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부 변백현 |
수만 고등학교에 입한한 지 벌써 1년 반개월째, 우리 학교 방송부 EXO.B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인 변백현이 있다. 백현 선배는 찬열 선배와 함께 아침 방송에 아나운서인데, 아침에도 어쩜 그렇게 목소리가 좋을 수 있는지 정말 들을 때마다 감탄한다. 오늘도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백현 선배와 찬열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운동장, 교실, 복도에 울려 퍼지는 선배의 목소리는 몸이 간지러울 정도로 달콤했다.
「찬열 씨, 다음 주부터 무슨 기간이죠?」 「아~다음 주부터는 시험기간이죠, 백현 씨는 공부 좀 하셨어요?」 「안하시는 거 찬열 씨가 더 잘알면서~?」
능글맞은 대답과 함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복도에서 반으로 들어오던 나는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으면서 들어왔다. 곧이어 들려온 찬열 선배의 시험 끝나고 축제기간인데 백현 씨도 축제하면 빠질 수 없잖아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백현 선배한테 반한 것도 작년 축제 때였는데 이번 축제 때는 백현 선배가 뭘 보여줄까?
「당연히..저도 나가줘야죠!」 「살짝 스포를 해주신다면?」 「그건..비~밀.」
쫑긋했던 귀가 주인 잃은 강아지 귀마냥 내려왔다. 시계를 보니 이제 슬슬 방송이 끝날 시간이다. 찬열 선배의 마무리 멘트가 들려오고 백현 선배의 내일 이 시간에 보자는 멘트가 들려왔다. 작년 준면 선배와 민석 선배에 대를 이어 찬열 백현 선배가 방송한지도 벌써 거의 반년 째다. 들을 때마다 설레는 것도 병인데... 병이던 뭐든 설렌다. 아주 설레 죽겠다.
방과 후에 혹시나 방송부실을 지나치면 우연적으로 백현 선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방과 후에 일부로 방송부실 쪽으로 지나쳐 갔다. 하지만 내 예상은 맞지 않았고 괜히 힘이 빠져 어깨를 축 늘여뜨리고 괜한 미련에 방송부실 문을 보면서 걸었는데.
“방송부원 모집?”
방송부실 문에 떡하니 [방송부 대모집]이라고 붙여져있었다. 문구를 보자마자 후다닥 방송부실 문 앞에 딱 붙어서 자격요건을 천천히 읽어봤는데 별거 없었다. 방송에 관심이 있고 나중에 대학 갈 때 방송부의 스펙이 필요하거나 조금 특별한 활동을 하고 싶은 학생들, 또 성실하면 무조건 가능. 이라고 써있었다. 생각해보니 난 방송에 관심도 없고 부서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방송부에서 아나운서를 하고 있는 변백현이라는 선배인데? 괜히 방송부 한다고 원서 쓰고 면접 봐서 붙기라도 하면.. 다른 친구들한테 민폐다 민폐.라는 생각에 가려는데.
“여기 지원하려고?”
뒤에서 누군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하면서 뒤돌아보면 백현 선배가 웃으면서 날 보고 있었다. 헐. 대박.
“네?” “지원하게? 관심 있구나?” “아…네.” “지원서 챙겼어?” “아니,아직이요..” “기다려 봐, 내가 줄게.”
제가 가져가도 되는데..라고 하자 아니야, 내가 가져다 줄게라는 말과 함께 지원서를 손에 쥐여줬다. 만날 목소리만 듣다가 이렇게 얼굴이랑 같이 목소리를 듣는 건 작년 축제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워서 심장 터져 죽을 뻔했다. 백현 선배는 지원서를 손에 쥐여주며 꼭 방송부에서 보자.라는 말과 함께 방송부실로 들어갔다. 방송부실 문이 천천히 닫히면서 백현 선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방송부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치 꿈에서 깬 기분이었다.
백현 선배가 혹시나 날 기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결국엔 방송부에 지원했는데 1차 원서가 합격돼서 2차 면접까지 보게 됐다. 1차에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내가 면접까지 보게 된 거지.. 하고 면접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주위에 있는 애들이 수군수군 거리더니 방송부 선배들이 나왔다. 찬열 선배랑…백현 선배다.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 애들한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봐달라고 격려 아닌 격려를 해준 뒤에 면접 실로 들어갔다.
“아, 어떡해 나 떨어질 거 같아.” “왜? 왜 어떤데?” “이상한 거 물어봐..아, 진짜 짜증나! ”
방송부 응시자 수는 생각보다 많았다. 1,2학년 통합해서 응시할 수 있는 거라 못해도 30명 정도는 돼 보였는데 내 번호는 거의 끝 번호였다. 앞 번호 쪽에서 보고 오는 애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막 방송용어 이런 거 물어보나? 카메라 용어 이런 거..? 대기하면서 응시하는 애들 얘기를 들어보면 온통 찬열 선배와 백현 선배 이야기였다. 얘네들도 나같이 선배들 보려고 응시한 애들이구나.라고 정신 놓고 있는데 어떤 애가 울면서 면접실에서 나왔다.
“야, 야 재 운다” “뭐야..면접이 그렇게 빡세나?”
다음 번호 애들은 옆자리에서 수군수군, 난 나 혼자 지원해서 친구가 없었다. 그냥 그 우는 애를 빤히 보고 있을 뿐 또 면접 내용이 비밀이라서 선배들이 면접 대기실 바로 앞에서 면접 본 사람은 가방을 챙겨서 나가게 했다. 10분 정도 더 지났을까, 내 이름을 호명했다.
“ ㅇㅇㅇ ”
면접실에 딱 들어갔을 땐 선배들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인사부터 해야 했기에 난 앉기 전에 인사를 하고 가운데에 앉아있는 선배가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했다. 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선배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살짝 곁눈질로 봤는데 백현 선배는 부장 선배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 평소에 방송부를 어떻게 시작하냐, 방송에 관심이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방송부에 지원한 동기는 뭐냐라며 끝없이 질문했다. 난 최대한 버벅 거리지 않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말 되게 조곤조곤하게 잘하네요.” “아,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 갈게요.” “네.”
마지막 질문을 한다는 말에 주위에 있던 선배들의 웃음기 있는 얼굴이 싹 사라졌다.
“솔직히 말해서, 방송부에 좋아하는 사람 있어서 응시한거죠?”
상상치도 못했던 질문에 그저 눈만 깜빡였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 차장 선배의 '그럴 줄 알았어, 쟤도 똑같네'라는 말이 들려왔다. 차장 선배 오른쪽에 앉아있는 백현 선배의 얼굴을 보니 선배 얼굴도 굳어져있었다. 순간 식은땀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미 아니라고 하기엔 타이밍을 놓쳐도 아주 놓친 거 같았다. 그래, ㅇㅇㅇ. 차라리 솔직해지자.
“대답이 없으시네요, 여기까지하겠습니ㄷ….” “네, 있어서 지원했어요.” “…아하, 방송부에서는 연애 금진데 알고 계세요?” “연애하려고 방송부 들어가려고 한 거 아니예요.” “그럼?” “……그,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을 저도 하고 싶어서요.” “생각보다 당돌하네요. 몇 반이라고 했더라? 7반?” “네…네.” “진짜 마지막 질문, 얼굴이 좋아요 목소리가 좋아요?” “네…?” “목소리,얼굴. 뭐가 좋냐구요.” “…모,목소리.”
이상 면접 마치겠습니다라는 부장 선배의 말과 함께 난 면접실을 나왔다. 면접실을 나오면서 들은 차장 선배의 쟤 변백현 좋아하는구나라는 말에 순간 휘청. 어떻게 알았지?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가방을 챙겨서 면접 대기실을 나왔다. 아무래도, 나…뭔가 잘못되가고 있는 거 같다.
결과는 이틀 후에 나온다고 했다. 발표가 나오기 하루 전에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백현 선배를 만났다.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백현 선배가 날 보더니, 어!라며 먼저 아는 척을 해줬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내일 결과 나오는 거 알지?” “아…네 알죠.” “붙었으면 좋겠다.” “네?”
선배는 날 보며 웃더니
“나 너한테 만점 줬어, 꼭 붙어서 방송부실에서 보자.” |
전 언제나 반응을 보고 다시 돌아 올 지 안 돌아 올 지 결정을 하죠? 하하.
일요일은 방송부 변백현과 함께 마무리 하세요. (패기)
그리고 역시 썰 같은 거 쓸 때는 백현이가 최고 인 거 같아요..가장 쓰기 쉬워..
여튼 아쉬운 주말 잘 보내시고 다들 굿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