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2부
15.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왔다. 우리 집 말고 김종인네 집. 그놈의 수학. 그동안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수학을 붙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려. 아, 그래. 뽀뽀 안한다고 해서 수학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건 아니다. 분명히. 절대로 아닐걸? 암튼 그렇게 종인이가 굳이 꼭 같이 먹어야겠다고 설득에 설득을 해서 종인이네 대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오늘은 좀 집이 조용하다. 일요일인데 부모님이 어딜 가셨나?
“부모님 안 계셔?”
“어디 가셨나보네…. 나도 잘 모르겠다.”
자주 온 덕에 익숙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계시다면 말이 달라지지. 슬쩍 눈치를 보며 거실로 들어서자 종인이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 집에 우리 둘만 있다는 건가? 부모님 계실까봐 걱정했는데. 어딜 가신 것 같다는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 뭐. 둘이 있고 싶어서 그렇다기보다 꼭, 여자 친구 집에 인사 온 것처럼 긴장을 하게 되어서. 전에 어머님은 한번 뵌 적이 있지만, 그때는 그냥 나 혼자 짝사랑 할 때고 지금은 관계가 많이 진전 되었으니까 더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고 해야 되나. 아, 내가 지금 뭐라는 건지. 미쳤나봐 도경수. 쓸데없는 생각에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랬더니, 김종인이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내가 어떻게 쳐다봤는데?”
재미없는 김종인.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저으며 나도 그 아이를 따라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무슨 놈의 가방이 이렇게 무거운지 몰라. 어깨 아파 죽는 줄 알았네. 짐을 뺀다고 뺐는데도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책 몇 권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다 보지도 않았는데 괜히 들고 왔나 싶기도 하고. 근데 또, 안 가지고 가면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놓고 갈 수도 없고. 그래도 오늘은 보람차다. 공부도 많이 했으니. 그냥 공부도 아니고 무려 수학 공부를. 내가 지금까지 수학 공부를 했어요. 와, 대박. 이건 일생 일대의 사건이야.
“집에 지금 아무도 없는 거 맞아?”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김종인에게 다가갔다. 사실은, 아무런 사심 없이 그냥 웃은 건데 음흉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왜?”
종인이가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왜냐니, 알면서 묻고 그래.
“왜긴 왜야…. 몰라서 물어?”
“내가 어떻게 알아….”
종인이가 뒤로 한발자국씩 물러선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모르겠단 표정이다. 아, 김샜어.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얘가 눈치 없다는 걸 알 때도 됐는데 말이지. 다 내 탓이다, 내 탓이야. 내 잘못이에요. 한숨을 쉬려다가 다시 삼켰다. 눈치가 없으면 솔직하게 말하면 되고, 김종인이 몰라도 내가 아니까 됐어.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재미 없지.
“나 수학 완전 열심히 한 거 알지?”
그래서 뒷걸음질 치는 그 애에게 다가가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쳤다. 종인이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씩 웃는다. 근데 그 표정이 도경수 귀여워 죽겠다. 뭐 이런 표정이라서 나도 같이 따라 웃고 말았다. 으, 너무 닭살이야.
“상 달라고.”
“무슨 상.”
“알잖아….”
“뽀뽀?”
이런 대화가 너무 간지럽다. 근데, 김종인이랑 하니까 더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 놓고 뽀뽀라는 단어에 괜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였더니 김종인이 머리를 마구 헝클인다.
“귀여워.”
아니, 귀엽다면서 왜 이렇게 머리를 마구 헝클이세요. 김종인이 나를 대하는 걸 보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다 느껴진다. 그러면 난 또 부끄러움은 어디론가 숨겨두고 좋아서 웃음꽃이 피어오르고. 아, 얘 왜 이렇게 좋지? 진짜 좋다. 진짜로.
“니가 더 귀여워.”
“내가 귀여워?”
“응. 수학 시켜서 밉긴 한데 그래도 귀여워.”
“근데 넌, 내가 하란다고 하냐. 안 해도 되는데….”
김종인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무슨. 딱 이렇게 인상 쓰고 수학 안하면 뽀뽀 안할 거라고 협박한 사람이 누군데.”
“니가 진짜 그 말을 믿을 줄은 몰랐지.”
“어? 그럼 수학 안 해도 뽀뽀 할 거였어?”
그랬더니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아, 속았어. 완전히 사기꾼이야. 사기꾼 김종인. 이럴 수가 있나? 허탈해서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김종인을 쳐다봤다.
“나 좋으라고 한 건 아니잖아. 그치?”
“…….”
“하란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
“말도 잘 듣고.”
그러면서 얼굴을 끌어당겨 볼에 살짝 뽀뽀를 하고 떨어진다. 좋아. 좋은데, 왠지 허탈해. 수학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거 참. 그 애의 입술이 머물다 떨어진 볼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종인이가 그런 나를 두고 부엌으로 향하면서 내게 묻는다.
“경수야,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부엌으로 쫄래쫄래 따라갔다.
一
“경수야.”
“…….”
“경수야.”
몇 달에 한번 올까 말까한 집중력 신이 내렸다.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배가 부른 와중에 온통 파란 김종인 방에서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웬일로 공부하자고 독촉하지 않는 김종인과 달리 오늘은 내가 그랬다. 오랜만에 집중도 잘되는 것 같고, 오늘이 날이다 싶어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근데 자꾸 종인이가 맞은편에 앉아서 턱을 괴고 나를 본다. 그 시선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내 이름까지 불러. 것도 되게 애타게. 오늘 왜이래? 요즘 통 공부를 못했다.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종인이랑 연애한다고 바빠서 공부는 내팽겨 쳤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공부가 잘 되는 거야. 이런 날은 놀면 안 돼. 무조건 달려야해. 독하게 마음을 먹고 종인이를 외면하고 있다.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건 말건 샤프를 고쳐 쥐며 해답지를 잡아들었다.
“공부 잘 돼?”
“…….”
내 손에 쥐여진 샤프와 해답지를 쏙 빼가며 묻는다. 아니, 잘 될 리가 없잖아?
“너 오늘 좀 이상하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더니, 그러던가 말 던가 내 시선을 끌었다는 것이 만족스러운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씨익 웃어. 아, 웃으면 내가 화를 못 내잖아….
“놀자.”
“하던 거, 마저 하고 놀면 안 돼?”
오늘은 진짜 날이란 말이야! 몇 달 만에 한번 올까 말까한 날이라고! 오늘 같은 날 열심히 공부를 해야 내일부턴 또 마음 놓고 너랑 놀지. 안 그래? 뭐 그런 눈을 하고서 종인이 손에 들린 내 샤프를 다시 빼앗았다. 그랬더니 표정이 뚱하게 변한다. 근데 왜 이렇게 귀엽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부를 하니 마니 해놓고 그 표정하나에 쥐었던 샤프를 내려놓는 나도 참 바보.
“…너 좀 이상해.”
“내가 뭘.”
“우리 좀 바뀐 것 같지 않아? 원래는 니가 이렇게 공부하고, 내가 너처럼 막 괴롭히면서 놀자고 해야 하는데 오늘은 좀 이상하잖아.”
“사람이 늘 한결 같을 순 없잖아.”
“대체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겠어.”
말도 안 되게 실없는 소리를 주절주절 내뱉는 김종인이 낯설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봤더니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인다. 나 자꾸 김종인한테 말리는 것 같아…. 기분 탓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턱을 괴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종인이를 바라보다가 나도 책상 위로 두 팔을 올리고서 그 사이에 얼굴을 갖다 댔다. 눈이 마주치자 또 웃는다. 오늘따라 자주 웃는다. 아, 오늘이 아니라 좀 전에 라면 먹고 나서부터 자꾸 그래.
“종인아.”
“응.”
“내가 그렇게 좋아?”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다. 너무 궁금해서. 뭐, 대답은 뻔한 거지만.
“…….”
“…….”
당연히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는데, 김종인은 또 예상 밖의 행동을 한다. 내가 그렇게 좋냐는 내 말에,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어? 이 반응은 대체 뭐지? 좀 전에 공부하지 말고 나랑 놀아달라고 떼쓰던 김종인은 또 어디로 갔을까. 어이가 없기도 하고 또 마냥 귀여워서 고개를 숙인 덕에 얼굴 대신 보이는 까만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푹 찔렀다. 물론, 세게 찌른 건 아니고 살짝.
“김종인씨 고개를 들어 보세요.”
“…….”
“야아….”
“…….”
“설마, 부끄러운 건 아니지?”
부끄러워서 그런 거 다 안다. 근데 일부러 물어봤다. 이런 게 또 내 전문 아니겠어? 알면서 괜히 떠보는 거 내가 좀 잘하지.
점점 더 빨갛게 익어가는 귓바퀴가 보인다. 좀 전엔 잘 익은 복숭아 같았는데 지금은 딸기 같다. 아, 귀여워라. 얜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어. 미스터리한 김종인.
“뭐야. 너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나 다시 공부한다?”
정수리를 또 한 번 찌르며 말했다. 종인이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진짜?”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복수다. 수학 공부 하라고 협박한 거에 대한 복수. 성공했어! 기분이 좋아서 생글생글 웃었더니 빨갛게 익은 김종인은 또 어디로 가고 아무 표정 없는 그 애가 내 얼굴을 끌어당겨 뽀뽀를 한다. 닿았다 떨어지는 그 감촉이 너무 좋다. 뽀뽀 한 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아마추어처럼 또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제가 먼저 부끄러워하고 또 방금은 뽀뽀를 해놓고서 민망했던 모양인지 종인이가 내 손가락을 붙잡고 꼼지락꼼지락 장난을 치다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그걸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 못했다. 너무 좋아서 꿈같은 거 있잖아. 내가 손가락이라도 까딱 하면 꿈에서 깨어버릴 것 같고 그래서. 입술을 안으로 감쳐물면서 그 애가 하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핸드폰 가지고 뭘 하려고 또.
“어, 이거 뭐야….”
내 그럴 줄 알았지. 아무 생각 없이 갤러리에 들어간다. 다른 거 볼 것도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예상된 행동에 웃음을 흘렸더니 녀석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핸드폰을 건넨다.
“어! 중학생 김종인!”
무얼 봤기에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었나했더니, 화면에 떠 있는 건 다름 아닌 중학생 김종인의 모습. 왜, 그때 백현이네 놀러가서 몰래 찍어왔던 그 졸업사진이다. 깜빡 잊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또 귀엽다. 물론, 눈앞에 있는 진짜 김종인이 더 귀엽지만.
“이거 뭐야… 어떻게 찍었어?”
“능력껏 찍었지.”
“변백현이 보여줬어?”
“아니? 그런 거 아닌데.”
백현이 집에서 본 건 맞지만, 백현이가 보여준 건 아니니까 아니라고 했다. 그 말에 종인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다시 빼앗아가려기에 얼른 뒤로 숨겼다.
“나 이거 부끄러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부끄럽다고 지우자고 몇 번이나 말을 하는 걸 못들은 척 했다. 웃으면서 싫어. 하고 말했더니 김종인이 더더욱 울상을 짓는다.
“이거 지우면 안 돼?”
“응, 안 돼.”
“왜.”
“레어템이잖아. 내가 모르는 김종인. 얼마나 귀한 자룐데 내가 이걸 지워.”
“이건 불공평해. 그럼 나도 너 졸업앨범 찍을래.”
그것도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왜? 과거는 함부로 들추는 게 아니라고 했으니까. 근데 김종인 사진은 왜 들고 있냐고? 일종의 나는 되고 넌 안 돼. 뭐, 이런 거랄까. 놀부 심보지, 놀부 심보.
“아.. 이건 아니야.”
“귀여운데 왜.”
“아, 진짜 삭제하면 안 돼?”
종인이가 끝까지 미련을 못 버리고 등 뒤로 숨긴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는다. 진절머리를 치며 싫어하는 게 눈에 보여서 그냥 못이긴 척 넘어가야 되나 싶기도 하고. 근데 또 막상 지우려니 아깝기도 하고. 아, 아니다! 눈앞에서 지우고 다음에 백현이네 가서 또 찍으면 되겠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좋은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 등 뒤에 숨겼던 핸드폰을 앞으로 꺼내보이며 종인이를 향해 말했다.
“내가 이거 지우면.”
“지우면?”
지운다는 말에 종인이가 화색을 띤다. 그렇게 좋냐, 바보야.
“지우면.”
“응.”
“나랑 같이 사진 찍어.”
“…….”
대안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 같이 사진 찍자는 그 말에 김종인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그래서 내가 핸드폰을 다시 뒤로 감추며 싫어? 그럼 지우지 말까? 매일매일 이 사진 보고 그러는 데 그래도 괜찮아? 이거 너무 많이 봐서 눈 감고 그릴 수도 있어. 했더니, 종인이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쉰다. 잠시 생각할 시간은 줘야 될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내버려뒀다. 조금 그러고 있었을까, 그 애가 다시 눈을 번쩍 뜨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 만족스럽다. 사진 찍어야 되니까 가까이 오라고 내 옆자리를 툭툭 손으로 두어 번 내리치며 그 애를 향해 웃었다.
***
@.@ 아, 뭐라고 해야되죠.. 원래는 내용이 더 많았는데
분량때문에 담편으로 짤랐네요TT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 이 망할 똥손....
이러다 진짜 대하드라마 될듯... 오랜만에 와서 잡소리가 늘었네요..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건 저뿐인가여...TT 허헝...
여러분 언제나 감사한 거 아시죠? 사랑해요 핱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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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중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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