망받던 애였잖아.'
'네.'
'네가 찬열이 꿈을 위해서 같이 위로해주고 달려갈 게 아니라면, 더 관계가 깊어지고 공부의 심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그만둬야 해.'
'아….'
'보통 반에서 연애하는 애들이 생기면 하루에 몇 번이나 부모님이 컴플레인을 걸어. 분위기가 형성이 안 된다고.'
'…….'
'찬열이 어머님은 오죽하시겠어?'
그러니까, 공부도 못 하고 분위기나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 나는 얌전히 헤어지고 처박혀서 공부나 하란 건가.
억울하고 서운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헤어져야 되는 거고, 어쨌든 공부를 해야 하니 방해 요소를 지워야 했다.
그러면 찬열이가 상처 받잖아. 헤어지자고 해 줄까?
아니, 근데 나는 헤어지기 싫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아, 찬열이를 위해서? 나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느새 주위를 둘러보니 놀이터였다. 나의 아지트, 고민이 있을 때마다 찾는.
나는 그네에 앉아서 한참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리 오빠 친구도 그랬었는데.
전교 2등을 하던 오빠였는데, 여자친구가 되게 공부를 못 하고 순하기만 했다고 했다.
그 언니는 되게 예쁘게 생겼는데 착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 모든 걸 받아줬다고.
학교에서는 계속 심부름을 시키고 이렇게 저렇게 떼어놓으려고 하고, 담임은 끊임없이 압박을 주었다.
심지어 고3이 되자 그 오빠의 어머니가 매일매일 학교에 오셔서 헤어지라고 면박을 주었다고.
그 여자친구는 맨날 친구들이랑 울고 있었다고 한다. 교실 뒤에 숨어서.
잘못한 것도 없고 반성할 것도 없으니 자기한테 쏟아지는 화살들을 맞고도 할 말이 없었다고.
나도 그렇게 해야 하나?
버텨야 하나? 그냥, 그 쏟아지는 화살들을 맞으면서?
아니. 그런데 찬열이는 다르잖아.
걔는 나한테 신경을 너무 많이 쓰잖아. 내가 그런 짓을 당하는 걸 알면 집이라도 나올 기세였다.
찬열이를 위해서? 널 위해서, 결론적으로 날 위한 것으로?
-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어 한참을 망설였다.
아침에도 따로 오고, 저녁에도 따로 가고.
차차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네가 좋지 않은 건 아니야 찬열아.
그런데, 나는, 누구 말을 들어야 할 지 모르겠어.
네 꿈을 위해서는 내가 양보해주어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널 양보하는 게 맞는 지도 모르겠어.
몸을 웅크리고 침대 위에서 한참을 울었다.
식욕도 확 사라져, 밥도 반 공기를 채 못 먹었다. 그나마도 토해내기 일쑤였다.
나는 그냥, 찬열이가 좋은 줄만 알았는데. 그 이상이었나?
그저 좋은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이었을까?
언젠가는 헤어지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때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불안감이 치솟았다.
모두가 날 떠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이지.
그런 고민들을 하기 싫어 공부를 시작했다.
꿈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기 싫어서, 그냥 평소에 좋아하던 과목인 영어를 선택했다.
영어영문학과를 나오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지도 모르지만, 무작정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미친 듯 풀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데뷔를 해서 바쁜 수정이와 진리,
혜미는 아예 자퇴를 하고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종대마저 요즘 이런저런 인디 앨범에 피쳐링을 넣어주며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중이었다.
찬열이는 이과를 갔고, 나는 문과를 갔다.
이과와 문과는 애초에 건물이 달랐다. 학교에서는 이과를 더 밀어주는 경향이 있었다.
찬열이와 나누던 메시지는 날이 갈수록 그 개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매일매일 잡고 놓지 않던 핸드폰이었는데,
이제는. 사흘에 한 번 꼴로 안부가 오가고.
나는 이 때가 타이밍임을 짐작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악영향만을 끼칠 것이라고.
'찬열아'
'미안한데'
'어.. 이따가 서점 같이 갈래?'
'서점?'
'나 어차피 문제집 사야 돼 같이 가자'
심호흡을 했다.
안녕, 나의 허니.
-
"무슨 소설책을 그렇게 사?"
"음… 대학생 되면 읽어보려고."
"뭔데? 셰익스피어?"
"응. 한여름밤의 꿈이랑… 로미오와 줄리엣."
"그런데 왜 지금 먼저 사?"
"그냥, 언젠간 원어로 읽어보고 싶었어. 나중에는 바빠서 잊어버릴까봐."
"그렇구나."
부쩍 어색해진 말투가 느껴져서 눈을 꾹 감았다.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대체 내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뭐지? 헤어지자는 말은 아닐 텐데.
한 마디 조차 오가지 않은 채로 집 앞에 도착했다.
서로 두 걸음 떨어져서 집에 오는데, 벌써 허리까지 길어 버린 머리카락을 보고 생각했다.
아, 머리를 잘라야 겠구나.
"박찬열."
"응."
"우리 있잖아. 조금만 쉴래?"
"어?"
"헤어지자는 게 아니야. 우리 수능 보고 나서, 그 때 다시 데이트도 하고 그러자."
"……."
"너, 꿈이 의사라며. 공부해야지. "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너랑 같은 대학 가서, 너랑 꼭 CC를 할 거고, 그러니까,
찬열아, 그러니까, 그 때 까지만, 조금만 쉬자.
"…미안해."
"아, 왜 미안해. 또."
뭐라 마무리를 지어야 되는 건지 몰라서 무작정 미안하다고 던졌다.
그렇지만 정말 그 순간 내가 한 생각은 '미안해' 가 전부였다.
어떤 생각도 부가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치졸하고 성급한 고백은 여기서 끝이었다.
찬열이는 약간 날이 선 말투로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을 했다.
나는 슬쩍 그 팔 아래에서 벗어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정말이야. 난 아직도 네가 너무너무 좋아. 그런데…"
아, 안 울려고 했는데.
또 눈물부터 쏟아졌다. 찬열이가 한숨을 깊게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찬열이의 표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미안해, 정말. 내가 너무 미안해.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했어도, 아니 내가 조금만 더…"
횡설수설하면서 시선이 갈 길을 잃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차올랐다.
찬열이는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아.
"괜찮아. 그 때 다시 만나자. 꼭 같은 대학 가고, 다시 사귀면 되지. 그치?"
다정한 문장이었지만 목소리가 더 낮게 깔린 채 양날의 검처럼 내게 닿아왔다.
나는 숨을 참은 채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저번보다 더 빠르고, 깊고, 잔인하고, 격정적으로 입술이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이것이다.
고등학생이 이런 키스를 해도 되는 걸까? 이것도 찬열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는 건 아니겠지?
-
[1년 뒤,]
목표했던 대학에 수시로 입학했다.
H대 영어영문학과.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 이제 대학을 가면. 뭘 해야 되지?
찬열이는, 내게서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어깨를 살짝 넘는 길이의 단발머리가 초겨울 바람에 시리게 흔들렸다.
내가 춥다고 해서 자기 교복 재킷을 벗어줄 사람도,
내가 어느 카페에 가든 체리에이드를 마신다는 걸 아는 사람도,
내가 울 때 낮은 목소리로 달래주며 안아줄 사람도,
이제는 정말. 없는 것만 같았다.
☆★☆★☆★
베브입니다.
...미안해 찬열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행 갔다가 서울 올라왔어요. 다음 편은 아마 금요일쯤 올라올 것 같아요!
겨울이라고 해 놓고 벚꽃 사진을 올린 이유는..☆ 제가 벚꽃은 겨울의 대명사이기 때문임니당
//// 암호닉 ////
소문 / 푸우곰 / 비타민 / 망고 / 준짱맨 / 챠밍 / 홈마 / 눈두덩 / 러팝 / 판다 / 지안 / 이리오세훈 / 길라잡이 / 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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